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개의 공론장③⑤⑧⑫ 「화요일의 온도차」 살펴보기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은 영문도 모른 채 30년 동안 골방에 갇혀서 매일 아침 점심 저녁 만두를 먹고 자기 삶을 살아가는데요. 사실상 시설에 사는 장애인들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날씨가 좋은 날 산책조차 못 하는 게 시설이고, (중략) 돌보는 사람들에게 폭력과 죽임을 당하고 심지어 장애여성은 성폭력을 당해도 아무도 모르게 처리돼버리는 일이 정말 비일비재해요.”(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화요일의 온도차」 3회)
「화요일의 온도차」 3회 “차별금지법, ‘타인의 삶’”의 첫 게스트 애린의 말에 시청자들의 탄식이 따라 나옵니다. 그때 누군가가 채팅창에 이렇게 적습니다. “제가 정말 무지하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네요! 지금부터라도 함께 연대하고 항상 응원하겠습니다!”(서다희, 「화요일의 온도차」 시청자) 들린 말과 쓰인 문자의 감응이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현장. ‘온라인 공론장’ 「화요일의 온도차」의 시청자들은 채팅과 투표를 통해 견해와 공감을 드러내며 논의에 참여했습니다.
「화요일의 온도차」 기획자와의 대화
아무리 크게 외쳐도 아무도 듣지 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는 그것을 말하는 사람 자체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힘주어 내질러도 손쉽게 흘러 버려지는 말과 사람들. 「화요일의 온도차」는 폭력과 배제의 가장자리로 떠밀린 취약한 이들, 여성과 청소년과 장애인과 난민과 퀴어들의 이야기를 유쾌하고도 지적인 언어로 펼쳐냅니다. 말들이 활개칩니다.
2018년 10월 23일부터 12월 4일까지 격주 화요일마다 실시간으로 방송된 온라인 공론장 「화요일의 온도차」는 ‘정치’의 역량이란 나와 다른 위치에 선 이들의 말을 듣고 묻고 이해하는 문해력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학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해법이 ‘될 것 같은 말들’을 가로질러 불가해한 미지에서 다른 해법을 찾는 도전이었습니다.
2018년 6월,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였던 신지예 씨와 당시 홍보국장 이은정 씨는 방배동에 자리한 선거캠프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의 한편에서 편안한 분위기의 대담 방송을 송출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방송’은 어디를 향하는 걸까요? 「화요일의 온도차」의 오퍼레이터 이은정 씨, 사회자 신지예 씨, 그리고 청년허브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이들과 함께했던 김평화 씨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일시: 2019년 1월 11일 오전 11시
인터뷰이: 이은정·신지예(화요일의 온도차), 김평화(청년허브)
인터뷰어: 정아람(N개의 공론장 아키비스트 그룹)
Q: 「화요일의 온도차」에서 각자 어떤 역할을 담당하셨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은정: 저는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함께했어요. 매회 주제를 선정할 때 에디터, 디자이너, SNS 관리자 등 여러 방면에서 일하는 팀원들이 다 같이 모여서 브레인스토밍 회의를 해요. 그 자리에서 큰 방향과 게스트 목록이 결정되면, 이후 내용을 충실하게 만드는 에디터 회의를 하고요. 저는 그 회의들을 진행하며 조율했어요. 방송에서는 전체 오퍼레이팅을 담당했고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반반씩 발을 담그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실제로 이 프로젝트가 돌아갈 수 있게끔 관리자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지예: 방송 진행을 맡았습니다. 회의에 참석하면서 전체 흐름이나 패널 구성이나 내용에 대한 아이디어를 보탰고, 섭외 등을 종종 맡아서 진행했고요.
평화: 저는 현장에서 손을 하나 더 보태는 정도의 실무만 담당했어요. 방송이 청년허브 공간 안에서 진행됐기 때문에 공간 세팅을 주로 했습니다.
‘전환 관리’의 초안의 초안의 초안처럼, 소수자의 목소리를 삭제시키지 않는 안전하고 건강한 장을 온라인에서 만들어보는 걸 목표로 삼았죠.
