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진 Feb 06. 2022

J형 인간이 이사할 때

정리 안된 집이 J형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드디어, 새 집이다! 그런데...


이사를 한 지 2주일이 넘어가고 있다. 방이 하나 늘었고, 화장실이 하나 늘었다. 그토록 내가 손꼽아 기다리던 시간이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이사 온 후부터 그 어느 때보다 짜증과 불만이 많은 말투로 가족들을 대하고 있다. 왜지? 그렇게 원하던 공간으로 인테리어 다 하고 들어온 건데.. 왜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있는 걸까?


생각해보면 이사 들어온 첫날부터 나는 약간 멘붕이었다. 보관 이삿짐이 들어오기 전, 인테리어가 완성된 허한(?) 집을 보면서, 나도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해야겠다고 야무지게 다짐했다. 그래서 이삿짐이 들어오면 부피를 확인하고 거기에 맞게 수납장을 사겠다고 결심하면서 그렇게 생각한 나 자신에게 흡족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아무래도 큰 실수였던 것 같다. 보관이사를 하는 바람에 이삿짐이 얼마나 있었는지 완전히 잊은 채 한 달의 시간이 지났고, 딱 내가 생각한 만큼 있을 것 같았던 이삿짐이... 막상 닥쳐보니 거실을 꽉 채우는 걸 보는 순간부터! 내 머릿속은 하얘졌다.


이삿짐 센터 아저씨들은 계속해서 물어보셨다. 어느 방으로 가면 되냐고... 어디에 넣어드리면 되냐고... 하지만 우린 아직 정리할 수납장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솔직히 무엇이 어느 방으로 가야 하는지, 나도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순발력이 약한 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거실 한편에 쌓아주세요."였다.


일하시는 분들이 가시고 나니, 우리 집은 또 다른 보관 이사 중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치워야 할 지도, 어떻게 정리해야 할 지도... 솔직히 말하면, 그냥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다.


하아… 다시 봐도 가슴이 답답허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러니깐 제자리에 두라고 몇 번을 말해?


남편은 계속해서 줄자를 찾아댔다. 테이프를 찾았고, 커터칼을 찾았고, 계속 무언가가 어디에 있는지, 나에게 물어봤다. 아이는 새 집에 와서 모든 게 신기하고 좋았다. 이게 무엇인지, 어떻게 쓰는 건지, 갖고 놀아도 되는 건지, 눈을 반짝거리며 나에게 계속 물어봤다. 하아... 세상이 잠깐만 그대로 멈췄으면! 아무도 소리 내지 말고, 그냥 잠깐만 일시 정지해야 내가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내 말투가 지나치게 사납고, 짜증스러워진 것이. 왜 자꾸 똑같은 질문을 하는지, 그걸 꼭 지금 물어봐야 하는 건지, 왜 나한테 다 물어보는 건지... 그냥 화가 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내 심신이 모두 지쳐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 보관이사가 어디 쉽나. 이사를 하루에 해도 어려운데, 한 달에 걸쳐 이사를 하니...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암~ 충분히 그럴 수 있어.


그런데 진짜 문제는 며칠 동안 짜증 섞인 투로 말하던 것이 어느새 습관처럼 붙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별 일 아닌데, 여전히 짜증을 내고 있다. 이건 뭐지? 나 왜 이러는 거야?



자기야, 살면서 천천히 정리해도 돼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정리가 안된 이 상태가 당신한테는 너무 힘든 거라고. 그렇지만 이건 하루 만에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니, 천천히 정리해가면 된다고... 하지만 J형 인간인 나에게 정리가 안된 공간은 제아무리 아름다워도 머물고 싶지 않은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깨달았다. 그럼 난 어디까지 정리하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인가? 나는 나와 타협하기 시작했다.


그래, 일단 거실에 널브러져 있는 박스를 없애자. 거실에 덩그러니 차지하고 있는 '짐'들만 안 보이면, 그럼 내가 좀 살 것 같으니 거기까진 달려간다! 가자, 지금 당장 이케아로 간다.


그렇게 3일 간격으로 이케아를 2번 다녀와서 필요한 수납장, 박스, 정리함 등을 사 왔다. 남편은 부지런히 조립했고, 나는 조립이 완성되면 부리나케 짐들을 풀어서 '쳐' 넣었다. 그렇게 3일째... 드디어 집 안에 눈엣가시 같았던 모든 박스들이 사라졌다. 아... 좀 살 것 같다.


이너피스…


물론, 아직 찝찝한 구석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하지만 그건 남편의 말대로 살면서 해결해 나가기로 한다. 내가 사는 이 집은 모델하우스가 아니고, 나도 이 집을 정리하기 위해 내 모든 시간을 쓰고 싶진 않다.


J형 나란 인간... 정말 세상 피곤하게도 사는구나. 고생했다. 이제 제대로 쉬렴.


....... 그렇게 하고 싶었던 반신욕을 해볼까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