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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중력지대 성북 May 29. 2021

작은 '용기'면 충분해요 : 순환지구

#PLACE

무소식은ㅡ

무중력지대 성북을 기점으로 사람·커뮤니티·장소 등 주체적 청년 생태계 소식을 담아냅니다.

인지하지 못했던 당연한 것들의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무소식 3호 : PLACE


제로 웨이스트 샵 '순환지구'를 운영하고 계신 진경 님. 무중력지대 성북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이 곳이 오픈한 지 벌써 두 달을 맞았다고 합니다. 직장인 모두의 꿈이라는 퇴사와 함께 새로운 첫 걸음을 내딛으신 용기! 그 과정을 조명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성북구 동선동에 위치한 작은 제로 웨이스트 샵, '순환지구'의 김진경이라고 합니다.


인터뷰 요청받고 어떠셨어요?

조금 많이 쑥스러웠어요. 사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내가 인터뷰를 해도 되나?' 이런 생각도 들고.(웃음)


'순환지구'를 소개해주세요.

'순환지구'는 최소한의 쓰레기 배출을 위한 무포장 식재료와 세제 및 환경 친화적인 생활용품을 파는 상점입니다. 용기를 가져와서 필요한 물건을 포장 없이 원하는 만큼만 담아갈 수 있는 가게라고 보면 돼요.


여러 캠페인에 참여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신지 소개 부탁드려요.

3월과 4월 2번에 걸쳐서 '녹색연합''알맹상점' 등 여러 환경에 관심 있는 단체가 모여 진행했던 화장품 용기 개선 및 등급제 표시를 요구하는 '화장품 어택' 캠페인에 수거 공간으로 참였습니다. 


지금은 '순환지구' 같은 무포장 가게들이 다 함께 올바른 리필 문화 확산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어요. 일부 대용량 제품들에 성분, 원산지, 유통기한 같은 정보가 누락되지 않도록 제대로 표기하고 위생이나 재사용 용기의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가게들의 약속, 깨끗이 세척하고 건조한 용기에 리필하고 소비 표시사항을 확인하겠다는 소비자들의 약속 같은 거예요. 또 자원순환을 위해 플라스틱 병뚜껑, 양파망, 크레파스를 모아  상시적으로 업사이클 업체로 보내 재사용되게끔 하고 있습니다.


성북구 동선동에 자리 잡게 된 이유가 있나요?

우선은 집과 가까웠던 게 컸어요. 가게가 제 생활권 안에 있어야 재미난 일들을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위치상으로도 제로 웨이스트 샵을 냈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려면 가장 수요가 많은 연령대와 1인가구가 많은 지역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학교 근처를 후보에 올렸고, 마침 예산에 맞고 동네 분위기와 이웃 가게들이 마음에 드는 공간을 만나게 되어 이곳에 자리 잡게 되었어요.


주변 대학교 학생들이 많이 오나요?

조금씩 소문을 타고 오는 편이에요. 오픈 초기에 성신여대 사회과학부에서 오셔서 제휴 관련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줍깅'과 플라스틱 병뚜껑 10개를 모아 오면 칫솔로 바꿔주는 이벤트들을 제안했어요. 그걸 계기로 많은 학생분들이 알음알음 찾아오시는 것 같아요.


제로 웨이스트 샵, 순환지구


'제로 웨이스트'를 처음에 어떻게 접하게 되었나요?

언제 처음 접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독립해서 1인가구로도 살아보고 여럿이 셰어 해서도 살아봤는데, 슈퍼에서 식재료를 사면 다 먹지 못하고 버려지는 경우가 너무 많았어요. 또 생수를 사 먹거나 하면 일주일만 돼도 작은 평수의 집에 감당 안 될 정도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생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이런 쓰레기 배출을 줄일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찾으며 접하게 된 것 같아요.


진경 님의 주변 분들도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고 있나요?

개인적으로 강요는 오히려 독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옆에서 먼저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연스럽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물론 주변 친구들도 엄청난 활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환경에 관심이 많아요. 그중 한 명이 저를 '알맹상점'에 데려갔어요. 그때 “이런 공간도 있구나.”하며 충격을 많이 받았었어요. 이렇게 실천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는 점에서요.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것과 '제로 웨이스트 샵'을 차리는 것은 너무나도 큰 결심의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가게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원래는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면 캠핑장이나 게스트하우스를 차리고 싶었는데요, 지난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어요. 상황은 심각해지고 일은 줄어들면서 '내가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뭘 해야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을 하던 중에 '알맹상점'을 통해 '제로 웨이스트 샵'이란 곳을 처음 만나게 되었어요. 이런 가게를 하면 내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준비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의외로 성북구에 제로 웨이스트 샵이 빠르게 생기지 않았어요. 인터넷 주문을 하지 않고, 직접 소분을 하러 방문하고 싶어도 거리가 너무 머니까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스스로 마음을 먹어도 실천할 수 있는 자리에 가게가 없어서 포기하게 되는 게 싫고, 또 그런 분들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차리게 되었어요. 