Q: 「화요일의 온도차」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지예: 원래는 ‘전환 관리(transition management)’를 시험해보는 것이었어요. 전환 관리란 2000년대부터 북유럽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혁신적인 실험 사업인데요. 국가가 관료화되고 제도가 공고해져서 생기는 문제가 있잖아요? 가령, 부서 간 협력이 불가능하다든지, 오히려 큰 맥락을 바꾸기 어려운 시스템의 한계 등이 있는데, 그걸 해결하고자 하는 고민에서 시작됐어요. 한 나라에서 30년 뒤에 발생할 문제들을 미리 생각해 방안을 도출하는 거죠. 그 도출안을 따르는 실험 노선을 몇 개 만들고, 그것들을 실제로 실행해보고, 몇 년 뒤에 예상대로 됐는지 검토하는 사이클의 장기 프로젝트예요. 지금 한국에는 이런 관점의 조직도 사업도 없다는 문제의식 아래 ‘30년 뒤 서울의 모습을 상상하는 전환 관리 맛보기 프로젝트’가 애초의 아이디어였어요.
그런데 이게 워낙 큰 그림인 데다가 실제로 권한이 없는 상태에서 그냥 이야기만 하는 것이 과연 효용성을 가질까 하는 의견이 있었어요. 잘 이야기되려면 건강한 ‘공론장’이 존재해야 되는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능할까 하는 질문이 있었고요. 공론장이라 하면 보통 쌍욕이 오가고 권력자나 위계 구조에 철저히 통제되는 자리잖아요. 그와 완전히 다른 공론장을 그때부터 상상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오프라인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오프라인에서 뜻 맞는 우리들끼리 모이면 참 좋지만 어떻게 하면 우리 밖에 있는 사람들과도 만날 수 있을까→ 그럼 온라인 공론장을 만들어보자’ 이렇게 생각의 흐름이 이어졌고요. 전환 관리의 초안의 초안의 초안처럼, 소수자의 목소리를 삭제시키지 않는 안전하고 건강한 장을 온라인에서 만들어보는 걸 목표로 삼았죠.
은정: 이전에 서울시장 선거 캠프를 진행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나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 혹은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다는 점이었어요. 물론 그게 안전을 느끼게 하지만, 어떨 때는 ‘좀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이 되거든요. 내가 무엇을 안다고 이야기하고 판단하기에 과연 적절한 상태일까 싶고요. 그러니까 서로를 확인할 길이 없는 게 문제인데, 이에 대한 실마리로 이미 잘 구축되어 있는 온라인 생태계를 충분히 이용하는 것이랄까요? 어쨌든 저는 어떤 방법을 택하더라도 연결되고 연대할 수 있다면 그 시너지가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댓글이든, 투표든, 단순히 구독자 한 명이 추가되든, 서로가 서로를 확인하는 방식이 다양하면 좋겠죠.
한편으로 “요즘 애들은 다 파편화되어 있다” “만나지 않으니 네트워킹이 안 된다” 같은 이야기들이 지겨웠어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소통 방식이 달라진 거죠. 그런데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를 무겁게 전달하려고만 하는 방식과 그걸 고수하는 태도에 대한 회의가 항상 있었어요. 온라인 콘텐츠는 스냅처럼 지나가는 것이라는 해석들이 항상 불편했고요. 그래서 있는 기능은 다 써보자 했어요. ‘라이브(LIVE)’도 사실 어떤 기능이잖아요? 송출한 전체 영상을 잘라서 세부 주제를 충실히 다룬 10분짜리 영상을 만들고, 더 짧게 1분짜리 스냅 영상을 만들고, 그보다 더 가볍게 1장짜리 키워드 이미지를 만들고, 이런 식으로 할 수 있는 걸 최대화하는 원소스 멀티유징 방식의 매체를 구성했죠.
