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저는 꾸준히 예민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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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맞는 말을 해도 '너 왜 그렇게 예민해?'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 곳곳의 불평등은 아주 천천히 개선되어왔고, 그렇다는 것은 항상 최전선에서 싸워온 누군가가 있었다는 뜻이다. 이번 주인공인 '최혜석'님도 비슷한 사람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예민하다고 비아냥 거릴 수 있지만, 항상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고민 중인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비영리 민간단체 청년문화포럼에서 마케팅 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혜석이라고 합니다."
어쩌다 포럼 활동을 시작하셨는지.
"사실 포럼은 비영리단체인지 모르고 지원했어요. 저는 원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비영리단체보다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영리 단체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마케팅에 관심을 가진 것도 마케팅 전략이 한 회사를 정말 크게 성장시킬 수도 있고, 반대로 삐끗하면 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경제적 가치랑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부서라고 생각했기에 흥미를 가진 거거든요. 처음에 청년문화포럼을 봤을 때는 영리적인 대학생 서포터즈인 줄 알고 지원했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까 비영리단체였던 거죠(웃음)."
애로사항이 많으셨을 거 같네요.
"포럼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일반적인 기업 서포터즈, 공모전 등 일정한 틀이 있고 그 틀에 활동하는 것들을 많이 했었어요. 그에 반해 포럼은 아무래도 비영리단체이고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된 곳이었기 때문에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었죠. 마케팅 위원회도 마케팅 전략을 짜서 활동하는 것보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홍보하는 것도 급급했고 그냥 당장 할 수 있는 활동들을 하기 급급해서 힘들었어요. 그땐 포럼이 정확히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잘 몰랐고요."
기억에 남았던 프로젝트를 꼽아보자면.
"마케팅위원회가 가장 크게 하고 오랫동안 공들였던 게 '크라우드 펀딩(위안부 할머니 기부금 펀딩)'이에요. '마케팅 x 디자인 x 역사위원회' 이렇게 콜라보를 했어요. 비영리단체는 목적이 영리 추구가 아니잖아요. 공적 가치를 창출해내는 거죠. 하지만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을 때는 공적 가치의 창출보다 경제적 가치 창출에 포커스를 맞추고 진행했던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아요. 마케팅이라는 직무 자체가 다른 부서가 벌어온 돈을 쓰는 부서라고 생각하는데 펀딩 시작 당시 포럼은 지금보다도 자원이 없어서 정말 힘들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활동을 하려면 모든 걸 새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그나마 대학생들이 자본을 얻을 수 있는 활동이 기부형 크라우드 펀딩이란 생각이 들었고,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살면서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이나 경험이 있다면.
"성인이 되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은 교육위원회 이현진 前 위원장이에요. 대학에 들어오면 고등학교라는 작은 세계에서 벗어나 사회 각계각층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잖아요. 저렇게 이상한 사람도 있구나, 반대로 올곧은 사람도 있구나 이렇게 되는데 저는 대학에 들어오고 실망스러운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어요. 그런 와중에 포럼에 들어와서 이현진이라는 친구를 만난 거죠. 정말 좋았어요. 그 친구는 비영리단체에 정말 잘 맞는 성향을 가지고 있고,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잃지 않는 친구였어요.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요(웃음). 활동하다가 인류애를 잃을 정도로 화나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 친구를 보면서 위기 상황들을 잘 넘긴 것 같아요."
오늘날 청년들이 힘들어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모든 사람의 인생에 정해진 엔딩은 하나고, 그 엔딩을 해나가는 퀘스트 선에서 벗어나면 그 사람을 실패자로 여기는 거 때문인 거 같아요. 사람의 성향이 얼마나 다양하고, 가치관이 얼마나 다양한데 지금 사회는 한 사람의 인생의 엔딩이 정해진 것처럼 보여요. 혹여나 거기서 벗어나거나 그걸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중간 단계들과 안 맞으면 그 사람을 낙오자, 실패자라고 취급하는 거죠."
혹시 추천할만한 책 혹은 영화가 있나요.
"리처드 도킨스 책을 좋아해요. 제가 기독교였는데 스스로 선택한 종교가 아니라 모태신앙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어릴 적엔 종교에 대한 비판적 사고력을 가지고 있진 않았어요. 자라면서 '내가 왜 이 종교를 믿고, 왜 사람들은 이 종교의 교리가 맞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가령 성경에 나오는 것들 중에서 지금 지켜지지 않는 교리들이 너무 많은데도, 왜 이걸 절대적인 틀로 놓고 교육시키는 건지 의아해요. 그런데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서는 딱히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와 신이 선천적인지 아니면 인간의 추상적인 개념 속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신이 있어도 그게 신 자체의 주장인지 사회에서 자신들의 입맛대로 변형되어 만들어진 것인지를 심층적으로 다뤄요. 종교뿐만 아니라 어떤 주제든 끊임없이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봐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래도 종교가 비판적 사고를 억제하는 면이 많기 때문에 특히 종교를 가진 분들이라면 한 번쯤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획일적인 사상을 강요하는 사람일수록 꼭 읽어보면 좋겠군요.
"맞아요. 종교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믿음에 '절대적'이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의 믿음이 절대적인 거라고 생각하면 발전이 없거든요. 솔직히 요즘 세대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요인 중에 자신의 믿음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태도도 있다고 보거든요. 저희가 가진 가치관이 있고, 기성세대분들도 그들만의 가치관이 있을 텐데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취급한다면 절대 그 격차는 좁혀지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다들 알잖아요. 하루 전의 나랑 지금의 내가 다르고, 일주일 전과 일 년 전의 내가 전부 다른데 앞으로 모두가 얼마나 더 변화하겠어요. 그런데 자신의 현재를 절대적인 것으로 보고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사람의 인격은 절대 성장하지 못할 것이고, 그러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 또한 절대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장단점 하나씩 꼽아보자면.
