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행복을 찾아 떠난 길 위에서 써 내려간,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
나만의 행복을 찾아 떠난 길 위에서 써 내려간,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
봉사 지원군이 많았던 날, 그래 이 때다 싶어 체육 활동을 진행했다. 교실에서 음악, 미술 활동을 할 때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땡볕에서도 신나게 뛰어놀며 결코 지치지 않던 아이들. 한여름, 사하라의 뙤약볕을 피할 곳이 없어 바깥에서 잠깐, 비좁은 실내에서 잠깐,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갔다 움직이다가, 신나서 방방 뛰는 아이들의 그 모습이 좋아서 나는 다시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
내리쬐는 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를 사하라의 아이들에게 선물 해주고 싶다는 꿈을.
바로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모로코에서 나름 괜찮다는 놀이기구 업체로부터 견적서를 받아봤다. 절망하기에는 이르지만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작고 사소한 학용품 하나도 구하기 힘든 곳인지라 놀이기구는 당연히 더 비싸고 구하기 힘들어서 아주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사 와야 했다. 하지만 놀이기구 가격과 설치비, 운송비를 합치면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미끄럼틀과 그네가 붙어있는 기구 하나를 사서 설치하는 데만도 700만 원 정도가 필요했다. 그런데 나는 이미 받은 후원금을 다 사용하고 가기에도 벅차다 생각하여 후원금 받는 것을 멈춘 상태였다. 남은 후원금은 100만 원 남짓.
놀이터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려서, 아이들의 행복해하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서 포기할 수는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무슨 기적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기적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의 영화를 보던 중이었다.
영화를 보다가 이유를 알 수 없게 그냥 무의식적으로 평소에 켜보지도 않던 페이스북 메신저 어플을 켰다. 스팸 메시지로 가득한 요즈음의 페이스북 메시지에 답하지 않는 게, 필요한 때가 아니면 어플을 켜보지도 않는 게 원래의 나였다. 그런데 벌써 온 지 며칠이나 지난 이 메시지에는 뭔가 답장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끝날 줄 알았던 대화창에 ‘입력 중..’이 뜬다. 어? 이상하다? 한국은 지금 잘 시간인데? 외국 사람이 한국인인 척한 건가?
‘유란님의 활동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활동의 취지에도 많은 공감이 갔고요. 제가 수익이 나는 작은 동호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매년 이 수익금을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기부해 왔습니다. 이번에는 유란님의 활동에 기부를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정말요? 사실은 놀이터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새로운 꿈이 생겨서 어떻게 후원금을 모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정말인가요?’
‘놀이터라니. 정말 멋진 생각이네요. 예산에 맞추지 말고 컨셉에 맞춰 놀이터를 조성하세요. 후
원금을 모아보겠습니다.’
견적서와 예산안을 번갈아보며 어디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와중에 놀이터의 ‘놀’ 자라도 써보려면 최소한 이만큼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던 딱 그만큼의 후원을 해주시겠다는 후원자님의 연락을 받고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핫산네 앞마당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예산에 맞추지 말고 컨셉에 맞춰 놀이터를 조성하라는 든든한 지원군의 등장에 힘입어 나는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우리가 꿈꾸던 모습에 가까운 놀이터를 만들어냈다.
사하라 사막에 놀이터가 생길 수 있었던 건, 모두 유스피아로 이어지는 모든 감사한 인연들 덕분에.
놀이터라는 새로운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셨던 분은 이후로도 계속 유스피아를 응원해 주셨고, 그렇게 6년이 지난, 2025년 5월 17일 사단법인 유스피아의 설립이사님이 되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