지예: 저희가 온라인 공론장을 택한 큰 이유 중 하나가 ‘시간이 가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애린 님 섹션, 기홍 님 섹션이 기억나는데요. 예를 들면 장애인 이슈나 성소수자 이슈가 터질 때 사람들이 유튜브에 검색하면 그분들 영상이 뜰 거잖아요? 당장 그러한 이슈에 관심 없는 사람일지라도 추후에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있었어요. 어떤 문제를 너무 쉽게 판단하고 욕하고 외면하는 일들이 반복되는 것 같은데, 온라인을 통해서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마음에.
은정: 실제로 ‘양진호 사건’이 터졌을 때 이수정 님 영상 조회수가 월등히 뛰는 거예요. 그런 이슈가 터질 때 우리가 지향하는 방식으로, 어떤 혐오 없이, “지금 집중해야 하는 진짜 문제는 이거다”라고 이야기하는 콘텐츠가 소비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화: 디지털 성폭력은 계속해서 논란이 될 가능성이 있는 문제잖아요. 장애인 인권 문제나 성소수자 인권 문제도 마찬가지고요. 인구가 줄어드니 선거제도 개편이 당연히 이뤄져야 하고요. 그렇게 봤을 때, 우리가 만든 영상들이 어떻게든 계속 돌겠구나 생각이 드네요.
Q: 4회에 걸쳐 디지털 성폭력, 선거제도 개편, 차별금지법, 2018년 주요 사건 결산까지 여성과 소수자들을 둘러싼 이슈를 다뤘어요. 저는 지예 님과 은정 님이 선거 활동을 함께하기도 했으니 기성 정치판의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공론장과 다른 것을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앞서 그에 대한 답변을 들은 것 같습니다. 온라인에서 좋은 컨텐츠를 만드는 일에 대한 고민도 말씀해주셨고요.
지예: 유튜브 정화 사업이 매우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은정: 맞아요. 혐오 컨텐츠들이 너무 쉽게 노출되고 있어서.
지예: 한편으로 요즘 고민은 이런 거예요. 페미니즘을 바탕으로 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 힘을, 혐오의 언어가 아니라 더 긍정적인 언어로 어떻게 풀 수 있을까? 포퓰리즘적인 언어가 가능하다고 봐요. 적을 명확하게 두고 우리를 결집시키는 언어를 말하는데, 보통 우파 포퓰리스트들이 자국민 외에 이질적인 존재들을 공격하면서 집단을 모으잖아요. 좌파 포퓰리스트들이 나오는 걸 보면, 한국에서도 긍정적인 언어를 쓰는 포퓰리즘적 페미니스트 운동가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어 성폭력 문제를 두고 이런 식의 판단을 내린다고 생각해봐요. 한국은 의외로 성폭력에 대한 형량이 세요. 법 해석이 떨어지는 데다가 형량을 제대로 안 주고 있을 뿐이에요. 성폭력에 대한 인식 자체가 너무 낮기 때문에. 그래서 “사실 판사들이 문제다”라고 얘기하면, 무차별적 혐오가 아니라 포퓰리즘적인 언어들이 그쪽을 향해 가면서 진짜 문제를 양산하고 있는 사람들을 타깃팅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죠.
은정: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많은 유튜브 콘텐츠가 사람들을 쉽게 설득하려고 “A가 문제다” “A가 바뀌어야 한다” 하잖아요. 그게 뒤에 있는 무언가를 계속 볼 수 없게 하는 것 같아요. 사실 그 A가 그렇게 행동한 건 무엇 때문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진짜 싸워서 이겨야 될 건 그 ‘무엇’이지 A가 아니잖아요? 그런 식으로 보는 사람의 생각을 일차원적으로 단순화시키는 경향이 있어요. 좀 다른 호흡을 가진, 사고의 차원을 조금 달리 써보게 하는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Q: 「화요일의 온도차」는 페미니즘과 인권의 관점을 확실히 교차적으로 보여주는 방송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사회에 놓인 한 사람의 자리가 단일할 수 없잖아요? 이를테면 이주민 여성은 ‘이주민’과 ‘여성’이라는 두 개의 포지션에 놓인 사람이기 때문에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한 것처럼. 그런 다양한 차원의 이야기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분노의 언어가 아니라 학습의 언어로 전달됐고요. 그만큼 이야기 보따리를 전적으로 책임진 패널들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고 보거든요. 패널 구성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하고, 또 그분들께서 이후에 어떤 피드백을 주셨는지도 궁금해요.
