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정치와 철학은 쉽게 뒷전으로 밀려난다. 일상도 피곤한데 왜 굳이 스스로 골 아픈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돌아갈까. 썩 좋은 결과를 바랄 수 없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오늘 주인공 '류태림' 님은 다양한 인턴 경험과 현대 철학자를 보조하며 많은 사색을 해왔다고 한다. 그가 꿈꾸는 사회가 어떤지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한 카페로 향했다.
ⓒ 수많은 해외 인턴십 경험을 통해 시야를 넓혀가는 중인 청년 '류태림' 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현재 <아산서원 14기 워싱턴 프로그램>에 참가 중이고,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랑 아동가족학과 졸업한 류태림이라고 합니다."
'아산서원'이 뭐하는 곳인가요.
"아산정책연구원이랑 아산나눔재단에서 투자해서 설립한 인재양성 프로그램인데 인문학에 대해서 많이 배워요. 서양 철학이랑 동양철학을 배우고 특히 글쓰기를 많이 배웁니다. 이번에 제가 가는데 5개월간 워싱턴에 가서 싱크탱크랑 다양한 기관에서 인턴십을 할 기회도 주고요."
제가 알기로는 이거 말고도 엄청난 경험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슬라보예 지젝 교수님 조교를 한 적이 있어요."
그 분이 헤겔, 맑스, 라캉 등 위대한 철학가들에게 영향받으신 현대 철학가로 알고 있는데, 그런 분과는 평소에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사실 철학적인 이야기보단 일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한국 PC방이 인상 깊다고 하셨거든요. 게이머를 하셔서 잘 아시겠지만 그렇게 PC방이 많고 사람들이 게임을 많이 하는 나라도 없거니와, 이렇게 게임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놓은 국가도 없잖아요. 그 부분이 한국인의 많은 면모를 보여준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아들도 게임을 좋아하는데 게임이 많이 부정적으로 비치는 거 같다는 이야기도 하셨고요."
정말 부러운 경험입니다. 이외에도 크게 꽂혔던 철학가나 사상가가 있으신가요.
"고등학생 때 존 롤스의 <정의론>을 봤거든요. 장막이라는 게 나오잖아요. '인간은 자기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모르니 다른 사람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말에 공감했어요. 이 책 이후로 다양한 시도가 실행되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왜 남을 도와야 하는지' 알려주는 게 인문학이라 생각하거든요. 이에 대한 고민을 어느 정도 해결해준 게 <정의론>이라고 봅니다. 만약 무신론자라면 그것도 말짱 도루묵이겠지만요. 인간은 결국 의지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신이 먹힐 시기는 어느 정도 지난 거 같고, 요새는 생물학적 측면에서 왜 남을 도와야 하는지에 대한 말이 나오고 있잖아요. <이기적 유전자> 같은 책을 보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려면 철저하게 이기주의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잖아요. 언젠가는 이를 넘어 '어떤 합리적인 이유로 남을 도와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할 거 같아요.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어요."
ⓒ 와디즈 / 그는 크라우드 펀딩을 직접 기획하면서도 많은 걸 배웠다고 한다.
살면서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이나 경험을 하나 꼽아보자면.
"작년에 학교에서 '테드 x KyungheeU'라는 행사를 주최했어요. 원래 3개월 만에 끝날 행사였는데 문제가 생겨서 7개월 정도를 끌었어요. 그때 처음 실패를 경험해봤어요. 당시 '어떻게 사과를 잘하고, 수습을 해야 하는가'를 배운 거 같아요.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함이 많았는데, 이후로는 일을 할 때 확실히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어요."
지금은 어느 정도 만족하시는 편인가요.
"네. 제가 이번에 아산서원에서 배정받은 쪽이 공화당 하원의원 Mike Kelly에요. 대표적인 지한파로서 북핵 관련해서 많은 일을 하신다는데 거기로 가서 정말 좋아요. 미국 정치인은 한국과 다를 테니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게 많을 거 같아서 정말 기대됩니다."
이건 미국 쪽에서도 궁금해할 주제 같아요. 오늘날 한국 청년이 불행해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주거 문제에 대해서 나아질 거라는 희망 자체가 없기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상대적인 불평등. 만약 부모님이 부유한 지역에 주택을 소유하고 있으시면 태어날 때부터 몇 십억 물고 태어나는 건데, 그게 아니면 이러한 재산을 가지지도 못하고요. 주변에 몇몇 부유한 주택이 밀집한 지역에 사는 친구들을 보면 집값이 오른 걸 스스럼없이 말하잖아요. 이게 잘못은 아니지만 결국 부모 재산이 내 재산이라는 게 불행해지는 요인 같아요. 이런 맥락에서 청년이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상속 자체가 불가능하게 해야겠죠(웃음). 물론 불가능하겠지만요."
