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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뷰 Jun 10. 2016

K와의 술자리는 피곤하다

[내친구의생애사②] 너는 왜 자발적으로 '아웃사이더'가 됐어?

청년을 다루는 수많은 기사들,
틀 하나를 먼저 정해 놓고, 그 틀에 맞는 청년들을 찾아서 끼워맞추기 바쁩니다.
우리는 순서를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예전에는 '친구'이기만 했던 그를 '청년'으로 바라보며,
내 바로 옆에 있는 그 청년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청년view가 만난 우리 시대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특별한 내 친구들의 생애사를 소개합니다.




"아주머니! 김밥에서 단무지는 빼주세요... 소리가 나니까요." 화장실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 씹는 소리가 날까봐 단무지를 빼달라고 했다는 한 복학생의 웃지 못할 사연이다. 이렇게 혼자 밥을 먹고, 학교 내에서 인간관계를 맺지 않는 사람들을 우리는 아싸(아웃사이더)라고 부른다. 혼자는 외롭다. 아싸라는 말의 부정적인 어감에서 느껴지듯 아싸를 보는 시선 또한 곱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아싸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자발적 아싸족'이다. 이제 대학가에서 이 자발적 아싸족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 그들은 아싸가 되기를 자청하는 것일까? “수업 끝나면 나가서 담배 한 대를 물고 침을 팍 뱉곤 했었지. 험상궂은 얼굴로. 그래야 말도 안 걸고 편해.” 대학교 3학년인 K는 소위 말하는 아싸, 그중에서도 자발적으로 아싸 생활을 자처한 자발적 아싸다. 자발적 아싸 3년차, 술 땡길 땐 국밥집에서 '혼술' 할 줄 아는 사나이 K(23)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이의 애정하는 물건


Q. 요즘 어떻게 지내?

- 시험 공부 하느라 너무 바빴지. 그냥 계속 공부만 했어. 학점 잘 받아야 하니까.

Q. 그럼 시험기간이 아닐 때는 주로 뭐하고 지내?

- 공부하지. 평소에도 똑같이. 운동 조금 하고, 과외 하고, 술먹고. 혼자 집에 가서 국밥에 소주 마시고. 사람들 만나서 술 먹고 그러면 시간 뺏기니까. 신입생 때는 일부러 무섭게 인상이 남길 바래서 무섭게 다녔거든. 수업 끝나면 담배나 피고 침이나 팍 뱉고. 일부러 말 못 걸게.






원래부터 K에게 아싸 기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인기가 많고 학생회장도 할 만큼 또래들 사이에서 ‘핵인싸’였다. 게다가 그는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활동을 하면서 목소리를 내던 학생이었다.


Q. 고등학교 때 너는 어떤 사람이었던 것 같아?

- 1학년 때까지는 공부를 열심히 하다가, 2학년 되면서 노는 데 조금 맛을 들이게 돼서 공부에 소홀하게 됐어. 공부도 잘하면서 놀기도 잘하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 같아. 어떻게 보면 허세를 부렸던 거지. 내 정체성이 살짝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꿈만 매우 컸지. 그러다 결국 대학도 포기하게 됐었고.


Q. 고등학교 시절에 너는 청년 활동을 하면서 사회를 바꿔보겠다고 행동하기도 했었잖아.

- 고등학교 때 스스로를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사회도 비판하고 내가 스스로 바꿔보겠다고 했던 것이고. 그런데 집안형편도 어려워지고 하다 보니까, 이러다간 나만 뒤쳐진다는 느낌이었어. 또 내 목소리로 무언가를 바꾸려고 해도 결국에는 안된다는 걸 느꼈던 것 같아. 내가 목소리를 내는 것과 사회적으로 이미 성공한 사람이 말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더라고. 나같은 사람이 말해봐야 통하지 않는다고. 애초에 목소리의 힘이 다르니까. 지금도 사회를 바꿔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지만, 내가 지금 당장 데모하고 그렇다고 해도 안되니까. 지금 당장 그래버리면 내가 힘 있는 사람이 될 확률이 적어져 버리니까. 공부도 많이 해야되는데 시간도 없고 하니까. 우선은 접어두고 나중에 성공하면 그 생각들을 펼치는게 더 좋을 것 같아. 그렇다고 해서 개혁이나 내가 원하는 사회로 변혁시키고자 하는 생각을 접은 게 아니라, 힘이 있어야 하니까... 그런 것 같아.


