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만난 인생 브라더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오노 요코-
오노 요코는 말했다. “혼자 꾸는 꿈은 그저 꿈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함께 꾸는 꿈은 결국 현실이 된다.”라고, 존 레넌에게. '같이의 가치'를 참 멋지게 이야기한 명언이다. 혼자 꿈을 꾸는 것도 가슴 설레고 희망찬 일이지만 그것으로 끝난다면 말 그대로 한낱 '꿈'일 뿐,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
그런 의미로 나에게는 함께 꿈을 꾸고, 그 꿈을 결국 현실로 만들 '오피스 브라더'가 있다. 광고 회사에서 바로 윗 ‘선배’로 만나 친해져서 5년 뒤 ‘오빠’가 되었고, 그 후로 4년 뒤 그가 브랜딩 회사로 이직해서 함께 하자고 제안했을 땐 '이사님'이, 그리고 같이 나와서 브랜딩&마케팅 회사를 창업하며 이제는 나의 '대표님'이 되신 분이다.
선배님에서 이사님 그리고 지금의 대표님이 되기까지-
호칭의 변천사로 그가 점점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도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둘이 있을 땐 여전히 ‘오빠’고, 나는 철없는 동생이다.
첫 만남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경력직 면접을 보기 위해 처음으로 회사에 갔던 날, 내가 가장 '처음' 본 사람이 그다. 나와 면접을 보기로 한 팀장님은 1층 로비에서 면접자를 데리고 오라며 팀원을 내려보냈다. 그와 나는 그렇게 만났다. 세상 피곤한 얼굴로 컨버스 신발을 구겨 신고 귀찮음이 가득한 말투로 이리 오세요~ 하며 자신의 팀장님 방으로 안내하던 모습. 차갑고, 무섭고, 포스가 넘친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첫인상. 하지만 지금은 세상 따뜻하고, 재밌고, 그 누구보다도 편한 사람이다.
생각해보니 그때 ‘이리 오세요’하며 나를 면접 자리로 데려다주던 분이, 이제는 같이 창업을 하고 인생에서 '이리로 가자'하는 분이 되어 있다. 문득 '뭐야, 이리로 오라고 하던 것이 지금까지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잖아?'라는 생각이 들어서 재밌다고 생각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참 신기하고 놀랍다고 느낀다.
어찌 됐든 그렇게 처음 만난 이후로 나는 그가 가는 곳마다 함께했다. 장난 삼아 우리는 모든 이력이 같아서 포트폴리오도 한 명이 만들어서 같이 쓰면 되겠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같은 길을 달려왔다.
그분에 관한 인상 깊은 일화들이 몇 가지 있다.
내가 사원이고 그가 대리였을 때, 회의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자기는 나중에 레스토랑을 운영할 거고, 부동산 투자도 할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레스토랑은 한옥을 개조해 퓨전 레스토랑으로 하고 싶다며 실제로 회의실 칠판에 구조까지 그려서 보여주었다. 당시에 나는 '언젠가 식당을 차리고 싶어 하는 직장인' 정도로 생각하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그렇게 1년 반 뒤, 그는 정말 한옥을 개조한 퓨전 레스토랑을 차렸다. 생각해보면 꿈처럼 이야기하지도 않았고 실제로 있는 것을 보여주듯 이야기했는데, 그 사이 정말로 하나하나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생각한 것을 이렇게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사람이라면 무엇을 하든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래서 같이 창업을 하자고 했을 때도 바로 함께 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의 아트적 능력 덕분에 괌 가족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어느날 그는 하얏트 호텔에 갔다가 추억으로 남길겸 사진을 찍고 #하얏트 라고 자신의 SNS에 올렸는데, 때마침 하얏트 호텔 SNS계정에서 해시태그 하얏트(#하얏트) 사진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하얏트 호텔 사진 공모전에서 1등을 했고, 상품으로 괌 하얏트 3박 숙박권을 받았다. 그리고는 정말 별 것이 아닌 듯 쿨하게 "너 갈래?" 하며 표를 건넸다. 아마도 진짜로 갈 줄은 생각 못했을 수도 있는데... 나는 그 길로 바로 괌으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끊고, 괌 하얏트 호텔로 날아갔다. (감사했습니다!)
광고 회사에서 밤샘을 하고 아침에 퇴근을 하던 날, 그가 대뜸 물었다.
