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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진 Apr 08. 2022

알라딘과 타이타닉의 공통점

나는 왜 자스민과 로즈에 감정이입을 하는가

I can show you the world
알라딘 애니메이션 스틸컷

알라딘과 자스민이 양탄자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만 보면 나는 심장이 뜨거워진다. 두근거리고 일시적으로 호흡이 불안정해지며 무언가 맺힌 듯이 쪼여오기도 한다. 아이가 지금보다 더 어렸던 시절, 좋은 노래 들려주겠다고 알라딘을 틀었다가 나도 모르게 펑펑 울어버린 적도 있다. 그게 뭐였는지 모르겠다.


To make each day count
순간을 소중히 | 타이타닉 스틸컷

 타이타닉은 나의 인생 영화 중 하나다. 드라마면 모를까, 멜로나 로맨스가 섞인 영화는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닌데 이상하게 타이타닉은 보고 또 봐도 애틋하고 떨린다. 배가 빙산에 부딪혀 가라앉기 시작하면 나도 잔뜩 긴장돼서 이불을 끌어안고 본다. 3번을 봐도, 5번을 봐도, 10번을 봐도 타이타닉 2부가 시작되면 몸은 이미 긴장해서 빳빳하고 마음은 너무 슬프다. 난 왜 이러는 걸까.


한 번도 2개의 영화를 연관 지어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과 멜로/로맨스 영화라고만 여겼을 뿐이다. 그런데 <2019 알라딘>의 자스민, 나오미스콧이 'Speechless'를 부르는 장면을 보고 내가 왜 알라딘과 타이타닉을 이토록 좋아하는지 퍼즐이 맞춰졌다.


자스민과 로즈. 그녀들은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난 승리해서 얻는 전리품이 아니에요!
Speechless | 2019 알라딘 스틸컷

자스민은 자신과 혼인하여 왕국을 얻으려는 이웃 왕자들의 뻔한 고백에 진저리를 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2019 알라딘>의 자스민은 본인이 왜 술탄이 될 수 없는지, 답답해한다. 그래. 그 답답함. 그게 무슨 느낌인지 너무 잘 알 것 같다. 나도 잘할 수 있는데... 어설프고 한심한 왕자 놈들보다, 음흉한 자파보다 내가 훨씬 잘할 수 있는데! 공주라는 이유로 조신하게 결혼해서 '술탄의 여인'으로 살아야 한다니. 영화 보는 내내, 나는 자스민이 되어 분노하고 싸운다.


몇 년 전 두바이 통치자의 딸이자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왕족 일원인 셰이카 라티파 공주가 “아버지가 내 자유를 억압한다”며 “차라리 햄버거 패티를 구워 생계를 유지하며 살겠다”고 미국으로 탈출을 시도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살면서 기사 읽고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난 진심으로 공주의 탈출을 응원했다. 시간 날 때마다 검색했고 탈출에 성공했는지 확인했다. 불행히도 탈출에 실패하여 감금당하고 있단 기사를 보고는 '나쁜 놈의 X끼'라며 얼마나 화를 냈는지 모른다. 다행히 6개월 정도 후, 아이슬란드 여행 사진을 공개한 공주를 보며 그제야 나도 마음이 후련해졌다.


당신은 참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에요
당신은 당신만이 구할 수 있어요 | 타이타닉 스틸컷

상류층 명문가의 딸인 로즈는 어머니의 감시와 통제하에 규율에 맞춰진 삶을 살아간다. 답답함을 느끼던 로즈는 잭과 몰래 3등석 파티를 즐기다 발각되었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겠다며 잭을 밀어내지만, 당신은 길들여질 사람이 아니며 정말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라고 잭은 말한다. 그렇게 잭은 로즈를 또 한 번 살렸고, 영화를 보던 나도 살려냈다. 짐작컨데, 잭은 세상의 많은 여자들을 살렸을 것이다. '넌 누구보다 멋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그 말이 '세상에서 네가 가장 아름답다'는 말보다 훨씬 좋다. '예쁘다'는 말보다 '멋지다'는 말이 나에게는 훨씬 더 설레는 말이라는 걸. 내가 그래서 타이타닉을 보나 보다.


이쯤 되니, 내 안에는 해소되지 못한 갑갑함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말하는 K-장녀 콤플렉스, 딸 가진 부모님의 과잉보호, 그 모든 걸 깨부수고 뛰쳐나오기엔 생각이 너무 많은 내 성격, 밖으로 나오고 싶지만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모순적인 성향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이 꽁꽁 뒤엉켜서 20대 내내 나를 괴롭혔다. 나는 그때 궁전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자스민이었고 숨 참고 코르셋을 힘껏 당겨 입어야 하는 로즈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영화 속 그녀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보면, 나는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있는 듯하다.


나는 '나의 알라딘', '나의 잭'을 만나 결혼했다고 생각했는데(콩깍지였..;;) 여전히 답답함을 느끼는 걸 보면 결국 그 세계를 부수고 나와야 하는 건, 온전히 '나'여야만 하나보다.


자스민처럼, 로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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