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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중력지대 성북 Oct 08. 2020

일상의 꿀단지 : 허니쟈 이야기

#COMMUNITY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해가는 소연님, 나영님 이야기

무소식은-

무지랑을 기점으로 사람·커뮤니티·장소 등 주체적 청년 생태계 소식을 담아냅니다.

인지하지 못했던 당연한 것들의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무소식 0호 티이-져 : 무중력지대 성북을 지키고 채웠던 당연한 것들



무중력지대 성북은 커뮤니티 지원사업 청년시민발견을 통해 일상의 중력에서 벗어나 평소 관심 있던 주제를 실험하려는 청년의 시도를 응원해요.


청년시민발견을 통해 커뮤니티를 꾸려 나아가는 '덴마크에서 온 허니쟈' 모임의 소연님과 나영님을 만났습니다.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을 이루어가는 모임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소연님, 나영님. 만나서 반가워요.

두 분은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셨나요?


나영
 저희 둘은 처음 신청할 때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던 멤버들이고, 나머지 멤버들은 모집했는데요. 저희는 원래 아는 사이였어요. 

소연 놀랍게도 전前 직장동료입니다.

나영 동료라기엔 (소연이) 사실 한참 선배라서.. 퇴사한 지 한 7-8년 된 것 같지만 이제는 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 '덴마크에서 온 허니쟈'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계시지요?

'허니쟈' 란 말을 처음 들어봐서 무엇일까 신기했어요.


소연 만들어낸 말은 아니고, 책에 소개된 이름인데요. 나영이가 저한테 책을 한 권 소개해줬는데, 그 책이 《장래 희망은, 귀여운 할머니》라는 작년에 독립서점에 나온 책이었어요. 저는 원래 뜨개질하고,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제가 그 책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계속 읽다가 허니쟈 뜨는 내용을 보고 ‘갖고 싶다, 만들고 싶다’ 말했는데, 나영이가 인스타그램에서 허니쟈를 뜨시는 분을 보고 태그를 걸어줬어요.

제가 우리도 서울지부를 만들자고 농담을 하다가 ‘실제로 한번 만들어 볼까?’가 몇 주 사이에 갑자기 얘기되고, 나영이가 지원사업을 발견해서 저한테 진짜로 한 번 해보자고 얘기했죠.


나영《장래 희망은, 귀여운 할머니》는 작가님이 우연히 덴마크 등지를 여행하다가 기차 옆에 있는 동년배의 여성과 친해져 집에 초대를 받는 스토리예요. 여기서 귀여운 할머니는 만난 분의 어머니세요. 그 집에 갔더니 할머니가 예쁜 단추를 평생 수집하고, 소소한 것을 직접 만들기도 하고, 플리마켓에 가서 마음에 드는 소품 고르는 방법을 작가님에게 알려주는 광경들이 나와요. 

허니쟈는 아예 한 단원이 할애되어 있어요. 예술가 아네뜨 할머니는 ‘허니쟈’라는 꿀단지 모양의 가방을 디자인을 직접 하셔서 본인의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만드세요. 근데 아네뜨 선생님이 점점 연로해지셔서 하나 뜨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 더 이상 뜨지 않겠다 선언을 하신 거죠.

작가님이 책에 실은 그 팔십몇 개 디자인을 보면 너무 갖고 싶었어요. 세상에 팔십몇 개밖에 없는데 파는 것도 아니고, 디자이너 선생님 작품인데 덴마크에 계시고. 작가 선생님은 허니쟈를 두 개나 선물 받아서 들고 다니면서 자랑을 했단 말이에요. 그걸 볼 때마다 너무 갖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할머니의 이야기도 있고, 예쁘고, 털실 느낌이 뽀송뽀송한 것들이요.



'귀여운 할머니'라는 키워드에 집중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나영 책에 사진이 진짜 많은데요. 진짜 귀여우세요. 백색의 버섯머리이시고, 빨간 펠트 모자를 쓰고 계시고.


소연 옷 입는 것도 그렇고요. 사진이 여러 개가 실려 있는데 진짜 귀여우신 거예요. 책 제목을 그냥 뽑은 게 아니었어요.

