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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허브 Dec 22. 2022

꿈을 잃지 않고 일한다는 것

<베럴라이브즈> 팀 인터뷰

2022년 청년허브에서는 청년들이 변화하는 기술, 기후, 노동 환경을 자기 삶의 변화로 받아들이고 주도적 일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문제해결 솔루션랩>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조직 내에서 마주하는 난제를 공동의 노력을 통해 해결 과정을 탐색하여 실제 현장에 적용하는 실험실이 되고자 하였는데요. 조직 내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싶어 <문제해결 솔루션랩>의 문을 두드린 7개 팀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요? 일in연구소의 황세원 대표님이 한 팀 한 팀을 만나 본 인터뷰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꿈을 잃지 않으려면 어려운 미션을 설정해야 하겠더라고요.”


일곱 개의 인터뷰를 하는 동안 ‘꿈’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어린아이들에게 “커서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는 의미로 “너는 꿈이 뭐니?”라고 묻기는 하지만, 고교생만 되어도 진로와 관련해서 ‘꿈’이라는 말을 쓸 일이 없어진다. 하물며 서른 다섯 남성이 자기 일에 대해 말할 때 ‘꿈’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서울시 청년허브의 ‘문제해결 솔루션랩’ 지원산업에 선정된 7개 팀의 인터뷰를 진행하게 됐을 때, 일에 대한 관점이 일반적인 직장인들과는 다를 것이라는 예상은 했다. 다양한 형태로 가치 지향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6개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지역 공동체, 기후변화, 교육 혁신, 통일, 난민 옹호, 예술과 치유 등의 주제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의 일하는 방식들도 각양각색이다. 일과 사회참여 활동 병행하기,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퇴근 후 N잡, 재미있는 일, 나만의 순서와 속도로 일하기, 자율적으로 일하기 등 키워드로 설명된다.



베럴라이브즈 김재관 대표


마지막 7번째 인터뷰를 하러 가면서도 새로운 주제와 일하는 방식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12월 9일 늦은 오후, 서울 연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베럴라이브즈’ 대표 김재관씨가 일곱 번째 주인공이었다.

인터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말하는 쪽은 차분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설명을 이어갔는데도 듣는 쪽이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꿈’이라는 의외의 단어를 들은 것을 포함해서, 예상치 못 한 전개를 여러 번 만났기 때문이었다. 


가장 의외라고 여겨진 것은 재관씨가 구상하는 일의 스케일이다. 인터뷰에 오기 전 읽은 간략한 소개서에 베럴라이브즈는 “공간을 통해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가는 라이프스타일 디벨로퍼”이며 “서울과 화성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되어 있었다. 


베럴라이브즈가 현재 하는 일에 대해 설명을 더 부탁하자 재관씨는 “서울의 노후 주택들을 매입해 그 자리에 청년 세대를 위한 주택을 새로 짓는 일”이라고 했다.


“1980년대부터 서울에 집중적으로 지어진 주택들은 4~5인 가구에 맞는 형태인데요. 이 주택들이 이제 너무 노후화돼서 유지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고 있어요. 매물로 나오는 집들도 늘고 있고요. 이 주택들을 매입한 뒤에 그 자리에 청년 세대의 필요와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집을 공급하려고 합니다.”


청년 세대가 원하는 주택의 유형으로는 1인 또는 2인 가구를 위한 집, 반려동물과의 생활을 고려한 집, 천편일률적인 틀을 벗어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형태 및 구조를 가진 집 등의 예를 들었다. 

무엇보다 직장과 집이 가깝다는 의미의 ‘직주근접’을 원하는 청년들이 많다면서 재관씨는 “서울 중심부의 작은 주택들이 서울 주변부나 수도권의 대단지 아파트보다 더 매력적일 수 있다”고 했다. 



청년허브 ‘문제해결 솔루션랩’ 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서 더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수요를 파악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일례로 요즘 유행하는 MBTI 검사처럼, 각자 원하는 라이프스타일과 직장 위치, 가처분소득, 집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간이나 특징, 그리고 내향적이냐 외향적이냐 등 개인 성향까지 입력하면 원하는 집의 형태를 보여주는 웹 설문 툴을 제작하는 것이다. 


현재 테스트 단계에 있는 이 툴을 통해서 대표적인 모델을 만들고, 실제 건축까지 해보는 것이 베럴라이브즈가 향후 1년간 주력하고자 하는 일이다.


https://youtu.be/e5MA0lFpFgA

서울특별시 청년허브 2022 문제해결 솔루션랩 <베럴라이브즈>


설명을 들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면이 있었다. 최근 몇 년간의 주택 가격 폭등과 ‘영끌’ 현상으로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주택에 대한 청년 세대의 관점 및 수요가 이전 세대와는 달라졌는 점은 여러 조사 및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졌다. 


