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친구의생애사①] 23살, '쉴 틈'이 필요한 내 친구와의 인터뷰
청년을 다루는 수많은 기사들,
틀 하나를 먼저 정해 놓고, 그 틀에 맞는 청년들을 찾아서 끼워맞추기 바쁩니다.
우리는 순서를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예전에는 '친구'이기만 했던 그를 '청년'으로 바라보며,
내 바로 옆에 있는 그 청년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청년view가 만난 우리 시대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특별한 내 친구들의 생애사를 소개합니다.
나는야 알바몬
수능이 끝난 직후였다. 스무살 어린나이의 그녀가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내향적인 성향의 친구였기에 손님을 응대하는 일을 한다니 의외였다. 수능이 끝난 직후부터 알바를 시작한 그녀는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항상 2~3개의 알바를 병행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스물셋이 되기까지 쉬지 않고 알바를 하면서 용돈을 벌고, 일부는 등록금에 보태기도 하면서 지내왔다. 아침에 A카페에서 오픈 근무를 하고, 밤에 B카페에서 마감 근무를 하는 날도 있었다.
최근 그녀는 3년 동안 일했던 카페 알바를 그만뒀다. 일자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카페 일을 그만두자마자 근로장학생 자리를 찾아 또 다시 일을 시작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내가 그만두고 나왔어. 카페 대표를 만났을 때 그냥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는데, 대표가 자기를 왜 그냥 다른 손님처럼 똑같이 대하냐고 뭐라고 하는 거야. 그 말 듣고 그 다음부터는 더 위축되어서 대표 보면 표정도 굳고 그랬어. 그런데 그거 가지고 대표가 마음에 안 든다고 점장님한테 얘기했다는 걸 알게 돼서 그냥 내가 먼저 그만둔다고 했어. 3년 동안 일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는... 내 알바 인생 중에서 이렇게 배신감 든 적은 처음이었던 거 같아."
그녀는 알바를 하면서 어른들이 말하는 ‘사회생활’이 무엇인지 몸소 느꼈다. 특히 낯선 사람에게 친절해야 하는 서비스직 알바를 하면서 겪는 어려움도 많았다. 낯선 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울고 웃기도 했다.
"나는 반말하는 손님들이 제일 싫어. 그런 손님들 만나면 처음에는 표정도 굳어지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냥, '너는 반말해라. 니 인격이 그 정도인 걸 어떡하겠니. 똥이 무서워서 피하지 더러워서 피하니?' 라는 마인드로 무뎌진 것 같아. 나 오히려 그런 진상들한테는 더 신경 써서 친절하게 대해. 그런 사람들한테 똑같이 대하면 나도 그 정도 인간이 되는 거니까."
알바를 하면서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사소하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에 감동을 받은 적도 있었다.
"카페 컵에 메시지 적는 게 있었어. 직원들이 랜덤으로 쓰고 싶은 말 적는 건데, 겨울이라서 '감기조심하세요' 라고 적은 게 있었나봐. 어떤 무뚝뚝한 남자 손님이 오더니 '이거 누가 썼어?' 하는 거야. 나는 뭐 잘못된 줄 알고 쫄았는데, 자기 감기 걸렸는데 여기 감기 조심하라고 쓰여 있었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하면서 나가는 거야. 그리고 '커피 맛있네요.' 이런 말 한마디도 별 거 아니지만 기분 좋아지는 거 같아."
그녀가 알바를 하는 주된 이유는 돈 문제 때문이다. 이 시대 다수의 대학생이 그러하듯, 대학 등록금과 용돈을 마련하는 일은 그녀를 4년째 따라다니는 골칫거리다. 국가장학금을 받고 학기 중에도 알바를 2개씩 하지만 그 돈으로 모든 비용을 마련하기란 턱없이 부족하다. 휴학하고 알바를 한다고 해도 4년 치 등록금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아직 학생 신분인 그녀에게 벌써 학자금 대출이라는 ‘빚’이 생겼다.
"정말 아끼고 아껴서 한 달에 100만원씩 갚는다고 해도 1,2년 넘게 걸리잖아. 근데 사회 초년생이 현실적으로 100만원씩 갚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학자금 대출이 내가 갚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을 한 순간부터 내가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
"그건 내가 하고 싶은 거지,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
돈 문제를 생각하면 걱정되지만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것들도 많다. 중학교 시절부터 키워온 연출이라는 꿈이다. 그녀는 막연히 영화가 좋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연극부에 들어가 조명 스탭으로 극을 올리기도 했다.
"축제나 연극제할 때, 극이 시작하면 다 암전되고 주인공한테만 스포트라이트가 딱 비춰지면서 조명이 서서히 꺼질 때, 그 잔상이 너무 흥분되더라고. 아름답고... 되게 새로운 느낌이었어. 글로 되어있는 시나리오가 조명이나 소품들로 새롭게 표현되는 것도 신기하고."