요즘 '기회를 넘어 결과의 평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제로도 많이들 논쟁 중입니다. 이에 공감하면서도 공산주의의 몰락을 보면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에 故 김용균 씨가 돌아가셨잖아요.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식으로 사설 내는 걸 보면 안타까워요. 사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아무리 비정규직이라도 죽으면 안 되잖아요. 뻔한 이야기지만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받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어떤 사람이 일을 할 때 '병에 안 걸리고,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가이드라인이 지켜지는지'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제일 중요하죠. 그래서 제가 꿈꾸는 사회는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예상하지 못한 피해를 안 보는 거예요. 성별 문제도 말해보자면 우리는 전부 다르잖아요. 그렇기에 모든 사람에게 다 맞추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저는 최대한 맞춰가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다른 걸 떠나서 정말 기본적인 안전이 보장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세월호도 사실 안전 문제인데 그런 기본적인 것들을 보호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평소 북한 인권에도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걸 보면 결국 모두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뽑을 사람 없어서 투표 안 한다'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사표가 되냐 마냐' 같아요. 소수 정당에서 '연동형 비례 대표제'도 들고 나왔잖아요. 앞으로 정치 시스템 자체가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게 아니라, 누가 표를 던지던 그게 사표가 안 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정말 뽑을 사람이 없으면 비례대표라도 투표해야 해요. 전부 핑계라고 봐요. 말이 안 되는 게 의지만 있으면 '모 정당의 어떤 정책은 괜찮은데' 하고 뽑게 되어있거든요. 아무튼 저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장단점 하나씩 꼽아보자면 어떤 게 있을까요.
"장점은 이것저것 찾아서 빨리 처리하고,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능한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가끔 생기는 부작용이나, 결과물 자체가 처음과 달라지는 경우가 단점이에요. 변명을 하자면 시민단체 지원사업 기간이 짧잖아요. 그런데도 정형화된 결과물을 요구하다 보니 시간에 쫓기고, 니즈에도 맞춰야 하고, 행정처리도 할게 많더라고요. 완성도를 떠나 급하게 처리하는 경향성이 생긴 거 같아요."
저도 시민단체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열악한 환경, 개인마다 전부 다른 생각들이 제일 골치 아프더라고요. 강제가 싫어서 자유를 줘도 오히려 불만인 사람들도 너무 많고, 기회 등 분배 문제에서도 충돌한 경우가 많았고요.
"과거 '피스 미얀마'라는 단체를 운영하던 시절에도 느낀 게 일단 경제적으로 남는 게 없었어요. 지원비로 인건비 측정하는 거에도 너무 인색해서 같이하는 친구들에게 밥 사 주는 정도밖에 못하니까 안타깝더라고요. 사비도 계속 나가게 되는데 이게 열심히 할수록 내 살을 깎아 먹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사회 보상심리가 생겨서, 계속 내 걸로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런 걸 버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 거 같아요.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시민단체를 운영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거 같아요."
추천할만한 책 혹은 영화가 있나요.
"<카프카의 서재>라는 책이 있어요. 카프카가 나치 독일 시절 유대인인데 책을 보면 타자화에 대해서 많이 쓰거든요. 자신도 타자화 시켜서요. 저는 <변신> 같은 책을 읽으면서는 못 느꼈는데, <카프카의 서재>를 보니 잘 풀어쓰셔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반대로 추천하지 않고 싶은 책은 자기 계발서예요. 결국 하는 말을 요약하면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앞으로 삶이 나아질 거야. 하기 싫은 건 안 해도 돼.' 이런 건데 그거는 오히려 부모님이나 친구랑 이야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요즘 이런 게 너무 유행하는 거 같아서 별로인 거 같아요(웃음)."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요즘엔 청년들이 많이 관심을 가져주다 보니 기회가 많이 생겨나는 거 같아요. 그럴 때 이것저것 많이 해보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다만 안 좋은 점은, 청년 중에서도 불행하다고 외치는 사람들 중에서 심각하게 불행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진짜 불행한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그들을 도와드리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당장 서울이랑 지방만 하더라도 차이가 엄청 크다 보니까요. 그리고 저는 자신의 불행을 인지하고 그걸 개선하려고 하는 순간 그 불행에선 많이 벗어난다고 생각합니다."
※ 청터뷰는 특정 정치, 종교, 기업 홍보를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물론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분은 나올 수 있지만, 절대 홍보 목적은 아닙니다) 평범한 대학생부터 각 분야에서 목표를 달성한 청년까지 구분 없이 '모든 청년'의 이야기에 귀 기울입니다. 그렇기에 개인 프로필을 인터뷰 하단에 배치하였다는 점 감안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를 통해 각 분야에 있는 청년들이 어떤 고민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있는 그대로의 청년 문화를 들여다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