"저의 제일 큰 단점을 이제는 장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는데 그걸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개복치'에요. 남들이 '넌 왜 그렇게 예민해?'라고 평가할 수도 있는 성향을 가진 스타일이에요. 처음에 저는 그게 싫었어요.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너희가 둔감한 거겠지'라는 생각이었거든요. 사회에 정말 많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고 제가 관심을 가지지 않은 부분에서도 끊임없이 문제가 터져 나오잖아요. 그런데 그걸 지적하면 '네 일 아닌데 그걸 네가 왜 고려해?' 이러는 거예요. 그런 사람뿐만 아니라 사회 체제도 싫었죠. 싫은 게 너무 많은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생각하는 개념이 조금 달라진 거 같아요. 예민함이라는 게 양 끝이 모두 날카로운 화살 같더라고요. 남을 상처 줌과 동시에 나도 상처 입을 수 있는. 똑같은 예민함이라도 그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갈 수 있고, 아니면 모든 것에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우는 방식으로 갈 수도 있는 건데 지금은 전자인 거 같아요. '내가 이렇게 예민한 만큼 다른 사람도 내가 말하는 것을 불편하게 느낄 수 있겠지?' 아니면 '저런 사람은 왜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하고 상대방을 이해해보려는 태도를 가지게 된 거 같아요. 예민함이라는 화살을 사람에게는 향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같아요. 조금 단단해진 거죠. 단단한 개복치가 되었습니다(웃음). 예민함이 배려로 변해간 거 같네요."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으신 거 같습니다.
"최근 한 기사의 댓글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키오스크 시스템이 도입되고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주문을 못해서 밥을 못 드신다는 내용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댓글에 '자기들이 배울 생각 안 하니까 도태되는 게 당연하지 않아?'라는 식의 댓글이 너무 많았어요. 정말 놀랐죠. 기술의 변화에 따라서 교육을 못 받는 걸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건 아니라고 봐요. 이런 현상들은 개인의 선택으로 일어난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지금 젊은이인 우리들도 나중에는 똑같이 늙을 텐데 그 생각을 해야 한다고 봐요. 당장 요즘 초등학생들은 학교에서 코딩을 배워요.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 중에서 코딩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기술의 발달은 개인이 선택한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변화한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신지.
"회사든 어떤 조직에서 높은 직위에 올라갈수록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이 있어요. 그들은 굳이 자신이 겪을 일이 아니니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공감해줄 필요가 없잖아요. 하지만 저는 꾸준히 예민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거에 꾸준히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걸 바꿔나가고 싶습니다. 예전에 배우 김혜수 씨가 인터뷰에서 '얼굴에 주름이 느는 것보다 나이가 들어서도 내면이 채워지지 않는 것이 더 두렵다'는 뉘앙스로 말씀하신 게 있어요. 그 말에 공감이 갑니다. 제가 나이가 들어서 사회적으로 어떠한 지위를 얻고, 부를 축적했어도 속이 텅 비어있고, 남들의 문제라고 그들의 고통에 둔감하다면 제 삶이 공허하게 느껴질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타인의 고통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미래 세대에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항상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아요. 학교에서 철학 관련 교양을 들었는데 거기서 미래 세대에 대한 도덕적 책임에 대한 입장을 3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첫째로 미래 세대가 우리보다 더 적은 자원을 가지고 살게 한다. 둘째로 지금과 같은 자원으로 살아가게 한다. 마지막으로 미래 세대가 우리보다 더 많은 자원을 가지고 살게 한다. 솔직히 세 번째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봐요. 그래도 우리는 과거 세대의 누군가에 의해 지금의 삶을 살고 있고 혜택을 받고 있잖아요. 그러면서 우리가 당장 잘 살기 위해서 미래 세대의 자원을 줄인다? 이건 아니라고 봐요. 그래서 저는 적어도 두 번째인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당장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니더라도 미래의 나 혹은 나와 관계된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일임을 잊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이요. 아, 제가 들었던 교양은 ‘생명과 윤리의 철학적 성찰’이란 교양이었고요. 일반적인 안락사나 임신 중절 같은 기본적인 의료 윤리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이라던가 생명에 대한 모든 다양한 윤리들을 배울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다른 학교 대학생들이 청강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지막 수업이 끝날 때 교수님께서 PPT에 문구 하나를 띄워줬는데 제가 원래도 좋아했던 말이고, 제가 좌절감을 느낄 때 큰 힘을 준 말이라 인터뷰를 마치며 공유드리고 싶어요."
'사려 깊고 헌신적인 시민들로 이루어진 작은 집단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결코 의심하지 말라. 사실, 변화는 늘 그들에 의해서만 일어났다 - 마가렛 미드'
<최혜석>
- 청년문화포럼 마케팅위원장
- 덕성여자대학교 경영학과
- 인스타그램 @hey_rockaby
※ 청터뷰는 특정 정치, 종교, 기업 홍보를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물론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분은 나올 수 있지만, 절대 홍보 목적은 아닙니다) 평범한 대학생부터 각 분야에서 목표를 달성한 청년까지 구분 없이 '모든 청년'의 이야기에 귀 기울입니다. 그렇기에 개인 프로필을 인터뷰 하단에 배치하였다는 점 감안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를 통해 각 분야에 있는 청년들이 어떤 고민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있는 그대로의 청년 문화를 들여다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