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N개의 공론장④ <보이지 않는 차별을 보이게 한다면> 들어가기
살다보면 어떤 것이 괜찮고, 그렇지 않은지 나도 모르게 판단하게 됩니다. 그렇게 배워왔던 기준에 나를 끼워놓고 괴로워하기도 하고요. 평생 그 기준이 바뀌지 않는 삶이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까요? 구획을 나누는 구분선이 절대적이고 유일하지 않으며 가끔은 허상이라는 것을 먼저 발견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더 나은 질문을 고민합니다. 모두가 차별이라고 인식하는 것부터 아주 섬세한 차별까지, 가장 보통의 언어로 공론장에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공론장을 기획한 <찬찮아> 팀의 해양님과 온라인으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인간은 왜 존엄한 존재인가? 가 아니라 어떤 사회적 관계와 조건 속에서 인간은 존엄해질 수 있는가?라고.”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Q.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해양: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사는 30대 중반의 청년입니다. ‘해양’이라는 활동명으로 이름을 갈음할게요. 생존과 실패로 청춘을 몽땅 소비한 '이후의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울면서 걷는 길, (심한)욕하면서 걷는 길, 그럼에도 걸을 수 밖에 없는 길을 걸어가며 일상을 보내는 중이에요.
Q. <N개의 공론장>은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참여를 신청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공론장을 개최하는 <찬찮아> 팀에 대해서도 소개 부탁드려요.
해양: 아버지가 경계성 지능장애를 가지고 계셔요. 장애인 보호자로서의 정체성이 제게 추가되면서 사는게 참 벅차고 고되더라고요. 내가 동의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내 삶에는 생존에만 너무 많은 품이 드니까요.
아버지를 외면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도 다 어려웠어요. 아버지의 장애가 본인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그분이 70대가 될 때까지 선천적 장애에 대해 시의적절하게 어떠한 돌봄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만큼이나 갑자기 보호자 신분이 된 저의 혼란과 피곤도 지당한 거였습니다.
저는 그분한테 정서적, 경제적, 신체적인 지원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어요. '아빠'라는 단어가 어색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도 그중 하나거든요. 그럼에도 세상과 주변 사람들은 비장애인인 제 처지에 대해 고려해주지 않죠. 그분의 온갖 문제에 저를 쉽고 빠르게 연결 지었어요.
아버지가 생물학적으로 저를 태어나게 해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이 정도의 돌봄 노동이 요구된다면 당장의 죽음으로 내 삶의 값을 치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까지 들만큼 삶이 고단했지만 이해해 주는 이 하나가 없더라고요. 답답했지만 이런저런 셈을 주고 받기에 그분은 너무 가엽고 당장 오늘의 생활은 너무 급했습니다.
하루하루 위태롭게 버티며 꾸역꾸역 살던 중, 까마중 작가님의 웹툰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를 접하게 되었어요. 웹툰 주인공 ‘이찬란’은 가난과 폭력의 트라우마로 얼룩진 지난 날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고 익히며 청춘을 누려요.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하는 메세지는 분명했어요. ‘주류가 요구하는 반짝임이 내 안에 없어도 괜찮다', '정상성을 벗어난 삶일지언정 산다는 것에는 어떤 대가도 특별히 요구될 수 없다.'
까마중 작가님도 주인공과 유사한 성장기를 지났다고 해요. 작가님은 삶을 돌아보며 "찬란하지 않았던 게 다행이다."라고 고백하거든요. 그런 인생도 목격하면서 제 존재와 삶에 대해 재정립해 보게 되더라고요. 인생 한 번 사는 건데 눈치보지 말고 먹고사니즘 그 이상을 바라봐야겠다 싶더군요. 누구처럼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삶을 좇자. 내가 지나온 고난들을 낭비하지 말자. 이런 다짐을 하게 됐어요.
청년시절 함께해온 동아리 팀원들과 이런 생각을 나누다가 웹툰의 줄임말인 ‘찬찮아’로 팀명을 짓게 됐어요. 그동안 팀에 이름이 없었거든요. 몇 년전 봉사활동 동호회에서 만난 인연으로 돈은 안 되지만 도움은 되는 활동들을 같이 하던 사이었을 뿐이에요. 그런 나날을 보내던 중 우연히 <N개의 공론장>모집 공고를 접했습니다. 아마 제가 몇 달전에 다른 유사기관이 주최하는 공론장에 발제자로 참석한 경험이 있는데 SNS 알고리즘 때문에 제 피드에 모집 공고가 떴나봐요.
