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무소식은ㅡ
무중력지대 성북을 기점으로 사람·커뮤니티·장소 등 주체적 청년 생태계 소식을 담아냅니다.
인지하지 못했던 당연한 것들의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무소식 3호 : ESSAY
이인현, 「안전하고 오래 머물 수 있는 내 집 찾기」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영상을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그러다 집을 짓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올해부터 집을 짓는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결정은 사실 내 안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내가 늘 하나의 긴 터널 속에 있다고 믿었다. 그 터널의 이름은 '안전하고 오래 머물 수 있는 내 집 찾기'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성북구 동소문동 인근에 위치한 다가구 주택 1층이다. 방은 두 개이며 거실과 창고로 쓰는 작은 보일러실도 있다. 부동산에서 소개해 이 집을 처음 봤을 때 거실 한 벽면을 책장이 모두 차지하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부동산에서는 신혼부부가 6년 동안 살다 아파트로 이사 가는 거라고 했다.
"이 집 들어오는 사람 다 잘 돼서 나갔어요."
여자 친구 여름은 집을 구할 때마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바꿔 말하면 이미 잘 된 사람들은 이런 집에 살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각자 서울에서 구했던 집들은 고시원, 반 지하, 원룸이었으며 벌레가 창궐하고 변기가 역류하며 집주인과 머리 채를 잡고 싸워야 하는 집들이었다.
"그 집이 좋겠어."
내가 먼저 집을 보고 와서 이야기하자 여름은 말했다.
"좋아, 다 좋아."
여자 친구 여름, 그리고 고양이 치즈도 같이 살게 될 거라고 부동산에 말했다. 그러자 부동산에서는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말했다.
"고양이 이야기는 집주인한테 하지 마세요. 안 좋아하니까. 말하지 말고 그냥 키워요."
어떻게 보면 부동산에서 배려를 한 것이었지만 집주인에게 치즈의 존재를 들키지 않고 살아야 했다. 그 정도는 이 도시에서 감수해야 할 것이었을까. 중소기업청년전세대출 1억, 부모님에게 받은 8,000만 원, 내 돈 1,600만 원, 여름의 돈 400만 원을 합쳐 가까스로 전세금 2억 원을 마련해 우리는 집에 입주하게 되었다. 물론 전세대출을 받기 위한 지난한 과정과 입주 날까지 대출과 돈이 제대로 해결될까 전전긍긍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역시 잠깐 봤을 때는 알 수 없었던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집이 1층이라 창문을 열어놓으면 건물 밖을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거. 벌레가 자주 안으 로 들어오는 거. 세탁기를 놓는 벽이 옆집과 맞닿아 있어 아주 작은 소리도 다 타고 넘어오 는 거. 그럼에도 나는 행복했다. 언제든지 손이 뻗을 만한 곳에 여름과 치즈가 있다는 게. 우리의 일상은 별다를 게 없다. 우리가 보통 시간을 보내는 곳은 거실이다. 큰 마음먹고 소파를 구매했는데 식탁을 놓을 공간은 없어서 접이식 좌식 테이블을 놓았다. 거기에 앉아 서 같이 밥도 먹고 모니터로 영상을 본다. 여름이 큰 방에 가서 요가를 하면 나는 작은 방 침대에 가서 책을 읽는다. 잠은 따로 잔다. 여름은 작은 방 침대 위에서, 나는 큰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잔다. 각자 출근시간 퇴근시간이 다르니 아침에는 굿모닝 인사만 하고 스쳐 지나갈 때도 있고 밤에는 자고 있는 얼굴에 굿 나잇이라고 말할 때도 있다. 그런 일상들을 보 낼 수 있다는 게 큰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날 내가 살고 있는 집, 옆 호의 주인이 바뀌었다. 앞서 말했듯이 옆집과는 소음 차단이 잘 되지 않아 작은 소리도 어느 정도는 들리게 되어 있는데 새로 이사 온 분은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자주 파티를 열었다. 새로 이사를 와서 하는 집들이겠거니 라고 이해하려 했지만 매주 주말 밤만 되면 웃고 떠드는 소리에 잠을 이루기 힘들 지경이었다.
사회주택을 짓고 운영하는 나의 회사는 층간소음에 관한 그럴듯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서로가 어떤 이름과 얼굴을 가진 사람이며 어떤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공유한다. 그리고 소음에 관한 에티켓과 페널티를 스스로 생각하고 실행하게 한다. 그러나 그런 해결책들을 실행하면서도, 정작 나는 지금까지 그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막상 내게 그런 상황이 벌어지자, 내가 떠올린 층간소음의 해결책들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훨씬 더 치밀하고 정교하게 이미 상한 서로의 마음을 다독여가며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사람과 상황에 따라 해 결책은 천차만별일 수 있음을. 나는 아직 별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지금 떠오르는 생각은 정중하게 쓴 편지를 옆집에 전달할까 생각 중이다.
'안전하고 오래 머물 수 있는 집'을 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자연에 둘러싸인 집이 아닌 이상, 좋은 집에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살아가야 한다면 필연적으로 사람과도 부딪히게 된다. 좁은 토지에 많은 사람이 각자의 공간을 가지고 살아야 하므로. 건축의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반면에 공동생활에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관해서는 별다른 발전이 없었다. 나는 층간소음을 해결하는 좋은 사례를 항상 찾아다니지만 건물의 방음처리를 든든히 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고민한다. 여름과 치즈와 오래 머물 수 있는 안전한 집을 찾기 위해. 이 집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서울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때로는 매우 괴로웠고 힘들었다. 우리는 그냥 이 집에 살게 된 게 아니라 각자의 삶에서 치열한 투쟁을 통해 이곳에 도달하게 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 집은 우리에게 긴 시간을 담보해주지 않는다. 곧 계약기간이 끝날 것이며 계약 연장이 안 된다면 우리는 또 새로운 집을 찾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곳에는 치즈를 숨기지 않아도 될까. 옆집의 소음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 터널의 끝이 보이기는 할까. 물론 쉽게 결론이 나진 않을 것 같다.
발행 무중력지대 성북
해당 에세이는 '2021『무소식』생활 수필 원고 모집'을 통해 수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