그 후로 연출에 대한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재작년에는 생활영화를 만드는 수업을 들으면서 직접 단편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그 수업을 듣는 날이면 하루 종일 설렜다고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영상 편집을 하다 컴퓨터가 렉이 걸려 다운 될 때도, 장면 편집과 영상 구성으로 밤을 샐 때도 행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때때로 연출이라는 꿈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영화감독이든 연출이든 하고 싶어, 그런데 그건 내가 하고 싶은 거지 할 수 있는게 아닌 거 같아. 연출 하려면 영화도 많이 보고, 배우러 다니고 해야 하거든. 외부에서 하는 연출 관련 수업이 있는데, 그런 수업이 일주일에 한번 나가는데 싸도 20만원이더라고, 20만원이 되게 상대적이잖아. 누구한텐 아무것도 아닌데 나한텐 부담스러워."
"나는 예전에는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는데, 나이 먹으면서 느끼는 건 우리나라에서는 돈이 너무 중요하고, 이미 나도 자본의 노예가 되어가는 느낌? 뭘 하면 안정적인 직장에서 안정적인 월급 받을까 이런 고민 하고. 연출도 거의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비정규직으로 일하면 언제 잘릴지 모르고 불안정한 생활을 해야 되는 게 두려워. 그래도 20, 21살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졸업해야하고 취업할 생각하니까 연출에 대한 관심도 줄고 점점 포기하게 되는 거 같아."
덧붙여 그녀는 월급쟁이가 정말 좋은 직업인 것 같다고 했다. 한 달 동안 고정 수입이 나오고 어쨌든 정규직이니까. 세상은 젊은이들에게 꿈을 갖고 도전하라고 말하지만 오로지 꿈에 대한 열정만으로, 도전정신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당장의 생활이 어려운 대학생들에게는 어쩌면 꿈을 갖는 것조차 사치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청년들에게 꿈을 갖고 도전하라고 말하기 전에, 적어도 청년들이 자신들의 꿈을 찾고 그 꿈을 계속 꿀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구조가 먼저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남김없이 치열하게
카톡 상태메시지는 말 그대로 그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알려주는 수단이다. 우리는 프로필 사진과 상태메시지를 통해 그 사람의 기분, 근황, 감정 등 단순한 정보 이상의 것을 파악할 수도 있다. 20살의 겨울부터 23살의 봄을 맞이한 현재까지 그녀의 카톡 상태메시지는 변함없이 항상 똑같다. '남김없이 치열하게.' 의미심장해 보이는 이 글귀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그녀는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수업에 가다가도 날씨가 너무 좋으면 그 자리에서 몇 시간동안 그 분위기를 만끽했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면 수업을 째고 무작정 버스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나는 한때 그런 그녀가 걱정되기도 했다. 학교도 제대로 안 나가고 학점도 걱정하지 않는 그녀가 마치 뒤늦게 사춘기를 맞이한 소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변하기 시작한건 그녀의 상태메시지가 ‘남김없이 치열하게’로 바뀔 무렵이었던 것 같다. 20살에서 21살이 되던 겨울은 그녀가 말하길 지금까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크게 방황했던 시기였다. 중고등학생 때 연출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막연하게 꿨지만,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선택을 해야 했다. 연출이라는 꿈은 일단 어떻게든 대학에 가고 난 이후에도 이룰 수 있는 꿈이라고 생각해서 잠시 미뤘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과 많이 달랐다. 대학에 가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고등학교 시절과 큰 차이가 없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과 같은 교실에 앉아서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르고 성적을 받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등록금과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알바를 시작하고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냈다. 그녀의 상상과 대학의 현실은 너무도 달라서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졌다.
고등학교 시절과 같이 강의실에 앉아 그녀에게 의미 없는 수업을 듣고 있는 것은 고역이었고, 그녀는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주 수업에 빠졌다. 강의실을 나가서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을 서성이기도 하고 무작정 버스를 타고 풍경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녀가 변하기 시작한건 그녀의 상태메시지가 ‘남김없이 치열하게’로 바뀔 무렵이었던 것 같다.
“김영갑이라는 사진작가였어. 희귀병에 걸려서 돌아가셨는데, 그분이 생전에는 제주도 오름을 찍으러 다니셨대. 매일 끼니도 감자, 고구마로 때우면서 계속 오름만 찍으러 다니는 거야. 다 오름 사진이었는데, 정말 사진마다 다른 느낌이더라고.”
"나는 남김없이 치열하게 살았다." 그 사진작가 김영갑이 생전에 남긴 말이었다. 그녀는 그 글귀를 제주도 여행 중 들른 사진전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 문장을 되뇌이며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내가 내 인생에서 치열했던 순간이 있었나? 저 사람처럼, 정말 남김없이 치열하게 살았다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내 삶을 돌아봤을 때 부끄럽지 않을 만큼 뭔가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걸 치열하게 해본 적이 있었나?”
