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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윤 Oct 15. 2020

4차 산업시대엔 재정의가 필요합니다.

교육, 노동, 복지의 관점을 바꾸자.

 산업혁명이 일어날 때면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다방면에서 변화가 생기곤 했습니다. 다만 우린 2차 산업혁명을 끝으로 산업혁명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변화들을 잊어버린 것뿐입니다. 지난 산업혁명이 불러온 변화를 되돌아보면 사회 전체 시스템이 바뀌는, 국가개조에 버금가는 대개혁들이 있었습니다. 영국은 1차 산업혁명 후 노동자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했습니다. 당시 영국 사회는 귀족 대 하층민, 자본가 대 노동자라는 신분이 뚜렷하게 구분된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노동자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함으로써 그들도 시민이 되었죠. 노동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일반인이 투표권을 가지게 된다는 건 귀족 입장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1차 산업혁명으로 노동자들에게까지 확대된 참정권은 그 이후로도 계속 확대되어 마침내 모두가 1인 1표를 갖는 오늘날을 만들었습니다.

 2차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헨리 포드는 자사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줄이고 임금은 높였습니다. 독일에선 비스마르크가 사회보험을 도입합니다. 역사는 비스마르크가 사회보험을 도입한 이유를 ‘당시 고조되던 사회주의 운동을 저지하기 위함이었다.’라고 기술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비스마르크가 사회보험을 도입한 시기와 2차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시기가 같다는 점을 결코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사회주의 운동을 저지하기 위함이라고 했겠지만 저는 사회보험 도입이 당시 시대정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차 산업혁명 당시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자 노동자들은 러다이트 운동으로 대항했습니다. 그리곤 투표권을 얻음으로써 일단락을 맺었죠. 2차 산업혁명 때 또 한 번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으면서 실업자가 발생하자 이번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던 겁니다. 사회도 실업자들을 마냥 내버려 둘 수 없었고, 노동자들도 투표권 이상의 어떤 제도가 필요했다고 생각했던 거죠. 저는 사회보험 제도는 당시 이러한 상황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고조됐던 사회주의 운동 역시 사회보험 제도를 만드는데 한몫했겠죠. 이처럼 참정권과 사회보험 제도의 확립은 지난 1·2차 산업혁명의 결과물입니다. 산업혁명을 아주 간단명료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기계(신기술)가 산업 전반에 걸쳐 생산량을 늘리고, 기계(신기술)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한다. 따라서 인간은 일자리를 잃거나, 노동시간이 줄어들게 되고 이에 따라 사회는 새로운 시스템을 정비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린 한 가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가오는 아니, 이미 와버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어떤 새로운 시스템들을 만들어야 할까?” 저는 크게 세 부분에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교육과 노동 그리고 복지입니다. 기존의 교육·노동·복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1993년에 태어났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에 IMF가 터졌습니다. 국가가 부도나고, 회사는 줄줄이 도산하고, 직장인들은 하나, 둘 해고되었으며 남은 사람들은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두려움을 안은 채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난생처음 IMF 사태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부모님들은 제게 공부에 전념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그것만이 밥 벌어먹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도 그럴 것이 부모님 세대엔 상고를 나와도 은행 취직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학을 나와도 은행 취직이 어렵습니다. 앞으론 은행 취직이 아예 불가능해질 겁니다. 은행원이 사라지고 있으니까요.

 제가 유치원 다닐 때 유치원 열풍이 불었습니다. 초등학생 땐 학원가에 외고반, 과고반이 유행이었죠.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한국어로도 어려운 영어단어들을 외우고 고등학교 수학을 배웠습니다. 외고반, 과고반은 중학생이 되자 SKY반, 서성한반, 중경외시반으로 진화해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대학입시가 시작되어있었던 거죠. 전 대학이 우리 교육제도의 마지막 종착점이라는 걸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만약 대학원이 종착점이었다면 고등학교 때부턴 대학교육에 버금가는 사교육을 했을지도 모르니까요. 고등학생이 되자 공부에 관심이 없던 친구들조차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간간이 들려오는 청년실업에 관한 뉴스나 명문대에 가야만 사람 구실 하며 살 수 있다는 얘기를 여러 채널 통해 듣고 나니 동기부여가 바짝 된 거죠. 93년생인 저와 제 또래 친구들의 학창 시절은 온통 공부였습니다. 지금도 이 같은 상황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제 막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는 2000년생의 학창 시절도, 현재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2003년생들의 학창 시절도 제 학창 시절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제도는 바뀌어야 합니다. 주입식 위주의 교육제도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수능 한 번으로 인생이 역전되는 시대는 저물고 있습니다. 공부 잘해서 명문대 진학하고, 명문대 진학해서 대기업에 취직하는 그런 시대는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대기업보다 연봉이 높다는 은행원이 사라지고 있고, 대기업 사무직 못지않게 월급 받는 자동차 제조업 근로자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한때 우리가 선망했던 직업들이 사라지고 있는데 그 직업을 위한 교육이 어떤 쓸모가 있을까요? 암기를 중심으로 한 주입식 교육으로는 4차 산업시대를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산업이 바뀌었기 때문에 교육제도도 바뀌는 게 당연합니다. 특목고, 자사고 폐지를 논할 게 아니라 적어도 20~30년을 내다보는 교육제도 논의가 필요합니다.


