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일자리가 불안하다.
공무원을 희망하는 청년이 많은 나라일수록 미래가 어둡다고 합니다. 반면 젊은 세대인 청년들이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직장에 많이 뛰어들수록 국가 경쟁력도 생기고 그 나라에 새로운 산업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하죠. 포드 자동차의 헨리 포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를 예로 들어볼까요? 그들이 자동차, 인터넷이라는 도전적인 새로운 산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지금의 미국이 자동차 강국, IT 강국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새로운 산업을 연 대표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에선 절대 철강 산업에서 성공할 수 없다던 사고방식을 깬 포스코 박태준 회장이나 경쟁력 있는 세계 자동차 회사를 제치고 당당히 세계적 자동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현대가문의 정주영 회장 있죠.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설립자이면서 최근엔 쏘카, 타다와 같은 모빌리티 플랫폼에 뛰어든 이재웅 대표, 네이버 이해진 대표, 카카오 의장 김범수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단순 배달산업을 넘어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의 대표 기업으로 탈바꿈하려는 우아한 형제(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도 있네요.
한 때 벤처기업 열풍까지 불었던 대한민국의 모습은 요즘 들어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도전적인 일 대신 모두가 안정적인 일만 쫓으려 하죠. 사업으로 성공해보겠다는 청소년들의 담대한 포부는 취직할 나이에 가까워질수록 꼬박꼬박 월급 나오는 공무원만 돼도 좋겠다고 합니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겠다는 청년들이 모두 공무원으로만 쏠리는 건 아닙니다. 우리나라 과학계는 인재난을 겪고 있습니다. 공부 잘하는 이공계 학생들이 어떻게든 의대로만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나 기술자가 돼봤자 박봉에 50대가 되면 은퇴해야 하니까요. 반면 의사는 비교적 안정적이고 퇴직도 없으니까, 그래서 의대로 많이들 향하는 겁니다. 의사가 돼도 수술 많은 외과 선생은 꺼립니다. 일은 많고 쉴 시간은 없으니까요. 대신 피부과나 성형외과는 인기가 많습니다. 잘한다는 소문만 퍼지면 어렵지 않으면서 돈 많이 벌 수 있으니까요. 저는 이런 청년들을 몇몇 어른들처럼 ‘자기 편한 대로만 살려는 열정 없는 젊은 놈들’로 표현하고 싶진 않습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싶은 건 청년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도전하고 실패하면 회생이 불가능한 국가, 경쟁이라는 레이스에서 한 번 뒤처지면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사회, 후진 복지제도가 지금의 청년을 만든 거죠. 지금도 우린 IMF 시절을 굉장히 두렵게 생각합니다. 잘 나가던 회사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평생직장일 줄 알았던 회사에서 잘리고 장사가 안 되던 그 시절을 겪은 사람들은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기 싫어합니다. 모두가 떠올리기 싫어하는 그 시절 실업률은 8.7%였습니다. 근데 지금 청년 실업률이 10%대를 웃돕니다. 국가부도의 날이라 불렸던 IMF 때보다 훨씬 더 높은 실업률이죠. 실업률이 이렇게 높은데 누가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일자리를 가지고 싶겠습니까? 창업했다가 안 되면 빚더미에 앉아야 할 판인데 누가 새로운 산업을 열어보겠다고 도전하겠습니까? 요즘 같은 시대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지려는 청년이 제정신이 아니라 도전하겠다는 놈이 제정신이 아닌 겁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열정만 있는 정신 나간 놈인 거죠.
청년의 삶은 자꾸만 어려워져 갑니다. 2019년 평균 대학 등록금은 670만 원이었습니다. 고단했던 12년간의 중등교육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남은 수능을 끝내면 캠퍼스 로망이 펼쳐질 것 같지만 그때서야 마주한 현실의 벽은 아주 비싸다는 걸 느낍니다.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해도 낼 수 없는 등록금은 빚으로 남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 일자리를 구해보려 애쓰지만 일자리는 쉽게 구해지지 않습니다. 취직하는데 평균 1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빚(등록금)이 있으니까 갚아보려 우선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먼저 찾습니다. 월세랑 생활비도 내야 하니까요.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면 그만큼 공부하는 시간을 빼앗깁니다. 요즘이 어디 보통 스펙으로 일자리가 구해지던가요. 그렇다고 아르바이트를 안 하고 공부를 하자니 빚과 생활비가 부담됩니다. 결국 청년의 삶은 알바-> 취직 준비 못함-> 돈 없음 -> 다시 알바로 반복됩니다.
