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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도 황희두 Sep 21. 2018

우리들이 만들어가는 문화, '청년문화포럼'

청년문화포럼은 하나의 소사회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너는 도대체 뭘 하면서 사는 거냐. 청년문화포럼은 뭐하는 곳이냐"


솔직히 말하면 아무리 설명해도 대부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왜 이런 활동을 하는지, 뭘 얻는지.

요점부터 말하자면, 나는 정말 많은 걸 얻고 배워가고 있다. 인간 관계, 청년들의 문화, 정치, 철학 등을 다 배워가는 중이다. 그저 대다수가 원하는 돈이 아닐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관점에서 단체를 멋대로 해석하고는 굳이 비평가가 된다. 이걸 어떻게든 돈으로 연결 지으며 단체가 가진 엄청난 가치를 말살시키려 든다. 이는 정말 무식의 소치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청년문화포럼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고, 앞으로 단체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에 대한 생각리더로서 밝혀둬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청년문화포럼의 탄생


약 3년 전, 국도형 대표와 나는 둘이서 '청년들이 모여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단체를 구상했다. 당시에는 '기성세대와의 통합', '사회 변화'가 주목적이었다. 이듬해 1월, 추진력이 빠른 국도형 대표 덕분에 우리는 바로 임의 단체를 설립할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오늘날의 비영리 민간단체 '청년문화포럼'이다. 돌이켜보면 부끄럽지만 과거엔 표면(스펙, 사회 변화, 인맥 등)적인 결과에만 집중했다. 물론 여전히 그런 곳이 너무나 많다고 느끼기에 참 안타깝다.


우리는 단체 설립 초반에는 정부를 비판하는 활동부터 문화 기획 활동까지 정말 많은 활동을 해왔다. 덕분에 우리 단체는 거침없이 성장했고 어느 순간 200여 명 가까운 활동가들이 모였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결과의 이면에 많은 이들의 희생이 생겨났다. 어느 순간 나는 이에 깊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 다른 시민 단체도 전부 이렇게 돌아가는가?

- 거대 자본가들에 의해 단체가 좌우되는 게 올바른 현상인가?

- 다 같이 모여서 서로 놀면 그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인가?

- 소수자는 항상 무시당해야 하는 것인가?

- 결과 이면에 존재하는 희생을 없애는 건 불가능한가?


이외에도 정말 많은 문제들을 느꼈지만, 아무튼 이에 대해 뚜렷한 답변을 내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그건 마치 마르크스가 꿈꾸던 유토피와도 같지 않을. (이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내릴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 주길 바란다.)


어쨌든 나는 본격적으로 이러한 회의를 시작한 후 단체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우리 사회가 너무 결과에만 집중하는 거 같다. 적어도 우리만큼은 과정에 집중하면 좋을 거 같다"라고 조언해준 한 친구의 의견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로 나는 단체의 방향성을 크게 바꿨다.


# 2018년의 청년문화포럼


결과보다는 과정에,

민주주의 제도를 통해 미시 파시즘을 해체하고,

스펙보다는 자아 성찰에 집중하고,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 모인 소사회.


이것이 현재의 청년문화포럼이다. 결과보다 우리가 매 순간 만들어가는 과정에 집중하고, 누구나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며 다수를 설득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자아성찰하게 되는 모임. 나는 그런 작은 사회를 만든 것이다.


물론 이런 것에 집중하다 보면 결과물은 늦게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과정이 절대 무의미하다고 느끼진 않는다. 더군다나 이미 그런 결과에 집중하는 단체는 무수히 많을뿐더, 대기업 서포터즈와는 감히 견줄 수도 없다고 본다. 또한 나는 그 속에서 획일이란 괴물이 깨어난다고 생각한다. ㅡ 과거에 우리 단체도 그러했다ㅡ 결국 어느 순간 개인이 주체성을 상실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그렇다고 스펙을 위한 활동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 과정 속에서 개인은 비약적인 성장을 해낼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뜻하는 성장은 실력적인 면에 한해서일 가능성이 높다.


래서 나는 이러한 획일적인 집단 문화가 너무나 싫다. 적어도 우리 단체에서 만큼은 각자가 주체성을 가지길 바라고, 다양성에서 생겨나는 한계를 민주주의라는 제도로 채우려 한다. 물론 누군가는 이런 과정이 지루하고 답답하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꼰대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주로 그러했다. 그들은 결과라는 명분을 앞세워 다수를 획일화시켰고, 추종자들과 함께 다양성을 말살시켰다. 하지만 그들이 그러든 말든 나에겐 확신이 하나 있다.


우리들의 이러한 도전이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체성을 잃어버린 사회, 다양성이라는 획일성에 젖어들어 오히려 개인의 목소리를 내기 더 어려워진 현실. 그렇기에 이러한 반항적 시도를 막으려는 자들이 얼마나 무서운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빨리 깨우쳐야 한다. 실제로 히틀러라는 괴물도 대중들의 환호와 함께 탄생했다. 그렇게 질서를 좋아하는 이들이 뒤샹의 <샘>, 포스트 모더니즘 등봤다면 그저 침이나 뱉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미시 파시즘을 해체하고, 새로운 문화를 재구축하려 한다.


# 그래서 우리들은 어디로 가는가?


나는 항상 말한다. 방향성을 모른다고, 오히려 내가 그걸 알아서도 안 된다고.


기존 사회에서는 리더가 사람들에게 확고한 비전을 제시하여 그 뒤에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모습이었다면, 우리 단체가 추구하는 모습은 누구 하나 앞서가는 사람이 있어선 안 된다. 내가 다수에게 방향성을 제시하는 순간 그건 '우리들이 만들어가는 문화'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저 매 순간, 청년들이 외치는 목소리를 다수결에 의해 결정하며 그렇게 영원히 변해가는 것이 진정한 '청년' 문화이고 우리 단체라고 생각한다.


위대한 철학자 헤겔 조차도 스스로 만든 변증법의 이론에 갇혀버렸다. 나 또한 변증법적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영원불멸한 합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매 순간의 합만이 존재할 뿐,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은 전부 구세대 유물이 되어버릴 것이다. 특히나 이렇게 빠르게 변해가는 정보화 시대에서는.


앞으로도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면 그들은 이전 문화의 일부를 뒤엎을 것이다. 과거의 진리는 과거에, 현재의 진리는 현재에 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주라는 말처럼 매 순간 만들어낸 문화를 '있는 그대로만' 바라보면 된다.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면 이해할 수 없는 모습 투성이일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그들이 무지했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본인도 미래엔 과거가 된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단체가 시끌벅적하고 끝없이 변해가는 모습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며, 이것은 위기가 아닌 오히려 우리들이 진정한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우리 청년들의 문화는 누군가가 나서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보통 청년들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움, 그 속에 담긴 매 순간의 특징과 문화를 발견하, 그러한 과정 속에서 개인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가는 것.


이것이 내가 청년문화포럼을 이끌어가는, 그리고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단체라고 확신하는 이유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단체를 멋대로 이끌어갈 권리도, 그러한 실력자도 세상에 없다. 우리 포럼은 내가 아닌 우리 모두가 만들어가는 단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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