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자각'과 '저항', 그리고 진짜 '사랑'에 대하여.
"다르다는 게 심각한 병인가요?"
"모든 사람과 닮기를 자신에게 강요하는 게 심각한 거죠.(…) 남들과 다른 존재가 될 용기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의 순리에 역행합니다…."
나는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을 이제야 접했다. 그는 말로만 듣던 《연금술사》, 《브리다》 등의 걸작을 남긴 세계적인 작가였다. 만약 우리 포럼의 교육위원회에서 이 책을 선물해주지 않았더라면, 평생 그의 작품을 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이처럼 책 한 권이 누군가에겐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귀한 선물도 된다.
인생의 무기력함,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억압된 내면의 무언가로 답답함과 우울함을 느껴본 분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권장한다. 이 책의 주요 인물은 베로니카(주인공), 에뒤아르, 마리아, 제드카, 이고르 박사 등이며, 주된 배경은 '빌레트'라는 정신병원이다.
반복되는 무의미한 일상으로 결국 수면제 자살을 결심한 주인공 베로니카. 얼마 남지 않은 생의 마지막 순간 접한 이 황당한 질문과 함께 소설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슬로베니아는 어디에 있는가?"
정신 차려보니 베로니카가 깨어난 곳은 '빌레트'라는 정신병원. 불행하게 그녀는 죽음에 실패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녀는 의사에게 죽음을 선고받는다. 남은 기간은 약 일주일.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그녀가 일주일간 주위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감정과 이로 인한 변화를 다룬 책이다.
"난 미친 여자로 남고 싶거든. 다른 사람들이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꿈꾸는 대로 내 삶을 살고 싶거든. 바깥에. 빌레트의 담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아?"
베로니카는 미치고 싶다는 '제드카'라는 인물을 만난다. 베로니카를 알게된 후 제드카는 결국 원하던 '미친 여자'가 되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빌레트를 떠난다. 베로니카에게 '사랑'에 대해 가르쳐주며. 이후 제드카는 정상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미친 사람'이란 뭘까. 부조리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선 누군가의 희생이 따르고, 그 누군가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이럴땐 누가 '정상인'이고, '미친 사람'일까.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외치면, 부조리에 맞서 싸우면 그 사람도 미친 사람인가? 어쩌면 빌레트는 비판을 염두하지 않고,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걸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토피아 같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No"를 거부하니까.
"난 내 영혼을 어디다 내팽개쳐버린 것일까? 내 과거 어딘가에. 내 것이기를 간절히 소망한 그 삶 속에. 저는 집과 남편, 직업이 있던 그 순간의 포로가 되도록 제 영혼을 방치했어요. 제 영혼은 과거 속에 있었어요. (…) 그 아이의 머지않은 죽음이 저로 하여금 제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어요."
백발노인 '마리아'는 과거 잘 나가던 변호사였지만 공황장애 이후 모든 걸 잃고 빌렌트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그녀 또한 '죽음을 자각'한 채 자신의 온 영혼을 바쳐 피아노를 연주하는 베로니카를 보며 새 삶을 시작한다. 소설 속 마리아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을 대변하는 캐릭터라고 본다. 너무나 바쁘고 치열한 일상에 탓에 영혼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랄까.
"아무 대학에나 들어가서 아무런 흥미도 없지만 돈은 많이 벌게 해 줄 그런 공부를 하게 되겠죠. 그럼 그림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될 테고, 저는 결국 제 소명을 잊어버리고 말 거예요. (…) 언젠가는 '천국의 환영들'이라는 제목의 연작을 그릴 거예요."
한 권의 책을 접하고 인생의 방향을 바꾼 에뒤아르. 나는 그에게서 나의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외교관이 되길 바라시던 부모님과 화가가 되길 바라던 에뒤아르 사이의 대립을 보며 프로게이머를 꿈꾸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물론 에뒤아르 또한 베로니카를 통해 본인의 꿈을 이루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베로니카를 만난 후 새로운 삶을 살게된다. 이로인해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 사람도 많다. 이 책에는 사랑, 죽음의 자각, 저항 등 많은 교훈이 담겨있다. 마무리 부분에 나온 이고르 박사의 논문처럼 우리는 죽음을 자각함으로써 치열한 삶을 살게 된다. 마치 카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사형을 선고받은 후에야 삶을 돌아보듯이.
하지만 대부분 죽음을 잊고 살아간다. 나 또한 1년 전 아버지를 여읜 후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는 격언을 수없이 외쳐댔지만 잠시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현재의 소중함 또한 무심하게 흘려보내고 말았다. 앞으로는 절대 잊지 말아야겠다. 나 또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남은 생을 타인의 시선에 맞춰서 사는 것도 무의미하다. '자판기'가 왜 이런 방식의 배열인지, '시계'가 왜 오른쪽으로 도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대부분 그저 순응하며 살아간다. 모든 걸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남을 따르기만 하는 것은 너무도 불행한 삶이다.
마지막으로 살면서 '타인의 시선'과 '자존심' 때문에 답답함을 느껴본 사람들에게 이 문장을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