지예: 패널 섭외가 완료되면, 저희 팀 에디터들이 항상 그분들을 사전에 직접 만나셨어요. 얼굴을 보고 방송에서 다룰 화제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듣고, 그중에서 꼭지점을 잡아 질문을 만드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각각의 내용들이 함축적으로 담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패널분들은 다들 만족하셨고, 이런 기회가 더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소수자들이 어디 행사를 가면 항상 들러리처럼 되잖아요. 장애인, 여성, 청년, 이런 집단들이 특히 그렇죠. 사진에 구색 맞추기 식으로. 그게 아니라 자기 얘기를 직접 오랫동안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은정: 차별금지법 특집 때 패널분들이 방송을 끝까지 다 보고 가시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미리 오셔서 대화를 나누시고, 서로의 이야기들을 끝까지 들으시고, 화기애애한 거예요. 저는 그 회차가 되게 인상적인 하나의 장면으로 기억에 남아요.
다수를 향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 참고할 수 있는 정보, ‘이런저런 방법이 있는데, 그걸 위해선 이러저러한 세팅이 필요하다’ 하는 정보가 계속해서 집적되면 좋겠어요.
Q: 평화 님은 청년허브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화요일의 온도차」 팀과 함께 일한 소감이 어떠셨나요?
평화: 청년허브는 하드웨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허브’의 의미에 더 방점을 두고, 공적 기반과 자산을 어떤 걸 시도하고자 하는 팀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청년을 따옴표 친 세대로 구별하는 것 같아서 계속 맘이 걸리긴 해도, 「화요일의 온도차」 구성원은 모두 청년이었거든요. 공론 주제를 추출하고 제안하는 과정과 실무를 소화해가는 과정을 통해 서로 성장하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에, 청년허브가 그들이 제시한 이슈에 사회적 자원을 연계하는 집단이라는 게 좋다는 생각을 했고요. 시청률이 조금만 더 나오면 좋겠다든가, 댓글 창이 좀 더 활성화되면 좋겠다든가, 그런 욕심은 왜 없었겠어요. 당장 결과 보고서에는 이 수치가 들어가겠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언제든 유용하게 사용될 콘텐츠라고 생각하면 뿌듯합니다.
Q: 은정 님과 지예 님에게는 청년허브와의 협업이 어떤 경험이었나요? 또, 어떤 점에서 의미가 있었는지 소회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은정: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들에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많이 가면 좋겠다고 다시 한번 느꼈어요.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어렵다고 생각해요. 간절히 알리고 싶은 누군가의 이야기들이 많이 묻히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 있고요. 방송 끝나고 나서 영상들을 쭉 돌려봤더니 힘을 많이 뺄걸 그랬나 싶더라고요. 레이아웃에 힘을 많이 주고, 색이나 디자인을 있어 보이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좀 더 친근한 분위기였다면 사람들이 보고 ‘이 정도면 나도 만들 수 있겠는데?’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이유에는 장비비를 줄이고 인건비를 더 책정하는 게 앞으로 더 맞겠다는 판단도 있는데요. 항상 딜레마예요. 좋은 룩을 뽑아내고 싶긴 하고, 그렇게 하면 거리가 생기기도 하고, 실제 운영에 돈도 많이 들고. 그런 걸 실험해보기에 청년허브는 굉장히 좋은 파트너였다고 생각해요.
Q: 방송 현장에는 돌발 상황들이 있잖아요. 엄청 긴장됐을 것 같아요.
은정: 항상 방송 끝나고 나면 센 술을 한 잔 마시고 쓰러져서 잤어요. 생각보다 되게 많이 긴장돼서 초기에는 몸이 여기저기 쑤시더라고요.
지예: 저도 막 쑤셨어요.
Q: 지예 님은 사회를 굉장히 능숙하게 보셨잖아요.