Q. 갑자기 대학에 다시 들어가야 겠다는 생각이 든 특별한 이유가 있어?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흥주점에서 일하던 시절이었어. 같이 일하던 애들이 공부도 안하고 나보다 성적도 한참 낮았던 애들이고. 내가 걔들보다는 열심히 살았는데.. 하는 생각? 동급이 됐다는 느낌에 너무 화가 났었어. 또 일하다 보면 사장이나 교장 같은 잘 사는 사람들이 손님으로 와. 그런 손님들이 "젊은데 대학 안 가냐, 대학도 안 가면 인생 어떻게 사냐" 이런 말로 은근히 무시할 때? '나는 너희들보다 높다. 돈 줄테니까 대접해.' 그런 수모들을 겪으면서, 나한테 스스로 미래가 없어 보이는 거야. 성공을 대학과 바로 연결시키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내가 성공하기에 가장 좋은 통로가 대학이니까. 일단 대학에 가서 하고 싶은 걸 찾고 싶기도 했고.



Q. 그런 시절들이 지금 너에게는 어떤 의미야?

- 지우고 싶지. 좋은 경험도 아니라 굳이 안 했어도 됐을 경험. 하지만 내가 일찍 이런 경험을 했으니까 나중에 늦바람 들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은 들어. 노는 걸 원래 좋아하기는 하지만, 나중에 진짜 중요한 시기에 노는 데 빠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있어. 그렇지만 그 시절을 그렇게 보낸 게 아쉽기는 해. 그때 안 놀았으면 더 좋은 대학에 다니고 더 좋은 스펙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K는 남들보다 뒤늦게 대학에 들어온 이후에 다시 한 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가능하면 노는 것을 멀리하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스펙을 챙기고, 또 그 와중에도 연애는 놓치지 않는 그런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 어찌보면 그렇게 생활하는 K가 우리사회가 대학생 청년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모두 해내는 모범생의 전형인지도 모른다.


Q. 대학에 들어와서 대학생활은 어땠어?

- 거의 공부했지.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고 술자리에 나가고 한 적도 있지만, 그때는 시덥지 않은 이야기들만 하는 거지. 그건 그냥 하루치 농담이고. 끝나면 또 공부만 죽어라 했어, 학점 잘 받으려고. 편입 위주로만 생각하고 공부했어. 여자친구만 만나고, 그 외에는 공부만 하고. 덕분에 학점은 잘 나왔지.


Q. 대학에 들어갈 때 목표가 있었다면?

- 우선 편입을 해서 명문대로 옮기자. 그게 목표였고, 궁극적인 꿈은 우리나라 모든 사람이 내 이름 석자를 알게 되면 좋겠다는 것. 그래서 어떻게든 잘 되자, 사회가 말하는 성공의 기준을 충족하자,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대학을 가겠다고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야. 대학 졸업장 없이 고시 보는 것엔 한계가 있을 거 같았고.


