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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지연 Oct 20. 2023

자유로와지길!

자기만의 방, 블루&그린


예전에 버지니아 울프의 책 중 <자기만의 방>을 읽은 적이 있다. “한 해당 500파운드의 고정적인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에서 ‘자기만의 방’의 의미는 경제적인 것도 있지만, 그 이면이 진정으로 가리키는 바는 ‘자유’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내가 내 생각을 온전히 말할 수 있는 자유. 내가 하고싶은 것을 무엇이든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 반면 내가 하고싶지 않은 것은 안 할 수 있는 자유. 그 누구에게도 인간 존엄성을 저버리는 차별과 폭력을 당하지 않을 자유. 특정 성별이라 하여 수많은 역할기대를 감내하거나 강요받지 않아도 될 자유.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될 자유. 내 시간과 내 공간을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사용할 수 있는 자유,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는 자유 같은 것들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쓴 책으로 두번째로 읽어 본 단편집 <블루&그린>은 작가로서 일련의 아이디어들을 스케치해놓은 짤막한 삽화집들로 여겨졌다. 또는 과학자의 실험실 일지로도 읽혔다. 읽는 독자에게 친절하거나, 잘 읽혀지지는 않지만 버지니아 울프 본인이 쓰고싶은 대로, 실험하고 싶은 대로, 펼쳐놓고 싶은 대로 최대한 ‘자유’롭게 썼던 힘이 느껴진다고 할까. 어떤 비유들은 장면을 그대로 글로 그림 그리듯 그리고 노래해놓은 시적표현들로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게 번역이 아니라 원문 그대로 읽으면 더 좋았으려나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상상하게 되었다. 등장인물 속에 숨어있거나 드러난 작가 본인 또는 작가의 친구, 애인, 가족, 지인들. 그들이 살아갔던 세상과 그 시대적 배경들. 있는듯 없는듯 소외되거나 스쳐지나가거나 사물화나 대상화가 쉽게 되며 그림자나 유령처럼 여겨지지만, 분명히 있고 중요한 어떤 존재들에 대한 나름의 투쟁어린 시선과 목소리들. 끊임없이 자기만의 방에서 의식의 흐름을 치밀하게 쫓아가며 고찰하고 성찰한 기법들, 때로는 창문 밖의 넘실대는 초록빛들이나 파랑빛을 보며 쓴 시적 표현들. 책 표지에 “이 글은 세차게 터져 나온 자유의 함성이다.” 란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책을 덮고나서야 느껴졌다.


버지니아 울프가 이 글을 썼을 때 그리고 죽은 후에도 부디 자유로웠길, 그 이후 100년이나 지난 지금의 우리 존재들도 각자 조금 더 자유로와질 수 있기를 !

간절히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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