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N개의 공론장⑪ 일러스트레이터의 목소리 공론장 기록
공론장 일자 : 2020년 11월 4일
진행 장소 : 청년허브 다목적홀
기록 및 편집 : 금혜지(N개의 공론장 아키비스트 그룹)
공론장을 주최한 이요안나 작가는 “다양한 장르의 일러스트레이터, 예술가, 프리랜서.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라고 시작하는 초대장으로 공론장 참여자들을 모았습니다. 각자의 작업실 안에서만 맴도는 고민을 한 공간에 모으고, 나름의 해결방안을 모아봤으면 하는 생각에서요. 일러스트레이터들은 대체로 각자의 작업실에 흩어져 있어 한 번에 모여 이야기하는 자리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초대 요청에도 “나는 듣는 게 익숙한 사람입니다. 말하는 것은 조금 부담스러워요.”라고 답한 분들이 많았다고 해요. 그럼에도 더 나은 작업 환경과 네트워킹을 위해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요안나: 공론장을 준비하면서 자문을 구하는 과정에서, 일러스트레이터분들에게 ‘요즘 질문이 있느냐’, ‘어떤 게 고민이냐’ 등등을 물어보았어요. 대답은 크게 작업실 안과 밖의 이야기, 두 가지로 나누어졌습니다. 고민들은 다양하면서도 목표지점은 같아 보였습니다. 당장 나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이야기가 되기도 했어요. 기후위기나 동물권, 환경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공공재가 너무 적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작업을 이어가기 너무 열악하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다음은 질문을 요약한 내용이에요.
[일러스트레이터의 질문들]
상품과 홍보를 위한 그림은 결국 버려지기 위한 그림인데, 어떻게 하면 지구에게 미안하지 않을까?
윤리적인 기업의 일을 맡고 싶은데 왜 그쪽 일은 안 들어올까?
학습지에 쓰이는 내 그림이 아이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아닐까?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메시지를 그림에 넣으면 클라이언트가 싫어할까?
기업의 가치와 나의 가치가 충돌할 때 일을 받아야 하나, 생계를 위해 그냥 해야 하나?
이 계약이 일러스트 생태계를 망치는 것은 아닐까?
서로의 살을 깎아 먹게 만드는 대기업 비딩의 늪.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
불공정 계약을 없애고 싶어 만든 단가표를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이라고 판정해 시정을 요구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단가 하향 평준화를 막을 것인가?
부당한 페이지만 나에게는 확실한 한 줄의 포트폴리오다, 이 일 받는다 vs. 안 받는다
취지가 좋은 일에 내 그림을 쓰고 싶다고 한다. 제안하는 페이는 너무 적거나 없다. 이 일 한다 vs. 안 한다
일러스트레이터가 계약할 때 계약서에서 가장 먼저 없애야 할 독소조항은 무엇인가?
내가 경험한 최악의 업계 관행은 무엇인가? 2차 저작권 포기, 과도한 작업 요구로 인한 작업 기간 연장, 상품 발매 후 지급…?
요안나: 작가님들을 직접 만나면서 일러스트 업계의 많은 문제점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우리 업계의 생태계가 이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많은 질문을 받고 나서, 클라이언트들의 니즈를 충족하는 동시에 나의 니즈를 충족한 사례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오랫동안 지켜보기도 하고 조사를 해본 결과 발견한 몇 가지를 공유합니다.
[이런 활동 너무 멋져!]
내 안의 기후위기 요정을 찾아서 (ㅇㅇㅇ): 참여했던 전시를 통해 환경, 기후위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관련 작업을 하게 되었고 또 그 작업과 같은 결의 외주를 받게 되었다. 작가의 관심이 외주로 풀어내지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좋은 상황으로 보인다.
윤예지: 동물에 대해 관심이 많은 작가. 홍보 채널을 지켜본 결과, 자기가 관심을 가지는 작업을 계속하고, 이를 눈여겨보는 외부에서도 외주가 들어오고 있는 듯하다.
박정은: 고양이를 키우면서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례. 하루하루 환경 보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드로잉을 계속 올리고 표지로도 일로도 연결이 된다.
초등젠더교육 연구회 아웃박스: 다양하게 인권교육을 할 수 있는 책을 소개하고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부족한 부분들을 교사들이 함께 연구하여 교안을 만들어 공유하고 있다.
여성작가연대: 13인의 여성 일러스트레이터와 기획자 디자이너가 연대하여 달력 프로젝트 진행하고 성공한 사례가 있다. 서서히 여성 작가들의 연대가 보이고 있다.
