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항상 열려있고 무엇이든 수용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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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과를 다니다가 프로게이머까지 된 한 청년이 있다. 무엇 하나도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그는 두 가지를 다 이뤄냈다. 그는 말한다. "열린 마음의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다면 오늘날 자신도 없었을 것"이라고. 자세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강남역 한 카페로 향했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8살이고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학생입니다."
법학을 전공했다가 게이머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원래는 공부를 나름 잘했어요(웃음). 그런데 제가 게임을 시작하게 된 게 아버지 영향이 커요. 집에서 같이 스타크래프트 한 판 하자고 하셔서 시작하게 됐는데, 그러다 취미로 발전되고, 실력을 키우고 싶어 져서 더 열심히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너 프로게이머 해볼래?'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가 중학생이었는데 싫다고 했어요. 게이머 지망생들은 공부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게임은 정말 잘하잖아요. 저는 공부도 하면서 게임을 할 거라 그들에게 비교 우위가 없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고등학생까지 게임은 취미로만 했는데 결국 수능을 망쳤어요. 반수를 생각하던 중 친구가 프로게임팀 입단 테스트를 한다고 해서 응원 갔다가 얼떨결에 저도 게임을 하게 되었고 붙은 거예요. 그래서 아버지에게 게임단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다고 말씀드렸더니 지지해주신다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되었죠."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사실 희두 님 영상을 봤는데 프로게이머가 되려면 “차가운 면을 보여주고 노력하면 된다” 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어요. 지망생 1만 명이라 치면 한 명쯤 그런 친구들이 있어요. 누가 봐도 압도적인 재능을 보이는 친구들이요. 그런 친구들이라면 도전해보라고 하고 싶은데 그게 쉬운 게 아니니까요. 순수하게 다른 짓하는 시간 빼고 게임만 10시간 넘게 해야 하는데, 최근에 가장 대중적인 게임인 LOL로 예를 들었을 때, 한 판에 30분 잡으면 10시간이면 20게임이에요. 친구들끼리 LOL 20게임하면 폐인이라고 하는데 그게 게이머들의 일과예요. 그런 일상을 개인 시간, 휴가도 거의 없이 365일간 해야 하는 거죠. 게이머를 지망하는 친구들이 대부분 게임하면서 돈 벌 수 있다고 프로게이머를 지망하거나 좋아하는데, 게이머들이 하는 게임은 일이에요. 그걸 아마 아이들이 대부분 모를 거예요. 학생들이라 아직 사회 나와서 돈을 받으면서 일한다는 게 어떤 건지 그런 개념이 잘 안 잡혀서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건 아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나저나 아버지께서 굉장히 큰 도움을 주신 거 같아요.
"아마 아버지께서 젊은 친구들하고 같이 일을 하셔서 그런 거 같아요. 요즘 세상 이야기를 많이 들으시다 보니까요. 그리고 아버지께서 게임을 좋아하시고, 스타리그 결승 있으면 같이 보러 가고 그러셨거든요. 아버지께서 예전부터 공부를 싫어하시고, 게임을 좋아하셨다고 해요.(웃음) 그런 영향을 받은 거 같습니다."
살면서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이나 경험이 있다면.
"영향을 받은 사람은 아버지일 거 같아요. 경험으로는 프로게이머 했던 경험이에요. 제가 아버지였으면 제 아들에게 못 그랬을 거 같거든요.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저렇게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점점 가지게 된 거 같아요. 게이머는 그때 당시엔 저한테 실패였어요. 되게 짧은 경험이었고, 별거 아니었고, 남들이 보기엔 스펙 한 줄도 안 쳐지는 그런 경험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실패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친구들 중에 과학고 조기 졸업해서 서울대간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저에게 부럽다고 하더라고요. 일반인들은 할 수 없는, 돈 주고도 못하는 경험을 네가 한 거 아니냐면서요. 그땐 뭐지? 이러고 넘겼는데, 나중에 보니 그때의 경험이 여러 방면에서 저를 성숙하게 만들어 준 것 같더라고요."
