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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윤 Oct 19. 2020

아직 1차·2차 산업시대에
머물러있는 교육제도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미래 사회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견은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왔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예측은 <제3의 물결> 저자 앨빈 토플러가 2006년 당시 내한했을 때 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교육제도를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제가 2006년에 중학교 2학년이었으니 제가 바로 그 한국 학생이었네요.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말은 청년이 된 지금 제가 마주한 현실과 딱 알맞은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초·중·고등학교에서 12년을 공부하고 대학에서 4년을 더 공부한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대학원에 가거나 졸업을 연기합니다. 일자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청년들의 눈이 높아서 자발적 실업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수많은 일자리들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은행원, 의사, 변호사, 선생님, 운전기사, 각종 아르바이트 자리가 AI와 로봇들에 의해 빠르게 대체되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성실하고 착실하게 공부하면 분명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런 얘기들을 동기부여 삼아 들으면서 일부 친구들은 엉덩이에 난 종기까지 참으면서 공부했죠. 그러나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말과 달리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좋은 일자리가 모두 사라질 위기에 놓인 오늘날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고등학교 3학년인 2001년생 제 사촌동생도 제가 받은 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 교육부를 비롯하여 교육계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했으면서 왜 우리는 이 모양 이 꼴이 됐는지를요. 이런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었냐고요. 혹시 알면서도 거짓말은 한 건 아닌 건지요. 혹여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는지,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건 아닌지 생각해봤지만 아무래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기엔 제 주변에 좋은 대학, 대학원을 나오고도 놀고 있는 친구들이 너무 많거든요. 묻고 싶은 게 또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교육제도를 안 바꿀 거냐고도 물어보고 싶습니다. 답은 뻔할 것 같긴 하지만요. 아마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죠. 교육부는 당장 눈앞에 놓인 수능에서 정시와 수시 비중 중 어떤 것의 비중을 높일지에 대한 생각밖엔 없거든요. 정시와 수시 중 무엇이 더 좋겠느냐의 문제는 우리 교육제도가 나아갈 방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거 높여서 뭐하게요? 정시 비중이 높아지면 일자리가 구해집니까? 수시 비중을 높이면 취직이 됩니까? 안 됩니다.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불필요한 공부만 하는 학생들만 늘 뿐입니다. 문제는 수능입니다. 수능 자체가 잘못됐는데 정시 수시 비중 높여서 뭐합니까.


 지금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1차·2차 산업시대에 머물러있다는 것입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그러니까 농업사회에선 힘 있고 튼튼한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농작물을 기르고, 날렵한 동물을 사냥하고, 높은 곳에 올라 열매를 따려면 아무래도 빼빼 마르고 허약한 사람보단 키 크고 근육질 있는 사람이 더 잘했겠죠. 경제활동 요소라곤 노동력이 전부였을 시기였으니 당연히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증기기관과 전기라는 새로운 동력이 등장한 1차·2차 산업시대에 이르러선 노동력은 점점 뒤편으로 밀려났습니다. 이때부터 힘이 많이 드는 일은 기계가 대체했고, 생산성도 기계가 월등히 앞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할 땐 한 번에 고작 실 한 가닥 뽑았던 것에 비해 제니 방적기는 한 번에 8개씩 뽑아냈습니다. 증기기관과 결합한 방적기는 무수히 많은 실들을 뽑아 개인 직조공이란 직업을 없애버리기까지 했죠. 그럼 주로 가내수공업으로 집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공장의 노동자로 불러내던 이 시기에 가장 필요했던 인재상은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기계들이 즐비한 공장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글을 읽을 수 있는 언어능력이었을 겁니다. 글로 된 설명서를 읽을 줄 알아야 기계들을 작동시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기계가 중간에 멈추거나 고장으로 인해 부품을 갈아 끼울 때도 설명서를 읽어야 하니 글을 읽는 언어능력은 반드시 갖춰야 할 능력이었습니다. 수리능력은 언어능력 못지않게 공장에서 필요한 능력 중 하나였습니다. 1·2차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말 그대로 공장에선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핀 공장을 예로 들면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핀 공장 노동자가 하루에 20개의 핀을 만들었다면 핀 만드는 과정을 18개로 나누어 10명의 사람이 일하면 하루에 4,800개의 핀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10명의 노동자가 핀 공장에서 일했다면 하루에 고작 200개 정도 만들 수 있던 시절에서 4,800개로 늘어났으니 공장의 모습은 혼비백산이었을 겁니다. 쏟아지는 물건들을 감당해내기가 쉽지 않았겠죠. 그래서 필요한 능력이 물건을 셀 수 있는,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물건들을 단번에 셀 수 있는 수리능력이 필요했습니다. 기본적인 더하기, 빼기는 물론 때로는 곱하기와 나누기도 잘 쓸 수 있었어야 했죠. 즉 설명서를 읽을 수 있는 언어능력, 물건을 셀 수 있는 수리능력을 갖춘 사람은 1·2차 산업혁명 시기에 공장에서 가장 필요한 인재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국가 간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외국어 능력이 차지하는 비중도 늘었습니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이유가 뭡니까? 세계화가 확대되고, 국가 간 무역이 늘어나고, 국경을 뛰어넘는 기업들이 나타나면서 세계시장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문호를 개방하지 않고 쇄국정책을 펼쳤던 조선시대엔 평민들은 외국어를 몰라도 됐습니다. 국경을 맞댄 지역이나 고위급 관료들이나 외국어를 배웠죠. 하지만 지금은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배웁니다. 작은 중소기업에라도 들어가려면 토익 점수는 기본으로 있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바로 발달된 교통수단과 인터넷이 세계시장을 하나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나라 학생들이 초·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교육은 1차·2차 산업시대에나 요구되는 인재를 길러내는데 필요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국어시간은 읽기 능력 강화 시간, 수학과 영어 시간은 암기 능력 강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문학 시간은 작품을 이해하고 작가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 그것을 나만의 방법으로 표현하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학교 문학 시간은 작가의 의도가 아닌 출제자의 의도를 찾는데 급급한 시간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능에 나온 자신의 작품을 작가 본인이 틀리는 경우가 어디 있겠습니까. 실제로 최승호 시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작가의 의도를 묻는 문제를 진짜 작가가 모른다면 누가 아는 건지 참 미스터리”라며 잘못된 교육방식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한 편의 작품을 이해할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수업이 시작되면 이 작품의 주제는 무엇이며, 운율은 어떻게 되어있고, 핵심 문단이 어디인지를, 어디에 밑줄을 치면 되는지를 빠르게 알려주기 바쁘죠. 비문학 시간은 또 어떤가요. 비문학 시간은 무슨 퍼즐 맞추는 시간 같습니다. 글을 읽기도 전에 ‘하지만’, ‘그러나’, ‘또한’과 같은 접속사부터 찾으라고 합니다. 이런 접속사들 뒤엔 글의 핵심이 담겨 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 부분부터 보라고 가르칩니다. 또 문제와 보기들을 외워놓고 글을 읽으면서 그 내용들을 찾으라고도 가르칩니다. 말 그대로 읽기 능력만 가르치는 거죠.


