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도 황희두 Jun 12. 2018

[황희두 에세이] 도와줄 수 있는, 외면하지 않을 사람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을 사람이 되어야겠다. 마치 그 친구처럼.

"혼자가 아니니까요. 사람들이 있잖아요.

도와줄 수 있는, 외면하지 않을 판사님 같은..

그래서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를 악물게 돼요.

도와줄 수 있는, 외면하지 않을 그런 사람. 멋있는 사람!"


최근 유일하게 챙겨보는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에서 나온 명대사.

극 중 한차오름 판사(고아라 분)가 임바른 판사(김명수 분)에게 한 말이다.


출근 첫날 지하철에서 한 남성의 성추행을 발견한 한차오름 판사. 그녀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소란 끝에 성추행범을 잡아낸다. 이를 조용히 지켜보던 임바른 판사가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냐며 한차오름 판사에게 묻자 저렇게 대답한 것이다. 


혼자가 아닌 사람들이 함께 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말.


나에겐 특히나 와 닿는 말이었다.

살면서 나도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용기를 얻는 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학교와의 기나긴 소송 싸움에서도, 

일베 집단에게 욕을 먹는 경우에도, 

페미니즘을 지지해서 악플에 시달리던 시절에도 곁에 사람들이 있기에 끝까지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항상 힘을 주는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동지들로 인해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경우도 많았다. 가장 가슴 아팠던 경우는, 내가 이런저런 이유로 힘들어하자 금세 외면하며 사라져 간 친구들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감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 무렵 나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요한 공격으로 인해 힘들어하실 때 사라져 간 동료들로 얼마나 힘들어하셨을지를.


그렇게 사람에 상처받다 보니 어느 순간 혼자 살고 싶어 졌다. 사람을 좋아하던 내가, 한 순간에 사람이 싫어진 것이다. '이번엔 아니겠지, 다음엔 아니겠지' 새로운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을 심어도 같은 실수의 반복일 뿐이었다. 남는 것은 상처뿐인 인간관계에 깊은 회의감을 느끼다 보니 어느 순간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할 무렵, 진심으로 나를 위로해주는 한 친구가 눈에 띄었다.

마치 빛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 작은 불씨로 간신히 살아남아있는 촛불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그 친구는 여러모로 나에게 영감을 주었다. 


나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건넸고,

묵묵히 사회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며 사라져 가는 정의에도 불씨가 꺼지지 않았음을 알려주었고,

진정한 친구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모든 게 힘들어진 후에야 주위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걱정 없이 살던 시절에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

너도나도 외면하는 시기에도 끝까지 나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라는 사실을. 

그게 진짜 멋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 친구가 꼭 잘 되었으면 좋겠다.

까딱하면 '호구' 취급받기 딱 좋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약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친구와의 의리도 지키는 멋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아니까.

그리고 나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으니까.


역시 진정한 친구는,

내가 가장 힘들어진 후에야 발견할 수 있는 거 같다.

마치 그 친구처럼.


나도 그 친구 같은 멋진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른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남들은 외면할지라도 끝까지 외면하지 않을 그런 사람.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

매거진의 이전글 [황희두 에세이] 쿨병에 걸린 환자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