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무소식은ㅡ
무중력지대 성북을 기점으로 사람·커뮤니티·장소 등 주체적 청년 생태계 소식을 담아냅니다.
인지하지 못했던 당연한 것들의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무소식 3호 : ESSAY
박현아, 「가족애 발견 연대기」
진부하고 틀에 박힌 이야기이지만 나에게도 가족이 생겼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약간은 희생할 수 있고, 언제든 위로를 구할 수 있고, 싸웠다가도 금방 화해할 수 있는 진짜 가족이. 가족애가 유니콘의 존재보다 더 신기하게 여겨졌던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찾아오다니. 기이해서 글로 남긴다.
이야기의 발단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어머니가 임신 소식을 알렸다. 중3이었던 나는 놀라 자빠지고 말았다. 이 나이에 내가 동생이 생긴다는 건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수련회 전날 아기가 태어났고 나는 수련회에 가서 온종일 울었다. 왜 울었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당황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중학생 때는 신기했던 아기가 고등학교에 가니 밤에 울어서 공부를 방해하는 물체가 됐다. 그 아이가 마냥 곱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나는 수험생인데도 집이 아기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나는 맛없는 걸 먹으며 컸는데 지금은 맛있는 걸 죄다 아기한테 양보해야 했다. 넌 왜 이렇게 이기적이냐고 4살짜리 애한테 핀잔을 줬다가 애를 울린 적도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기가 이기적인 건 당연한 건데, 나는 맘 편히 이기적일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 박탈감을 느꼈던 것 같다.
대학에 가고 나서는 밖으로 나돌았다. 15살 차이 나는 갓난아기 여동생, 같은 집에 살지만 몇 년째 말 한마디 섞지 않는 아버지, 서로 투명인간 취급하는 남동생, 아버지와 막냇동생이 삶의 중심인 어머니, 생각만 해도 마음이 답답했다. 가족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일주일 동안 집에서 한 끼도 안 먹은 적도 많았다. 그 와중에 아기는 가족 그림을 그리고 가족사진을 벽에 붙여 놓고 했는데, 거기엔 항상 내가 있었다. 말도 몇 번 안 해봤는데도 그 애에게 나는 가족이었다.
그 애를 보면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나는 연년생이라 거의 방치당하다시피 자란 데다가 엄격하게 커서 나 자신에게 가혹해지지 않기 위해 오래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아기는 늘 넘치도록 애정과 관심을 받았고 관대한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다. 그 결과 그 애는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랑둥이'가 되었다. 자기 자신에게도 남들에게도 여유 있었고 감정표현에 스스럼이 없었다. 그게 너무 부러웠다. 정말 사랑스럽고 귀여운데, 내가 가질 수 없었던 걸 쉽게 가졌다는 게 괜히 얄밉기도 했다.
내가 스물다섯 살이 되던 2020년에, 대학 졸업과 동시에 코로나 시국이 찾아왔다. 나는 크게 한번 아파서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집에 있는 건 정말 고역이었다. 방 밖에 나오면 가족을 마주치는 게 싫어서 밤낮을 바꾸기도 했다. 마음이 불편하고 생활습관이 망가지자 병이 더 심해졌고, 궁지에 몰린 나는 결국 그나마 대화 가능하다고 생각한 어머니와 크게 한 판 싸웠다. 그러고 나자 엄마와는 우리의 차이를 어느 정도 인정한 채로 공존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와 공존한다는 것은 아기와도 공존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을 하던 아기는 엄마의 껌딱지가 되어서 24시간을 엄마랑 붙어 있었다. 마냥 갓난아기인 줄로만 생각했는데 어느새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아픈 탓에 앙상해진 나랑 팔뚝 굵기가 거의 비슷했다.
아기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줄 알고 이것저것 물어보러 왔다. 나는 종이접기도 가족 중 가장 잘하고
가끔 만화도 같이 봐줬다.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아기는 맨날 종이접기 책을 들고 와서 종이를 접어달라고 했다. 같이 TV를 보자며 좋아하는 만화가 뭐냐고 물어봤고 그림을 그려준다며 좋아하는 색을 물어봤다. 그 애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내가 베풀어주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런 아기의 마음을 일시적인 환상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종이접기를 해주지 않으면, 내가 만화 얘기를 해주지 않으면 더는 내 방문을 두들기지 않겠지. 어쨌든 아기가 날 필요로 한다는 것에 조금은 우쭐해져서 걔의 요구를 거의 다 들어줬다. 그랬더니 아기는 어느새 내 껌딱지가 되었다.
어느 날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아기가 저녁마다 예능 프로그램을 같이 보자고 날 붙잡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보면서 특별히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닌데 왜 붙잡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기는 나한테 들러붙어 있는 것도 좋아했다. 나한테서 재미를 얻으려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것만이 아니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조그마한 녀석은 날 재운다고 이불을 펴 주기도 했다. 그래서 물어봤다. 내가 너랑 놀아주지 않아도 넌 나를 좋아할 거냐고. 그랬더니 아기는 신기한 대답을 했다.
“응, 놀아줘서 좋아하는 게 아니야. 그렇다고 해서 아예 안 놀아주면 안 되지만…….”
이 애는 날 좋아하고 있었다! 아기의 판단이 뭐 얼마나 명석판명할지는 모르겠으나, 조건부 사랑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던 내게 무조건적 사랑의 가능성은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왜 날 좋아하느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더니 이유는 중요하지 않단다. 아기에겐 날 좋아하는 일이 너무나 당연했다!
운이 좋아서, 내가 착한 아기를 만나서 그런 건가. 인생은 러시안룰렛처럼 운에 맡겨야 하는 건가 생각했지만 사실 따져보면 마냥 그렇지도 않다. 난 아기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고 아기 취향에 가장 잘 맞춰주는 언니였다. 아기가 날 좋아하게 된 건 내가 그 아기에게 먼저 노력했던 공이 크다. 나는 내가 사랑 줄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기에게 사랑받으며 나도 아기를 사랑해주고 있었던 건지 생각하게 됐다. 아기가 웃으면 나도 따라 웃게 되고 그 애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는 게 기분이 좋다. 사실 내가 느끼는 게 무조건적인 사랑인지는 지금도 잘은 모르겠다. 난 그 애의 모든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나한테 따뜻하게 대해주는 그 애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 아이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사이가 틀어지더라도 다시 화해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내가 26살에 알게 된 가족애는 이런 모습이다. 엄청 거창하진 않은데 생각보다 따뜻하고 안락하다.
발행 무중력지대 성북
해당 에세이는 '2021『무소식』생활 수필 원고 모집'을 통해 수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