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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라 Feb 06. 2021

헬로우 써리

새로운 시작을 위한 첫 발걸음은 생각보다 별 것 없다. 


30대가 되었다. 

어마무시하고 대단한 어른이 되어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나의 서른살은 꽤나 매우 볼품없었는데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우선 나의 서른살 1월 1일에 대한 환상에 대해 이야기해야한다.


2021년 1월 1일 나는 서른살이 되었다. 

내가 꿈꾸어 왔던 2021년 1월 1일은 대략 이렇게 이루어져야 했다. 


결혼을 앞둔 멋있는 남자친구가 12시 땡 하면 

계란 한 판에 들어있는 달걀 30알에 하나하나 귀여운 글씨를 써서

"서른이 된다는 거 별거 없지?" 하며 입동굴이 환히 보이는 모습으로 나를 격려해주는 모습 !

(입이 커서 입동굴이 훤히 보이는 시원시원한 웃음을 가진 사람이 나의 이상형이었다.)



스스로 저렇게 꿈꾸면서 ' 아...! 나는 얼마나 소박한 사람인가!' 하며 자화자찬 했더랬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서, 

2021년 1월 1일 정각. 

나는 쓸데없이 큰 킹사이즈 침대에 홀로 누워 배긁으며 할거없이 핸드폰이 59분에서 00으로 넘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너무나 큰 꿈을 꾸었던 것인가. 

아아...도대체 왜 인생이란 원하면 원할수록 도망가기만 하는 걸까.




2021년 1월 5일.

퇴근을 하고 맥주라도 한캔 마시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 

과자 두봉지와 편의점 치킨과 맥주를 두 캔 샀다. 

계산대 앞에 선 내게 편의점 사장님은 신분증을 요구했다.


"사장님. 저 신분증 핸드폰에 찍어놓은 사진 밖에 없는데 그걸로 될까요...?"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 종종 신분증을 묻는 경우가 있어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사장님은 내 얼굴을 한번 훑더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서른인데요..."


나는 처음으로 '서른' 이라는 표현을 나를 지칭하는 데에 사용했다. 

내 대단했던 서른이 ...!! 편의점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아무튼 저렇게 말하며 나는 사장님이 안된다 할까 얼른 핸드폰 앨범에서 신분증 사진을 

찾기 시작했다. 


그 순간 사장님이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나에게 말했다. 


"에이. 그래, 서른이면 신분증 안가지고 다녀도 될 나이지. 됐어~! 요새는 마스크 때문에 나이 구별하기가 너무 힘들어~~"



이십대 때는 스물아홉이라도 

부득불 신분증을 요구했다. 

"에이, 아직 이십대면 신분증 가지고 다녀야 해요~" 라며 나를 꾸짖기 일쑤였다. 






너무하다, 세상..


이제 신분증 내가 가지고 다니나 봐라. 




서른, 

나는 내 안에 피어나는 새로운 욕망을 발견했다. 

그것은 젊음과 안정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타고난 청개구리 답게

오히려 더 반대로 가기로 했다. 



나의 서른살 방황에 대한 이야기는 혼자 잘 꾸려서 

평생의 일기처럼 간직하고 싶다. 




나의 젊음을 탐낼 십년 후의 나에게 

너 이렇게 아깝지 않게 잘 지냈어! 너 잘 살았어 임마~! 하고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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