‘남김없이 치열하게’는 그녀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그녀는 변하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그날의 기분에 따라 학교를 갈지 말지 결정하는 일도 줄었고,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알바에 학교 공부까지 병행하면서도 학생회도 하고 연출 관련 수업도 들었다. 시험기간에는 시험공부도 열심히 해서 성적도 많이 올렸다. 세상을 더 많이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교환학생도 준비하기 시작했다.
"치열하게 살지만, 퇴보한 것 같아"
나는 이제야 그녀가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했었다. 그녀의 주변 사람들도 그녀가 변했다며 놀라움을 표한다. 그런데 그녀는 오히려 지금이, 과거의 그녀보다 더 퇴보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봤을 때는 내가 1,2학년 때 생각 없이 살다가 이제 정신 차리고 공부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사실 나는 그때 제일 생각이 많았어. 지금이 오히려 생각 없이 살아. 그래서 남들이 나한테 변했다고 말하는 게 전혀 뿌듯하지가 않아. 왜냐면 나 스스로 느끼기에 예전의 내가 더 멋있는 건 맞으니까. 과거의 나는 학교도 안 가고, 시험 못 봐도 그건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거니까 남들이 뭐라고 해도 내 결정이 맞다는 확신이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남과 다르면 무서워. 성적도 남들이 3.5는 넘어야 된다니까 그냥 열심히 하는 거고.. 남들이 하는 대로... 그래서 전보다는 치열하게 살지만 예전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퇴보한 거 같아."
그녀는 정말로 참 바쁘다.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시험 준비를 하고 거기에 알바까지 하면 남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거의 없다. 시간을 쪼개서 학생회 활동을 하고, 그녀가 꾸는 꿈과 관련된 대외활동까지 하려면 쉴 틈이 없다. 4학년이 되어서는 취업에 대한 부담까지 더해졌다.
“학교 다니면서는 가까운 것 밖에 못 봐. 생각의 폭이 너무 좁아지는 거야. 그래서 내 나름대로 생각하고 결정해도 결국에는 남들이 하는 대로 똑같이 따라하게 되는거 같아. 근데 또 나중에 후회할까봐 남들이랑 다른 것 같은 선택은 쉽게 못해. 옛날에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이 선택이 맞고 후회 안 할거라는 자신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보장을 못 하겠더라고. 그러니까 선택도 못하겠어.”
그녀의 삶에 더 이상 부끄럽지 않으려고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았다. 하지만 지금보다도 더 치열하게 살아야 된다고 말하는 것만 같은 현실 속에서 그녀는 지쳐가고 있다.
“요즘엔 치열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쉴 틈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 뭘 위해서 치열해야할지. 그런 걸 모르고 그냥 사는 건 체력적, 정신적으로 소모만 되는 거야. 그런데 우리 사회가 계속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니까 쉴 수가 없어. 쉬면 도태되고, 나는 나태하고, 쓰레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내친구의생애사] 공통질문
1. 사람들이 너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해주면 좋겠어?
- 다른 사람의 평가보다는 ‘오늘의 내가 남보다는 못했어도, 어제의 나보다 더 성장한 사람’이 되고 싶어. 그리고 10년 뒤에도자신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2. 너에게 완벽한 하루란 뭐야?
-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먹고, 수다 떨고 집 와서 딱 ‘알찬 하루였다’라는 생각이 드는 하루?
3. 오늘 인터뷰에 얼만큼 솔직했다고 생각해?
- 90프로. 100프로라고 말하면 재미없잖아. (웃음)
'쉴 틈'이 필요한 우리들
인터뷰를 마치며 그녀에게 알바를 안 해도 된다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저 일상적인 여유를 즐기고 싶다고 답했다. 주말에 쉬면서 TV를 보고, 날씨 좋은 때에는 공원에 산책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의 삶에 '쉴 틈'이 필요하다는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많은 20대 청년들은 알바, 등록금 마련, 진로 탐색, 취업 준비 등등 쉴 틈 없는 생활의 반복을 경험하고 있다. 수많은 사회적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들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하지만 쉴 틈이 없으면 곧 지치기 마련이다. 인터뷰를 정리하며 모든 20대들이 적어도 주말에는 쉬면서 이것저것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태어난 배경과 자라온 환경은 다르지만 적어도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면에서는 우리 모두 공평할 수 있었으면 한다.
진솔한 이야기로 내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틈을 만들어준 그녀에게 감사하다.
청정넷-기자단 청년view [내친구의생애사] 인터뷰 연재
: 글/사진. 이현정 기자 (lhj6715@naver.com)
: 편집. 김선기 (fermata@goham20.com)
: 일러스트. 허지나 (raptyw@naver.com)
: 문의. 이성휘(seoulyouth201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