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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중력지대 성북 Jul 09. 2021

오늘도 달리기

#ESSAY

무소식은ㅡ

무중력지대 성북을 기점으로 사람·커뮤니티·장소 등 주체적 청년 생태계 소식을 담아냅니다.

인지하지 못했던 당연한 것들의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무소식 3호 : ESSAY


소금, 「오늘도 달리기」


 달리기를 갈까 말까? 나는 매일 고민한다. 미루고 미루다 밤 열 시쯤 돼서야 운동복을 입고 나간다. 아니면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그냥 자야지’하고 눕거나. 달리기를 가지 않은 날에는 내 나태함을 자책하면서 잔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하루 쉬어서 기분이 엄청  좋다. 반대로 운동을 할 때는 일 분이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왜 달리기를 좋아할 수가 없을까? 첫째로, 달리기는 힘들다. 사실 그게 이유의 전부다. 매일 달리기를 하는데 할 때마다 힘들다. 다른 사람들은 달리기를 하면 상쾌하고, 개운하고, 건강해진다는데 나는 별로 그런 기분이 안 든다. 나도 운동을 좋아하고 싶은데. 열렬히. 요 즘 들어 자기 계발의 일종으로 운동을 강조하는 미디어들을 보면서 이런 기분은 더 강해진 다. 나도 운동을 즐기면서, 꾸준히,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해서 언젠가는 (내 달리기 앱 속 운동 코치가 하는 말처럼) “맵시 있는 몸매와 넘치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 이 되는 꿈을 꾼다.


 “우리는 달리기를 통해,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과의 싸 움에서 이기는 일보다 대단한 일은 없지요.” 


 달리기 기록을 위해 틀어놓은 앱에선 몇 분에 한 번씩 이런 말로 나를 응원한다. 하지만  내가 달리기와 화해할 수 없는 이유도 이 말에 담겨 있다. 나는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별로  이기고 싶지 않다. 싸우고 싶지도 않고. 내가 달리기를 통해 게으르고 불평 많은 나를 때려눕혀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성취감? 건강? 뿌듯함? 나는 달리기를 하는 내내 그게  다 부질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뛴다. 오늘 내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봤자  내일 나는 운동복을 앞에 두고 다시 같은 고민을 할 테고, 내일은 질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힘들고, 너무나 지루해서 하다 보면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대부분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운동을 해야 하지라는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시작된다. 왜 나는 이 지루하고 힘든 일을 참으며 하고 있을까? 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없는 걸까? 언제부터 인생의 대부분이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는 문장을 동력으로 굴러가기 시작한 걸까?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심장은 터질 것 같다. 아 세상에,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 건가? 자기 자신과  싸우거나 타협하기만 반복하는 일인 걸까? 포기하고 싶은데 포기하기는 싫고, 더 열심히 하 고 싶은데 그건 또 마음처럼 되지도 않고……. 이젠 진짜 멈춰야지 생각하면서도 발은 계속 앞으로 구른다.


 그렇게 헉헉대며 뛰고 있을 때 나는 미래의 “맵시 있는 몸매와 넘치는 자신감”을 위해  뛰는 게 아니라, 단지 내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또 다른 나를 떼어내고 싶어서 뛴다. 또  다른 나는 징징대고 여덟 살짜리 애처럼 투정을 부리며, 마법처럼 내가 손 놓고 있어도 모 든 일이 해결될 거라고 속삭인다. 내 형편없는 건강과 답 없는 통장 잔고, 밀린 공과금 같은  것들이 알아서 짠! 하고 괜찮아질 거라고. 그러니 침대에 누워 감자칩이나 먹자고. 이 철없이 못된 친구를 잠재우려면 죽어라 뛰는 수밖에 없다.


 잘 먹고 잘 자면 어느 순간 키가 훌쩍 자라 있던 것처럼, 내가 저절로 변하는 시기는 지 났다. 이제는 허물 벗듯 매일 내 낡은 껍질을 벗겨내는 일의 연속이다. 철없는 못된 친구 말 대로 침대에 누워만 있다간 병원에 입원하고 말 테니까. 현상 유지만 하고 싶어도 순간순간 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밤에 야식을 먹을까 말까? 밀린 빨래를 오늘 할까 말까?)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 이기는 것도 나고 지는 것도 나라는 점에서 가장 해볼 만한 싸움이기도 하다. 이기면 뿌듯하지만 지는 것도 나쁘진 않다. 중요한 건 계속 뭔가를 시도한다는 거니까. 오늘 나는 달리기를 하고 왔지만, 내일도 그럴지는 모르겠다. 어느 순간  마법처럼 근육이 혹사당하는 느낌을 즐기게 되지 않는 한 계속 모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알 수 없음이 좋다. 미래는 정해지지 않았고, 당장 내일의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른다 는 게 좋다. 강박과 긴장을 풀고 그 불확실성에 몸을 맡길 때, 모든 게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든다. 다시 한번 달리러 나갈 힘을 얻는다.




발행 무중력지대 성북

해당 에세이는 '2021『무소식』생활 수필 원고 모집'을 통해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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