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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도 황희두 Feb 13. 2018

당신은 '지식인'을 꿈꾸십니까?

지식인보다는 지성인이 존중받는 사회를 꿈꾼다

가장 학식 있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은 아니다 - 라블레


 지식인이라고 모두가 지성인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지식인의 권위가 훨씬 높다. 때로는 그들의 한 마디가 사회의 큰 변화를 몰고 오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말이 전부 옳다고 볼 수는 없다. 본인이 오류를 범했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그 오류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작년 우리는 국가를 사유화한 지식인들로 인해 생겨난 고통을 고스란히 느껴야만 했다. 그들이 전부 지식은 뛰어났을지 몰라도 지성인은 절대 아니었다.  때때로 우리는 나이가 어리단 이유만으로 무시당하는 경우도 다.


"어린 게 뭘 안다고. 쯧쯧"


 물론 나이가 많을수록 아는 것은 많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이 '지식'인지 '지혜'인지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블로그 <도도까치>


 명성이 높거나 학벌이 좋거나 나이가 많다고 해서 그들이 모두 지혜롭다고 볼 수는 없다. 권위 있는 지식인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어린아이가 간단히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인생은 지식보다 지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혜는 여러 방면으로 터득할 수 있다. 지식을 먼저 얻은 후 지혜를 깨닫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경험을 통해 지혜를 먼저 느끼고 한참 지나서야 그것이 지혜인지 자각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프로게이머 당시 후자를 경험했다. 게임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먼저 터득했다. 물론, 당시에는 그게 지혜가 될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은퇴 후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독서나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에게 스며든 지혜를 뒤늦게 자각한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식인은 아니다. 남들이 한창 공부할 때 게임을 선택했기에 타인에 비해 아는 것도 훨씬 적다. 하지만 게임 속에서 터득한 지혜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크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기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실제로 좋은 학벌을 가진 친구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방황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를 통해 지식보다는 지혜가 중요하다고 느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위치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지혜를 터득하고 있다.


 이는 독서나 강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때로는 권위 있는 사람들이 쓴 책이나 말을 들으며 격하게 공감하는 경우가 있다. 공감한다는 것은 분명 본인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다만 차이는 권위 있는 사람들이 그걸 먼저 대중 앞에서 말했다는 것뿐이다.


ⓒ이투데이


 예를 들어, 빌 게이츠가 인생은 공평하지 않으니 익숙해지라는 말을 했다. 사실 우리 누구나 느꼈던 생각 아닌가? 그런데 빌 게이츠가 말하니 마치 정답처럼 느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빌 게이츠가 한 말의 진위여부가 아니다. 이처럼 성공한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이다. 특히나 위 내용은 단순히 책을 펼쳐서 느낀 경우보다, 경험을 통해 몸소 느낀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결국 이는 지식보다 지혜에 가깝다.


 만약 본인이 철저히 믿는 무언가가 있는데 아무도 그런 주장을 안 한다. 그럼 고민에 빠질 것이다. '내가 혼자 이상한 생각 하는 건가?' 그러면서 현실의 나를 바라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나는 '그저 학생일 뿐인데, 어린데,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라고 생각하며 결국 그것을 기억 속에서 지워갈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권위 있고 유명한 사람이 방송에 나와서 똑같은 말을 했다. 그 순간 사라졌던 기억이 스멀스멀 되살아나기 시작하며 반가움과 희열을 느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분명 본인도 같은 생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권위 있는 사람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 주장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 무척 많을 것이다. 결국 나이와 직업의 여부를 떠나 우리 모두가 각자의 인생에서 삶의 철학과 지혜를 배워가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그것을 주위에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왜냐? 지식인들이 틀렸다고 말하거나 주위에서 비웃을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로버트 스턴버그의《지혜의 탄생》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에는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받던 시대보다도 지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전문화된 지식은 곧바로 효과를 발휘하는 반면에 지혜의 혜택은 본성상 더디게 나타나고 덜 분명할 수밖에 없다. 지식은 확실한 선언의 형태로 표현되지만, 지혜는 비교하고 물음을 던지며 신중하라고 제안할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지혜는 쉽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좀처럼 유행하지 않는다."


 지혜는 항상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다만 지식에 짓눌려 보이지 않았을 뿐.


ⓒ세계인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 사진 한 장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지혜로 받아들인다면 나이와 직업을 떠나 모든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되돌아보길 바란다. 설령 본인 인생이 너무도 보잘것없이 느껴진다 할지라도 되돌아보면 권위 있는 사람과도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각자의 위치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 지식인이 되지는 못해도 지성인은 될 수 있다.


 지식인이 지배하는 시대는 지난 정권과 함께 막을 내렸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센 파도와 함께 암기형 로봇이 다가오고 있다. 더 이상 지식만을 추구해서는 경쟁력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필히 지성인의 시대가 올 것이다. 지식의 시대에서 지혜의 시대로 변하는 순간 세상은 크게 변할 것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터득한 지혜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채워갈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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