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모든 청년들이 '리미티드 에디션'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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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 여행자의 삶을 꿈꾸는 시기가 온다. 하지만 현실의 삶을 외면할 수 없기에 어느 순간 포기하고 만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주인공은 35개국 세계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경험이 많다. 많은 이들이 부러워할만한 일상을 보내는 중인 '한빛나래'님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과연 그의 삶은 즐겁고 부럽기만 할까. 더 깊은 이야기를 위해 상봉역 근처 한 카페로 향했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6살이고 공정여행사 뽈레뽈레투어 대표, 그리고 35개국 세계여행을 다녀온 한빛나래라고 합니다. 현재 아프리카 여행 관련 책도 집필하는 중입니다. 여행은 행복이라 생각하는 평범한 청년이에요."
'공정여행사'가 정확히 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거 같아요.
"공정하게 여행하자는 걸 모티브로 삼고 있어요. 보통 최저가 여행을 많이 찾으시잖아요. 그건 그만큼 현지에 돈이 조금 간다는 뜻이기도 해요. 저희 여행사는 아프리카, 몽골 등이 전문인데 아무래도 GDP가 낮은 나라다 보니 대부분 여행사에서 돈을 가져가고 현지에서 가이드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예를 들면 탄자니아 킬리만자로를 올라갈 때 포토(짐을 들어주는 사람)가 붙거든요. 하루 일당이 3~4천 원이에요. 저는 그게 굉장히 부조리하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그들은 팁을 원할 수밖에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걸 싫어하시죠. 저는 그래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그만큼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자고 해서 만든 게 공정 여행사예요. 넓게 보면 해외 가서 매너 있는 행동하기, 정당한 시급을 지불하기, 현지 문화를 존중하기 이런 걸 공정 여행사라고 표현합니다."
주위에 '패키지여행'하면 돈만 엄청 쓰고 형식적인 여행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는 꼭 배낭 메고 개고생 해야만 의미 있는 여행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유럽은 무조건 배낭여행이지'라고 생각하시는데, 저는 사람마다 각자 맞는 여행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만약 '나는 위험부담을 가지기 싫어.' 하면 패키지로 가는 게 좋은 거죠. 반대로 '적은 돈으로 여행할 거야' 하는 사람도 계실 거고요. 여행사하다보면 '여행 꼰대'가 엄청 많아요. '패키지는 여행으로 안 쳐준다. 그런 게 여행이냐?'라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저는 각자 페이스에 맞는 여행을 하면 된다고 봐요(웃음)."
결국 여행도 어떠한 관념에서 벗어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어쩌다 이 길을 걷게 되신 건가요.
"어쩌다 보니 오늘이 온 거 같아요. 원래 제가 17살부터 24살까지 미국 유학을 다녀왔는데 '나 정도 스펙이면 어디든 갈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막상 한국에 돌아오니 현실은 인턴 광탈이었어요. 그때 정말 아무것도 아니란 걸 느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앞으로 뭐하고 살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고민하다가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어릴 때 나는 뭘 하고 싶었지?'라는 생각으로 각 지역을 봤어요. 유럽, 아시아 대부분을 다녀왔는데 아프리카 쪽이 텅 비어있더라고요. 문득 '어? 그럼 어릴 적부터 꿈이 아프리카였으니까 거길 가봐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 23kg짜리 가방을 메고 떠났어요. 돌아올 무렵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뭘 할 때 가장 행복할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결국 여행을 할 때 가장 행복했고, 잘하는 것이란 걸 깨달았지요."
여행에 관련해서 크게 영향을 받게 된 사람이나 경험이 있을 거 같습니다.
"사실 매 순간 영향을 받는 게 달라지는 거 같아요. 초등학생 때는 한비야 작가님의 책을 보고 여행을 꿈꿨어요. 당시에 거의 세상의 전부라고 느낄 정도로 감명 깊었지요. 하지만 성인이 되어 그분이 가셨던 나라를 가면서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깨달았습니다. 지금 같은 경우는 멘토라는 게 딱히 없는 거 같아요. 대신 경험이라고 표현하면 아프리카 여행을 갔다 온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프리카 여행 당시 많은 걸 느끼셨을 거 같아요.
"'기회의 불평등'을 많이 느꼈어요. 에티오피아 투어 당시 동네에서 어린아이들을 많이 만났거든요. 저를 보고 '원 달라 치나치나'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돈을 주면 일을 안 할 거라 생각해서 저는 돈을 안 주는 편이었어요. 대신 저는 일을 하게 해서 합당한 대가를 주고 싶었어요. 마침 그날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슈퍼를 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어딘지 몰랐거든요. 아이들이 신나서 슈퍼에 데려다주길래 저는 바나나랑 콜라를 사줬습니다. 그때 갑자기 다른 아이가 오더니 '왜 나는 안 사줘?'라며 버럭 화내는 거예요. 제가 그래서 '너는 일을 안 했잖아. 저 아이들은 20분 거리를 안내해줬어.'라고 말했더니 '너는 나에게 일을 안 줬잖아. 만약 나에게 먼저 물어봤다면 훨씬 더 잘 안내할 수 있었어.'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때 아프리카 아이들에게는 기회조차 없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정말 주위를 보니 다들 흙바닥에 멍하니 앉아있고, 외국인들 오면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그 순간 삶에 대한 많은 생각이 변했어요."