지예: 저 달달 외우고 있는 거 못 보셨어요?(웃음) 여하간 청년허브와 함께한 「화요일의 온도차」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받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청년허브는 ‘어떻게 하면 청년이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된 기관이잖아요. 물론 청년활 등 혁신적인 프로그램도 많았지만, 고용에 초점이 있다든지 결과적으로 익숙한 방식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이제 와서 보니 청년이라는 정체성에 갇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청년이라고 하는 세대가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있는 단일한 집단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 한국은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정치가 너무 확고하기 때문에 그런 상상이 잘 안되는 거예요. 우리가 서로 다른 존재여도 사실은 이어져 있고, 정체성이라는 것이 유동적이라는 개념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보면 청년은 20대만 해당되는 게 아니죠. 어린이와 청소년과 중장년을 연결하는 집단이고, 그 모두를 아우를 때 비로소 청년의 모습이 그려진다고 생각해요.
앞서 평화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에 청년허브가 ‘청년’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허브’에 집중하기로 한 흐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비슷한 고민에서 이러한 흐름이 나온 것 같고, 그 속에는 청년만 발견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난민도 성소수자도 함께 찾고자 하는 그런 의식들이 얼기설기 섞여 있는 것 같아요. 3회차 방송에서 기홍 님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않더라도 존중이라도 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 말들이 결국 ‘나는 20대 여성이야’ ‘나는 20대 남성이야’ ‘나는 청년이야’ 이런 정체성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만들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면에서 굉장히 뜻깊은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해요.
은정: 사실 누가 해도 꼭 해야 되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 누군가 기회를 준다면 이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기회를 주는 데는 청년허브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지예: 왜냐면 방송사는 이미 망했잖아요. 방송사 작가들은 시청률에 매몰될 수밖에 없게끔 구조화되어 있죠. 언론사도 클릭 수 때문에 어떻게 어뷰징 기사를 쓸 것인가 골몰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자극적인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중독돼버렸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청년허브라고 하면 공공 기관이기도 하고, 굉장히 안전한 토대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해해주니까 그 자체로 뭐랄까 기회의 장이라고 생각해요. 더 많은 분들이 『N개의 공론장』에 참여하면 좋겠어요.
평화: 저는 궁극적으로 청소년부터 노인이 되어가는 모든 시민들을 강타할 수 있는 그런 이슈를 만들 수 있길 바라거든요. 어떻게 보면 공유경제에서의 플랫폼 독점 문제를 저희가 먼저 얘기할 수 있었던 거잖아요? 그런 걸 발신하는 장이 되면 좋겠어요.
지예: 다른 공론장 팀들과 같이 뭔가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를 들어 기본소득 채널을 하나 여는 거죠.
평화: 좋죠. 모든 공론장이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열려도 좋죠.
은정: 이미 인터넷 없이 뭘 퍼트리기 어려운 시대잖아요? ‘키트’처럼 기본 세팅을 제공해도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무슨 프로그램을 쓴다, 카메라는 뭐가 좋다. 그것만 단출하게 챙겨도 어디에서든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그런 플랫폼으로서 허브가 기능한다면 어떨까요? 다수를 향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 참고할 수 있는 정보, ‘이런저런 방법이 있는데, 그걸 위해선 이러저러한 세팅이 필요하다’ 하는 정보가 계속해서 집적되면 좋겠어요.
Q: 여타 공론장을 통괄하는 화두인 것 같아요. 안연정 센터장과의 대화에서도 그 얘기가 나왔어요. 두 사람이 모이더라도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고, 그게 왜 문제인지 토의하며 어떤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뤄질 수 있잖아요. 결국 그런 작은 자리들이 각자 삶의 현장에서 언제든 필요하면 벌어지는 문화로 자리잡으면 좋겠다는 것.