지난 공론들을 살펴 보니 소소하지만 시시하지 않은, 저마다의 고민들이 넘쳐 나더군요. ‘쿨하지 못하게 왜 그런 걱정을 하냐’는 책망이 아니라 반짝반짝 예쁘다는 생각으로 바라보게 되는 고심들 있잖아요. 저도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일부가 되고 싶었습니다. 공론장을 기획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느끼고 있지만 다 정립되지 않은 생각들을 마주해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를테면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세상을 살아 내야 하는 개인의 정신승리란 무엇일까’ 이런 주제에 대해서요. 별다른 계기가 없다면 구질구질하다고 저 멀리로 미뤄 놓을 것 같은 얘기들 있잖아요. 그러나 인생에서 너무 중요한 이야기들이죠. 그런 말들을 마음껏 하며 제대로 찌질해 보고 싶은 충동이 들어 팀원들과 의기투합했습니다.
Q. 공론장을 개최해 다른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이유가 있을까요?
해양: 30대 중반이지만 그간 경험한 삶의 파동이 그릇에 비해 컸던 탓인지 제 청춘은 이미 끝난 기분이에요. 그게 억울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편안합니다. 오기로라도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참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 내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해 졌습니다.
성공할 자신이 없어서 애써 정신승리 하는건 아니고요. 진짜로 지향이 달라졌어요. 그 지향에 맞춰 세상을 보는 관점도 달라졌고요. 남들을 바라볼때도 ‘나 아닌 너’가 아니라 ‘나의 우리인 너’로 보게 됐달까요? 그래서 들어보고 싶었어요.
‘나는 장애인 아버지의 비장애인 자녀로서 이런 차별을 겪어 왔고 이런게 분통이 터진다. 그런 소시민적인 분통은 작정하고 화 내기도 마음이 복잡하다. 누군가한테는 나도 그저 꼴보기 싫게 무식한 1인 일 수도 있는데, 내 시야 좀 넓혀 다오.’
이런 마음이었죠. 넓고 높고 깊게 사람들을 사회를 볼줄 알아야 제가 지향하는 참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김지혜 교수님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나 김원영 변호사님의 <실격 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등을 읽으며 누군가를 통해 내 마음이 언어화되는 경험을 했거든요. 이와 비슷한 경험을 현장에서 보다 일상적인 언어로 누려보고 싶은 마음도 한 몫했습니다.
Q. 23일에 진행될 공론장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순서와 발제자 등을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해양: 차별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실질적인 위치에서 얘기해 볼 예정입니다. 연구활동가 김우희님이 교차성과 연대 차원에서 다양성과 정의를 추구하는 방법을 모색해보는 발제를 합니다. 또 차별에 맞서는 제도적, 인류학적 자세를 대학생 정수안님께서 발제해 주실 예정입니다. 그 발제들을 바탕으로 모든 패널이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계획이고요.
Q. 주로 어떤 분들이 이 공론장에 찾아왔으면 하시나요?
해양: 참여 신청은 지난 달 성황리에 마감됐는데요. 초대한 분들 모두가 오셨으면 합니다. 대개 차별에 대해 비전문가인 전문가들이세요. 말장난같지만 진짜랍니다.
Q. 이 공론장에서 오갔으면 하는 이야기, 기대하거나 목표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해양 : 비전문가들이 패널인 공론장인만큼, 체면치레를 위한 근사한 언어가 아닌 진짜 내 언어, 공론장 밖에서 살아왔고 살아갈 나의 이야기에 대해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행히 1회차때 2회차보다 더 예민한 주제들을 원활하게 주고 받았던 멤버들이 거의 동일하게 오세요. 공론장이 끝나도 각자가 위치한 삶의 자리에서 공론의 여운을 계속 이어가게 됐으면 해요.
Q. 마지막으로 하고싶으신 말이 있으시면 자유롭게 부탁드립니다:)
해양 : 저희 팀 인스타그램에 오시면 공론장의 연장선에서 다양한 컨텐츠를 접하실 수 있습니다. 광고 하나 없이 깨끗한 채널인만큼 편하게 놀러 오세요.
(사전 인터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