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산책을 하고 있나요?
컨셉진을 구독했다. 예전부터 감성이 좋은, 닮고 싶은 매거진이라 생각은 하였는데, 여러 우선순위에 밀려 이제야 겨우. 이번 달의 주제는 '산책'이었다. 컨셉진은 매달 이렇게 어떤 키워드에서 도출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며 사유를 하게 하는데, 이번에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분야여서 그런지 밑줄까지 그어가며 한 자 한 자 탐독했다.
나에게 산책은 탈출과도 같았다. 생각이 많아지거나 복잡할 때면 정처 없이 길을 걸었다. 그러다 보면 감정도 정리가 되고, 언제 내가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왔다. 가끔은 앞만 보고 걷기도 했고, 때로는 주변을 살피며 뻔한 일상에서 색다른 것들을 찾기도 했다. 다행히 내가 사는 집 주변에는 산책로, 공원이 가까이에 있어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발견하기도 쉬웠다.
어릴 때는 지하철보다 버스를 더 좋아했다. 제일 뒷자리에 앉아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넋을 놓기도 하고, 때로는 목적지 없이 순환하는 버스를 타는 것을 즐겼다. 그것도 나에게는 일종의 산책이었다. 사시사철 다른 풍경과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익숙하지만 새로웠던 곳들. 그렇게 하릴없이 돌다 보면 복잡했던 마음도 가라앉았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종종 바닷가를 찾았다. 내가 태어난 고향이자 어릴 때 살던 동네였던 그곳을 혼자 걷다 보면 자연스레 기분이 나아졌다. 발전이 더딘 채 옛 정취를 간직하던 그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적어 사유하기에 좋았다. 지금은 관광화가 되어 버렸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어둠이 드리우기 전, 그리고 새벽녘이다. 시끄러운 도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드는데, 때로는 그 속에서 유일하게 깨어 있는 사람 같았다. 고독과 고요함을 견디지 못하고 불면에 시달리던 밤에는 외투 하나에 휴대 전화만 든 채로 밖을 걸었다. 사람도 없고, 가게도 문을 다 닫아 마치 나 혼자 이 도시에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 적도 있었다.
열대야에 시달리는 여름밤보다 겨울에 에너지가 넘치는 탓에 계절은 주로 추운 겨울이었다. 폐부로 가득 들이차는 차가운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어둠이 내린 도시 곳곳을 누볐다. 때로는 그러면 안 되지만 도로를 가로질러 달려 보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무기력함이 사라졌다. 뭐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에게 산책은 무기력함과의 싸움이었고, 쓸데없는 생각 정리의 수단이었다.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탈출구였고, 거기서 또 새로운 힘을 얻기도 했다. 영감의 원천이기도 했고, 우리 동네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했다.
최근에도 무기력함과 불면에 시달리며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생각이 들 때면 종종 산책을 마음껏 자유롭게 하던 그때가 그리워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