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강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철학자 니체는 말했다. "악이란 나약함으로부터 비롯된 모든 것"이라고.
니체는 세상에 굴복하고 두려움을 가진 채 살아가는 나약한 태도를 가장 경멸했다고 한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보통 사람, 나약하고 병든 사람은 경쟁을 두려워하고 무언가(기독교, 신)에 의지한다. 인간은 신을 죽이고 스스로 초인이 되어 사자처럼 강인한 정신을 가진 채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삶의 모든 것을 긍정하면서 말이다.
그동안 나도 나약한 인간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아니다. 삶의 모든 것을 긍정하면서 살아가자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나약하고 두려워하는 나를 억지로 강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을 낳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약하다"라는 말을 무척이나 듣기 싫어한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다다르지 못하면 자책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한동안 힘든 일도 많았지만 (정말 친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절대 내색하려 하지도 않았다. 나는 강한 리더였고 강해 보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내면의 나는 점점 더 나약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치자.
"너 이렇게 나약한 사람이었어? 실망이야"
그래서 어쩌라는 말인가? 인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십중팔구 분노를 감추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는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설령 본인이 나약하지 않은 사람이란 사실을 증명했다 할지라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것이다. 도대체 내가 남에게 왜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부터, 별로 달갑지도 않은 상대방 때문에 본인이 쓸데없이 노력했다는 사실이 꽤나 불쾌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무서운 것은 상대방의 한 마디로 인해 순식간에 '나약한 인간'이라는 프레임 속에 갇혔다는 것이다. 상대에게 나를 증명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이미 상대는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아마 혼자 며칠간 고민하다가 친한 지인에게 물을 것이다.
"혹시.. 너가 봤을 땐 내가 나약한 사람 같아?"
이때 지인의 대답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지인이 강하다고 말할지라도 '내가 상처받을까 봐 애써 해주는 위로는 아닐까?'라는 식의 새로운 고민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는 다수가 강하다고 했어도 한 명이 "응, 넌 나약해"라고 말하는 순간 본인은 다시 절망의 질곡으로 빠지고 말 것이다.
아무리 강한 사람일지라도 한 번 나락에 빠지게 되면 쉽게 헤어 나오기 힘들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내면에 깊은 고통을 하나쯤 간직한 채 살아간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나약해 보이기 싫어서 강한 모습만 보여주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마다 고통과 인내의 정도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남들이 나보다 조금 더 강해 보이는 것뿐이다.
만약 나약함으로 인해 힘든 상황에서 누군가가 "강해져야 해. 어서 일어나!"라고 닦달한들 쉽게 일어설 수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나는 왜 쉽게 못 일어서는 것인가'에 대해 더 큰 좌절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수많은 부하를 거느리고 천하를 호령하는 장군이라고 할라도 내면까지 강하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내면은 다른 사람들보다 공허하고 불안할 것이다. 주위 사람을 끝없이 의심할 것이며, 언제 누가 나를 해치려고 할지 모르는 불안한 환경 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애써 담담한 척, 강한 척하면서 말이다. 과연 그들이 진짜 '강한 인간'이라고 볼 수 있을까?
태양 가까이서 날고자 했던 이카루스는 결국 과도한 욕심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다. 어쩌면 완벽하게 강한 인간을 꿈꾸는 것 자체도 비슷한 욕심이 아닐까 싶다. 애초에 '강한 인간'에 대한 보편적 기준도 정할 수 없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강한 인간만을 무리해서 추구하다가는 이카루스처럼 추락한 채 오히려 더 깊은 나락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다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아직도 강한 인간이 되길 원하는가?
물론 모든 인간이 나약하다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절대 아니다. 스스로를 비난하고 나약해지라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한 것일까? 저 사람은 되게 강해 보이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등의 고민에 빠진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그러므로 나는 '나약한 인간' 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동안 항상 강하다고 믿어왔고, 타인보다 뛰어나 보이길 바랐으며, 리더는 강해야만 한다는 프레임 속에 갇힌 채 살아왔다. 이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나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다. 여태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서 그토록 '강한 인간인 척'을 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역설적이지만 오히려 마음을 놓고 나니 알 수 없는 강한 기운이 느껴지며 자신감까지 생겨났다. '나약한 나'와 '강한 모습의 나', 모두 나로 인정하는 지금 이 순간, 나는 다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