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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중력지대 성북 Dec 08. 2021

애증하는 존잘 씨

#ESSAY

무소식은ㅡ

무중력지대 성북을 기점으로 사람·커뮤니티·장소 등 주체적 청년 생태계 소식을 담아냅니다.

인지하지 못했던 당연한 것들의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무소식 4호 : ESSAY


햇끼, 「애증하는 존잘 씨」


나에겐 라이벌이 있다. 라이벌보다는 적이라 봐야 할까? 이것 때문에 시작부터 마음이 무거워진다.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가끔 이 압박에서 도망치고 싶어 네이버 스포츠로 들어가 오늘의 야구 소식, 배구 소식을 보기도 하고, 코로나19 방역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검색해 보기도 한다. 다음엔 달력을 보며 언제까지 해야 할 일인지 확인한다. 할 계획을 세우기보단 미룰 계획을 세운다. 삼일 내에 할 수 있겠지? 이때까지 미뤄도 되겠지? 그렇게 결국 미루고.     


 그의 이름은 존잘 씨, '존x 잘하고 싶어' 란 마음이다.


 대학교 4학년 23살의 나는 겁에 질려 있었다. 하나는 교직 이수의 마지막 과정, 교생 실습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내 전공을 잘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을까?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선생님이란 사람은 아이들이 '우' 물어보면 '와!' 하고 바로 답해줘야 하는 사람인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생각했다. 결국 그 학기 휴학을 해 1년을 미뤘다. 하지만 24살에도 졸업을 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이유, 졸업 논문을 쓸 수 없었던 것 때문이었다. 왜냐? 나는 내 전공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에. 남들은 쉽게 쓰던 졸업 논문, 나는 논문을 쓸 조금의 아이디어도 생각나지 않았다. 더욱이나 학과 생활을 하지 않던 나는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었다. 그나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교내 상담센터 선생님뿐이었다.     

 

 "햇끼 씨가 생각하는 교생 선생님은 어떤 역할을 해내는 사람인가요?" 

 상담 선생님이 물었을 때 와다다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 아이들이랑 잘 지내려면 사교성도 좋아야 하고요, 담임 선생님이랑도 잘 지내야 하죠. 어쨌든 교생도 실습을 해야 하니까 수업도 잘해야 하고……. 전 제 전공에 자신이 없어요. 그냥 고등학교 3학년 교과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기분이에요. 1년 동안 뭐라도 공부해서 실습을 나가려 했는데 그것도 못해냈어요. 앞으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햇끼 씨는 교생 실습을 참 잘하고 싶은가 보다, 그죠?"

 끄덕였다. 누구 앞에서도 망신당하고 싶지 않았고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못하는 내 모습을 내가 보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교생 선생님은 선생님 이전에 실습하는 단계라 실수해도 괜찮아요. 임용 붙은 선생님도 실수하면서 일하는 걸요. 못해도 괜찮아요. 졸업 논문도 얼렁뚱땅 써도 괜찮아요."

 10회기의 상담 내내 선생님은 내게 괜찮다 말해주셨고 나는 울었다. 그렇게 25살의 나는 어찌어찌 교생 실습과 졸업 논문을 해내 졸업하게 되었다.

  

 겨우겨우 이겨낸 경험이 있으니 존잘 씨와의 싸움은 끝날 줄 알았는데, 최근에도 크게 싸우게 됐다. 글쓰기 때문이었다. 몇 년 전부터 기록에 빠져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글을 계속 써야 글쓰기 실력이 늘고 잘 쓰는 사람이 될 텐데, 왠지 글쓰기가 어려웠다. 3년 전 교생 실습 나가기 전과 비슷한 마음이었다. 못 쓴 내 결과물, 글을 마주하기 너무 힘들었다. 그렇게 블로그를 방치하다 최근에 독립출판물을 낸 블로그 친구 주제 님께 연락을 했다.     


 "주제 님, 주제 님은 글을 어떻게 잘 쓰시는 건가요?"
 "햇끼 님, 글을 왜 쓰고 싶으세요?"

 "저는… 남들처럼 뭔가 기록해서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것 같고……. 그렇게 유명해지고 싶고……."

 "글을 잘 써서 유명해지고 싶다?"

 "아 뭐… 후기라도 잘 써서 유명해지는?"

 "후기를 잘 쓰는 건 뭔가요?"

 "음……."

 "솔직하게 쓰는 건가요, 길게 쓰는 건가요? 문장을 잘 쓰는 건가요? 세부적으로 가야 해요. 너무 큼직하고 불투명한 뭐 어떻게 성취해야 될지 모르겠는 문제를 고민하면 답이 없어요. 이 후기 글을 써서 작가가 감동하게 하고 싶나요, 아니면 다른 누가 이 책에 흥미나 관심을 갖게 하고 싶나요 웃기고 싶나요. 그냥 자신을 위해 기록하는 용으로 쓰고 싶은지, 목적을 정하고 그냥 마음에 따라서 자문자답해서 올리면 돼요. 너무 잘하고 싶은 마음에 아무것도 못 쓰고 계시는 것 같아요. 햇끼가 생각하는 '잘하는' 이 뭔지 생각해봐요. 목적을 좁혀요."

     

 내가 생각하는 잘하는, '잘하는'은 뭘까. 무엇보다 남들한테 창피를 당하지 않을 퀄리티의 글. '좋아요'나 '공감'이 많이 달리는 것. 독자가 ‘아 나도 그랬어!’ 하며 공감하게 만드는 것. 공감된다며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낸 댓글이 많이 달린 것. 똑같은 걸 봐도 누구보다 길게 풀어내는 것. 나만의, 햇끼 특유의 글체가 있는 것. 와 나 기대하는 게 정말 많구나.     


 '잘하는' 에 꽂혀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었는지도 잊고 있었다. 사실 '좋아요'를 많이 받고 싶은 것과 별개로, 긴 호흡의 글을 쓰고 싶었다. 어떤 드라마에 전체 줄거리와 나의 해석을 곁들인 글 같은 것. 혹은 사수 없이 일하는 내 경험담을 풀어놓는 것.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주먹 꽉 쥐고 긴장했던 교생 실습 때처럼, 내가 못하는 위치에 있음을 다시금 인정하고 우선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싶었다. 한 번에 글 하나를 바로 완성시키려니 잘하고 싶어 힘이 들어가고 결국 못하는 거겠지. 왜 못 쓰고 있는지를 알게 됐다.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존x 잘하고 싶은 마음은 내게 큰 스트레스를 주었지만,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작은 힌트를 남겨주었다. 길게 쓰고 싶다면 한 글을 완성하는 한 문단부터 써보라는 것. 이 글도 한 번에 쓰지 않고 여러 번 나눠 쓰면서, '내가 쓰고 싶은 글의 분량대로 쓰려면 쓰고 또 쓰고, 또 수정해야 되는구나!'를 새삼 느끼고 있다 그렇게 탓하게 되던 존잘의 마음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주었다. 신기하다. 이 신기한 마음으로 오늘의 일기를 써야지. 더 나아가 에세이를 써야지. 계속 쓰고 쓰는 사람이 되어야지.




발행 무중력지대 성북

해당 에세이는 '2021『무소식』생활 수필 원고 모집'을 통해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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