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복인 거 같다.
실제 상처받고 힘들 때 글도 더 잘 쓰이고 마음에도 더 든다. 암 환자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가장 큰 만족을 얻는다. 죽음에 직면해서야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살아생전 쓰셨던 칼럼 <별은 어둠이 왔을 때 비로소 빛난다>의 일부 내용이다.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암 환자가 되셨고 작년 말 세상을 떠나셨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가장 큰 만족을 얻으셨는지는 묻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께선 돌아가시기 직전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는 깨달으신 거 같았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전혀 걷지도 못하셨다. 몸이 완전히 망가진 탓에 제대로된 식사도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물을 떠다 드리려고 냉장고로 향하던 나는 아버지의 혼잣말을 들었다.
"나는 지금 너가 그렇게 걷는것도 너무나 부럽다.. 너는 지금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거다. 걷는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건지."
아버지 말씀대로 나는 평소에 두 발로 걷는 것에 행복함을 느끼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까지도 느끼지 못했다.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처럼 당연함 속에 숨겨진 소중함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우리는 대부분 알지 못한 채 하루하루 살아간다. 아버지께서도 건강하실 적엔 전혀 알지 못하셨고 죽음을 앞둔 후에야 깨달으신 것이다.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두 발로 걸어다니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언젠가는 치료해주시는 분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혼자 물만 마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있잖습니까. 치료 기간동안 많은 생각을 해봤는데 인생이란 게 참 웃깁니다. 여태까지 열심히 돈 벌고, 사람들도 만나고 치열하게 살아왔는데…지금 소원은 딴거 없이 그저 콩나물국 한 그릇 시원하게 마시고, 두 발로 걷는 게 소원입니다. 좋아하던 등산도 마음껏 다니고..."
아쉽지만 아버지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죽음을 앞두고 모든 것이 무색해지자 두 발로 걷고, 콩나물국을 한 그릇 마시는 것이 소원이 되는 날이 올 줄을 그 누가 알았을까.
'아주 작은 것의 소중함'
아버지께서도 돌아가시기 직전에서야 깨달으셨다. 우리가 살아생전 그토록 바라는 돈, 권력, 명예가 정작 죽음을 앞둔 사람에겐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오래 전, 양현석 사장이 했던 '전 재산을 젊음과 바꾸고 싶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고 나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그 말의 뜻이 아주 조금씩 와닿는다. 나도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기에.
대부분이 젊음을 그리워하는데에는 단순히 젊은 시절의 패기와 열정 때문만은 아닌 거 같다.
그때 그 시절,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향한 그리움.
평생 다시 볼 수 없는 사람들과의 행복했던 순간들.
화려했던 젊은 시절의 향수와 그 시절의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거 같다.
마치 젊은 우리들이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듯이.
아버지처럼 죽음을 앞둔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부, 명예, 권력은 전부 부질없다는 말을 남겼다. 분명 그들도 앞서 태어났던 어르신들에게 같은 말을 들었을텐데 죽음을 앞두고서야 제대로 느낀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어르신들의 말씀도 우리 청춘들에게는 깊이 와닿지 않는다.
그들의 현재가, 우리에게는 미래이기 때문은 아닐까.
세월이 흐르며, 우리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하나둘씩 이해해간다. 어린 시절엔 그토록 믿지 않았던 조언도 이해가기 시작하면서 어른이 된다. 그렇기에 나는 최대한 마음으로 받아들인 채 살아갈 것이다.
'아주 작은 것의 소중함'
오늘이 나의 마지막 하루라는 마음 가짐으로.
아무리 힘들고 지친 하루였을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바라던 하루임이 분명하니까.
우리의 삶이 절대 영원치는 않으니까.
동시에 나는 희망차고 이상적인 미래도 꿈꿀 예정이다.
아직 해보지 못한 게 너무나도 많으니까.
아,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복인 거 같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별 탈없이 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