다행히 이 굴레에서 벗어나 취직한 청년 중 절반은 비정규직으로 일합니다. 한국 사회는 IMF 이후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노동자 수가 굉장히 많이 늘어났습니다. 사실 IMF 전엔 우리나라에 비정규직이란 개념이 아예 없었습니다. 평생직장이란 개념만이 있었죠. 그래서 어른들은 입사 1년도 되지 않아 퇴사하는 청년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처음 취직한 곳에서 은퇴까지 했으니까요. 퇴사는 개인의 의견이니 1년 전에 하든 후에 하든 전 배나라 감나라 하고 싶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그건 개인의 결정이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원하지 않는 퇴사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겁니다. 더군다나 2년을 채우지 못한 채로요. IMF 이후 기업은 인건비가 싸고 계약이 자유로운 비정규직을 대거 고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값싸게 일 시키고 언제든 해고가 가능하니 기업 입장에선 비정규직 고용이 이득이었을 겁니다. 반대로 노동자에겐 아주 불안한 고용체계가 됐습니다. 일은 일대로 시키고 임금은 적게 주면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함을 안고 일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정치인들은 이 불안한 고용체계를 안정시키기 위해 한 가지 법안을 만들어 냅니다. 비정규직으로 2년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비정규직 보호법’입니다. 그러나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이 법안은 오히려 수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2년 뒤에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에 23개월 계약이라는 비정규직 보호법 본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계약체계가 생겨났습니다. 기업이 2년이 되기 전에 계약을 종료하고 새로운 비정규직을 뽑는 새로운 비정규직 고용체계가 나타난 겁니다. 그 결과 이제 막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은 이 법의 최대 피해자가 되어 2년에 한 번씩 직장을 옮겨야 하는 불안함 속에 살게 됐고요.
365명을 뽑는 지방공무원 자리에 7천 명이 이상이 지원 해 경쟁률이 20:1이 된 건 결코 청년들이 열정과 패기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불안정한 고용체계가 안정적인 공무원을 찾아갈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뿐입니다. 그럼 고된 우여곡절 끝에 대기업에 입사한 청년은 안정적일까요? 소득과 고용 안정성 부분에 있어서는 중소기업의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에 비하면 굉장히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기업에 종사하는 정규직 회사원의 연봉은 평균 6,487만 원으로 상위 10%(6,950만 원)에 근접합니다. 여전히 근무시간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지만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저녁을 갖는 사람들도 속속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기업 정규직은 또 나름대로의 불안함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의 고용 안정성은 비정규직의 2년보다 길뿐이지 평생 보장받은 게 아닙니다. 법정 정년퇴직 나이는 만 60세지만 사기업에서 이 나이에 퇴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공기업이나 공무원이나 가능하죠. 한 조사에 따르면 평균 퇴직 나이는 2006년 50.4세에서 2018년에 이르러 49.1세로 낮춰졌다고 합니다. 이마저도 보장받으면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2015년 두산인프라코어는 사무직 3,00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는데 여기엔 신입사원과 사원, 대리급들이 포함되어있었습니다. 온라인에선 명예퇴직을 당한 29살 직원의 ‘어이없다.’는 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개중엔 23살 청년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 어떻게, 어떻게 잘해서 50세에 정년퇴직을 한다고 해도 100세 시대에 나머지 50년은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지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년연장에 대한 논의가 사회 이슈로 떠오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전에나 50세가 많은 나이였지 지금은 정말 어디 가도 일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정년퇴직 나이가 60세로 정해진지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65세로 더 연장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른 한 편에선 정년이 연장되면 그만큼 청년들의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아우성이죠.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통계가 얘기해주고 있습니다. 60세 정년 시행 전엔 20대 실업자는 연평균 32만 5,000천 명에서 시행 후 39만 5,000명으로 7만 명이 늘었습니다. 100인 이상 기업 중에서도 신규채용 계획이 없다고 답한 비중이 2013년 9.1%에서 2017년 21%로 대폭 상승했습니다.
지금 당장 일자리가 필요한 청년세대는 정년연장을 반대하지만 정년연장은 청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다만 당장의 문제가 아닐 뿐입니다. 청년도 언젠가는 60세, 65세가 되어 퇴직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가 옵니다.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지금의 문제는 결코 정년연장과 떨어진 문제가 아닙니다. 연장선에 놓여있는 같은 문제죠.
4차 산업혁명으로 접어든 지금 모두의 일자리가 불안합니다. 단순 노동 직업은 말할 것도 없고, 평범한 회사원, 의사나 은행원 같은 고위직 일자리까지 어느 하나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습니다. 또 청년만 불안정한 것은 아닙니다. 정년은퇴를 앞둔 부모세대도 남은 미래가 불안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모두의 일자리가 불안해지는 오늘 우린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은퇴자들은 어떻게 제2의 직장을 갖게 할 것인지, 전체 일자리가 줄어드는 가운데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