할머니가 되면 어떻게 살아야지를 잘 생각하진 않잖아요. 나영이나 저나 귀여운 걸 좋아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이 상태로 쭉 늙으면 그런 할머니가 될 수 있지 않나’ 이런 생각도 해요.

저는 재작년에 캐나다에서 잠깐 생활했었는데, 캐나다의 할머니들은 제가 막연히 생각했던 할머니 같지 않은 거예요. 머리는 백발인데, 짧은 청치마도 입고 다니시고, 모임도 많이 하시고, 집에서 티타임도 많이 하시고, 야구 관람도 하시고. 되게 활동적이세요. 그런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할머니가 되면 어떻게 될까?’라는 얘기를 친구들이랑 했었어요. ‘우리가 할머니가 되면 갑자기 머리를 할머니 파마를 하거나 몸빼 바지 입고 다니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 세대가 그대로 늙으면 저렇게 비슷하게 살지 않을까?’ 이런 얘기요. 그런데 그 책에 나와 있는 할머니가 제가 봤던 할머니들보다 훨씬 더 진화된 버전이었죠. 귀여운 할머니 셔서, 생각지 못했던 할머니의 모습을 꿈꾸게 해 줬죠. 


나는 할머니가 되면 어떨까?

나영 할머니 전에 ‘아줌마'라고 불리는 단계를 거치게 되잖아요. ‘아줌마’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많은 사회적인 통념 때문에, 제가 아줌마라고 불리는 게 유쾌하지 않고 ‘내가 아줌마?’ 이런 느낌이에요.  그런데 아줌마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할머니 단계도 없는 거니까 할머니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어요. ‘내가 할머니가 된다면?’, '내가 아줌마가 된다면?’, ‘난 아줌마가 안 돼야지’라는 생각을 했지 난 어떤 아줌마가 될지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할머니'라는 단어는 상상할 때 거부감이 덜했던 것 같아요. ‘언젠간 나도 할머니가 되겠지?’하고요.

한국에서도 귀여운 할머니들이 많이 계시지만, 컬러 스타킹을 입은 할머니 같은 건 상상하기 어렵잖아요. 아네따 할머니는 그런 면에서 제가 갖고 있는 할머니에 대한 이미지를 많이 깨 주는 분 같아요. 외모만 귀여우신 게 아니라, 자기 취향을 잘 가꿔서 전체적으로 합쳐졌을 때 그 사람의 삶의 풍경이 조금 곰살맞고 예쁘게 보이는 게 있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도 멋지게 나이 드는 언니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아줌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할머니 롤모델은 주변에서 찾기 쉽지 않았거든요. 근데 아네따 할머니 보면서 한 번 상상해볼 수 있었어요. ‘이런 삶의 리듬을 닮고 싶다’, ‘이렇게 살고 싶다’고요. 


나는 어떤 삶의 리듬을 갖고 싶을까?
처음 만난 사람들이 서로 설명하고 격려하는 과정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모임을 하는 것은 참 어렵지요. 그 과정이 어떠셨나요?


소연 제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멤버를) 모집했어요. 작가님이 책에 안 쓴 사진을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하셔서, 그걸 가지고 나영이가 포스터를 만들어 제 인스타그램에 올렸죠. 제가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안 올까 봐 걱정했는데 작가님이 빠르게 리포스팅 해주셨어요.

모임을 주로 하는 해방촌의 ‘서울앤쏘울'이라는 가게에 포스터를 붙이기도 하고, 가게 인스타그램에도 홍보를 동시에 해주셔서 생각보다 빨리 사람들이 모였어요.

만나서 뜨개질을 해야 하기도 하고, 모임 시작하기 일주일도 안 남은 상태에서 홍보를 한 거라  얼마나 올까 싶었는데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왔죠.  처음에는 대여섯 명으로 생각했다가 고르기 힘들어서 인원도 두 명을 더 늘리고, 온라인으로 모임을 진행하는 것도 인원을 선정했죠. 작가님 소개로 오신 분들도 많고, 인스타그램에서는 확실히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더라고요.



모집이 아주 폭발적인 반응이었다고 들었어요.


