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열심히 살다 마무리 하는거라 보면 저는 죽음이 행복하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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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살면서 병원을 절대 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은 의사와 간호사들의 피나는 노력을 쉽게 간과한다. 간호사를 준비 중인 청년 '김화희' 님과의 이야기를 통해 나 또한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었다.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모두들 잠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은 쉴 틈 없이 환자를 돌보고 있을 테니.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현재 서울여자간호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화희라고 합니다."
어쩌다 간호 쪽을 선택하셨나요.
"제가 중, 고등학생 때 봉사활동을 많이 했거든요. 그때 저의 사소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는 걸 느꼈어요. 그러다 보니 직업을 정할 때도 제 능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특히 간호학과 같은 경우에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잖아요. 살아가면서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이쪽을 선택했습니다. 보통 병원 하면 의사를 많이 떠올리시잖아요. 그런데 막상 병원에 있다 보면 가장 많이 마주하게 되는 사람이 간호사거든요. 직접 간호사가 되어 저의 작은 한마디나 의료를 통해 환자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혹시 크게 영향을 받은 사람이나 경험이 있으셨나요.
"대학 와서 노인간호학을 강연해주신 교수님이 계셨어요. 그분을 보면 정말 환자를 사랑한다는 게 느껴졌어요. 간호사가 가져야 할 자질이나 마음가짐에 대해서 많이 말씀해주셨거든요. 특히 노인 간호 쪽에 새로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교수님께서 OT 당시 '너희가 이 강의를 통해서 노인에 대해 이해를 했으면 좋겠고, 노인의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봤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수업 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특히 노인과 청년들이 지하철에서 많이 부딪치잖아요. 솔직히 수업 듣기 전에는 '도대체 노인 분들은 왜 이렇게 자리를 차지하려는 걸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 원치 않게 생기는 질병들이 많더라고요. 20대 때 정말 건강하셨던 분들도 노화가 오면 걷는 것조차 힘들어하시고요. 그런 걸 알게 되고 이해가 되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오늘 저도 지하철에서 계속 어르신들과 부딪히다 보니 짜증을 냈는데 반성하게 되네요.
"그러다 보니 요새 노인에 관심이 많이 가더라고요. 방학이라 독거노인 분들을 대상으로 도시락 배달을 다니는데 현관문까지 오기도 힘들어하세요. 그런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을 느껴요. 심지어 추운 날씨에 밖에 앉아 계신 어르신들도 많은데, 그분들을 어떻게든 케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더라고요.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데 대상을 점차 늘려갔으면 좋겠어요."
꼭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다시 청년으로 돌아와서 오늘날 청년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시나요.
"대학 4년간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가 취업이잖아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회의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저도 간호사를 꿈꾸고 있지만 막상 현실을 보면 '이렇게까지 해서 간호사가 되면 과연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인력이 없다 보니 간호사 1명당 19명의 환자를 맡아야 하고, 12시간씩 일해야 하는데 심지어 계속 서있어야 해요. 이게 제가 되고 싶은 간호사의 실제 모습인 거예요. 이렇게까지 열심히 준비해왔는데, 막상 내가 가야 할 곳의 현실이 이런 걸 느끼게 되면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런 게 개선이 되면 좋겠어요. 요새 많은 간호사들이 이러한 이유로 목소리를 내고 있기도 하고요. 친구들도 다 같이 하는 말이 제일 먼저 일자리 환경부터 개선되길 바란다는 말을 합니다."
이렇게 보니 간호사분들의 일자리 환경 개선이 제일 시급하네요.
"간호사들 사이에 '태움' 문화라는 게 있어요.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이거든요. 좋게 말할 수 있는 것도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후배들을 갈구는 거예요. 이번에 아산 병원에서는 태움 문화로 간호사 한 분이 돌아가셨어요. 모 병원에서는 이러한 문화를 개선하고자 간호사들이 파업하니까 그냥 새로운 사람을 뽑아버린대요. 대부분의 간호사들이 환자를 위해서 공부를 많이 하는데, 이러한 시스템으로 인해 환자 한 명 제대로 돌볼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요. 정말로 개선되면 좋겠어요."
이런 게 더 많이 알려져야 하는데 정말 심각한 상황이네요.
"많은 병원에서 이직률이 높다 보니 몇 달 후에 새로운 사람을 또 뽑는대요. 이건 새로운 사람을 뽑을게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해결해야 하잖아요. 계속 깨진 독에 물만 붓는 거 같은 느낌이에요. 심지어 어디서는 환자분들이 간호사 발소리가 시끄럽다고 항의하니까 '수면양말을 신고 다니라'는 말을 했대요. 어떤 분은 거의 만삭인데 하루 종일 서서 일하시기도 하고, 육아휴직을 쓰려고 하면 눈치도 엄청 준대요. 심지어 퇴사마저도 자기 마음대로 못하는 게 현실이에요. 모든 간호사가 쉬지도 못하고 뛰어다니시는데 그러다 보니 태움 문화도 사라지기가 힘든 것 같아요. 선배들 입장에선 후배 간호사들이 눈에 안 차잖아요. 일을 가르쳐줘야 하는데 당장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지, 시간은 없지 그러니까 말을 한마디 하더라도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거죠. 모든 사람들이 스트레스가 쌓여가고요. 결국 스트레스가 스트레스를 낳는 느낌이에요."
