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에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왜 동지를 팔았나?"라는 안옥윤(정지현)의 질문에 염석진(이정재)은 "몰랐으니까. 해방될지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라는 답변을 합니다.
이는 과거 변절한 친일파의 심리를 담아낸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광복이 언제 될지 알았더라면 염석진 같은 변절자들도 끝까지 독립운동을 했을 겁니다.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당시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일찌감치 일본 권력에 붙었고, 다른 누군가는 독립을 위해 싸우다 '깜깜한 미래'에 좌절한 후 동지를 팔아넘기며 변절했고, 다른 누군가는 두렵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 끝까지 투쟁을 했습니다. 이외로도 행동은 안 하면서 투쟁에 앞장선 사람을 손가락질한다거나 속내를 숨긴 채 대세에 편승하는 등 당시에도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했습니다.
가만 보면 오늘날에도 염석진 같은 사람들이 보입니다. 이들도 처음엔 다들 진심이었겠지요. 중요한 건 누구나 염석진을 욕하지만 끝없이 우리를 유혹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거대한 '자본 권력' 앞에 번번이 좌절하며 두려움을 느낀다거나, 현실에 타협한다거나, 엄청난 보상이 탐나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렇기에 자칫하다간 누구든 염석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독립운동가들이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거나, 두려움이 없었다거나, 욕망이 애초에 없었기에 투쟁에 앞장선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각자 스스로 부끄럼 없는 삶을 살고자 혹은 미래 세대가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길 바라는 심정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한 것이라 봅니다.
그렇기에 두렵거나 답답한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미래 세대를 위해 치열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다가신 선조들을 떠올리려 합니다.
때로는 실망스러운 현실을 마주할지라도 매 순간의 노력 자체가 무의미하다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미래 세대가 발판 삼을 수 있는 명분들을 만들어놓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영화 <암살>에서 염석진은 끝내 안윤옥의 총알에 변절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이러한 카타르시스를 영화 속 판타지로 남길 것이냐 현실 세계로 반영할 것이냐는 개개인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상식과 정의가 바로 선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지금 간절히 바라는 그날을 생전 볼 수 없을지라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