'순환지구' 오픈 과정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켜보았어요. 준비 기간과 초창기 이야기를 조금 더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일단 가게도 얻지도 않은 상태에서 가게 이름부터 짓고 인스타그램 먼저 대뜸 만들었어요. 

작년 10월쯤부터  전체 추진 일정을 계획했어요. 그리고 가게를 얻는 데드라인을  1월로 잡고 그때까지 공간을 못 찾으면 포기하자라고 생각했고요. 당시 느끼기에 생계를 위해 정해진 시간이 딱 그때까지 였던 거 같아요. 그렇게 예산에 맞는 가게를 찾아다니다 데드라인이 임박해서야 현재 '순환지구' 자리를 발견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바로 계약했어요.


이후에는 정말 순식간에 일이 진행되었어요. 혼자서 인테리어부터 디자인, 사업자등록, 물품 구입까지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해야 해서 조금은 정신이 없었고 '과연 환경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내가 이걸 차려도 되나.'에 대한 걱정이 확 다가왔어요. 오픈하기 전까지 그 걱정에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무서워서.

그래도 '내 가게'라서 그런지 즐겁게 진행한 거 같아요. 그리고 주변 친한 친구들의 도움과 의견들 덕분에 정신줄 놓지 않고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네요. 


어느덧 오픈한 지 두 달이 훌쩍 넘었네요. 짧은 시간이지만 진경 님의 '첫 가게'를 운영하며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이런저런 다양한 경험을 해봤는데도 내 가게 운영이란 건 또 완전히 다른 경험 같아요.

회사 시절과는 다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어요. 그런데 또 온전한 저만의 공간이 생긴 건 엄청 좋아요. 하고 싶었던 것들을 이 안에 다 녹일 수 있다는 점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공간이 살아있는 생명체 같은 느낌이 들어요.

화초에 물을 주면 계속 자라나는 것처럼. 제가 계속 관심을 주지 않으면 안 될 거 같고 매일 신경을 쓰게 되는… 그런 게 재밌어요.


그래서 그런지 공간이 굉장히 따뜻하게 느껴져요.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찾아오도록 인테리어에 약간 더 신경 썼는데, 그렇게 보이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옛날 구멍가게라던지, 오래된 잡화점 같은 느낌이 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방문했을 때 어색하지 않고 편하게 구경해도 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서요. 구석구석 둘러보면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물론 자금 때문에 아직 완성하진 못했지만요.(웃음)


순환지구의 내부


'순환지구'를 운영하며 어려운 점도 있나요?

아직도 물건 선택하는 게 어려워요. 성분도 잘 모르겠고 용어도 어렵고. 계속 공부하고 있어요. 

또 물건들의 유통기한이 가까워졌는데도 다 안 팔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어요. 곡류 같은 건 제가 먹겠지만 또 먹는데도 한계가 있다 보니. 버려지게 될까 봐, 오히려 내가 쓰레기를 만드는 게 아닐까 걱정이 돼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그래도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런 적은 없었어요.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빨리 오셔서 사주셔야 합니다.(웃음)


'순환지구'를 운영하며 인상적인 순간이 있나요?

가게 오픈할 때 인스타그램에서 “성북구에 차려줘서 고맙다.”는 댓글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처음에는 '먹고살려고 가게 차리는데 왜 자꾸 나한테 고맙다 하지?' 하고 의아하고 민망하기도 했어요. 식당을 차린다고 누가 와서 "우리 동네에 차려줘서 고마워요~"라고 하지는 않잖아요.(웃음)

살면서 어떤 일을 했을 때 이런 응원을 받아 본 적이 있나 싶어 져서 책임감을 좀 더 많이 갖게 되었어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인근에 거주하시는 어르신들도 많이 방문하시나요?

엄청 걱정을 많이 해주고 가세요. 다들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어휴, 돈도 안 되는데 좋은 일 한다."(웃음) 

또 처음 오셨을 때 가게 이용방법을 알려드렸더니, 실제로 용기를 들고 물건 사러 오신 어르신도 계세요.


윗세대와 공감하며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희 엄마만 해도 제가 이런 가게를 하니까 본인도 변화하시려는 거 같아요. 설거지 비누는 어떠냐, 자기도 보내달라 하신다던지. 멀리 사시는데 곡식도 저한테 사려고 해요. 매출 올려주려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웃음)

어쨌든 어르신들도 자식들이 행동하는 걸 보면서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시고 되고, 따라서 실천하게 되시는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강요하고 잔소리 들으면 하기 싫어지잖아요.


