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언제나 나를 자극시키는 원동력이며, 언제나 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아버지'라는 존재.
내 삶의 팔 할은 '아버지'로부터의 영향이었다.
어릴 적에는 존경하는 인물로 아버지를 말한다는 건 뭔가 위인전 한 권 읽지 않은 아이라고 말하는 느낌이어서 괜히 아이들이 잘 모르는 위인을 존경한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존경하는 인물로 아버지를 말한다는 건,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건 대단히 감사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머리가 크면서 부모님을 세대차이 나는 고리타분한, 닮고 싶지 않은 어른이 아닌 한평생 닮아가고픈, 언제나 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게 하는 자극제가 되는 존재로 여길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굉장히 감사하고 행복한 사실이다.
아버지는 하시는 모든 일에 진심을 다하시고, 정성을 쏟으신다. 오빠와 나를 위해서도 정말 진심을 다하시고, 아버지가 하실 수 있는 모든 정성을 쏟으셨다. 아버지는 심신이 가장 깨끗하게 정화된 상태에서 정성으로 자식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를 갖기 120일 전부터 열심히 기도를 하셨다고 한다. 원래는 100일 기도인데, 혹시나 분심의 상태로 기도한 날이 있을 새라 20일을 더 기도하신 것이다. 그리고는 엄마 뱃속에 내가 생기고부터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280여 일 동안 매일을 한결 같이 정성으로 기도를 드리셨다고 한다.
정해져 있는 100일에서 혹시나 있었을 분심을 생각해 20일을 더 기도한다는 정성의 깊이를 오늘에서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정성으로 태어나고 20년이나 지나서야 말이다. 친구와 템플스테이를 해보겠다며 집을 떠나온 나는 매일 아침 108배를 드려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는, 오늘 아침 아버지를 본받아 나도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20배를 더하려고 했다. 그런데 정말 겨우 10배를 더 했는데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지금까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극한으로 치닫는 느낌이었다. 원래 계획했던 것에서 단 한 발자국 더 나가기가 이렇게나 힘들다니.. 아버지의 삶의 깊이가 이렇게나 깊었구나 싶다. 정말 나는 아버지처럼만 살면 성공하는 거겠구나 싶다. 내가 이렇게 존경할 수 있는 아버지한테서 태어나 정말 감사한 삶이다.
2013년 5월 29일
오랜만에 아빠에게 다녀왔다. 벌써 5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 가지만 여전히 실감이 나질 않는다. 늘 나를 ‘꿈과 희망’이라 불러주시던 아빠가 더 이상 곁에 없다는 사실이.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자꾸만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여전히 맘이 아프다.
언제나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인생의 이정표였던 아빠.
이제는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진짜 소중한 게 뭔지 아니까 공부하는 것쯤이야, 돈 버는 것쯤이야, 연애쯤이야 다 뒤로 미루고 아빠 옆에 딱 붙어있을 수 있는데. 이제는 아빠가 좋아하시던 이미자 디너쇼도 맘껏 보내 드릴 능력도 되는데. 평생 호강시켜 드리겠다던 약속을 조금씩 지킬 수 있을 때가 됐다고 생각하자마자 더 이상 그럴 수가 없다. 살면서 늘 후회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는데 부모님에 대한 효도에 있어서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란 걸 지나고 나서야 이렇게 절절하게 느낀다.
2025년 5월
여전히 아버지와 보냈던 시간은 내 안에 살아 계속해서 나를 움직인다. 함께 길을 걷다, 산을 오르다, 밥을 먹다, 책을 보다 나눴던 이야기들이 내 안 어딘가에 씨앗으로 가득 뿌려져 있다가, 시간의 비를 맞고 경험이라는 비를 맞고 때때로 슬픔이라는 눈물로 가득 채워져서 조금씩 싹을 틔워내려 하고 있다.
여전히 생각한다. 지금 내가 이렇게 매일이 눈물 바람인 건 싹을 틔워내기 위해 더 많은 축적이 필요하기 때문일 거라고.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은 아마도 나의 히어로 아버지와 함께 꿈꿔온 시간들이 쌓여서겠지. 하고 말이다.
학창 시절 내 자랑거리였던 티비 대신 한쪽 벽면을 책으로 가득 채운 책장이 있는 거실. 그리고 언제나 그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계셨던 아버지의 모습. 책을 읽다 좋은 구절을 발견할 때면 언제나 나를 불러 들려주시며 내 생각을 물어보셨던 아버지. 다 커서도 아버지의 무릎 위에 앉아 좋은 구절을 읽고 생각을 나누던 순간들을 참 좋아했다.
어린 시절 꿈이었지만 저만치 미뤄두었다가, 다시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순간도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한평생 추구하고 싶은 가치가 무엇이냐는 내용의 책 구절을 읽어주시며 제 생각을 물으시는 아버지에게, 나는 '사랑'이라는 가치를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대답했고, 그렇게 선생님이 되었다. 꿈을 찾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해왔는데, 결과적으로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던 때에 던져진 아버지의 질문은 직업이 아닌 가치를 생각하게 했고, '사랑'이라는 가치는 교육을 통해 가장 잘 나눌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가족들이 함께 밥을 먹는 식탁에서도, 생각을 나누는 거실에서도 늘 함께 꿨던 꿈.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담은 학교를 만들자는 꿈. 우리가 만들 학교에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어떻게 교육을 펼쳐 나갈지를 꿈꾸며 이야기하는 시간들을 씨앗 삼아 모로코에 도서관을 만들고 있는 오늘의 나.
무엇이든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전달하던 아버지를 닮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고 멀지만, 함께 했던 수많은 시간들을 자양분 삼아 땅을 잘 다지고, 물도 주고 하다 보면 분명 예쁘게 꽃 피울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여전히 어려움도 많고 맨땅에 헤딩하듯 보내는 시간도 많지만 교육을 통해 '사랑'이라는 가치를 나누는, 어제보다 더 행복한 오늘을, 오늘보다 더 행복한 내일을 만드는 교육 프로젝트를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도서관을 통해 아이들이 자유롭게 꿈을 꾸고, 나다운 모습으로 성장하며, 공동체에 행복을 나누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다 보면, 분명 언젠가 꿈꿔왔던 학교도 세울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나의 히어로를 기억하며 한 발 한 발 걸어 나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