 수리는 또 어떤가요? 우리나라 학생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수학을 배우고 있습니다.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PISA)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우리나라는 수학 부분에서 꾸준히 1~4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범위를 넓혀 OECD 국가를 포함한 전 세계 79개국에서도 5~9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배우는 수학이 과연 1·2차 산업시대에나 필요했던 ‘셀 수 있는 능력’에서 과연 벗어났는가는 의문입니다.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학생들을 굉장히 똑똑한 학생들로 압니다. 구구단도 술술 외우고, 어려운 수학 공식들도 알고 있는 게 제법 신기한 모양입니다. 자신들은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데 우린 머리로 하니까 제법 신기할 법하죠. 전 어렸을 때 외국 학생들은 수학 시간에 계산기를 가지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왜 우린 수학 시간에 계산기를 소지하면 안 되는가’가 의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몇 번 두드리면 나오는 답을 왜 우린 머리로 해야 하냐는 겁니다. 전 그 이유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수학 교육은 아직 ‘세는 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건 3X3이 8이나 10이 아닌 9가 되는가의 원리입니다. 그냥 3X3은 9로 외우는 건 지금 시대에 배우는 의미가 없습니다. ‘3X3은 9다.’는 1·2차 산업시대에 물건을 빨리 세야 할 때나 알면 됐던 거지 계산기가 존재하는 오늘은 무작정 외우는 수학은 의미가 없습니다.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현 교육제도에서의 영어는 암기과목의 끝판왕입니다. 영어 사전을 찢어 먹으면서 단어를 외웠다는 학교 선배, 스타 강사의 썰이 전설로 내려올 정도죠. 저도 학교 다닐 때 영어 교과서 지문을 통째로 외우곤 했습니다. 무식하게 외우는 게 고득점으로 가기 위한 지름길이었으니까요. 지금도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잘 팔리는 유명한 영어단어집은 온갖 억지를 부려가면서 ‘이렇게 외우면 쉽게 외울 수 있다.’면서 홍보를 합니다. 예를 들면 ‘수확하다’라는 뜻의 reap의 발음이 립(잎)으로 나니 상추 잎을 수확하는 모습을 연상하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 밖에도 우리나라 영어교육엔 무수히 많은 오류들이 있습니다. 수능엔 미국인들도 사용하지 않는 어려운 단어들을 지문에 넣는가 하면 앞뒤 문맥은 자른 채 일부 단락만 발췌해 문제를 내기도 하죠. 그래서 영어를 제일 잘한다는 옥스퍼드, 하버드 학생들도 수능 문제를 틀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유튜브에 ‘수능 영어 외국인’을 검색하면 수능 영어에 혀를 내두르는 외국인 영상이 수십 가지는 됩니다. 그중에서도 유튜브 채널 ‘영국남자’를 운영하는 조쉬가 자신의 친구들에게 수능 영어를 풀어보라고 한 영상은 745만 뷰를 넘었습니다. 이 영상에 출현한 영국 사람들은 수능 영어를 ‘비합리적이다,’, ‘찍어서 맞췄다.’, ‘끔찍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룹니다. 심지어 캠브리지 대학을 나온 영국인도 수능 영어를 틀리는 영국 대학생도 풀지 못하는 영어가 지금의 수능인 것입니다. 


 그동안의 우리 교육제도는 1차·2차 산업혁명에 초점을 맞춘 교육이었습니다.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질은 높아졌지만 큰 범주에선 설명서를 읽을 수 있는 능력과 물건을 세는 능력 밖으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한 오늘날엔 지금에 맞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4차 산업시대엔 읽는 능력과 세는 능력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얼마나 창의적'이며, '다른 이와 협업할 수 있는가', '변화에 유연한가'와 같은 능력들이 필요하죠.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은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불어넣어주고,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도 공존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육은 그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출처. 프라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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