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CE
무소식은ㅡ
무중력지대 성북을 기점으로 사람·커뮤니티·장소 등 주체적 청년 생태계 소식을 담아냅니다.
인지하지 못했던 당연한 것들의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무소식 3호 : PLACE
사장이 9명이나 되는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상월곡에 위치한 아트라운지 '쌀'의 이야기인데요.
아트라운지 '쌀'은 쌀집이었던 자리에 동네 주민이자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예술 펍입니다. 다만 장사가 너-무 잘돼도 걱정이라는 얼공(이진화)과 끼루(정길우) 그리고 제이(이종찬)의 사정은 무엇일까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얼공 저는 얼공이라고 합니다. 극단 '서울괴담'의 단원이자 음악가로 활동 중입니다. 또 '월장석친구들'을 함께 하고 있고 지금은 아트라운지 '쌀' 멤버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끼루 끼루입니다. 그리고 지역 안에서는 석관예술마을만들기 '돌고돌아'라는 커뮤니티를 친구들과 함께 하고 있고요. '쌀'도 같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이 저는 제이(J)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소개하자면 '글 쓰는 사람'입니다.
아트라운지 '쌀'을 소개해주세요.
끼루 사장이 9명이나 되는 아트라운지 펍입니다.
얼공 '예술가들의 아지트'라고 설명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아직까지 동네에서는 맥주 파는 식당 내지는 이상한 애들이 노는 곳으로 소문이 난 거 같지만요.(웃음)
왜 공간 이름이 '쌀'인가요?
제이 단순하게는 여기가 이전에 진짜 쌀집이었어요. 그 공간에 예술가들이 들어가서 아트라운지 '쌀'이 되었죠. 그리고 먹고사는 것과 예술이라는 게 무관하진 않지만 어떤 긴장관계가 있잖아요. 잘 만나기 쉽지 않은 이 두 가지를 같은 선상에서 논의해보자는 의도가 있었어요. 저 혼자만의 해석은 아닌 거죠?(웃음)
'아트라운지'와 '펍' 두 가지 역할을 하는 공간이잖아요.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나요.
끼루 낮 시간은 다양한 예술 활동이 펼쳐지는 아트라운지로, 6시부터 10시까지의 저녁시간에는 간단한 식사와 맥주를 판매하는 펍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얼공 펍 운영시간은 코로나19 이후에도 유지할 예정이에요. 식당으로 전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낮 시간은 확보해야 된 다고 생각을 해서요.(웃음)
제이 사실 현재까지는 펍을 운영하는데 치중했고, 이제부터는 아트라운지로써의 영역을 고민하고 있는 시기예요. 저희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 작업자들이잖아요. 이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였을 때 어떤 방식으로 시너지가 날까 기대돼요.
운영한 지 얼마나 되었나요?
제이 4월 19일에 오픈했어요. 의도치 않았지만 혁명적인 날에.(웃음)
얼공 원래 4월 1일을 목표로 했어요. 싱크대나 가구 같은 걸 직접 만들고 페인트칠도 스스로 하다 보니 일정이 조금 미뤄졌어요. 작년부터 한 반년 동안 준비했고, 공식적으로 운영한지는 딱 두 달 정도 되었네요.
두 달 동안의 소회를 말씀해주세요.
끼루 조금 익숙해졌어요. 오픈 초반에 저는 다른 프로젝트 중이어서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어요. 그 사이 다른 친구들은 이미 노련해진 상태였기에 그런 차이에서 오는 힘듦이 있었죠. 멤버들한테도 많이 어필했는데 다들 "좀 더 해보자, 곧 익숙해질 거다."라고만 하고.(웃음)
제이 서로 대화가 필요한 거 같아요. 각자가 이 공간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조율해야 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사실 바빠요, 공간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긴 해요.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가보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의견 차이나 갈등은 없었나요?
끼루 저희는 그런 문제나 서로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오픈하는 커뮤니티 같아요. 그래서 저도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고요. 서로 의견을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게 저는 재미있어요.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자체가 좋은 공동체를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이 사실 문제가 아예 없던 건 아니죠. 이 좁은 공간에 9명이나 되는 운영자가 있는 것도 웃긴 일인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안에 이상한 우정의 감각이 있어요. 그래서 갈등이 생길 수 있는 상황들도 큰 문제없이 슬기롭게 잘 해결해나가고 있어요.
끼루 배가 산으로 간다는 건 결국 어디로든 가고 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웃음)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가 9명이 함께 만들고 운영하는 공간인데, 각자 어떤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신가요?