나영 저희가 ‘뜨개질을 같이 해볼까요?’라던가 ‘좋은 도안 있는데 같이 떠 볼까요?’라고 했으면 만났을 때 분위기가 이렇게 지속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책을 보신 분들을 위주로 같이 하고 싶은 분들을 모셨고, 대부분 그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났어요. 아네따 할머니의 허니쟈에 대해서 저희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되고, (허니쟈 뜨개질을) 하고 싶으셨던 분들이요.

의도치 않게 새로운 취향 공동체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에요. 만나서 책 얘기도 하고, 그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얘기도 하고요.


소연 지금까지 총 다섯 번 모였어요. 첫날은 서로 소개하고 허니쟈를 디자인하고, 나머지 네 번은 뜨개질을 계속했어요.

제가 다 알려주는 것이 아니고, 앉아서 계속 뜨다가 잘 모르시는 분들을 옆에서 알려 드리는 식으로 진행해요. 실력 차가 있다 보니 아까 말씀드린 실력자 분이나 조금 더 잘 아시는 분이 옆에 앉아서 서브 선생님처럼 알려드리기도 하고요. 그리고 모여서 뜨면 좀 더 속도가 나오는 것 같아요. 모여서 막 뜨고, 삘이 받은 상태로 집에서 더 떠서 온라인으로 자랑하기도 하고, 모르는 거 서로 물어보기도 하는 식으로 하고 있어요. 지난주에 모였을 때 모임원의 절반 정도는 하나를 완성했고, 완성하신 분들은 새로운 걸 뜨기 시작했어요.


새로운 취향 공동체를 찾은 것 같은 느낌

모임 분위기가 좋다고 느꼈던 게, 제가 뜨개질 모임을 해 본 적도 참여해본 적도 없어 몰랐는데 찾아보니 이런 모임이 많이 있더라고요. 얼마 전에 알았는데 ‘함께 뜨기’를 줄여서 ‘함뜨’라고 부르기도 하던데, 패키지처럼 도안이랑 실이랑 판매하고, 그걸 다 뜨면 끝나요. 그런데 저희는 그렇게 모인 게 아니고, 디자인 보면서 서로 이야기해주고 실 남은 것도 ‘이 색깔 이쁘니까 저 좀 주세요’하고 제 것도 드리고 하는데, 진짜 동네 사랑방 같은 느낌이에요.



처음에 허니쟈가 총 네 개가 나왔는데, 크기가 대, 중, 소가 나온 거예요. 분명히 다 똑같이 떴거든요? 그런데 하고 나니까 대, 중, 소가 나오고, 하나는 눈물의 실패작이 나왔어요. (웃음) 그런데 똑같지 않은 모양과 크기가 나오는 게 더 재밌는 것 같아요. 

색깔도 크기도 취향이 진짜 달라요. 허니쟈를 좋아하건 비슷한데, 그 안에서도 세분화된 취향이 나와요. 저는 실을 엄청 쨍한 색깔을 골랐거든요. 제 꺼는 다 자메이카라고 불렀고요. 어떤 분들은 분홍색 파스텔톤을 쓰기도 하고요. 


나영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구성원들이랑 비슷해요. 뜨개질 좋아하고 말 잘 통하는 부분이 있는데, 또 보면 다 한 부분은 다르잖아요. 그게 재밌는 것 같아요. 같은 허니쟈를 뜨더라도 제각기 다른 모양이 되는 것이요.



모임은 어떻게 진행하시나요?


소연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에 두 시간을 모여요. 아까 말한 해방촌 가게의 큰 테이블 하나에 모여서 다 같이 두 시간 정도 뜨고 나머지 공부가 필요하신 분들은 한 시간씩 더하고 동영상 찍어가는 식으로 해요.

손 엄청 빠르신 분은 첫 모임하고 다다음날에 완성해서 여기에(카톡방에) 올리신 거예요. 


나영 둘 다 진짜 충격받았어요. 할머니는 몇 개월 걸리셨다고 알고 있거든요. 


소연 저는 이 분이 다 완성했으니까 이제 안 오시면 어떡하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분이 뜨개질을 업으로 말고 모임으로 하고 싶어서 와보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러고 나서는 나머지 실로 사이즈를 조금 줄여서 뜨거나, 무늬를 넣어서 두 번째 허니쟈를 뜨셨고, 지금 세 번째 것을 뜨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저는 두 번째 사이즈 줄인 것을 보고 따라서 뜨고 있어요. 계속 나오시고 계세요.