일팟: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정보를 얻기 위한 팟캐스트. 한 회당 한 시간 반 정도의 내용이 담겨 있는데 알차고 정보가 훌륭하다. 작업하며 겪는 다양한 사례들을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다. 일러스트레이터의 권익에 대해 모든 회에서 이야기하는 채널이기에 업계의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함께 듣고 이야기 나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빨간고래의 드로잉(유튜브): 내가 어떻게 계약을 했고, 어떻게 종료를 했고, 공정한 경우는 어떤 것이 있고 부당한 경우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공유해주는 채널이다. 어떻게 하면 일러스트레이터가 스스로 판을 만들어 돌파구를 찾고, 좋은 방향으로 끌어갈 수 있는지를 작가 본인의 사례로 보여준다.
< 이러한 일러스트를 보았을 때 불편했다 >
✤ 성인지감수성
A: 출판사 학습지 작업을 처음 했을 때 걸리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어요. 아직도 남자아이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너무 많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애초에 미팅할 때 ‘저는 중성적으로 그리겠다’, ‘피부색도 골고루 그리겠다’ 라고 이야기를 한 뒤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제시된 상황들이 남자아이들 간에 일어나는 사건들이 많아서 비율을 맞추기가 힘들었습니다. 제가 기획자도 아니고 주어진 텍스트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그것에 대해 가타부타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은 수정을 감안하고라도 그려볼 수는 있는데, 그 전에 상황설정 등은 제가 이야기를 해볼 수 없는 지점이 없는 거죠.
B: 저는 동화책을 쓰고 그리고 있습니다. 2020년에 만들어지는 컨텐츠들에서도 여자애들은 꾸미기 놀이를 하거나 요리를 하고, 남자애들은 밖에서 뛰어놀고 기계를 만들고, 아빠는 회사에 가고 엄마는 집에 있어요. 해외에서 일할 때도 느꼈지만,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로 학습지나 그림책에서 여자들은 경찰, 의사가 없어요. 그래서 일부러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직업-성별 일러스트를 많이 그렸습니다. 아빠 상어는 파란색 엄마 상어는 분홍색, 이런 것들이 아이를 키우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불편한데,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죠.
C: 기사에서도 일러스트가 상상력을 제한하고 이미지를 고착화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성 피해자를 묘사하는 편향된 방식, 장애인을 묘사할 때는 신체장애를 중심으로 그리는 것도요. 그림은 더더욱 시각적인 자료이다 보니 현재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미지가 아닌 것을 그릴 때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D: 콘텐츠 유해성 경고 아이콘에서도, ‘선정성’을 표시할 때 왜 여성이 앉아있어야 하나요. 아이들의 시각으로 봤을 때 ‘여성은 19금인가?’ 이런 식으로 잘못된 성인지 관념으로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 환경
A: 일러스트 페어에서 많은 소비를 하는 편입니다. 업계를 응원하고자 하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죄책감이 들어요. 이 많은 비닐 포장과 굿즈들.. 사실 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포장을 하는 것이니 안 할 수가 없기는 하죠. 일러스트레이션을 하는 사람들은 필수품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니 환경에 대해 이야기 하면 안 되는 걸까, 자격이 없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곤 합니다. 대기업에서는 대부분 홍보를 위해 일러스트를 대량생산과 결합합니다. 결국엔 버려지기 위한 ‘예쁜 쓰레기’를 만드는 거라고 자조적으로 얘기하기도 해요. 환경에 대해서는 불편함이라기보다는 죄책감이 드는 것 같아요. 이 업계에 발을 디딘 이상 어쩔 수 없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B: 시도가 없지는 않은 게, 이번 온라인 언리미티드에디션 배송에서 재활용 가능한 포장재를 사용했거든요. 완벽하진 않지만 그런 액션을 큰 페어에서 처음 취하는 것이 업계에 좋은 선례가 되지 않을까요. 뭔가 대안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방법을 찾으면 있지 않을까, 하는 반성도 했습니다.
C: 사실 친환경 생산이라는 게 개인이 하는 게 한계가 있고 쿠팡이나 거대 유통 기업에서 만들어내는 시스템의 문제가 큽니다. 배송이라는 시스템이 들어온 이상 어쩔 수 없이 탄소발자국을 만들 수밖에 없어요. 최근에는 옥수수 전분을 가진 물에 한 번에 녹는 보충제도 있고, 해초류 추출물을 활용해서 비닐봉지를 만드는 이런 방안들이 많이 나왔잖아요. 이런 것들을 기업이나 정부에서 캠페인적으로 장려해서 비용을 낮추고 상용화하면 좋지 않을까요.
< 나는 이런 의뢰를 받으면 불편하다 >
✤ 일러스트 업계의 단가문제
A: 그림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고질적인 것이 단가 문제입니다. 왜 아티스트가 자신의 작업에 대해 정당한 가격을 책정하는 게 눈치 봐야 할 일인지 의문입니다. 저희는 호당 단가를 정할 때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했나’, ‘내가 이 금액을 받으면 욕먹는 거 아닐까’ 하면서 눈치를 보거든요.
