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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허브 Oct 15. 2020

두렵지 않은 미래를 열기 위한 첫걸음

2020 N개의 공론장 ⑤ 우리는 두렵지 않은 미래를 만든다 사전 인터뷰

인터뷰 일자: 2020년 9월 21일 오후6시

인터뷰이: 미닝오브

인터뷰어: 김미래



어린 시절 꽤 오랜 시간을, 동생과 술래잡기 아닌 술래잡기 하는 데 보냈습니다. 동시간대에 진행되는 일반적인 술래잡기가 아니었고, (과거의 언젠가) 먹을 것을 숨겨놓은 사람과 (미래의 언젠가) 먹을 것을 찾아내야 하는 사람의 느긋한 동시에 꽤 긴박했던 줄다리기였다고 기억합니다. 숨기는 기술의 발전속도와 찾아내는 기술의 발전속도가 막상막하였기 때문에, 성패를 가늠하기도 결과를 판정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너무 늦게 찾아내면 이미 먹을 수 없는 상태의 (한때 먹거리였던) 물건이 찾아지는 식이었죠.


최근 몇십 년간, 특히 몇 년간은 이런 숨바꼭질을 생활에서 치르고 있는 분들이 대다수일 겁니다.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과 기술에 적응하는 사람의 시간차 줄다리기, 기술의 볕을 쬐는 양지바른 자리와 기술의 혜택 바깥에 위치한 응달의 격차, 기술 자체의 예리한 칼날이 지닌 양면성… 기술의 발달과 함께 여성이 겪는 폭력의 양상 역시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N번방, 웰컴투비디오, 딥페이크, VR포르노와 같은 단어는 이제 낯설지 않은 폭력의 예시가 되었습니다. 미디어의 발달에 따른 새로운 여성 폭력의 양상을 파악하는 것이, 이에 대응할 대안을 타진해보는 첫걸음이 될 것을 의심할 수는 없겠지요. “우리는 두렵지 않은 미래를 만든다”라는 시의적절한 제목을 입고 찾아온 미닝오브의 공론장을 맞아주세요.  



Q. ’N개의 공론장’에 참여할, 혹은 자리하기 힘든 분들을 위해서 ‘미닝오브’를 소개해주신다면요?  


미닝오브는 기록 콘텐츠 전문 기업으로 세 명의 여성 필름메이커/다큐멘터리스트들이 모여 설립한 회사입

니다. 세 여성 창작자는 미닝오브를 설립하기 이전부터 미디어 속 여성 주체의 재현에 대해 연구하고 비평해왔으며, 씨네 페미니즘 매거진 <SECOND>를 기획/편집해온 경험이 있습니다. 기록 콘텐츠 전문 기업의 설립 역시 역사 밖으로 밀려난 보통의 존재,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을 한 사람으로서 존중하고 조명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비즈니스 차원으로 풀어보고 싶다는 바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엄밀한 의미의 기록을 아카이브하는 팀이라기보다는, 어떤 사건을 새롭게 조명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록한다는 방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희가 만드는 콘텐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며, 개인의 삶을 출판뿐만이 아닌 영상, 오디오 등 새로운 형태의 자서전으로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사람만이 자서전/회고록을 내는 것이 아니었으면 하기 때문에 단가 실험, 경량화 실험을 더해나가고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역시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으면 해서, 관련 단체와 협업하여 출판과 영상, 오디오, 기사, 전시 등의 다각화된 형태로 만들고 있죠. 2018년 10월 법인사업자를 내고, 이제 만1년을 맞았습니다.  