 노동시장을 바라보는 관점도 재정의가 필요합니다. 현재의 노동시장에서 노동자란 어딘가에 고용되어 있는 사람만을 노동자라고 부릅니다. ‘회사’에 고용되어 일하는 비·정규직 직장인들이 대표적인 노동자입니다. 특정 회사에 고용되지 않은 예를 들어 개인 변호사라든지, 택시기사라든지, 개인 장사를 하는 자영업자들은 법률상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모두 개인사업자(또는 자영업자)로 분류되죠. 그래서 일하던 중 사고가 나 다치게 되면 산재보험에 적용이 안 됩니다. 또 중간에 일을 잠시 쉬거나 그만둬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도 없고, 표준 근로시간을 넘어 장시간 오래 일을 해도 근로기준법상 이들은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노동자와 개인사업자로 나뉜 노동시장은 나름 합리적인 시장이었습니다.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는 회사의 규칙을 일부 따라야 합니다. 처음 계약한 월급 이상의 돈을 받을 수 없다던가, 이중 고용이 안 된다거나 혹은 출퇴근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내사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대신 고용 안정성을 보장받습니다. 매달 월급이 보장되며, 산재보험이나 고용보험 혜택을 받죠. 반면 개인사업자들은 출퇴근 시간이나 일하는 날을 자기 마음대로 조정할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개인사업인 만큼 능력에 따라 버는 족족 다 월급으로 가져갈 수도 있죠. 대신 고용이 불안정합니다. 매달 월급이 상이할 수 있으며, 아파서 일을 쉬거나, 사업이 실패해 폐업하면 구제받을 방법이 없습니다. 개인은 ‘고용의 안정성을 택하고 회사 내규를 따르면서 덜 벌 것인가?’ 아니면 ‘고용은 불안하지만 자유롭게 벌고 싶은 만큼 벌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었고, 선택에 따른 결과들은 제법 공평한 룰 같아 보였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등장하기 전까지요.

 4차 산업혁명은 이런 룰을 깨트리려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은 고용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나 개인사업자인 기존의 노동시장에 없었던 새로운 노동자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택배물 건당 수익이 측정되는 택배 기사라든가, 배달하는 라이더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건당 수수료를 받는 개인사업자들입니다. 특히 일부 라이더들은 본인이 원할 때만 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택배, 배달회사에 소속되어 회사로부터 교육과 지시를 받습니다.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있는 전에는 없던 새로운 유형의 노동자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법도 혼란스러워해 합니다. '타다' 운전자가 일하던 중 다치면 이를 노동자로 봐야 하는지 사업자로 봐야 하는지 법도 헷갈려해 합니다. 4차 산업시대엔 이런 노동자들이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노동자를 규정하고 있던 법도 새롭게 단장을 해야 합니다. 산업이 변화하면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들이 등장하는데 이를 과거의 법에 맡길 순 없겠죠.


 마지막으로 복지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복지는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를 놓고 대립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표적인 갈등이 바로 2011년에 있었던 서울시 무상급식 정책 논란입니다. 당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비롯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은 초·중학교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반면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은 모든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을 하겠다면서 갈등이 빚어졌죠. 이 논쟁은 결국 주민투표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서울시장직을 걸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투표에서 패배해 시장직을 사퇴했고 이듬해 열린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면서 무상급식이 시행됐습니다. 그 뒤로도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를 놓고 정치권이 다툼한 사례는 더 있습니다. 아동수당 지급 역시 저소득층을 우선으로 줄 것이냐 모든 아이들에게 줄 것이냐를 놓고 갈등을 벌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죠.

 4차 산업시대의 복지는 ‘선별복지 vs 보편복지’라는 기존 복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보다는 빠른 속도로 발전해 나가는 기술에 인간이 뒤처지지 않도록 ‘업데이트’해주는 복지가 필요합니다. 예를 한 번 들어볼까요? 4차 산업시대엔 돈이 있어도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생깁니다. 바로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세대들입니다. 요즘 마트나 식당에 가면 무인 계산대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무인 계산대 옆에 안내원이 있지만 안내원도 조만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버스터미널에 가면 예전에 티켓 팔던 창구가 모두 셔터를 내렸습니다. 대신 무인 계산대만 서 있죠. 영화관엘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 곳곳이 무인화되면서 스마트폰이 익숙하지 않은 노인세대들은 불편을 토로합니다. 주머니에 돈이 있는데도 음식을, 버스표를, 영화 티켓을 구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현금이 있어도 기기에 익숙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시대로 가고 있는 겁니다. 가까운 미래엔 우리 일상에 더 많은 스마트 기기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냉장고가 떨어진 식자재를 주문하고, 집에 도착할 때쯤 냉·난방이 켜지고, 옷장이 옷을 대신 구매하는 시대가 머지않았다고 하죠. 하지만 이런 시대에 노인은 배제되어 있습니다. 즉, 스마트 기기를 사용할 줄 모르는 어르신들은 4차 산업시대를 살아갈 수 없게 된다는 겁니다. 이는 결코 노인세대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닙니다. 기술은 더 발전할 테고 청년세대인 우린 늙어갈 테니, 대응 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언젠간 사회로부터 도태될지도 모릅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4차 산업혁명 영향권 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제도는 미래에 존재하지 않을 직업을 위한 공부였음이 하나 둘 증명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노동시장에 존재하지 않던 노동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택시기사들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길거리로 나오고 있습니다. 노인세대는 돈이 있어도 일상생활이 자꾸만 어려워져 갑니다. 우리는 지금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음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변화하는 세상에 따라 맞출 것인지 아니면 과거를 붙잡을 것인지 하는 기로에도 놓여있죠.     


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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