B: 그림 한 장에 들어가는 노동량이 작가마다 다른데 그걸 다 똑같이 단가표에 따라 기준을 매겨버립니다. 외국에 전시할 때엔 사람들이 그림이 얼마냐고 물어보는 반면 한국에서는 호당 단가표가 얼마냐, 그 시장에서 얼마에 파느냐를 묻습니다. 내 그림인데 왜 내게 묻지 않고 단가표를 묻나요. 아마추어건 오랫동안 일하신 작가들이건 다 똑같이 시장 단가표를 받아버리는데 그것마저도 담합이라고 해버리면 말이 안 됩니다.
C: 제가 알기로는 20년 전 단가가 그대로예요. 단가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가격에 이렇게들 하더라~’ 하는 비딩도 문제입니다. 작가들의 페이를 기업이 오픈하고 경쟁시키는 비딩이 관행으로 자리 잡혀 있습니다. 비딩을 다섯 번 정도 겪었는데, ‘이 작가는 얼마에 했는데’ 넌지시 말하고, ‘얼마에 하실 거냐’고 물어봅니다. 그런 식으로 비딩한 다섯 명 중에 가장 단가가 낮은 한 명과 일하는 거에요. 신인이나 한 줄의 포트폴리오가 필요한 사람들은 시장 진입을 위해 낮은 가격에 그 일을 잡겠죠. 그러면서 자꾸만 서로의 살을 깎아 먹으면서 단가가 떨어지는 거죠.
D: 영국 일러스트레이터 시장은, “너의 엄마에게도 너의 그림 페이를 말하지 마“라고 교육하고 사회 전반에 그런 의식이 깔려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내 단가를 말하고 다니는 상황입니다. 그게 너무 부당하다고 느껴져요. 이렇게 계속 경쟁하면서 독고다이로 살아남아야 하는데, 내 손목은 아무도 챙겨주지 않고, 지금은 체력으로 버틴다지만 ‘나중에는 이게 체력으로 될 일인가’, ‘이걸 체력으로 버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E: 요즘에 크몽이나, 아이디어스 등의 플랫폼을 보면 단가를 낮게 책정해서 사람들에게 많이 팔리게 하는 작가들이 있어요. 서로 칼 들고 있는 거죠. 코로나 이후로는 천원에 캐리커쳐를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보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가격은 이미 낮은데 시장은 더욱 낮추라고 하고.
F: 저는 단가 문제 때문에 너무 고민을 많이 해오다가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트플랫폼 <픽토리움>을 만들었어요. 1, 2년 반짝 인기를 얻고 번아웃되는 것이 아니라 5, 60대가 되어서도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8년 전부터 준비를 하여 올해 오픈했는데 반응이 너무 없었어요.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목소리를 냈을 때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다들 큰 것 같아요. 그러나 그렇게만 생각하면 상황이 바뀌지 않겠죠. 작가들 스스로 각성을 하고 다 같이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G: 플랫폼에 대한 얘기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유명 포털들은 우리와 같은 컨텐츠 제작자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컨텐츠를 바탕으로 성장하면서, 정작 제작자의 권리를 존중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플랫폼이라는 것 자체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 시간 당 창작비
A: 우리의 시장 상황을 어떻게 고려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 중의 하나가 ‘시간당 창작 비용’입니다. 크기라든지 호라든지 하는 개념이 아니라 내가 내 경력과 실력에 맞춰서 시간과 노동 기간을 요청할 수 있다는 거죠.
B: 시간당 창작비 같은 경우 시작 시점과 기준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작가는 레퍼런스를 준비하는 기간을 길게 잡을 수 있고 어떤 분은 바로 들어가는 분도 계실 수 있는데, 어떻게 측정을 할 건지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지고 있나요?
A: 유럽 아티스트의 말을 들어보면, 그런 기준은 없습니다. 자기가 정하는 거죠. 다시 말해 클라이언트, 소비자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티스트 자신이 정하는 겁니다. 개인적 작업 특성에 따라 자율성을 가지고 일을 하는 거죠. 유럽의 경우 그것이 설득되고 통용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도 서툴긴 하지만 우리 아티스트들이 소리를 내면 움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민: 저에게는 일러스트레이터 이외에도 정체성이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페미니스트이기도 하고, 스타트업도 해보고 싶었고, 기획자로서 프로그램을 꾸리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많은 정체성을 어떻게 업으로 녹여내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팀은 ‘씨더썬’이라는 팀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없는 걸까, 회사나 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채로 내가 스스로 돈을 만들 수 없는 걸까, 그럼 내가 회사를 만들어야겠다,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성 예술가 4명이 모여 팀을 시작했습니다. 남성 중심적인 분위기가 공고한 예술계 안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기 위해서요. 책 작업, 소모임, 워크샵 등의 활동을 함께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운이 좋았던 것은, 페미니즘 작업을 계속 해와서인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도 관련 의뢰들이 들어왔습니다. 청소년들을 위한 페미니즘 입문서, 여성의 몸과 몸의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 삽화나 리워드 작업을 맡아 함께했습니다. 하지만 업계 전체에는 페미니즘이 거의 금기처럼 여겨지기도 하죠. ‘일러스트, 페미니스트’라는 키워드를 가지고만 서치를 해봐도 일러스트레이터의 사상검증에 관한 충격적인 결과가 나옵니다.