Q. 너는 일반적인 대학생활과는 다른, 공부에만 올인하는 대학생활을 했잖아. 그런 생활이 어땠어?

싫었어. 나도 미팅도 하고 술게임도 하고 그러고 싶은데. 내가 1년 늦었고 예전에 놀았기 때문에 편입도 해야 하고. 놀면 학점도 잘 안 나오잖아. 옛날에 놀았던 때로 돌아가서 그 삶이 반복될까봐 공부했어. 학점은 잘나왔지만, 아쉬운 건 대학 시절을 생각하면 남을 추억이 그냥 혼자 술 마시거나, 여자친구랑 연애한 것 말고는 없다는 거야. 보통 대학생활하면서 하는 것들 있잖아. 다양한 활동도 하면서 그 나이대에 맞는 추억도 쌓아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는 게 너무 아쉽기도 하고. 나는 아예 바뀌어 버렸잖아. 20살 때 해야할 걸 18살 때 해버리고 그랬으니까. 그런 건 조금 후회가 되지.



그렇다. K는 변했지만, 그 변화를 온전히 마음 속에서부터 깊이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성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서 이러한 생활을 선택했지만, 자신의 선택이 완벽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도, 사회적으로 응원만 받는 선택은 아니라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대학이나 학점, 스펙 같은 것들은 모두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Q. 너만 그런 게 아니라 대학생들이, 낭만 이런 것보다는 미래를 위해 스펙을 쌓거나 그런 것 위주로 생활하잖아. 이런 주변 사람들 모습을 보면 넌 어떤 생각이 들어?

- 안 행복할 것 같아. 미래를 위해 하니까 행복하다 이런 느낌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한다는 느낌이지. 20살 때만 할 수 있는 걸 안 해 보고. 미래를 보면서 지금의 행복들을 옥죄는 거니까. 사회의 기대, 부모님의 기대에만 억눌려서 계속 공부만 하는 거니까. 그리고 실제로 취업이 힘들다는 게 정말 현실적으로 다가오니까, 내가 지금 놀면 미래에 밥도 못 벌어 먹으니까. 나도 막 공부하는 게 '난 미래를 위해서 투자한다, 나는 행복해.' 이런 느낌이 아니라 그냥 솔직히 말하면 억지로 일부러 하는거야.


Q. 너에게 대학이란 어떤 의미야?

간판이지 단순히. 배우는 것도 있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당연한 스펙을 쌓는다는 의미가 더 커. 전공과 실무는 별개라고 하더라고. 대학은 그래서 연줄이자 나를 사회와 연결해주는 연결고리인 거 같아. 기본 조건인 느낌? 그 정도밖에 안되는 거 같아.


Q. 학점과 스펙은 너한테 어떤 의미야?

- 그냥 무조건 좋게 잘 따야하는 것. 그래야 남들한테 잘 비춰지니까. 남들 하는 건 다 하고 남들보다 조금 색다른 것도 해야 하고. 무조건 잘 해야지. 뭔가 '계륵' 같은 느낌이기도 해. 스펙 관리를 안 하자니 내가 나중에 망할 것 같고, 스펙 관리만 신경 쓰자니 대학생활이나 사회생활을 못하니까. 하고 싶어서가 아닌 해야만 하는 것이어서 하는 느낌이야. 중고등학교 때부터도 사회가 짜놓은 가이드라인이 있었잖아. 우리는 모범생처럼 살았고, 앞으로도 모범적으로 살 거야. 중고등학교 때 열심히 수능 공부하는 학생이 모범생이었다면, 대학교에서 모범생은 다른 데에 한눈 팔지 않고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스펙 덩어리가 되는 것? 그런 의미에서 나는 누구보다 사회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으니까 대학에서의 모범생인 것 같아.


Q. 자발적 아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 우리 과에 행시(행정고시) 준비하는 사람들도 진짜 아예 사람들과 접촉을 안해. 너무나 극단적인 아싸지. 우리 과 80명 중에 40명 이상은 그래. 그렇게 미래를 준비하는 걸 보면 멋있기도 한데 불쌍해 진짜.