Q. 미닝오브의 주된 활동에 있어서 이번 N개의 공론장은 어떤 의미를 지닌 행사일까요?


분노와 무력감에서 나온 기획임을 고백해야겠습니다. N번방 사건에서 페미니스트와 수많은 여성분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분노했으리라 짐작합니다. 딥페이크기술은 일반 여성들조차 SNS에 얼굴 사진 올리기를 꺼리게 만들었습니다. VR기술은 포르노 산업과 결탁하며 한층 실감 있는 성착취물을 약속하며, 실감나는 콘텐츠에 대한 욕망은 성인용 리얼돌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기술에 대한 윤리적 논의가 채 이루어지기도 전에, 기술이 거대 성산업과 결탁하며 각종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죠. 우리는 영상 작업자로서 여성의 매체 속 이미지의 재현과 소비에 관해 탐구해왔습니다. 누구나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는 시대,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시대에서, 여전히 여성이 이미지로 소비되는 방식은 참담한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피해자를 성착취한다는 명백한 불법행위, N번방을 둘러싼 이야기들 중에서도 포르노와 같은 장르로, 하나의 콘텐츠로 인식하는 모습은 무척 당혹스럽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이 저희 작업으로서는 간접적인 게 사실입니다. 콘텐츠를 알리거나, 다른 방식으로 문화를 소비할 방식을 제안하는 식이죠. 그렇기에, 다른 분야, 다른 영역에서는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해결을 도출할 수 있는지 절실히 궁금했습니다. 프리랜서, 직장인 들이 조직 내에서 바깥에서 디지털성범죄 관련 이슈에 대해 기여하고 노력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을 거란 희망도 있습니다.  



Q. 이번 공론장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요? 특히 구체화될 수 있는 항목은 무엇일까요?  


IT, 교육, 미디어 리터러시, 뉴스 보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 방지와 관련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듣고,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따로 또 같이 어떤 일들을 해나갈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내는 자리가 될 예정입니다. 또한 아이디어가 실현됐을 때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상상해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공론장을 나설 때 무력함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무언가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가장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대대적으로 모객하기보다는, 이슈 관심자들을 미리 직접 접촉해서 소수의 인원이더라도 유의미한 담론을 끌어내려고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영역에서 일하는 분들께 자문을 요청하고 있어요. 한편 이번에는 영상보다는 문자로 기록하는 데 집중하려 합니다. 가감 없이 발언할 수 있는 안전한 분위기를 만들려면, 익명의 글 형태로 적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노션 등 도구를 사용해서 오픈문서로 아카이브해나갈 수도 있겠죠. 무력감에서 벗어나서, 자신 안의 아이디어와 힘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여성들의 역사와 활동을 아카이브해둔 채널/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Q. 기획하신 대로 준비는 수월히 되고 계신지요?


우선 발제에 관한 자문은 여섯 팀 정도에게서 받았습니다. 위민두아이티(여성개발자모임), 슈퍼아이(미디어리터러시), 초등젠더연구회 아웃박스, 여성주의저널 일다, 추적단 불꽃, 십대여성인권센터가 그들입니다. 이번에 해보고 싶은 것이 다양한 주체들이 디지털성범죄에 대해 고민하는 바를 한자리에 모으는 거예요. 비교적 아직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를 나누고 싶습니다. 개발자 직군, 콘텐츠/미디어 전문가, 초등학교 교사, 다양한 필드의 여성분들을 모셔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디지털성범죄에도 다양한 갈래가 있겠지만, 집중해보고 싶은 것은 청소년 문제입니다. 자기결정권의 영역이 좁은 이들이, 문제해결에 필요한 정보를 모을 수 있다면 성인이 되어서 비슷한 상황이 닥칠 위험은 낮아질 거라는 기대를 해볼 수도 있죠. 위민두아이티도 십대여성인권센터 내 설치된 조직이고, 미디어리터러시 팀도 청소년 대상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공론장 주제를 청소년 쪽으로 뾰족하게 좁힐 수 있을 것 같아요. 범죄와 사고는 피해자 당사자의 문제가 아니고, 이런 단체와 서비스, 프로그램을 통해 피해자가 우선적으로 지원받을 권리가 있으며, 확실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한편 범죄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미디어를 어떤 식으로 생산하고 소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문제는 청소년 교육 쪽에서 주된 관심사로 지니고 계신 듯해서,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Q. N개의 공론장 이후, 미닝오브의 청사진이 궁금합니다.


최초의 기획안에 써둔 것은 이번 공론장은 허무맹랑한 아이디어여도 좋다는 문장이었습니다. 자기검열을 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공론장, 아이디어를 말해보고 실천성을 가늠해보고 다른 분들의 이야기와 조언을 들을 수도 있는 공간 말입니다. 그래야만 공론장 본식 때 모인 분들과 충분한 라포가 형성하고 나서, 추후 다큐멘터리 형식이나 다른 형태로 확장, 개발하는 것이 가능해지겠죠.


각자의 위치에서 바쁜 분들을 공통된 주제로 모이게 하여 논의의 교류를 시작하고, 이때 나온 의견들, 준비되고 발표된 자료들을 아카이브해둠으로써, 이것들이 필요할 때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앞으로 서로 의견을 구할 수 있는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도록 준비하려 합니다.


(사전 인터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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