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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도 황희두 Sep 10. 2018

민주주의, 그리고 미시 파시즘

미시 파시즘을 해체하자! 일상 속엔 여전히 파시즘이 존재한다.

파시즘은 국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일상 속에도 작은 독재자들이 있다. 이걸 '미시 파시즘'이라 부른다. 각자의 개성과 선택권을 무시한 채 동일한 규율, 문화 등을 획일적으로 묶어버리는 것을 뜻한다.

과거 유시민 작가가 <차이나는 클라스>에 나와서 하신 말씀이다.

이어 그는 대학 신입생 사발주 문화, 가정 내 위계질서 등이 모두 이에 포함된다고 했다. 미시 파시즘은 본인도 모르게 몸속에 녹아들어, 서열과 위계를 나누고 모두를 지배하려는 습성이기에 일상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고 했다.
 

나는 격하게 공감했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돌이켜보면 나도 모르게 그동안 미시 파시즘을 실천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본인도 모르게' 이를 실천하며 살아간다.

심지어 국가의 민주주의를 외치는 진보적 시민 단체까지도 막상 내부에서는 파시즘적으로 운영하는 집단이 많다. 혹여나 내부에서 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이러한 체제를 비판하면 대부분 이런 식으로 대답한다.

 "조직의 운영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물론 조직 입장에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NGO단체를 약 3년 가까이 운영해온 사람으로서 빠른 성과를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특히 집단의 유지를 위해서 반드시 '획일적인 체계'가 필요하다는 식의 논리는 자연스럽게 미시 파시즘이란 괴물을 용인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일상 곳곳에 파시즘적 요소가 반영되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본인도 모르게' 길들여지게 된다.


그런데 가만 보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논리다. 그렇다. 국가재건과 고속성장을 위해선 일부 국민들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곧장 떠오른다. 그는 '국가 발전'이라는 명분을 앞세우며 국민들이 한 마음, 한 뜻을 가지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곳에 이와 비슷한 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 평소 민주주의를 외쳐온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게 바로 유시민 작가가 말한 미시 파시즘의 현주소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국가만의 문제라 생각하지만, 미시 파시즘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절대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없다. 성장이란 명분 아래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고, 전혀 일과는 무관한 상황에서도 위계를 이용한 권력을 남용하려는 사람들(안희정 같은)이 많다. 이는 자본주의 발전국가 시절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한다. 개나 소나 떠들어대서 시끄럽기만 한 게 민주주의 아니냐고, 그러면 조직이 망한다고. 이는 정말 무서운 생각이다. 그런 식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가지게 되는 순간 모두는 입을 다물게 된다. 누구나 자기 의견을 피력하며, 서로가 서로를 설득해가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속도는 느릴지언정 어느 순간 성숙한 집단 문화가 생겨난다. 잠시의 과도기를 잘 버티기만 하면 된다.


당장의 결과보다 그 과정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수차례의 토론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걸 깨닫게 되고, 타인을 하나둘씩 설득해가는 과정 속에서 개인은 성장하게 된다. 당연히 그 속에서 생겨난 결과는 훨씬 더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를 싫어하고, 나와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하여 타인을 제거하려는 생각 없애야 한다.


물론 모든 파시즘적 요소가 해체된다는 것은 유토피아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명분이 미시 파시즘을 용인해줄는 없다. 혹여라도 이를 앞세우며 미시 파시즘을 옹호해오지는 않았는지 본인과 주위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다르다'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자. 아마 위대하신 박정희 장군께서도 그런 식으로 생각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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