"우리 지금은 이렇게 밤새 일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한 5년만 지나도 각자 갈길 가고, 가끔 안부 묻고 뭐 그렇게 되겠지? 그때 힘들지만 그래도 꽤 재밌었는데... 정도로 기억하면서 말이야"
그 말을 듣고 ‘뭐지? 갑자기? 뜬금없이? 밤새서 정신이 몽롱한가...?’라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그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10년이 넘는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회사 사람들이 회사에서 만난 사람을 ‘회사 사람’ 정도로 생각하는 단계가 있는데 그때가 그쯤이지 않았나 싶다. 열심히 일을 함께 하면서 나름 친해졌지만, 그래도 ‘회사 사람’이니까 생각하게 되는 그런, 몇 년만 지나도 제각각 살 길을 찾아 떠나고, 좋았던 추억에 안부 정도 물으며 기억 속에 머물러 있는 사이.
하지만 생각해보면 회사라는 이익집단에서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그저 같은 동네, 같은 학교, 같은 반이라는 이유로 친해지는 친구보다도 더 소중한 관계가 될 수 있다. 이익이 걸려 있지만 내 욕심보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앞설 때, 자기 일도 바쁘면서 후배나 선배에게 자신의 시간을 내어줄 때 등 이런 순간들에 진심이 더욱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회사 사람도 가족이나 친구 못지않게 값진 관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인생에서 가장 값진 관계를 회사에서 만났다.
대기업 광고대행사의 신입 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책임이 될 때까지 10년을 다니고 퇴사했다. 만 10년 째 되는 해에 퇴사를 하기에 10년에 어떤 의미가 있냐라고 물었더니 그는 '금 명함'이라고 답했다. 그 회사는 10년 근속을 하면 금 명함을 줬는데 그 금 명함이 받고 싶었다고 했다.('_'?) 나중에 자식에게 아빠가 광고회사 10년을 다녀서 받은 거라며 금 명함을 보여주고 싶다나.('_';) 이유가 어찌 됐든 그는 정말로 10년간 꾸준히 한 회사를 다녔고 금 명함을 받은 다음 해에 퇴사를 했다.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하나를 해도 완벽하게 하는 것이 그의 성향이다. 제대로 하지 않을 거면 아예 하지 않는 모습도 많이 봤다. 하면 완벽하게 해야 해서 그런지 시작 전에 매우 귀찮아하고 고심하는 스타일이다. 이것저것 해보고 '이건 아니네, 저것도 아니네' 하는 나와는 전혀 다르다. 나는 끈기도 없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자주, 짧게 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스타일. 문득 이렇게 성향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취향, 식성마저 다른데 친해지고 가까워진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그가 애니메이션 [겁쟁이 페달]을 보고 '팀워크'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애니메이션 <겁쟁이 페달> 봤어? 자전거에 대한 애니메이션인데 그걸 보면 말이야, 자전거는 당연히 개인 스포츠인 줄 알았는데 팀 스포츠더라? 근데 광고 회사도 마찬가지 같아. 통통 튀는 사람들이 개인기를 뽐내면 되는 줄 알지만, 가장 중요한 건 팀워크더라고.
자전거 경기에 올라운더, 스프린터, 클라이머 이렇게 3가지 포지션이 있는데, 그것도 CD(Creative Director), 카피(Copywriter), 아트(Art Director)로 구성된 광고회사 제작팀 같고. 그리고 얼핏 보면 각자 알아서 달리는 듯 보이지만 팀 내에서 자기 역할을 하고 있는거야. 평지에서 스피드를 내는 스프린터, 언덕을 오르는 클라이머, 골을 따내는 에이스처럼 광고 제작팀도 Copy, Art, CD가 각자의 임무를 잘 수행해야 이길 수 있잖아. 그니까 지극히 팀 스포츠인 거야. 난 그걸 보고 딱 우리 멤버 같다고 생각했어. 올라운더이자 에이스는 CD인 형이고, 아트인 난 클라이머, 카피인 넌 스프린터.
자전거 경기는 결승선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에이스의 팀이 우승을 하는 룰이라서 팀원 모두가 에이스를 골까지 도착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돼. 그래서 각 팀의 에이스들은 마지막에 가장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난 그 모습이 마치 밤새워가며 준비한 크리에이티브를 경쟁 PT(Presentation)에 가져가서 말 그대로 피튀(PT)기게 싸우는 CD들의 모습 같아.
