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융합.
학창 시절 제가 싫어했던 수업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음악 수업이었습니다. 20년째 제 취미가 음악 듣기임을 감안하면 음악을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음악 수업이 싫었던 거죠. 전 타고난 음치이자 박치입니다. 숨기고픈 제 콤플렉스이기도 하죠. 그런 제게 수행평가였던 반 친구들 앞에서 리코더, 단소, 노래 부르기가 얼마나 창피하고 힘들었겠습니까. 음악시간은 늘 도망가고 싶었던 수업 1순위 었습니다. 그런 저를 재미 삼아 놀리던 음악 선생님은 정말 최악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음악 선생님의 대학교 시절 전공이 작곡이었다는 걸 우연찮게 알았습니다. 음악이란 범주에 작곡이 들어가 있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중학생이었던 제게 작곡이란 과목이 있다는 건 그 당시 생각지도 못한 충격이었습니다. 작곡은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생소한 과목이었으니까요. 제가 비록 음치에 박치이긴 하지만 지금도 신나는 노래를 듣거나 기가 막힌 가사를 들으면 이런 노래는 어떻게 만드는지 늘 궁금해했습니다. 작곡 작사를 해보는 건 아직까지도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입니다. 그때부터 늘 전 음악 시간에 작곡 작사하는 법을 가르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얘기하지 않았던가요. 20년째 취미가 음악 듣기라고요. 음악 듣기가 취미인 사람에게 작곡 수업이나 작사 수업은 당연히 리코더나 단소보다 좀 더 흥미를 유발하지 않을까요? 제가 갑자기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를 한 이유는 바로 창의력 때문입니다. 음악 수업 얘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우리 음악 수업은 말했듯이 보통 리코더, 단소, 노래 부르기 정도가 끝입니다. 그런데 학교 음악 선생님들 중엔 작곡을 전공하신 분도 있고, 피아노를 전공하신 분도 있고, 국악을 전공하신 분도 있을 겁니다. 이처럼 음악의 스펙트럼은 무궁무진한데 어떻게 학교 음악 수업을 리코더, 단소로만 한정 지을 수 있겠습니까. 작곡 작사도 배우고 드럼, 일렉 기타도 배워보면 어떨까요? 그것도 정규 수업으로요.
요즘 젊은 청년, 청소년 사이에선 힙합이 대세입니다. 힙합의 묘미는 박자를 쪼개는 비트도 비트지만 절묘한 라임, 귀에 때려 박히는 가사, 생각지 못한 표현력들입니다. 힙합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아마 Mnet에서 방영한 ‘고등 래퍼’라는 프로그램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프로그램 제목 그대로 고등학생 래퍼들이 나와 프리스타일로 혹은 사전엔 준비한 랩을 비트에 맞춰 선보이는 경연 프로그램이었죠.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학생들의 랩 하나하나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가 많습니다. 가사들이 하나같이 주옥같고 기가 찰 정도로 잘 만들어냅니다. 잘 나가는 래퍼들 못지않게 어떻게 고등학생이 저런 비트에 랩을 얹었나 하고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글자 수와 라임을 잘 맞춰 놓은 가사들을 보면 한 편의 아름다운 시를 작성한 느낌도 받습니다. 문학계에선 요즘 시대를 시가 죽은 시대라고 합니다. 현대인들이 과거에 비해 시를 멀리하면서 시가 모두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시집 판매율이 저조하고, 출판사는 시집 출판을 꺼립니다. 결국 시인들도 모습을 감췄죠. 하지만 전 시가 죽었다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만 형태가 좀 변했을 뿐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오늘날 시는 랩이라는 또 다른 형태로 다시 태어났거든요. 유명 래퍼들이 노래를 내면 몇 주 동안 음악차트를 석권합니다. 잘 만들어진 랩 한 곡의 조회수와 스트리밍수는 수백만에 달합니다.
제가 왜 자꾸 작곡, 작사와 힙합 얘기를 하냐면 저는 이게 4차 산업시대에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작곡과 작사는 엄청난 집중력과 창의력을 요구합니다. 저는 이런 게 진짜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수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괜히 학생들 창의력 키운답시고 또 멘사 퀴즈 풀기, IQ문제 풀기 같은 머리 쓰는 수업 말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수업들을 학교에서 가르쳐보자는 겁니다. 교실에 학생들을 가둬놓고 빼곡한 이론으로 칠판 가득 메우는 수업 말고 학생들이 직접 무언가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창의적인 수업을 해보자는 겁니다.
4차 산업시대는 또 다른 이름으로 융합의 시대라고도 불립니다. 냉장고, TV, 청소기, 세탁기와 같은 기존의 제조업에 인터넷 기술이 결합된 사물인터넷 제품들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운송업과 만난 인터넷은 공유차량 시스템은 만들어냈고, 숙박업과 만난 인터넷은 에어비앤비와 같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숙박 모델을 만들어냈습니다. 또 음악과 컴퓨터가 만나 EDM이라는 새로운 음악 장르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특정 한 가지 분야만 잘하면 성공할 수 있었던 전통산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4차 산업은 다양한 분야를 융합한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로 변모하고 있죠. 산업이 융합하면서 자연스레 교육도 융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작사 과목은 이런 문제의식에도 잘 부합합니다. 가사엔 한 편의 스토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가사들을 보면 그 안에 기승전결이 담긴 한 편의 스토리가 있습니다. 3분이라는 시간 내에 기승전결이 녹아있는 스토리를 써야 하니 최대한 함축적으로 써야 하겠죠. 또 가사엔 운율이 있어야 하며 랩 가사의 경우 킬링 포인트인 라임도 있어야 합니다. 결국 작사를 하기 위해선 다양한 단어들을 알아야 할뿐더러 글의 구성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잠깐 퀴즈를 내볼까 합니다. 방금 설명드린 작사 수업은 음악 수업일까요? 아니면 국어 수업일까요? 잘 분간이 안 가실 겁니다. 작사를 하려고 보니 국어 공부를 해야 하고 국어 공부를 하니 작사의 기초공부가 됐습니다. 저는 이런 게 4차 산업시대에 필요하다는 교육의 융합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