오늘날 청년들이 힘들어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원래 이 주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하루 종일 이야기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저는 '경제 성장률 차이‘ 같아요. 지금보다 못 살 때는 경제성장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어요. 설민석 씨가 한 이야기 같은데 쉽게 말하면 이런 거죠. 밥 먹으면서 생선을 매달아놓고 밥을 먹다가 살림이 좋아져서 고기를 매달아놓고 먹을 수 있고, 그다음엔 실제로 고기를 먹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태어날 때부터 고기가 밥상에 올려져 있잖아요. 지금보다 더 낫기가 쉽지 않은 거죠. 세계적으로 강국이 됐고, 그러다 보니 전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에요. 결국 사회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저희 때 베이비붐이 가장 심하고, 그 이후로는 출산율이 감소하는 추세잖아요. 그것도 되게 큰 영향이 있다고 봐요. 경제가 성장하면서 출산율도 많이 높아졌는데 다 태어나고 보니까 좋아질 대로 좋아져서 더 좋아질 구석이 없으니까 다들 힘든 거죠. 한정된 자리에 사람이 많아지니까 이것도 힘든 거고,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평균 수명도 많이 늘었잖아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사회적인 부담도 저희 세대로 다 넘어오게 된 거고 이런 사회구조적인 문제라고 봐요.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는 해소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지인들끼리 만나면 '10년만 지나면 우리가 힘들다'라고 해요. 중장년층이 되면 그때는 경제인구가 지금보다 적으니까 인력난에 시달리고,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사람이 없으니까 우리가 애걸복걸해야 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 이야길 해요. 저희 세대가 그런 거 같아요. 사회 구조의 격변기 사이에 끼인 그런 세대인 거 같습니다. 그래서 힘든 거 같아요."
추천할만한 책 혹은 영화가 있나요.
"책은 <범죄자>라는 책이에요. 제가 책을 정말 안 좋아하는 편이에요. 살면서 읽은 책이 10권도 될까 말까 하는데, 활자를 읽는 걸 안 좋아하는데 그건 밤새 가면서 읽었어요. 흡입력이 있더라고요. 저희 세대가 디지털 세대라서 저처럼 책 읽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거 같은데요.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릴게요. 최근에 이국종 교수님이 쓰신 <골든아워>란 책도 되게 재미있게 읽었어요. 앞서 추천한 책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차가운 사회 현실을 토해내듯이 뱉어내신 게 그 책에 드러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제가 그 현장에도 없었고 관련 실무자도 아니지만 와 닿는 게 많더라고요. 영화는 제가 음악을 좋아해서 <라라 랜드>나 <비긴 어게인>을 좋아해요. 라라 랜드를 특히 더 좋아했던 거 같아요. 영상미, 음향미 다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요즘 대부분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거라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신선했어요. <어바웃 타임>도 좋아해요. 아버지가 되게 저한테 소중한 인물인데 그거 관련해서 되게 잘 풀어내서 인생의 교훈이 담긴 <어바웃 타임>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교훈적인 부분은 그랬던 거 같습니다."
본인의 장단점 하나씩 꼽아보자면.
"장점은 논리적이에요. 감정에 많이 좌우되는 것보다 최대한 계산하려고 해요. 이성적인 편 같아요. 쉽게 말해 사업가적인 마인드가 있어요. 그게 단점인 거 같아요. 인간관계에서도 있는 거 같아요. 저도 모르게 그러는데 사람대 사람 사이에서 따지고 계산하는 게 좋은 모습은 아니니까요. 그게 장점이자 단점인 거 같습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신지.
"제가 지인들한테 장난처럼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꼰대가 되지 말자'라고 해요. 스스로의 모토 같은 거기도 하고요. 저는 그렇게 되고 싶어요. 아까 말씀드렸던 이야기지만, 제 인터뷰에서 이야기하면 저희 아버지 같은 분이 되고 싶어요. 항상 열려있고 저보다 아랫사람이든 어떤 사람이든 경청할 줄 알고,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저희 세대가 힘든 건 사실이잖아요. 사람들 생각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사회구조적이나 정책적인 부분에 있어 저희가 힘든 건 사실이고, 그게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거 같아요. 최근 들어 특히 그런 거 같아요. 혐오든 뭐든 여러 가지로 되게 안타까운 장면이 많은 것 같아요. 너무 추상적이고, 교과서에서나 있을 법한 메시지인데 '힘들어도 서로서로 좋게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그게 위아래든, 남녀든 어떻게든지요. 정치인이든 일반인이든 그냥 서로서로 다 같이 조금만 더 양보하고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뉴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건, 어떤 혐오 사건, 살인사건, 국회에서의 이런저런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서로 한 발자국씩만 물러나면 좋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다들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걸 보시는 분들이 얼마나 되실지도 모르겠고, 저 같은 사람이 이런 메시지를 던진다고 얼마나 많이 공감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보는 분들이라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운전도 그렇잖아요. 고속도로에서도 서로 먼저 가려고 안 하면 다 같이 빨리 갈 수 있거든요. 그렇게 되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정주홍>
- 상명대 법학과 11학번
- 前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 청터뷰는 특정 정치, 종교, 기업 홍보를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물론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분은 나올 수 있지만, 절대 홍보 목적은 아닙니다) 평범한 대학생부터 각 분야에서 목표를 달성한 청년까지 구분 없이 '모든 청년'의 이야기에 귀 기울입니다. 그렇기에 개인 프로필을 인터뷰 하단에 배치하였다는 점 감안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를 통해 각 분야에 있는 청년들이 어떤 고민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있는 그대로의 청년 문화를 들여다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