Q. 다른 사람들은 자발적 아싸인 너를 어떻게 바라볼까?

- 불쌍하게 보겠지. 내 스스로 볼 때도 비참하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외로워보이기는 해. 지금은 그냥 나랑 안정적으로 만날 수 있는 친구, 연인이 있었으면 좋겠어. 시간 뺏기지 않고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괜히 인맥만 넓혀봐야 공부에 방해만 되지. 새로운 사람 만나서, '안녕하세요? 어디 사세요?' 그러는 게 내 정력만 낭비하는 느낌이야. 지금 있는 사람들도 벅차. 이게 딱이고 더 이상 관계를 넓히고 싶지 않아. 그런데 사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나랑 맞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는데, 이런 기회조차 원천 차단하고 있는 거지.


Q. 남은 대학생활 동안 앞으로의 너의 계획은 뭐야?

- 그냥 계속 똑같을 것 같아. 학점 관리 계속 할 거고. 공부 진짜 공부 다 공부인데? 가끔 술 마시는 거 말고는?



[내친구의생애사] 공통질문

1. 사람들이 너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해주면 좋겠어?

- 열정 있으면서 화끈하면서도 멋있고, 배려할 줄 알면서도 사회적으로도 위치도 높은. 겸손하고, 정말 반전매력이 있는 사람? 권력을 가지고는 있지만 거들먹거리지 않고 남을 섬기고 겸손한 사람. 이게 진짜 멋있는 거 같아 그냥. 그릇이 크다. 크게 될 애다. 이런 사람으로 봤으면 좋겠어. 남성답고 거칠고 야생마 같은.

2. 너에게 완벽한 하루란 뭐야?

- 내일이 보장되어 있는 하루. 새벽형 인간이 되고 싶고 아침에 딱 나와서 페라리가 기다리고 있어서 오픈카 딱열고 커피 한 잔 해. 그리고 아동보육원 시설에 봉사하러 가는 거야. 사회의 기본 상식을 깨는 정말 파격적인 그런 행동들을 하고 싶어. 그리고 미래가 보장돼 있는 거. 한 달 후, 10년 후가 보장되어 있는 하루야.

3.오늘 인터뷰에 얼마나 솔직했다고 생각해?

- 매우 솔직했지. 다 쏟아부었지. 백프로. 



K와 술자리를 가지면 너무 피곤하다. K는 새벽 3시, 4시가 되어도 도무지 술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뷰 후 가진 술자리에서 나는 내일 1교시 수업이 걱정된 나머지 술 한 잔 더하자는 K를 만류하고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온 카톡. 사진이었다. 빨간 국밥에 소주 한 병. 기어코 국밥집에 가서 혼자서라도 술 한 잔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렇게 까지 술이 먹고 싶을까... 궁상맞다고 생각할 즈음, 문득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다른 사람과 먹으면 시간 뺏긴다며 술도 밥도 혼자 먹던 K. 그에게 나와의 술자리는 어떤 의미였을까. 얼마만의 사람과의 관계였을까.


Q. 네가 원래 추구하는 가치는 뭐야?

- 원래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다양한 사람들 만나면서 다양한 주장도 하고, 사회의 잘못된 점을 비판도 하고 좋은 일들은 칭찬도 하고 그런 것? 행복한 게 내가 추구하는 가치지. 물론 내가 어느 정도 열심히 노력해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거겠지.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열심히 해야 되는 수준이 도를 넘어선 것 같아. 이 정도면 충분히 열심하고 노력한 건데, 이것보다 더 해야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거니까. 나는 춤도 좋아하고, 바이올린도 좋아하고, 미팅도 하고 싶고, 동아리도 하고 싶고, 다양하게 사람도 만나고 싶어. 그런데 이런 거 하면 공부시간을 뺏긴다는 강박관념, 부모님의 기대, 청년실업이라는 현실? 이런 것들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했어.


청정넷-기자단 청년view [내친구의생애사] 인터뷰 연재
: 글/사진. 맹진규 기자 (aaok12300@gmail.com)
: 편집. 김선기 (fermata@goham20.com)
: 일러스트. 허지나 (raptyw@naver.com)
: 문의. 이성휘(seoulyouth20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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