간호사의 발소리가 시끄럽다는 건 정말 너무하네요. 이런 걸 보면 저를 포함한 환자들의 인식도 개선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맞습니다. 많은 분들이 '언니, 저기, 여기, 이봐요'라고 부르시는데 심지어 어떤 어르신들은 그냥 '야'라고 부르시기도 해요. 저희는 학교에서 대상자를 호칭할 때 ‘어머님', '아버님' 이렇게 부르지 말고 성함을 부르도록 배우거든요. 아무리 친해져도요.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되면 좋을 거 같아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의사는 공경하고 높게 보면서 간호사는 의사보다 알고 있는 지식이 적다고 얕보는 분들도 많으세요. 의사가 앞에 있으면 '의사 선생님'이러시다가, 간호사만 있으면 확 달라져서 '이거 좀 해줘' 이렇게 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뭔가 직업의 순위를 계속 매기는 느낌인데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어요. 서로 하는 일이 다를 뿐이잖아요."
결국 인원을 늘리거나 하는 현상보다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야겠네요.
"맞아요. 정말 씁쓸한 게 취업할 때 다들 처음엔 큰 대학병원을 가고 싶어 하거든요. 그래서 '계속 있을 거야?'라고 물어보면 '몇 년 후에 나올 거야 힘들잖아.'라는 마음가짐을 많이들 가지고 있어요. 너무 슬프잖아요. 다들 거기서 어떻게 있어 이런 말을 해요. 똑똑한 애들도 정말 많은데 이런 열악한 현실 때문에 너무 안타까운 느낌이에요."
본인의 장단점을 뽑아보자면 어떤 게 있을까요.
"장점은 그냥 하루하루 행복하게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너무 낙천적으로 될 수도 있는 게 단점인 거 같아요. 학점을 비유하자면 제가 생각한 기준이 있어서, 이거만 넘으면 됐지라는 생각에 다른 사람들은 '왜 이렇게 욕심이 없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저는 그런 거보다 밖에서 사람 만나고 여러 가지 경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신다는 말씀이군요.
"20살에도 처음 하고 싶었던 게 활동하는 거였어요. 다양한 활동 속에서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새로 만난 사람들에게 얻는 것들이 되게 많았거든요. 서울에 친인척도 없었는데 서울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의지도 많이 되었고요. 고등학생 때 운 좋게 해외봉사를 다녀온 적도 있어요. 당시 라오스에 있는 한 학교를 갔는데 책상이 그냥 나무를 반쪼개서 엎어놓은 느낌이었어요. 심지어 책상 위에서 개미들이 살아 움직이고, 의자는 금방 부서질 거 같고, 날씨는 더운데 냉방시설도 없더라고요.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은 즐거워 보였어요.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하나 알려주면 활용하려고 노력도 많이 하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졸업하고 의료봉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거 같네요."
혹시 추천해주실 만한 책 혹은 영화가 있나요.
"법률스님의 <행복>이랑, 매기 캘러넌 <마지막 여행>이란 책이 감명 깊었어요. <행복>이란 책은 '행복과 불행은 너에게 달려있다'는 느낌이었어요. 고등학생 때 입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이 책을 읽고 마음가짐이 긍정적으로 달라졌어요. '꼭 좋은 대학 안 가면 어때, 노력만 열심히 하면 됐지'라는 식으로요. 그래서 마음의 안식처로 느껴졌던 기억이 나요. <마지막 여행>이라는 책은 호스피스 간호를 다루고 있어요. 호스피스 간호라는 게 말기 환자를 케어하는 일이거든요. 말기 환자는 암, COPD, LC, AIDS로 인해서 생이 몇 개월밖에 남지 않은 분들이에요. 보통 죽음을 암울하고, 우울하고, 어두운 거라고 생각하시거든요. 하지만 호스피스 간호는 죽음을 절대 그렇게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해요. '탄생을 잘 맞이한 거처럼 죽음도 잘 맞이하는 게 중요하다.'라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작별하는 시간을 갖도록 도와드려요.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가장 의미 있고 뜻깊게 정리해주는 거 같아서 호스피스 간호가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호스피스 간호가 최종 목표예요."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저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일상에서 스트레스받지 않고, 하루하루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설령 원하는 일이 안 됐어도 다른 길이 있으니까요. 간호사 인식 개선에도 많이들 동참해주셨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인식도 새로워지면 좋을 거 같아요. 항상 장례식장을 가면 검은 옷 입고 우울한 분위기잖아요. 왜 죽음을 그렇게만 받아들여야 하는가 싶어요. 조금 밝게도 맞이할 수 있잖아요. 저는 죽음도 행복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일생은 열심히 살아왔으니 이제 마무리하는 단계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잖아요. 물론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로 인한 슬픔도 있겠지만, 자연적인 현상이니 꼭 그렇게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웃음)."
<김화희>
- 서울여자간호대학 17학번 재학 중
- 청년문화포럼 보건복지위원회 부위원장
- 인스타그램 @myhihihi10
※ 청터뷰는 정치, 종교, 기업 홍보를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대학생부터 각 분야에서 목표를 달성한 청년까지 구분 없이 '모든 청년'의 이야기에 귀 기울입니다. 그렇기에 개인 프로필을 인터뷰 하단에 배치하였다는 점 감안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를 통해 각 분야에 있는 청년들이 어떤 고민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있는 그대로의 청년 문화를 들여다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