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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허브 Dec 22. 2022

퇴근 후 N잡을 위해 다시 출근하는 사람들

<마인드랩> 팀 인터뷰

2022년 청년허브에서는 청년들이 변화하는 기술, 기후, 노동 환경을 자기 삶의 변화로 받아들이고 주도적 일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문제해결 솔루션랩>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조직 내에서 마주하는 난제를 공동의 노력을 통해 해결 과정을 탐색하여 실제 현장에 적용하는 실험실이 되고자 하였는데요. 조직 내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싶어 <문제해결 솔루션랩>의 문을 두드린 7개 팀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요? 일in연구소의 황세원 대표님이 한 팀 한 팀을 만나 본 인터뷰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인터뷰 시간은 저녁 7시 반. 그 시간에 오면 최대한 많은 구성원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경기도 성남 분당구의 한 오피스 타워에 들어서니 이미 저녁 공기가 무겁게 내려와 있다. 야근을 하려고 저녁 먹고 온 사람들만 건물에 다시 들어갈 시간이었다.


21층 창업 공간에 도착하니 사회적협동조합 ‘마인드랩’의 조합원 네 명이 모여 있다. 모두 표정은 밝았지만 그리 에너지가 넘쳐 보이지는 않는다. 특히 대표를 맡고 있는 박가현씨는 꽤 피로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조금 전 퇴근하고 다시 모인 참이었다. 마인드랩은 이들에게 두 번째 출근해서 일하는 ‘N잡’이다.



서울시 청년허브의 ‘문제해결 솔루션랩’ 지원사업에 선정된 7팀 중 하나인 마인드랩은 공교육 과정에서의 코딩 수업 등 IT 교육을 혁신하겠다는 미션을 가지고 있다. 2015년 교육 개정안에서부터 초등학교 비교과 과목으로 코딩을 가르치게 됐고, 2022년 개정안이 반영되면 초등 정규 교과목에 코딩이 들어가는데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이를 제대로 가르칠 강사도 교구도 준비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이 마인드랩의 출발점이었다.


IT 개발자이자 기획자인 가현씨는 발달지연 아동을 위한 솔루션을 개발하는 다른 창업 기업의 대표이기도 하다. 그는 현재 이뤄지는 코딩 수업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코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드론, 로봇 등을 ‘체험’하는 내용뿐이라는 점을 알게 된 뒤 마인드랩을 창업할 결심을 했다. 학생들의 발달 단계와 이해력 수준에 맞는 강의안과 교구를 만들고, 강사 교육 과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다. 


협동조합 형태를 취한 것은 각기 전문성을 가진 다섯 사람이 동등한 비중으로 협업하기 위해서다.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설립 인가를 받은 것은 기회가 되면 지역 교육 센터를 운영하는 등 공동체에 기여하는 사회적 경제 조직 역할을 하려는 계획이 있어서였다.


평균 연령 32세라는 다섯 조합원의 직업과 경력을 들어보니 마인드랩이 필요로 하는 기능들과 거의 일치했다. 창업을 준비 중인 윤하영씨는 IT 개발자이면서 블록체인 코딩을 주로 해왔고, 김용지씨는 데이터 시각화를 담당하는 연구원이었다가 지금은 전문 강사로 중학교에서 코딩을 포함한 IT 교육을 하고 있다. 김현수씨의 본업은 인사 부서에서 일하는 회사원인데 강사교육 전문가이기도 하다. 이 날 인터뷰에 오지 못한 나머지 한 명인 김홍범씨는 법무사다.


이 다섯 명은 어떻게 모이게 됐을까? 이 질문에 하영, 용지, 현수씨는 일제히 가현씨를 바라봤다. 마인드랩이 가현씨의 추진력과 네트워킹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렇더라도 각자 하는 일이 있는데 추가로 하나의 일을 더 하는 결심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동시에 두 개 이상의 일을 하는 ‘N잡’은 새롭고 흥미로운 일의 형태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가와 휴식 시간을 희생해야만 하는 열악한 노동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사실 나의 일로 하루 8시간쯤 일했으면 나머지는 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니, 쉬운 결심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인드랩에서 제작한 디지털 교육 교구


이 ‘두 번째 일’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요하는지 궁금했다. 마인드랩에는 월요일에는 대면 회의, 목요일에는 화상회의를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각자 맡은 일을 한다는 원칙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터뷰한 날부터가 월요일이 아니었다. 


가현씨에 따르면 “지금은 전시 상황이라 일주일에 하루 빼고 다 나오고 있다”고. 이런저런 공모 및 지원 사업들의 결산이 이뤄지는 연말이라서다. 가현씨가 유독 피곤해 보였던 것도 오늘까지 완료해야 할 서류 작업이 있기 때문이라 했다.


이렇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는데도 이 일을 선택한 이들에게 마인드랩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직업으로 하는 일과 마인드랩의 마음속 비중은 몇 대 몇 정도 되는지 공통 질문을 던져봤다.


용지씨는 데이터 분야 연구직을 그만두고 강사 일을 하는 이력부터가 특이한 사람이다. “컴퓨터랑 마주 보고 하루종일 앉아있는 직업이 저랑 잘 안 맞아서”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지금 일을 선택했고, 특히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 좋다는 그는 “아이들에게 도움 되는 사업을 같이 할 수 있어서”라고 마인드랩에 참여한 이유를 설명했다. 마음속 비중은 이미 마인드랩에 70% 정도 기울어 있다고 했다.


