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CE 무중력지대 성북의 공간지기 준성, 지수, 햇님의 소식
무소식은-
무지랑을 기점으로 사람·커뮤니티·장소 등 주체적 청년 생태계 소식을 담아냅니다.
인지하지 못했던 당연한 것들의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무소식 0호 티이-져 : 무중력지대 성북을 지키고 채웠던 당연한 것들
공간을 매일매일 지키는 사람들이 있어요.
월요일부터 토요일, 저녁 10시까지.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티 나지 않는 수많은 일을 하는 분들이에요.
무지랑의 하루 중 마지막을 책임지는 공간지기 준성님, 지수님, 햇님을 만나봅니다.
무지랑이란 공간 자체를 모르는 분들이 참 많으시죠. 세 분은 어떻게 무지랑을 알게 되고,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준성 작년에는 베이비시터 일을 했는데요. 마침 시간이 맞아서 그만두고 이 일을 저녁시간에 하게 됐어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하려는 공부를 오전에 하고, 저녁에 일을 할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어서 (이 일을) 하게 되었어요.
지수 작년에 이주민 인권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2019 커뮤니티 지원사업을 통해 무중력지대를 알게 됐어요. 그 때 중간 발표하거나, 블레싱데이를 하거나, 결과발표회를 했던 기억이 저한테 너무 좋았어요. '나중에 이런 곳에서 일해봐도 좋겠다' 막연한 생각을 했었는데, 당시 사업담당자 지구가 공간지기라는 일을 소개해 주어서 지금의 일을 시작했어요. 저도 시간이 괜찮고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해보기로 했죠.
햇님 저는 작년에 성북신나의 뉴딜 일자리사업에 참여했어요. 한 해동안 무지랑 사무국원 분들과 교류가 꽤 있었어요. 당시 팀원 중 한분이 작년 12월에 한 달 공간지기를 해서 공간지기에 대해 알게되었어요. 도라한테 혹시 사람이 필요하면 저를 한 번 기억해 달라고 어필했어요. 당시 공간과 관련된 일을 했었어서인지 주인의식 갖고 공간을 꾸려가는 일을 더 하고 싶었거든요. 어필이 잘 먹혀서인지 (2020년) 1월 17일 금요일부터 근무를 시작하게 됐어요.
무중력지대 성북을 소개할 때나 자기 일을 소개할 때 보통 어떻게 하나요?
준성 "청년들한테 열린 공간, 사람들이 쓸 수 있는 공간을 관리하는 일을 한다." 이 정도로 얘기해요. 많이 궁금해하면 "와라, 오면 알 수 있다." 그렇게 설명해요.
지수 서울시에서 하는 청년 지원 사업 중에서 청년들에게 공간을 주는 사업도 하는데, 그 공간을 지키는 일, 관리하는 일을 한다고 이야기해요. 공부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떠들 수 있는 공간도 있고, 카페 같은 곳도 있다고 소개하고, 저도 놀러 오라고 이야기하죠.
햇님 제 주변사람들은 다 무중력지대와 무지랑을 알고 있어요. 왜냐면 제가 다 떠먹였거든요. 아는 사람들한테 무지랑에서 공간지기한다고 이야기하면, 무지랑은 '랑'이 붙으니까 ‘랑’이 들어가는 지역구가 있나 궁금해하기도 해요.
가족이나 부모님한테는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하죠. 그분들은 왜 청년들을 위한 공간이 필요한지는 잘 모르시잖아요. "이곳이 어떤 곳이고 너가 하고 싶은 일이 뭐냐"는 질문을 받아요.
그래서 ‘요즘 취업난이 너무 힘들잖아, 청년들이 경험을 더 쌓을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공간이야. 그래서 청년들한테 이런 공간이 필요해.’ 라고 이야기하고, 그래도 이해가 안되신다면 ‘나이드신 분들도 노인정이 있잖아, 그냥 그런 거야. 그분들도 그분들만의 공간이 필요하고, 우리도 우리들만의 공간이 필요한 거야.’ 그냥 이렇게 말했던 것 같아요.