그래서 전략이 매우 중요해. 서로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받쳐주면서 끝끝내 결승선까지 갈 수 있도록 함께해야 하는 거니까. 평지에서는 스프린터가 앞서서 에이스를 끌어주고, 언덕에선 클라이머가 끌어주면서 달려 나가. 자전거는 바람을 타는 거라 앞사람에게 붙어가면 힘이 덜 들거든. 그렇게 교대로 지형에 맞게 달리다가 막판에 에이스를 밀어주고 빠지는 거지. 그니까 모든 포지션의 사람들이 합심해서 에이스를 돕고, 그 에이스라는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해 달리는 모습인 거야.
정말이지, 자전거 애니를 보면서 많은 걸 깨닫는다. 나중에 이거 광고 강의 같은 거 하면 꼭 이야기하려고. '광고 제작팀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하다면 겁쟁이 페달을 봐라'라고ㅋㅋㅋ"
그의 이야기를 듣고 겁쟁이 페달을 열심히 챙겨본 내가 조금 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에이스 역할을 하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올라운더는 체력부터 멘탈까지 다 강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광고회사 제작팀으로 치면 팀장을 맡고 있는 CD인 것. 전체 프로젝트를 이끄는 역할로 특히 경쟁 PT(Presentation) 때를 생각해보면 정말 딱 맞다. 멤버들이 밤새 회의하고 만들어낸 것을 광고주에게 들고 가서 PT를 따내려고 끝까지 노력해야 하는 것이 CD의 역할이니까.
직선 코스에서 제일 빠른 스프린터는 단거리 선수 같은 것. 짧은 순간에 미친 듯이 전속력으로 에너지를 쏟아부어 스피드가 대단하다. 그리고 직선코스에서 에이스를 끌어주는 역할도 한다. 앞서 나가며 바람의 저항을 막아주고 속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면서 에이스의 페이스 메이커를 해준다. 따지자면 팀원들 중에서도 CD와 함께 전략과 카피를 담당하고 있는 내가 그 역할인 셈.
그리고 마지막 역할은 오르막 코스에서 빛을 발하는 클라이머인데 오르막길에서 극한의 고통을 참아내며 힘을 내고 에이스를 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 모습은 마치 끝까지 그림 작업하며 밤샘하는 아트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말했다. 아트웍 하느라 밤새고 힘들 땐 진짜 다 던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정리하자면 자전거 레이스(경쟁PT 혹은 보고)라는 건 각자 알아서 빨리 달리면 이기는 경기가 아니라, 스프린터(카피)와 클라이머(아트) 포지션 선수들이 자기 전문 분야에 주력하면서 에이스(CD)가 골 지점까지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 그리고 에이스는 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에너지를 아끼고 합심하여, 끝까지 최선을 다해 마지막 결승선에서 우승을 따내는 것. 이것을 우리가 아는 한 단어로 표현하면 '팀워크'가 아닐까?
1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오늘도 우리는 경기장 앞에 서 있다. 그리고 그간 성장했다는 것을 반영이라도 하듯 이제 그는 대표님이자, 에이스이자, 올라운더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회사를 리드하며 직원들이 긴장하지 않게 다독여주기도 하고, 우승하자는 희망과 의지를 다지기도 한다. 하지만 경기장 앞에 서있다고 해서 매번 비장한 것은 아니다. 농담을 건네며 서로의 긴장을 풀어주기도 하고, 빨리 끝내고 속 시원하게 놀 생각에 웃기도 하니까. 중요한 건 승패와 이익이 걸린 경기장 앞에서 서로를 챙기며 같이 나아가려고 하는 그 마음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그가 나에게 가장 많이 말하는 단어가 있다. '함께'라는 것. 그리고 이렇게 '함께' 했는데 나중에 같이 웃어야지!라는 말.
"함께하니까 여기까지 온 거야. 앞으로도 함께 하니까 갈 수 있는 거고.
이렇게 함께 했는데 나중에 같이 웃어야지."
"같이 웃을 날이.. 언제쯤 오련지?"
"금방 와."
"금방이 언제지? 뒤돌아보며 많이 왔다..라고 느낄 때쯤 이겠죠?"
"글쎄... 난 벌써? 이럴 때쯤 이라고 보는데"
사실, 지금도 많이 웃으면서 일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미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경기장 앞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니까. 우리의 미래는 오늘도 '함께'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