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무소식은ㅡ
무중력지대 성북을 기점으로 사람·커뮤니티·장소 등 주체적 청년 생태계 소식을 담아냅니다.
인지하지 못했던 당연한 것들의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무소식 3호 : PEOPLE
'이틀'(전종원)은 다양한 재능으로 프리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입니다. 현재 가정책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2020년 무중력지대 성북의 소식지와 한해살이 보고서의 기획, 디자인을 함께 했습니다. 요새는 거의 넷플릭스, 유튜브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이틀의 자유로우면서도 계획적인 일상 속으로 초대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가정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이틀이라고 합니다.
근황이 궁금해요.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
요즘 일이 없는 시즌이라 계속 쉬고 있어요. 배우고 싶었던 거 배우고, 글도 쓰고 있지만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네요.
어떤 걸 배우고 계세요?
어머니께서 소뇌위축증이라는 병과 지내고 계세요. 운동기관을 담당하고 있는 뇌 부분인데, 점차 기능을 잃어가는 거죠.
저도 대비를 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이와 관련된 공부도 하고 단체 활동도 하고 있어요. 돌봄을 하는 사람의 태도 등에 대해서 공부를 한 적은 없어서 저를 위해서라도 배우고 있어요.
이런 내용이 인터뷰에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저는 오히려 이런 내용이 들어갔으면 좋겠네요. 다 써도 돼요 제가 말하는 거.(웃음)
벌써 2021년의 1/3이 지났지만 새해를 시작할 때 어떤 준비를 했나요?
저는 매년 키워드를 정하는 편인데, 올해는 '정리/정돈'이에요.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의 많은 일들을 해왔는데, 이제는 그것들을 하면서 느낀 점을 잘 정리하고 싶어요. 저한테 좀 더 자연스러운 일의 형태나 삶의 방식을 찾고 싶어요.
삶의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힘에 부쳐서요. 제가 이제 본격적으로 돌봄 활동도 해야 하는데, 여러가지 일을 하는 게 저한테 즐거울 때 보다는 괴로울 때가 많더라고요. 앞으로는 그런 면에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일도 가려 받으실 예정인가요?
일은 원래 가려 받았어요.(웃음)
일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요?
첫 번째로 돈, 두 번째로는 나쁜 일이 아닐 것. 제가 동의하는 일이어야 해요. 그게 다예요.
물론 가끔은 돈 보다는 하고 싶어서 하는 일들도 많아요. 『무소식』도 그렇고.(웃음)
『무소식』을 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제게 돈 되는 다른 일들이 많아서였어요. 이 경험을 통해서 얻는 게 분명히 있었고.
맞아요. 작년에 『무소식』과 『한해살이 보고서』를 함께 작업했잖아요. 이틀에게는 어떤 경험이었나요?
첫 번째로는 한 단체와 긴 호흡으로 일한 게 오랜만이었어요.
주로 짧은 단위의 프로젝트나 제한적인 역할 수행을 많이 했는데, 『무소식』은 조금 더 주도적인 경험이었어요. 주어진 역할도 많고 해야 할 일들도 많았으니까요.
이렇게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건 저를 신뢰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고마운 마음이 가장 큽니다.
두 번째로는 인터뷰어를 오랜만에 했어요. 예전에 독립출판으로 인터뷰 잡지를 만든 적이 있었는데, 제가 여전히 사람들 이야기를 직접 담는 '인터뷰'라는 형식에 관심이 있다는 걸 상기시킬 수 있어 좋았어요.
무중력지대 성북과 작업하며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한 가지씩 꼽는다면?
좋았던 점은, 코로나 단계가 격상됨에 따라 인터뷰 진행 방식과 디자인 요소가 조금 변경되었어요. 대면에서 서면으로, 사진에서 일러스트를 바뀌었죠. 이에 따라 몇몇 문제가 생겼는데 우선순위에 따라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어요.
기획이나 소통이 견고하지 않았으면 제대로 된 결정을 못 내렸을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다른 무소식 제작에도 악영향을 미쳤겠죠. 그런 부분에서 좋은 경험이 되었어요.
아쉬웠던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비대면을 기준으로 기획을 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제가 사진을 찍고 싶어서 욕심을 냈죠. 죄송합니다.(웃음)
기획부터 디자인, 편집 등 많은 역할을 하셨는데, 어떠셨나요?
많은 역할을 했지만 충분히 했는지는 모르겠네요.
어떻게 보면 바쁘기도 했고, 편하기도 했어요. 그 결정권도 저한테 있는 거잖아요.
스스로 결정해서 빨리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통에 대한 부담은 많이 줄었어요.
처음에 말씀하신 것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해오셨잖아요. 그동안 어떤 일, 활동들을 해왔나요?
사진도 찍고 문화기획 일도 했어요. 최근에는 강화도에서 '화도 공간'이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죠. 그것도 3-4년 된 것 같네요. 지금은 가장 돈 되는 디자인만 하고 있어요.(웃음)
디자인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전공을 한 건 아니었고 충무로에 중부여성발전센터라는 곳 있어요. 거기서 한 3개월 배웠어요. 하다 보니 생각보다 재밌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재밌어하는 모습만으로도 "해봐."라고 제안을 해주는 고마운 분들이 많았어요. 그렇게 성장했고 그 경험으로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서로 전혀 다른 분야의 일처럼 보이기도 하고 연관된 분야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동안의 일들을 관통하는 주제나 맥락이 있나요?