우리도 우리들만의 공간이 필요한 거야.
무지랑에서 좋아하는 공간이 있거나, 무지랑을 대표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곳이 있다면요?
지수 전 아까도 말했듯이 거실을 좋아해요. 가구들도 너무 예쁘고 배치도 그렇고요. 식물들이 많아서 좋고, 공간이 너무 편안하게 느껴져서 좋아요.
햇님 저는 나무 테라스요. 통로가 다 나무 테라스잖아요. 여길 걸을 때 무지랑 같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다른 공간이나 다른 무중력지대에는 이런 공간이 거의 없어서, (나무 테라스가) 이 곳의 트레이드 마크이지 않나 싶어요. 저희가 방역을 정문 앞에서 바로 했었잖아요. 오른쪽 위를 바라 보면 저기 창이 쭉 있는데, 날씨가 정말 좋을 때 그 창을 보는 게 너무 이쁘더라구요. 방역 데스크에 앉으면 바로 보이는 창이 있는데, 제가 (사진을) 되게 잘 찍었어요.
준성 개인적으로 부엌을 좋아합니다. 밥먹으면서 일할 수도 있고, 사람들을 볼 수도 있고, 이것저것 다양하게 기능적으로 공간을 활용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어요.
햇님 비올때는 비올때 나름대로의 운치가 있어요. 테라스에서는 살짝 물이 고이거나, 축축하거나, 그 위를 걸을 때 조명, 습도, 온도가 다 달라요.
지수 덧붙이자면 월요일마다 계속 회의 했었잖아요. 그때가 봄이었는데, 여기(무중력 지대 안의 벚꽃나무가) 벚꽃 필 때 너무 예쁘더라고요.
공간지기 일을 하는 동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이용자들이 있으세요?
햇님 한 중학생이 테이블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연배가 꽤 되시는 할아버지가 들어오셔서 그 친구한테 수학을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는데 되게 긍정적으로 묘했어요.
여기는 청년공간인데 그 두 분의 나이는 (통상적으로 정의되는) 청년의 나이는 아니잖아요. 어떻게 이 공간을 아셨을까 싶으면서도 (무지랑이) 청년들을 위한 사업을 하고 있지만, 청년 이전에는 청소년이었고 이후에는 노년의 삶을 살 거니까 결국 여기는 모두를 위한 공간이지 않을까? 마을에 사시는 두 분이 정보를 알아서 공간을 사용하시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촉촉해지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죠. 근데 선생님께서 컵을 어떻게 찾는지를 잘 모르셨는지 보이는 스테인리스 밥그릇으로 물을 마시고 설거지를 안하시고 가시더라고요. 저는 그 두 분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지수 한 번은 어머니랑 중고등학생 자녀분이 같이 오셔서 여기서 과외 해도 되냐고 여쭤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상관 없을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여기가 그런 걸 해도 되는 공간인가?’라고 이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를 생각을 했어요. 사실 과외를 못 할 것도 없잖아요.
두 번째는 되게 좋았던 기억인데요. 일반적으로 방문하시는 청년분들이 노트북 작업이나 공부를 하시잖아요. 그런데 두 분이 공예를 하고 계시는 거예요. 목걸이를 만들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너무 좋아 보이더라고요. (그런 활동이) 이 공간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이겠구나 싶으면서, 그분들이 두 세 시간 정도하셨는데 공간에서 활동을 하시는 게 너무 좋아보였어요.
준성 자주 이용하시는 분들의 얼굴은 눈에 익더라고요. 그런 분들이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제가 왔을 때 그 분들이 안 계시면 ‘오늘 안 오시는 건가?’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리고 저번 설날 때 제가 고향에 안내려가게 되어서 전날 일을 하게 됐는데 공간에 아무도 안 오시더라고요. 아무도 없어서 (일을 하지 않아서) 좋긴 했죠. 그때가 좀 특별한 기억이었어요.
여기가 그런 걸 해도 되는 공간인가?