생각해보면 옛날에 배달음식을 시키면 플라스틱 용기 같은 게 나오잖아요. 그러면 집안 어르신들이 그거 다 나중에 쓰려고 모아놓고 그러셨어요. 그때 그런 행동이 나름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판매되었을 때 특별히 기분 좋은 제품은 무엇인가요?

식료품인 것 같아요. 

양이 너무 많아서 유통기한이 지날 때까지 다 못 먹고 버려질 걸 알아서 먹고 싶은데도 포기하게 되는 경험이 있잖아요. 그런 마음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곡류나 후추 같은 걸 조그만 병에 사서 담아가는 분들을 보면 "아, 저분은 저거 딱 한 두 끼에 다 먹어서 버려지는 게 없겠다.", "일체의 낭비나 쓰레기가 생기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비유를 들자면, 누군가 내가 차려준 요리를 맛있어서 하나도 남김없이 깔끔하게 다 먹었을 때 느끼는 그런 종류의 쾌감이 들어요. 식료품 팔 때.(웃음)


입점하는 제품을 고르는 진경 님만의 기준이 있다면?

내 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들. 집에 이미 있는 것들을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제품들. 초기에는 제가 써 본 것과 일반적으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제품을 위주로 들여놓았어요.


행주 같은 경우는 성북구에서 제작하시는 분을 우연히 찾게 되었어요. 제품을 검색하다가 주소를 봤는데 저희 집과 가게 중간지점에 그분 작업실이 있더라고요. 최근에는 옻칠 수저를 만드는 지역 목공방을 발견했어요.  앞으로는 이렇게 성북구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제품들과 사회적기업, 공정무역 등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곳들의 제품을 선별해서 들이고 싶어요.


진경 님이 사용해보신 '최애' 제품 하나만 추천해주세요.

천연 수세미요.

처음 썼을 때 진짜 충격이었어요. 사실 거품이 잘 안 날 줄 알았는데 아크릴 수세미처럼 거품도 잘나요. 그리고 아크릴 수세미는 탄 냄비를 닦고 나면 까맣게 변해서 아무리 빨아도 색이 잘 안 빠지잖아요. 결국 더 사용할 수 있는데도 더러워 보이니까 버리게 되거든요? 그런데 천연수세미는 기름을 안 먹고 색깔이 물들지 않아요. 물로 한번 헹구면 원래대로 돌아와요. 그래서 처음에 너무 신기했어요. 추천해요.


순환지구에서 판매 중인 친환경 상품들


'순환지구'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다른 데서 하는 것들 다 하고 있는데…(웃음) ‘공유공구’도 특징이 될까요?


공구 공유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살면서 자연스럽게 느꼈던 부분인 것 같아요.

제가 오래된 집만 골라서 살았는데요, 그때부터 집안 이곳저곳을 고치게 되면서 공구를 사게 되었어요. 당시에도 한 번 쓰고 안 쓸 텐데 이걸 꼭 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어요. 다른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을 것 같았고요.  '그럼 이미 있는 걸 같이 나눠 쓰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가게를 차리면서 맨 먼저 공구 공유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공구 공유를 비롯해서 공간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하셨잖아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 게 있나요?

'순환지구'에 뒷마당이 있어요. 이 공간을 활용해서 무언가 해보고 싶어요.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건 아니지만, 문화예술일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있는데 그분들과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순환지구' 공간에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네에서 심폐소생술 배우기나 공구 다루는 법 같은 프로그램도 하면 재밌겠네요.


그리고 옛날부터 마켓을 하고 싶었어요. 중고 거래 마켓 같은 것도 하고 싶어요.


'순환지구'가 커뮤니티 공간이 되길 바라는 것 같아요.

맞아요. 그렇다고 제가 또 커뮤니티를 엄청 하고 싶은 건 아닌데요.(웃음)

이 안에서 그런 것들이 소소하게 펼쳐지는 것을 꿈꾸고 있어요. 평소 이런 데 참여할 기회가 잘 없는 분들이 함께해서 즐거워지면 좋겠어요.


스스로 정의하는 '순환지구'는 어떤 공간인가요?

옛날 동네 구멍가게 앞에 평상 같은 곳.


앞으로 '순환지구'를 어떤 공간으로 만들고 싶으신가요?

동네 사람들이 편하고 자연스럽게 모이는 공간이 되고 싶어요. 단순히 물건만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지나가다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정보 교류의 장이 되기도 하는.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는 교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글을 읽고 계실 분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용기와 장바구니 들고 방문해주세요.(웃음)




발행 무중력지대 성북

해당 인터뷰는 정부 방역 지침을 준수하며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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