블록체인을 응용한 비즈니스 모델로 창업을 준비 중인 하영씨는 “마인드랩의 가치 지향적인 면이 좋았다”고 했다. 가현씨에게 창업 과정을 배우고 싶어서 합류한 이유도 있다고, 아무래도 마음속 비중은 창업 준비에 60% 정도 기울어 있다고 솔직한 말투로 털어놓기도 했다.


구성원들 중에서 가장 전형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현수씨는 갓 태어난 아이 아빠이기도 하다. 다행히 아내가 이해해주고 있다지만 직장과 육아 두 가지에 쓰기에도 이미 시간이 부족할 상황이다. 

그가 N잡을 하게 된 이유는 의외로 “재미를 느껴서”다. 단, 이때의 재미는 그저 즐긴다는 의미는 아니다. “제가 가진 능력을 활용할 수 있으면서, 장기적으로 저의 역량이 커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의미”라고 현수씨는 설명했다. 그렇게 강력한 이유가 있기 때문인지 마음속에서 마인드랩이 차지하는 비중은 90% 정도 된다고. 


가현씨는 “지금은 전시 상황이라”는 말을 다시 하면서, 지금 당장은 마인드랩의 비중이 거의 100%에 달한다는 설명부터 했다.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것도 잊고 15시간을 내리 일할 정도라니 그럴 만도 하다. 평시 상황을 묻자 대표를 맡고 있는 두 기업의 비중은 50대 50이라고 상식적인 답을 내놨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교육 봉사 단체에서 활동했다는 가현씨는 꼭 필요한 대상에게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않거나, 겉핥기식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서 문제를 크게 느끼는 성향인 듯했다. 창업한 두 기업들의 출발점에도 이런 문제의식들이 보인다. 27개월 아기를 둔 엄마라는 점도 그 문제의식을 키운 듯한데, 그런 한편 아기 엄마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어떻게 두 개 기업을 창업하고 이렇게 몰입해서 일할 수 있는지가 더 궁금해진다. 

사회적협동조합 박가현 대표

“돈 대신 시간을 대출받고 싶을 정도”라는 가현씨는 “우선순위를 둔 일에 집중한 뒤 다음 일을 처리하는 식으로 감당하고 있다”면서 한 가지 정보를 더 줬다. 여기 오지 못한 구성원인 홍범씨가 가현씨의 남편이라는 것이다. 전문직이라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는 남편 덕에  일을 좀 더 할 수 있다며 “남편에게 시간을 대출했다가 주말에 갚고 있는 격”이라 했다.


앞으로는 늦게 가더라도 서로 알려주면서 같이 가는 식으로
일하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어요.


마인드랩이 현재 가진 가장 큰 고민은 뭘까? 청년허브 ‘문제해결 솔루션랩’에 지원한 이유는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프로세스 및 의사소통 구조를 갖추고 싶어서’였다. 원래 ‘언니, 누나’ 등으로 호칭하던 친한 사이에서 효율적으로 협업하는 관계로 전환하기 위한 과제다.


https://youtu.be/G1A9yD84-UE

서울특별시 청년허브 2022 문제해결 솔루션랩 <마인드랩>


“지금 저희 소통 방식의 문제는 지나치게 수평적이라는 거예요. 일을 하다 보면 리더십도 필요하고, 의사결정 체계도 필요한데 그런 시스템을 만들지 않고 일을 시작한 탓이죠.”(박가현)


솔루션랩 워크숍을 통해서 깨달은 것 하나는 그동안 마인드랩은 ‘일 잘하는 사람이 맡아 빨리 처리하자’는 식으로 일해왔다는 것이다. 주로 가현씨가 ‘일 잘하는 사람’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협동조합의 인적 구성으로 보나 미션으로 보나 업무 분장을 제대로 하는 편이 효과적일 것이었다. 때문에 앞으로는 ‘늦게 가더라도 서로 알려주면서 같이 가자’는 식으로 일하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고. 


개발자가 아닌 현수씨가 데이터 공부를 시작한 것이 하나의 예다. “각자 역량을 다운그레이드 해서 맞추는 게 아니라 업그레이드해서 맞추기로 했기 때문에 저도 노력하려는 것”이라고 현수씨는 말했다. 용지씨는 “협동조합 경험이 없고 심리적 부담이 커서 한동안 제 역할을 못했는데, 역할 분장이 이뤄진 뒤로는 일하는 양은 늘어났어도 심리적 부담이 줄었다”고 했다. 하영씨도 “일이 잘 분배되면서 사업도 조금씩 갈피를 잡아가는 것 같다”고 평했다. 


사회적협동조합 마인드랩의 네 조합원인 김용지, 박가현, 김현수, 윤하영씨(왼쪽부터)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인터뷰가 하염없이 길어지고 있었다. 할 일이 쌓여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만 마치고 사진을 한 장 찍자고 했다. 그러자 네 사람은 척척 알아서 교구 재료를 꺼내오고 구도를 잡더니 금방 화기애애하게 회의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비록 연출한 장면은 좀 작위적이었지만, 그 모습들을 보니 조금은 더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다섯이 마음을 맞추며 일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재미가 있기에 퇴근하고 또 이렇게 일하고 있는지를.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좋은 일이란 무엇일까?’라는 연구 주제를 가지고, 일로써 연구를 하고 있는 독립 연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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