거꾸로 긍정적인 관련 활동을 찾아본 결과, <페미니스트디자이너 소셜 클럽>, <언니모자> 등을 찾았습니다. 아직 저희와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어떻게 힘을 합칠 수 있을지 함께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연대의 힘이라는 것을 많이 듣고 봅니다. 만약 지금까지 혼자 달려왔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 같은데, 네 명의 팀원들과 또 이 활동으로 만나게 된 선배, 동료들과 일하고 방향성을 논의한 것이 개인의 다음 스텝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는 결국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고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지점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 여성,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남기
A: 부정적 인식 때문에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고 생각한 페미니즘, 환경 등의 작업이 오히려 커리어 확장의 기회가 되기도 하고 어떤 담론을 형성하기도 한다는 것을 오늘 보았습니다. 내가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먼저 바뀌기를 바라기보다는 용기를 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B: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고충도 함께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떤 자료를 보았는데 한국 프리랜서 중 여성이 67센트였습니다. 주변에 육아로 인해서 퇴사한 후에 회사를 돌아갈 상황이 안 되어서 프리랜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이를 낳고 왔더니 그동안 나에게 일을 줬던 클라이언트들이 다른 디자이너에게 일을 줍니다. 프리랜서도 경력중단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프리랜서에 여성이라는 지위까지 더해지면 ‘취미로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심화되는 것 같습니다. 프리랜서가 노동자라는 인식이 확고해지는 게 필요합니다.
C: 원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돈을 잘 벌었던 직업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IMF 이후 작업 환경도 악화되고 단가도 낮아지니 여성들이 더 몰리고, 여성에 대한 사회적 처우 때문에 또 악순환이 일어났다고 해요. 지금도 이름난 아티스트는 거의 남성이지만 열악한 예술 노동자들은 여성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열악한 프리랜서 노동자 이야기를 할 때 여성 문제가 빠질 수가 없는 거죠.
✤ 일러스트레이터 연대
A: 업계 안에서도 일러스트레이터 연대가 있기는 합니다. 비공식적이지만 작가들이 모였을 때 블랙리스트나 사례를 공유한다든지 하는 거요. 여기는 일 하지 말라든가, 여기는 단가를 후려친다거나, 이 계열사는 성인지 감수성이 좀 있더라 하는 이런 정보들은 공유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 라고 하면 사실 좀 막막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미 행동을 하는 분들이 있는 것을 모르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픽토리움> 같은 경우도, 수많은 포트폴리오 사이트 중에 하나인가~ 했거든요. 어떻게 하면 산발적으로 나오는 목소리를 어떻게 합쳐서 크게 낼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B: 어렵지만 법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 메세지가 서로 교차되는 지점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단체가 있을 때 관련 법안 제정 등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C: 배달 어플, 가사노동 플랫폼 등에서는 플랫폼 노동자로서의 목소리를 단체로 많이 내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부분에서도 국회의원과 소통하면서 정책을 바꿀 수 있는 것들에 대해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아젠다를 문화예술이나 컨텐츠 창작자들이 가져오지 못할까요. 개인 간의 연대에서 더 나아가서, 협동조합이나 노동조합을 조직하지 못하는 탓도 있지 않을까요. 프리랜서 업에 대한 문제, 이 안에서 여성 노동 시장에서의 성차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나서서 조직화하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D: 경험이 공유되어야만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들이 개인으로 남는 게 아니라 직업군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우리가 네트워크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같이 업계 관행을 바꾸는 뭔가를 제안했을 때 좀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합니다.
A: 다음 세대는 성차별이나 열악한 노동 환경 등의 싸움에 낭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B: 창작자라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일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소수라도 조금씩 모이는 활동이 많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좋은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C: 여성 프리랜서들께 말씀드리고 싶었던 부분은, 페이를 5%는 높여서 질러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모든 PM은 예비비를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직업군의 종사자들이 모인 공론장이니만큼 논의는 여느 때보다 깊고 실질적이었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라는 각각의 점들이 선으로 연결될 수 있게 실마리를 가져간 자리였기를 바랍니다.
(일러스트레이터의 목소리 공론장 리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