얼공 저는 전통음악, 연희를 전공했어요. 이후에 창작활동을 하며 지역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여기 있는 멤버들을 만나게 되었죠. 왠지 모르겠는데 자꾸 연기를 하게 되고 전시를 하게 되더라고요.(웃음)
제이 문학을 전공했고, 해왔던 작업들은 문화 예술 비평 작업이었어요. 이 동네로 이사온지 이제 5년 차인데요, 조금씩 지역과 가까워지고 있는 시기인 거 같아요. 이전에는 좀 더 보편화된 방식의 예술문학에 대해 이야기해왔다면, 현재는 지역 안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있어왔던 예술 활동과 작업들을 하나 둘 알아가고 있는 단계입니다.
끼루 영상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얼공이 활동하는 극단 '서울괴담'의 연극 작업을 작년부터 다 큐멘터리로 찍는 작업을 일 년 동안 하고 있어요. 평소 '기록'이라는 행위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아트라운지 '쌀' 운영으로 정신없다가 이제야 좀 익숙해져서, 다시 사진과 영상으로 조금씩 남기는 중입니다.
얼공 이밖에도 기획자, 연출가, 회화작가, 배우, 취업 준비생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활동하고 있어요.
그럼 아트라운지 '쌀'에서는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신가요?
얼공 원래는 요리 담당이었어요. 지금은 멤버들 모두 다 요리를 하고 있지만요.
워낙 먹는 걸 좋아하고 음식에 관심이 많아서 메뉴 개발에도 참여했어요.
끼루 얼마 전에 매출을 엑셀로 정리를 한 번 싹 했어요. 사실 걱정을 하는 편이라서 자꾸 이렇게 작성도 해보고 계산을 해보는 거 같아요. 앞으로도 제가 매출 관리를 신경 써서 체크하려 합니다.
제이 참고로 저는 주방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선언을 했어요. 홀 서빙까지는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영역은 힘들다고요. 사실 그런 얘기를 하면 반발심을 가질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멤버들 중 그 누구도 저에게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어요. 각자의 개성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있어요.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저는 역할을 분담하는 개념으로 이해했어요. 저녁시간 펍을 운영하는 현실적인 부분들을 다른 동료들이 주로 고민한다면 저는 그 낮 시간대를 채우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것. 그게 제가 이 공간에서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식이라 생각해요.
얼공 그렇게 제이의 역할이 드러나는 거 같아서 저는 참 좋았어요. 꼭 필요한 역할이니까요. 저희끼리 이 안에서 점점 맞는 역할들을 찾아가는 거 같아요.
예술인들이 함께 모여 공간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얼공 단순히 동업이 목적이라기보다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들 공간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함께 할 공동체가 필요했던 거죠.
제이 그리고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작업하다 보면 밥을 먹어야 하는데 마땅한 곳이 없는 거예요. 그런 데서 필요성을 느끼고 의견이 나왔어요. 우리가 밥 먹을 수 있는 공간을 한번 만들어 보자 해서 주방도 생기게 된 거죠.
예술가들의 아지트라고 설명했지만 우리만의 폐쇄적인 커뮤니티가 아닌 바깥으로 항상 열려있는 공간을 생각했어요. 항상 이 안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만날지, 메시지를 발신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어요.
얼공 펍이라는 방식을 택한 건 이곳이 친구들과 뭔가를 이야기하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어서도 있었죠. 실제로 삼태기마을의 중심지에 아트라운지 '쌀'을 만들면서 주민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저희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내주세요. 여기서 맥주 드시면서 "너희 하는 일은 잘되어 가느냐."이런 얘기들을 해주시기도 하고요.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느낌이 들어요.
공간을 돌보는 방식은 어떻게 되나요?
얼공 초반에는 나올 수 있는 사람들이 다 나왔는데, 인건비도 안 나오는데 너무 많이 나오지는 말자고 해서.(웃음) 그래서 지금은 당번제로 스케줄을 짜서 두 명씩만 나오고 있어요.
원래 음식을 하던 분들이 아닌데, 레시피 개발은 어떻게 하셨나요?
얼공 기왕 우리가 식당을 하기로 했으면 한번 제대로 하자는 마음이 있었어요. 내부에서 단순한 안주거리만 내놓는 건 싫다는 주장이 있었고요, 다들 한 고집하거든요.(웃음)
레시피 같은 경우는, 오픈 준비할 때 저희끼리 음식을 많이 해 먹으면서 메뉴 개발도 하고 연습도 하고 그랬어요. 사실 요리사가 매번 달라지다 보니, 음식 맛이 계속 달라져서 문제이긴 해요.
끼루 그래도 지금은 많이 비슷해졌어요.(웃음)
저녁시간만 식당으로 운영을 하고 계신데, 공간 유지에 어려움은 없나요?
끼루 다행히 적자를 보고 있진 않아요.(웃음) 이걸로 큰돈을 번다는 욕심보다는 그냥 공간이 유지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요. 앞으로도 월세만 나오면 좋겠네요. 이 외에도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마을예술창작소 사업에 선정되어서, 큰돈은 아니지만 안정적으로 공간을 운영하는데 보탬이 될 거 같아요.
낮 시간 운영되는 아트라운지로써는 어떤 활동을 계획 중이신가요?