공간지기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햇님 청결이요. 사용감이 없는 느낌, 의자도 삐뚤빼뚤하게 있으면 사람들이 그 자리를 피해서 안 쓰시더라고요. 저는 항상 왔을 때 편하게 새 것 같은 느낌, 제 자리에 바로바로 정돈하는 게 공간지기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지수 공간지기가 자리에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이 공간을 처음 오는 사람이나, 이용하는 사람이 어떤 문제가 있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혹은 이 공간에 대해서 알고 싶을 때나 궁금할 때 바로바로 물어볼 사람이 있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리 비울 때마다 뭔가 죄송스러운 마음이 항상 있었거든요. 이 공간을 지속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라는 걸 이용자들이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웬만하면 최대한 이동하지 않고 계속 제자리에 있으려고 했어요.
준성 세 시간 네 시간동안 깊진 않지만 쭉 관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엄청 깊은 관심은 말고, 주의도 아니고요. 어차피 세 시간동안 공간 관리 해야 되니까 그 관심도를 잘 쭉 유지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깊게는 아니더라도 적정량의 주의를 계속 기울이면서 보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코로나때문에 무지랑에서 공간지기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잖아요. 요새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햇님 급하게 (일이) 끊겼을 때 청년청에서 진행했던 긴급 지원금을 받았던 게 큰 도움이 됐어요.
그 뒤로는 활동에 대한 페이를 주는 것 위주로 찾았고,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힘들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로 느껴서인지 구할 시도를 안해봤어요. 카페같은 아르바이트 경력이 더 없으니까 아르바이트 시장에서 더 후순위로 밀릴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도를 더 안했었던 것 같고요. 취업 준비를 해도 시국이 시국인지라 어려웠죠.
지수 저는 짧게나마 학교에서 근로를 계속 하고 있어서, 많진 않지만 무중력지대와 같이 하면 살 수 있는 정도의 수익을 계속 하고 있었어요. 학교는 수입이 끊기진 않아서 계속 들어오고 있었어요.
대신 무중력지대에서 받은 수입이 거의 반, 혹은 없어져서 초반에는 원래 있던 돈으로 살다가, 그 다음부터 힘들어졌을 때는 정부 기금으로 살다가, 근근이 벌어먹고 살다가 (돈이 다시 없어지고) 단기 알바라도 알아봐야되나 하다가 무지랑에서 다른 방식으로 일하게 되어 근근이 버텨 가고 있어요.
준성 저도 근근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별도의 수입활동은 없고요. 비정기적으로 주변사람들 일 도와주고, 단기알바처럼 조금 들어오고 그걸로 근근이 살고요. 대안은 저도 취업을 뭐 알아보는 것 정도..
무지랑을 휴관하게 되고서 같이 공간지기는 뭘해야 할 지 회의했어요. 운영을 다시 하게 되면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 갈 지에 대해서요.
지수 무중력지대 일하면서 바꿨으면 하는 것들 얘기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게 뭘까를 다시 또 고민하고, 이렇게 해 보자고 매주 월요일마다 회의했죠. 그거 외에도 페인트칠하고. 모임방에 커튼도 저희가 다 달았잖아요.
휴관 후에 무지랑에서 지금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또 어떤 느낌인지 얘기해줄 수 있나요?
준성 저는 사무보조 일을 하고 있어요. 빠뜨린 서류가 있나, 이게 맞나 안 맞나 비교하는 작업을 도와서 하고 있어요. 틀린 것만 없으면 된다, 틀리지만 말자는 생각으로 무념무상으로 하고 있어요.
지수 저는 저번주에 무소식 인터뷰 녹취록 푸는 일을 했었어요. 처음엔 한 번 쫙 다 적고, 그걸 다시 문장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었는데, 저는 문장으로 바꾸는 게 쉬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게 더 오래 걸리더라구요. 그대로 타이핑하는 것보다, 맥락에 맞게 단어를 배열하고 문단을 배열하고 고민하는 게 더 오래 걸리더라고요. 만만하게 봤다 싶었죠.