Q: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요? 반대로 어떤 가능성을 확인하셨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와 연계해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은정: 처음부터 동시접속자 수나 조회 수를 기대하지 않았어요. 지예 님 채널로 쏘면 기본은 채우고 들어갈 수 있는데, 신지예를 내세우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면 결과가 어떨까 실험해보고 싶어서요. ‘격주로 방송하니까 구독자가 몇 명씩 늘어나더라’ 하는 데이터를 얻길 기대했죠. 그런데 지예 님이 KBS를 타고 나니까 구독자 수가 갑자기 확 느는 거예요. 아 욕심이었구나, 이 생태계는 많이 알려진 사람의 인지도를 잘 이용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구나 싶었어요. 여하간 ‘실험의 장’이라는 건 그 안에서 최대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데이터를 뽑는 게 목적이잖아요? 그런 차원에서 보면 충분히 목표를 달성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글쎄요. 저는 시간을 쪼개면서까지 일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거든요. 어떻게 하면 이 프로젝트를 함께 만드는 사람들도 건강하게 일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돼요. 2018년을 돌아보면 안 그랬던 것 같아요. 2017년에도 마찬가지였고. 물론 어쩔 수 없을 때가 있지만, 그렇게 내달리는 식으로 일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내부적으로 만들면서 동료들을 찾고 싶어요. 그런 노력과 다루려는 내용이 잘 어우러지면 좋겠어요.
지예: 저는 시청률이 아쉬웠어요.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안 나온 게 아쉽고. 이슈가 터질 때마다 사람들이 유입되게 하는 뭔가가 있었어야 하는데 두고두고 한이 남네요. 제목에 뭘 붙였어야 했어. “신지예”라든지. 뭐가 있을까? “혐오”!
은정: 아까 얘기했던 거랑 너무 다른데요?(웃음)
지예: 앞으로의 목표라면, 권김현영 선생님이 퀴어퍼레이드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거기 적극 공감해요. 페미니즘 이슈도 그렇고 청년 이슈도 그렇고 자기 고통을 중심에 두고, 그 고통을 발화하는 형식의 운동이 아니라 나와 다른 이들과 연대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 해방의 장을 만드는 것, 손 잡게 만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축제 분위기가 한번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추운 겨울이 아니라면, 공론장 한번 열어본 사람들이 회포를 푸는 장도 좋겠네요.
평화: 공론장 축제?
지예: 거수기 축제가 될 것 같은데?(웃음) 다 모여서 “추운데 우리 안으로 들어갈까요? 말까요?” 이러면서.
은정: 저는 방송 사고가 많이 난 게 너무 아쉬워요. 사운드 문제가 많았는데, 대여한 장비의 한계가 있더라고요. 핀마이크는 소모품이라 마치 러시안 룰렛 같았어요. 마지막 방송 때는 거의 새것을 빌렸더니 문제가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아직까지는 장비에 의존해야 하는 면이 있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과 사고 방식을 이제부터 가지면 좋겠어요. 그러면 많은 문제가 풀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Q: 저희 동네가 도봉구 방학동인데 얼마 전에 현수막 하나가 걸린 걸 봤어요. 자유한국당의 어느 의원이 “탈원전 = 전기세 인상”이라고 적어놨더라고요. 이미 언론이 과장된 예측이라 검증했는데도 돈과 직결된 생존의 문제를 자기 의제로 확 가져가는, 저런 전략을 쓰는구나 싶었어요. 그러고 나서 우연히 가수 이상은 씨의 오래 전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본인은 23세기의 한국을 사는 것처럼 산다더라고요. 현재 문제에 치열하게 매달리기보다 그것들이 이미 해결된 세상에 산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자기 암시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저는 이 두 말이 굉장히 상반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탈원전’이라는 악의적인 주장과 ‘이상은’적인 태도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저한테 떠오른 질문인데 괜히 말해봤고요.(웃음) 안부 인사 차원에서 마무리를 하고 싶네요. 