뭔가 뭉클해지네요. 오늘날 청년, 청소년들이 불행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왜 우리는 항상 불행할까.' 이거에 대해 항상 많은 생각을 해요. 저는 그 이유가 '왜?'라고 생각해요. '나는 왜 행복하고, 왜 불행한가?'처럼 항상 이유를 찾는다는 거죠. 특히 한국 같은 경우에는 모든 게 스펙이에요. 제가 여행을 정말 재밌게 다녀왔고 다양한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만날 때마다 물어봐요. '넌 여행에서 뭘 깨닫고 왔니? 가난한 친구들을 보면서 뭘 배웠어?' 이런 식이에요. 물론 뭘 배우면 좋겠죠. 그런데 저는 안 배워도 좋은데 꼭 이유를 찾으려는 게 불행해지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항상 이유를 찾는데서부터 불행이 시작된다고 보신다는 거군요. 여행에서도 의미를 찾는 경우가 많은 거 같습니다.
"맞아요. 저는 여행 강연도 자주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여행은 스펙이 아니에요. 많은 분들이 '여행 다녀오면 책을 내야지', '대학 여름방학에는 반드시 유럽 여행을 다녀와야지'라는 생각을 가지시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여행이 즐거웠어도 다른 분들은 안 즐거울 수도 있어요. 그런데 요새는 여행 안 가면 루저, 여권 없으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취급하더라고요. 여행도 일종의 유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유행에 따르지 말고 각자가 하고 싶은 여행을 추천드려요. 책을 좋아하면 서점이나 아니면 영화관도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장단점 하나씩 꼽아보자면 어떤 게 있을까요.
"장점이라면 제가 '평균'이 없어요. 이 사람, 저 사람의 다름을 인정하고 잘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이집트, 몽골 등 국적과 나이를 떠나서 많은 친구들과 매일 연락하면서 지내는데 이게 큰 장점이라 생각해요. 다양한 사람들에게 모티브를 받고, 재미를 느껴요. 예를 들면 제 몽골 친구 중에는 장학금을 받고 한국 해양대에서 공부를 했는데, 몽골은 내륙이잖아요. 그래서 살면서 바다를 한국에서 처음 본거예요. 그러다 보니 항해사 자격증을 땄는데 지금도 바다 냄새를 못 맡아서 항해사 자격증이 무용지물이 됐대요. 정말 재밌지 않아요? 물론 주위에서 '너무 사람이 좋다'라고 하는데 이게 단점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심지어 '넌 좋은 것만 있지? 답답하다.'라는 말을 하는 친구도 있어요. 물론 이건 남이 저를 봤을 때 단점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제 스스로는 단점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거 같아요(웃음)."
앞서 이유를 찾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라고 말씀 주셨지만, 어쨌든 지금 일상은 행복하다고 보시나요.
"저는 행복해요. 개인적으로 행복은 절대적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IU와 비교하면 저는 덜 행복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26살의 한빛나래 삶 속에서 굉장히 행복합니다. 당장 밤에 눈을 감았을 때 '내일은 뭐하지?, 누구에게 연락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내일이 기대되고 궁금해져요. 전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아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뭔가 할 게 있다.' 이 자체가 행복한 거 같아요."
추천해주실 만한 책이나 영화가 있다면.
"<달과 6펜스>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어요. 정말 혼란스럽게 읽은 책 같아요. 달은 이상, 6펜스는 현실을 의미하는데 주인공은 결국 이상을 따랐거든요. 대부분 이상을 따르는 게 멋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현실을 따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부모님도 그런 말씀을 항상 하시거든요. 제가 유학까지 다녀왔으니 저에게 거는 기대가 크죠. 이 책을 읽은 분들을 보면 많이들 '나도 이상을 찾아야겠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주인공이 이상을 찾았지만 과연 행복할까? 오히려 6펜스를 가지고 가족들과 행복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래서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책 같아요. 재미있게 본 영화는 <Get Out(2017)>이에요. 인종차별 관련된 영화인데, 아무래도 미국에서 오래 공부하다 보니 인종차별에도 민감해지더라고요. 물론 흑인이 받는 인종차별과 동양인이 받는 차별은 다른 분류라고 생각해요.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차별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정말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나네요."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저는 모든 청년들이 '리미티드 에디션'이라고 생각해요. 꼭 비싸야만 리미티드 에디션이 아니거든요. 저는 굳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따라 하는 아류가 아니라, 자신을 리미티드 에디션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유명한 디자이너는 잉크만 부어도 작품이 되잖아요. 그것처럼 각자 삶의 디자인을 잘하면 살짝 삐끗해도 괜찮고, 남들이 루저라고 표현할지라도 오히려 그게 나만 가지고 있는 특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리미티드 에디션을 다들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한빛나래>
- 공정여행사 <뽈레뽈레 투어> 대표
- 세계 35개국 여행자
- 인스타그램 @bitnaraeee
※ 청터뷰는 특정 정치, 종교, 기업 홍보를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물론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분은 나올 수 있지만, 절대 홍보 목적은 아닙니다) 평범한 대학생부터 각 분야에서 목표를 달성한 청년까지 구분 없이 '모든 청년'의 이야기에 귀 기울입니다. 그렇기에 개인 프로필을 인터뷰 하단에 배치하였다는 점 감안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를 통해 각 분야에 있는 청년들이 어떤 고민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있는 그대로의 청년 문화를 들여다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