일단은 제가 그 많은 일을 해왔다는 걸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몰랐어요.
스스로를 잘 몰라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운이 좋게 기회가 주어졌고 ‘그럼 해볼까나’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래서 일관된 주제나 맥락 같은 건 당연히 없었어요. 다만 지금 생각해 보니 모두 ‘이야기를 발견하고 엮는 일’이었던 것 같네요.
그동안 해왔던 일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최근 SNS에 작업물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 중 『왕골』이라는 책이 있어요.
강화도에 ‘화문석’이라는 직물이 있는데, 그걸 제작하는 장인을 찾아가서 인터뷰하고 일상을 기록하는 작업이었어요. ‘화문석’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작물(왕골)을 재배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 사람의 전 생애를 담았죠.
온전히 한 사람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작업을 평소에 할 기회가 없었어서, 그 경험이 기억에 남네요.
일을 할 때 자신만의 철칙이 있나요?
마감을 지키자. 물론 철칙이라고 무조건 지켜지는 건 아닙니다만.
그리고, 저녁에 오는 메일은 다음날 답장한다.
프리랜서로서 프로젝트를 끝내고, 다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시작과 끝의 반복일 것 같아요.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은 어떤가요?
일의 시작과 끝에는 무뎌진 것 같아요. 다만 생활 속에 항상 일의 자리를 남겨 두죠.
아침에 글 쓰고 점심엔 산책을 하는 기본적인 루틴 몇몇을 제외하곤 보통 방바닥에 누워있어요. 일이 있을 땐 이 시간에 일을 하죠.(웃음) 이렇게 지내다 보니 일이 있냐 없냐에 따라 제 생활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프리랜서로 지내는 건 만족스러워요. 제가 원하는 걸,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어요.
아침에 카페에서 글을 쓰고 점심에 효진이(아내)와 산이(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게 저에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런 무던함이 신기해요. 불안감이 찾아 올 때는 없나요?
물론 불안한 순간이 많았어요. 예전에는 그냥 이유 없이 불안했던 것 같네요.
지금도 문득문득 그럴 때도 있지만 언젠가는 또 일이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어요. '곧 일이 들어오겠지 뭐.' 하는.
또,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가 많이 사라진 탓도 있어요. 그만큼 실망과 불안도 많이 사라졌고요. 그래서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지금 그게 좋아요. 너무 기대하고 설레 하지 않는 게.
글을 아침에 쓰는 이유가 있나요?
방해 받고 싶지 않아서, 온전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요.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때, 아무도 없을 때 카페에 가서 글을 써요. 평소에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요. 좋기만 한 건 아니고 단점도 있어요.
일단 굉장히 피곤해요, 낮잠도 자줘야하고……. 집 근처 카페가 아침 8시 30분에 문을 여는데, 그전까지 스트레칭도 하고 음악도 듣고, 아주 개인적인 시간을 가져요.
일과 일 사이의 여백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저는 보통 2월부터 8월까지 일이 없고 8월부터 1월까지 일해요. 그때 바짝 벌고 끝나고 여행 다니고. 코로나 전까지는 일이 없는 기간에 한 3주 정도는 해외에서 지냈어요.
지금은 그럴 수 없어서 거의 방바닥에 누워있어요. 다만 너무 오래 누워 허리가 아프다 싶으면 뭔가를 배우기도 하고 친구를 만나기도 합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상황과 거리를 둘 수 있다는 점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일 할 때만 해도 힘들고 버거울 때도 많잖아요. 일단 이 상황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돼요. 잘 도망쳐야 한다는 주의라서 정기적으로 도망을 가죠.(웃음)
여행지를 선별하는 기준은?
바닷가 근처여야 하고, 사람이 없어야 해요. 주변에 느낌 좋은 카페가 있으면 좋고.
'가정책방'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어떻게 지어진 이름인가요?
사실은 집에 책이 많아서 친구들이 예-전에 붙여준 별명인데, 마음에 들었어요.
집에서 일하기도 하고 책도 많으니까 사업자명을 '가정책방'으로 냈어요.
'가정책방'은 이야기를 다루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 수단이 지금은 기획, 디자인, 사진인 거죠. 앞으로의 수단은 어떤 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가정책방’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선명하고 깨끗한 마음이에요. 누군가를 탓하거나 억울한 마음을 키우지 않는 것. 제가 프리랜서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고 지속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금 내가 일을 받지 않거나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모든 데에는 이런 '선명하고 깨끗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이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아무 생각 없었지만요.(웃음)
스스로 정의하는 '이틀'은 어떤 사람인가요?
꾸준히 하는 사람, 일찍 일어나서 일찍부터 피곤한 사람.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올해 목표는 편지 4 통과 글 한 편을 쓰는 거고
계획은 매일매일 카페에 가는 것, 계절마다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발행 무중력지대 성북
해당 인터뷰는 정부 방역 지침을 준수하며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