햇님 무지랑에서는 2주에 한 번씩 카톡으로 청년소식을 보내는데요, 노션으로 필요한 정보와 소식을 업로드 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정보들을 보면서 어떤 게 무지랑 친구 분들께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하면서 넣어야 되니까 어렵더라고요. 예를 들어 창업 관련된 정보가 있으면 저는 창업이랑은 거리가 머니까 ‘이 중에서 하나만 해도 되지 않을까?’싶다가도 그런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이 세 개가 다 중요한 정보라면?’싶기도 하죠. 무지랑을 사용하는 청년의 나이대나 위치가 다양하니까 고민들을 하고 있고요.
또 다른 일은 무지랑 인스타그램에 햇님의 일기라는 글을 올리는 거예요. 같이 회의했었을 때 저희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글로 써보자고 제안했는데 저만 하게 된 거죠. 글 안에 제 생각과 가치관이 담기는데, 다른 사람들이 ‘내가 왜 이 사람의 글을 읽어야 되지?’, ‘왜 이 사람의 글이 무지랑을 대표해서 올라오는 거지?’ (라고 생각할까봐) 걱정과 고민을 사서 계속 만들고 있어요.
무지랑이 다시 문을 열게되면 공간지기로서 해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지수 이용자분들이랑 교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대화해 보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고, 이 공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들어 보고 싶고요.
저랑 준성님이 회의를 하면서 이용자들이랑 좀 더 소통해보자, 그러면 뭘 할 수 있을까 라고 했을 때 지도를 벽면에 크게 걸어서 각자가 어디 사는지, 내가 좋아하는 지역은 어디인지, 내가 좋아하는 식당을 소개해주거나 그런 것들을 포스트잇 같은 걸로 붙일 수 있게 하자고 해서 지도를 같이 제작했었거든요. 이용자분들이 실제로 와주셔서 하나 둘 씩 붙여 주신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준성 이하동문입니다. 지금은 공간 이용자들이 저희나 공간을 어려워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그 어려움이 해소되면 나중에는 반대로 "이제 그만 소통하고 싶습니다, 우리만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말하게 되지 않을까요?
본인의 삶에서 바람이 있나요? 지금의 본인이 하고 있는 일과 연관이 있나요?
준성 잘먹고 잘사는 거요. 꿈꾸는 게 있다면, 동네 사람들이랑 많이 친해지고 살아가면 좋을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이 있어요. 집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많으면 확실히 좋은 부분이 많거든요. 귀찮은 부분도 많고 힘든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지나면서 긍정적인 부분들이 많은데 한정적인 공간이 아니라 점점 넓어져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아는 사람들이 모여살아도 좋고, 점진적으로 동네사람들을 알아갈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구요.
지금 제 상황과 연관시키자면, 결국 저의 삶이 안정적이고 저의 삶의 중심이 잡혀야 점차적으로 넓혀 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안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일단 잘 먹고 잘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런 과정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지수 집을 짓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사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항상 이야기해요. 저는 집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편안한 공간을 추구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언제 편안함을 느끼는지, 어떨 때 안정감을 느끼는지를 자주 고민하는데, 안정되고 안전한 공간에서 안정되고 안전한 사람들과 함께 같이 삶을 꾸려 나가는 게 저의 최종 꿈이자 목표인 것 같아요.
그게 무지랑과 충분히 연관될 수도 있죠? (웃음) 최대한 저의 의견이 많이 반영될 수 있는 집을 갖고 싶어요.
햇님 저도 잘 먹고 잘 살면서, 저를, 그리고 제가 원하는 사람, 저를 이해해 주는 그런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코로나 때문에 계속 가족과 같이 가까이에 있어야 하니까 가족에 대한 생각을 많이하는데, 내가 선택해서 가족을 꾸려 나갈 수 있고 그 사람들이 나를 온전히는 아니어도 이해할 수 있고, 서로 정서적 지지를 해 줄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 사람들과 계속 만나고 싶고, 만날 수 있는 장을 계속 만드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리고 다들 덜 아프게, 정서적이나 신체적이나 덜 아픈 사회가 될 수있도록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진 가정책방
인터뷰 에린, 녹취 지수, 편집 햇님/에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