처음에는 진도를 맞춰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몇 단까지 떠오자고 했거든요. 그런데 하다 보니 진도를 굳이 정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자기 패턴 따라서 가다 보니까 지금은 절반 이상은 완성을 했고, 한 두 분 정도는 마무리 단계까지 왔어요.




모임을 하며 인상적인 날들이 있었나요?


소연 지난주에는 하정 작가님 집에서 모여서 뜨개질을 했는데, 너무 좋았고 재밌었어요. (작가님이) 고양이를 기르시는데, 다들 책을 읽고 인스타에서 작가님을 팔로우하니까 우리 모두 작가님 고양이를 다 아는 거예요. 고양이가 실질적인 주인공이었고 다들 한 번씩 만져보고 다 같이 사진 찍었어요. 저희가 같이 앉아있고 고양이가 뒤에 창문에 있는 걸로요. 재밌었어요.


나영 원래 하정 작가님 댁에 제일 마지막 주에 가려고 했어요. 기념으로 특별하기도 하고, 작가님은 뜨개질을 안 하시는데 우리 하는 동안 심심하니까 다 뜨고 가자는 멤버도 있었고요. 작가님한테 인스타로 물어보니까 작가님이 허니쟈는 선물 받은 거라 어떻게 뜨드는지 본 적이 없다고 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허니쟈를 뜨는 동영상을 찍어서 아네따 할머니한테 보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가서 덴마크에 계시는 아네따 할머니한테 보낼 동영상을 찍었어요. ‘한국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당신의 디자인으로 뜨개질을 하고 있어요’하고요. 그게 진짜 재밌었어요. 뭘 하고 있는지 설명하는 게 약간 부끄러웠지만요. 저희가 웃었던 순간이, 손 빠른 분 뜨개질을 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는데, 아네따 할머니가 보면 진짜 놀라실 거라고 했어요. 이 속도와 열정에요. (웃음) ‘할머니가 뜨개질 그만두면 어떡하지?’ 하면서 찍었어요. 동영상을 찍어서 할머니 따님한테 보내면 따님이 할머니한테 전달하는 방식인데, 다음 모임쯤 되면 답이 오지 않을까 해요.



작가님과 할머니와도 계속 소통이 가능한 게 신선하더라고요.


소연 작가님이 소통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으세요. 사진을 써도 되는지 여쭤봤을 때 얼마든지 다 갖다 써도 된다고 하시고, 집에 놀러 갔을 때도 책에서 본 것 같은 예쁜 아이템들이 많이 있었는데 사람들에게 (사진을) 많이 찍고 많이 올려달라고 얘기하셨어요. 그 전날 작가님 집에서 북토크를 하셨는데, (북토크에) 참여하셨던 분을 초대하신 거예요. 같이 뜨개질 모임 하는 걸 구경하자고요. 저희는 뜨개질을 하고, (그 분은) 궁금해서 왔다고 하시고, 서로 인스타그램 친구 맺고 놀러 가겠다고 하고...


나영 작가님 자체가 되게 오픈마인드고, #연결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작가님도 저희가 이렇게 하는 게 재밌으시대요.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웃음) 


소연 좋아하시니까 초대도 하시는 것 같아요. 모임에서도 작가님 만난다 그러니까 눈이 반짝반짝 빛났어요.

 

나영 저희 멤버 중에 인스타그램도 열심히 하시는데 후기에 쓰셨더라고요. 원래 작가님 팬이었고 멀리서 고양이 키우는 것도 알기만 했는데 ‘내가 작가님 집에서 허니쟈까지 뜨다니 뭔가 대단한 걸 해낸 것 같다’고 쓰신 거예요. 너무 귀엽잖아요. 작가님 집에 갔던 것을 다들 설레 하고 재밌어했어요. 



① 일상의 꿀단지 : 허니쟈 이야기 에 이어

② 일상의 꿀단지 : 그럼에도 모이는 이유 편으로 이어집니다.



인물사진 가정책방 사진 덴마크에서 온 허니쟈

인터뷰 에린 녹취 지수 편집 햇님/에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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