얼공 저희가 중요하게 여기는 키워드 중 '순환'이 있어요. 생산과 소비뿐만 아니라 환경과 동물, 여성, 노동 등의 이슈를 다루고 있어요. 이 지역 안 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계속 순환될 수 있도록 이 키워드를 가지고 올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또 새로운 커뮤니티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공간을 운영하면서 가장 신경 쓰이는 점은 무엇인가요?
얼공 저는 멤버들의 체력이 걱정돼요. 식당을 하다 보니 아무리 짧은 시간을 운영한다 해도 오전부터 나와서 준비를 하고 마감 이후 정리도 해야 하잖아요. 바쁜 환경에서 지치지 않고 어떻게 잘 조율해나갈지가 고민이 되네요.
제이 저희가 자주 떠올렸던 영화 한 편이 있어요. '극한직업'이라고… 보셨나요? 저희 얘기더라고요.(웃음) 저희는 분명 예술가들의 아지트를 만들고 싶었고 밥집, 술집을 운영하는 것만이 저희 목표는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장사가 너무 잘 돼서, 저녁 펍 시간을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이 드는 거죠. 이게 식당이라는 게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거더라고요.
끼루 저희 네이버 검색하면 맛집으로 떠요.(웃음)
제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걱정 없이 지금까지 해 나갈 수 있는 건, "길게 보고 하나하나 천천히 만들어 나가 보자."라는 동료들의 이야기에 납득이 됐어요. 제가 약간 조바심을 내고 있는 걸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끼루 극한직업도 마지막에 보면 범인을 잡는단 말이야. 우리도 뭔가를 잡는 걸 목표로.(웃음)
예술가와 자영업자, 역할에 따라 느껴지는 차이점이 있나요?
끼루 행위로써 운영과 창작으로는 분리될 수 있겠죠. 공간을 운영하는 것은 완전 현실에 맞닿아 있는 일이잖아요. 정량적인 평가로 판단해야 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어떻게든 빚은 지지 말자는 마음이 있네요.(웃음)
다만 자영업자와 예술가의 삶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트라운지 '쌀'을 운영하는 친구들이 전부 창작자이다 보니, 이 공간을 만들고 꾸려가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 생각해요. 요리도, 운영도 전부 창작의 과정으로 보는 거죠.
얼공 저도 공감해요. 저 같은 경우는 막연하게 시작한 거 같아요. 그냥 친구들하고 여기에 공간을 만들면 새롭고 재밌는 걸 해볼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혼자서는 힘들지만 여럿이서는 할 수 있으니까요. 식당을 하는 그 자체가 우리의 첫 번째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어요.
제이 저는 그게 분리가 안돼요. '돈을 버는 일'과 '내 작업'의 분리가 안 되는 타입이에요. 그 두 가지를 구분 지어서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게 안 되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래서 주방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기 전까지 많은 내적 갈등과 고민이 있었죠.
'숙희'가 너무 귀여워요. 소개 부탁드려요.
얼공 숙희는 아트라운지 '쌀'의 운영견이고 영업을 담당하고 있어요.(웃음) 성격은 차분한 편이지만 고집은 저희 멤버들 중에 가장 센 거 같아요. 낯선 사람을 좋아하지만 바깥에 오래 있으면 조금 피곤해해요. 집에 가면 바로 뻗어요. 지금도 집에 가고 싶어 하는 거 같네요.(웃음)
스스로 정의하는 아트라운지 '쌀'은 어떤 공간인가요?
얼공 '아지트'가 제일 적절한 거 같아요.
끼루 '공동체'요. 좀 더 세련된 표현을 못 찾겠네요.(웃음) 매일 함께 산책하고 밥을 먹는 공동체인 거 같아요.
제이 곧 운영하게 될 프로그램의 이름을 최근에 지었는데요, 아름다울 '미'(美)와 쌀 '미'(米)를 합쳐 '미미살롱'이라고 명명했어요.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지었는데 이 두 단어가 붙어있을 때 그 긴장감과 충돌의 느낌이 너무 좋더라고요. 이 공간이 먹고사는 문제와 예술 담론을 같이 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저에게 아트라운지 '쌀'은 '미미'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얼공 저는 이 동네 토박이거든요, 다른 데로 갈 생각도 없고요. 그저 내가 나고 자라고 곳에서 계속 잘 놀고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요.(웃음)
끼루 저 이 동네에서 친구들을 많이 만나서 너무 좋았거든요. 아트라운지 '쌀'이 계속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앞으로 더 많은 새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이 작년 말에 텅 비어있던 이 공간에서 저희가 전시를 했었거든요. 그 전시회의 글을 제가 썼는데 마지막 문단이 "아트라운지 '쌀'은 아름답게 실패할 것이다."였어요. 그게 목표인 거 같네요. '아름답게 실패하는 것'
발행 무중력지대 성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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