다른 사람의 삶에 호기심을 갖고, 그 삶이 어떤 난처한 국면을 마주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화요일의 온도차」를 열렬히 기다렸을 것 같아요. 그런 시청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은정: 정말 간절하게 30년 뒤에는 아무도 이걸 안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저희 엄마는 콧방귀를 뀌어요. “야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언제나 모든 사람들이 그래왔겠지만 정말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해결하고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그렇다고 해서 당장 1인 방송 시작하라는 건 아니고요. 그냥 콘텐츠를 계속 보면서 다시 한번 그것들이 내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지예: 저도 ‘연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얼마 전에 바다거북이 코에 빨대가 낀 영상을 봤어요. 거북이가 아파서 울어요. 그런데 그 빨대가 내가 버린 것일 수 있잖아요. 오늘도 미세 플라스틱이 몸에 쌓이는 문제에 대한 뉴스가 나오더라고요. 바다에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파도에 쓸려서 왔다 갔다 하다가 작아지고 작아져서 미세 플라스틱이 되는 거래요. 우리가 매번 버리는 플라스틱이 결국 나에게 돌아오고, 해양 동물에게 계속해서 박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거죠. “탈원전 = 전기세 인상”은 ‘탈원전’을 ‘내 돈’과 연결시킨 메시지인데, 내가 아니라 다른 생명들과도 연결 짓는다면 그렇게만 해석할 순 없겠죠. 다른 방식으로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과 사고 방식을 이제부터 가지면 좋겠어요. 그러면 많은 문제가 풀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은정: 그러기 위해선 여유와 시간이 너무 필요해요. “바빠 죽겠는데” “내 코가 석자인데” 하는 말엔 어떻게도 반박할 수 없어요.
지예: 제가 진짜 깜짝 놀란 일이 있어요. 2017년에 원자력 발전소 신고리 5·6호기 관련 시민 공론화위원회가 열렸어요. 첫 번째로 진행하는 국가 공론화 사업이었는데, 사업 설계부터 끝날 때까지 100일 정도 걸렸대요. 대통령이 선언하고 발표하고 사업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계획하는 시점부터 공론화가 끝나는 과정까지 100일이 걸린 거예요. 그냥 막 움직인 거죠.
은정: 너무 짧죠. 말이 안 되죠.
지예: 이들이 어떻게 교육을 받았느냐. 온라인 강의가 6번 정도 있는데, 이런 거예요. ‘원전이 없어지면 전기 요금이 올라갈 텐데, 전기 요금이 올라가면 우리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성은 얼마나 될까?’ 이미 인간 중심의 친원전 인강을 듣게 만든 거죠. 딱 한 번, 원자력 발전소 근처에 살면서 백혈병에 걸린 당사자분이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자기뿐만 아니라 아내와 어머니까지 백혈병에 걸렸거든요. 그분이 와서 그 얘기를 했는데, 참여한 주민들이 너무 감정적이라고 했다는 거예요. 국책 사업을 결정하는 자리에 어떻게 개인이 와서 자기 감정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고 그 자리에서 비판을 했대요.
시간의 축이 잘못 세워져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30년 후를 내다보고 전환 관리를 하는 것처럼, ‘이 결정은 몇 년에 걸쳐서 할 거야,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이 문제를 충분히 숙지하기 위해서야’ 하는 시간의 축이 견고하게 쌓였다면, 그럼 저는 사람들이 다른 접근을 하고 다른 결정을 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100일 동안 그냥 인강 듣고 토론해서 어떻게 에너지 시스템을 바꾸는 상상을 할 수 있겠어요? 못 하죠. 시간이 없으니까. 굉장히 많은 시간을 들여서 충분히 들여다봐야 문제가 풀릴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N개의 공론장③⑤⑧⑫
「화요일의 온도차」
―디지털 성폭력 ‘찍는 놈, 파는 놈, 보는 놈’
―그럼에도 불구하고 ‘I.정치.U’
―차별금지법 ‘타인의 삶’
―2018 연말 결산 ‘으라차차 화차!’
일시: 2018년 10/23, 11/06, 11/20, 12/04 오후 7시 30분 - 9시 30분
장소: 유튜브 및 서울시 청년허브
주관: 화요일의 온도차
기획·총괄: 이은정
기획·섭외: 신지예
영상 촬영·편집: 김민주, 김호정
디자인: 라용
작가 : 보코, 나인, 윤채영, 박지은
SNS 관리 및 홍보: 안재은
기록 및 컨텐츠 편집: 이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