다만 어쩔 수 없이 드는 의문은, 재관씨가 설명한 내용이 ‘베럴라이브즈’라는 기업이 수행할 수 있는 일인지에 대한 것이다. 베럴라이브즈는 김 대표를 포함해 세 명으로 이뤄진 기업인데, 다른 두 사람은 본업이 따로 있기 때문에 사실상 재관씨가 대부분의 기획과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이런 규모의 기업이 부동산 개발부터 건설과 분양까지 포괄하는 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은 그리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재관씨는 “지금은 기획 단계여서 거의 혼자 일하고 있지만 구상이 구체화되면 인재도 영입하고 그동안 네트워크를 유지해 온 건축, 건설사 등과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 설명에도 의문이 다 해소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베럴라이브즈가 구상 중인 더 큰 사업 이야기도 들었다. 경기도 화성에서 하는 일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특히 에너지 자립이 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것입니다. 몇 년 전부터 이 구상을 가지고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가능성을 타진했는데 화성과 인연이 닿았어요. 지금 화성시 도시재생 사업들에 참여하고 있는데 기회가 닿으면 작게라도 새로운 도시 모델을 만들고 싶습니다.”


말하자면 화성에 신도시를 개발하겠다는 것인데, 솔직히 이 인터뷰 자리에서 들을 줄은 몰랐던 스케일의 사업 계획이다. 다만, 허황된 이야기라고 단정 짓기에는 재관씨의 이력이 가지는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재관씨는 홍익대학교에 다니던 학생 시절부터 홍대 앞에서 인디음악의 개성을 담을 수 있는 갤러리, 대안공간, 공연장 겸 카페, 복합문화공간 등을 기획하고 운영한 경력이 있다. 특히 그 당시 유명했던 상업적 음악 페스티벌에 대한 대안으로 만들었던 ‘악산밸리페스티벌’은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2015년 ‘정동야행’이라는 이름으로 기획한 문화 축제는 성공을 거둔 뒤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경력 덕분에 재관씨는 지금도 1인 브랜드 컨설턴트로 여러 지역 사업이나 축제 등을 기획해서 적지 않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는 친구들과 함께 다회용기 대여 기업인 ‘트래쉬버스터즈’를 설립, 50여 명을 고용할 정도의 사업체가 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평생 일하고 싶고 되도록이면 재미있게 일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동기부여가 되는 어려운 미션을 설정하고
그 방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꿈을 잃지 않으려면 어려운 미션이 필요한 거죠.


어떻게 보면 그런 경력과 성과를 뒤로 하고 새로운 일, 그것도 무모해 보일 정도로 큰 규모의 사업에 다시 뛰어든 것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이런 의문에 대해 재관씨는 별로 어렵지 않게 답했다.


“어려서부터 창업 성향이 강했어요. 공공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문제를 민간 영역에서, 비즈니스를 통해서 해결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고요. 한동안은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공성 강한 축제를 만드는 일에 매진했는데, 그런 즐거움이 하루 잠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1년 365일 지속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도시를 만드는 일을 구상하게 된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도시를 만든다는 건 규모가 너무 큰일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뜻이 맞으면 사람은 모인다”는 답이 돌아왔다. 납득이 되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상태로 있자니 재관씨가 조금 더 설명을 이어갔다.


“그동안 몇 차례 매너리즘에 빠진 적이 있어요. 저는 목표지향적인 사람이라, 목표가 잘 안 보이거나 이미 달성됐다고 생각하면 일에 재미를 못 느끼거든요. 평생 일하고 싶고 되도록이면 재미있게 일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동기부여가 되는 어려운 미션을 설정하고 그 방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꿈을 잃지 않으려면 어려운 미션이 필요한 거죠.”


듣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은 해결됐다. 지금처럼 듣는 쪽에서 계속해서 의구심을 표하는데도 재관씨가 시종일관 차분하게 말할 수 있는 비결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대화가 수도 없이 있었겠구나, 홍대 앞에서 처음 공간 하나를 만들겠다고 할 때부터 지금까지 숱한 물음표들 사이에서 일해 왔겠구나, 깨달은 것이다.


© 베럴라이브즈


그러고 보니 그런 도시가 가능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서울 이외의 모든 지역이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을 걱정한다는데, 왜 자급자족 도시 또는 에너지 자립 도시와 같이 전혀 다른 방식의 혁신 전략을 취하는 곳은 없을까? 지금까지 시도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면, 누군가 그런 시도를 하겠다고 나설 때 굳이 한계를 지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늦은 오후에 시작한 대화는 밖이 깜깜해져서야 끝났다. 카페를 나서면서도 계속해서 이런저런 계획을 이야기하는 재관씨를 보며 비로소 이 대화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꿈을 이루고자 하는 과정에 대한 것이었다.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러 와서 ‘꿈’ 이야기를 하고 가도 될까, 잠시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일이 꿈에 의한 것이 아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해온 ‘좋은 일은 무엇인가’라는 연구도 결국은 각자 꿈을 이루는 과정들에 대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좋은 일이란 무엇일까?’라는 연구 주제를 가지고, 일로써 연구를 하고 있는 독립 연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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