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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도 황희두 Sep 12. 2018

깨어난 시민의식과 '정치 참여'

우리 청년들은 거대한 역사의 중심에 서있다.

※ 이는 지극히 개인이 바라본 한국 청년 문화에 대한 정기 연재 글입니다.


1편 <21세기, 한국 청년 문화에 대하여> :  https://brunch.co.kr/@youthhd/94


어느 순간 대다수 청년들은 'N포 세대'라는 무거운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그 타이틀은 청년들에게 잠시의 여유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당장 먹고 살기조차 급급한 청년들에게 정치는 말 그대로 남의 나라 이야기와도 같았다.

 "정치에 대해 논할 시간에 자격증 하나라도 더 따는 게 낫다"는 식의 관념은 자연스레 진리가 되어 퍼졌다. 이처럼 정치에 대해 논하는 것조차 사치로 여기는 청년들에게, 정치 참여는 얼마나 비생산적이고 이상적인 행동으로 보였을까. 누군가는 이런 청년들을 방관자라고 비난했지만, 그만큼 많은 청년들이 그 정도의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고통 속에 허덕였다.


이것이 불과 얼마 전까지 한국 사회의 적나라한 현실이었다. 불과 2년도 채 안 된 이야기다.


2015년 8월, 한 유명 사업가가 도박 혐의로 잡히고 결국 구속된다. 그땐 아무도 몰랐다. 그 작은 사건이 한국 사회에, 더 나아가 세계정세에 얼마나 큰 변화를 불러올지를 말이다. 그는 본인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주위에 얽혀있던 모든 매듭을 하나씩 풀었다. 온갖 적폐들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이다. (그가 혼자 죽긴 싫어 의도한 건지, 아니면 본의 아니게 공개한 것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렇게 숨어있던 적폐 세력들이 세상에 하나둘씩 공개되었다. 변호사, 검사, 판사를 넘어 당시 정부의 실세까지 모조리 끌려 나왔다. 이때까지도 여전히 국민들은 긴가민가했다. 그들을 불러내긴 했지만, 거기서 끌어내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었다. ㅡ오죽하면 <내부자들> 같은 영화가 개봉 당시에 너무 비현실적이라며 비난받다가, 탄핵 이후에 재조명될 정도였다ㅡ


안타깝게도(?) 국민들은 더 이상 그들이 생각한 '개돼지'가 아니었다. 어느 순간 1,7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모였다. 과거 민주화 운동을 몸소 체험했던 선배들과 그들의 행진을 보며 용기를 얻은 청년들이 하나둘씩 거리로 나선 것이다. 이러한 세대 간의 합작은 철옹성 같던 박근혜 정권을 끝내 몰락시켰다.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고, 그 뒤에 숨어 국가를 통째로 유린해오던 최종 보스 최순실까지 잡혔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정치에 대한 관심과 현실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그 후 청년들은 달라졌다. 이를 보며 소수 권력층은 불편해했고, 다수 국민들은 환호했다. 물론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안다. "너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봐. 그래도 사회는 변하지 않아"라는 식의 구시대적 논리가 더 이상 국민들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박근혜 탄핵 이후 사회는 많이 변했다. 물론 앞으로도 훨씬 많은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오랜 적폐가 하루아침에 해결되길 기대하는 것도 과욕일지 모른다. 헤겔의 표현처럼 성장에는 이견의 충돌이 따르고,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느릴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혹자들은 말한다. 정권이 변했지만 일상 속에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고, 그러니 본인은 투표를 안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당장 옆 나라에서 세계적 명성을 가진 배우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상황을 들여다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많은 청년들의 어깨가 무겁다. 정치 이야기를 마치 '사이비 종교' 이야기처럼, 혹은 은밀한 외설처럼 취급하며 꺼리는 사람들의 인식까지도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 누가 뭐라 할지라도, 혹은 관심을 가지지 않더라도 꾸준한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 정치에 대한 관심은 '험난한 현실'이란 명분 아래 소멸될 것이다.


과거 세대의 선배와 미래 세대의 청소년 사이에 놓인 '현재' 청년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항상 생각해봐야 한다.


이미 역사라는 화살은 어딘가를 향해 날아가는 중이다. 그 종착점이 유토피아 일지, 디스토피아 일지는 우리 청년들과 모든 국민의 역할에 따라 달려있다고 본다. 우리는 거대한 역사, 그 중심에 서있다. 물론 변증법처럼 이 화살은 어딘가에 도달하는 순간, 다시 새로운 과녁을 향해 나아가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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