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지연 Jun 27. 2023

아주 조그마한 알갱이 하나라도 단단하고 알차게

도둑맞은 집중력

도둑맞은 집중력을 보면서도 집중을 몇 번이고 도둑맞고 또 도둑맞았다. 집중력에 관한 책을 읽으며 내가 집중력이 이토록 남아나는 게 없었구나, 더더욱 새삼 생각했다.


인간은 나약해서 주기적으로 입장을 바꿔 직접 ‘몸소’ 겪어봐야만 진정으로 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경청하세요. 선생님의 이야기에 집중하세요. 설명 다 듣고 질문하세요.”를 입에 단내가 나도록 매일매일매일 말하는 나조차도 이렇게나 책 한 챕터 쭉 읽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고보니 학생이었을 시절에도 늘 딴 생각을 하거나 창가에 앉아서 공상을 하긴 했다. [교실에서 딴 생각을 하며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 아이는 가장 쓸모있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문장이 잠시 유년시절을 돌아보게 하며, 동시에 현재 내 입장을 아주 잠깐이나마 조금 너그럽게 해주었다.


그런데 이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몰입하여 일정한 공간과 시간을 온전히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것은 이 사회의 환경과 제도와 문명을 거스른 심신이 아주 아주 건강한 무적의 체력일지도 모르겠다. 몸과 마음이 심히 건강하지 못하며 온갖 주변 환경의 영향을 잘 받는 나로서는 책 읽다가 휴대폰을 만지다가, 책 읽다가 좋았던 문장을 기록하다가, 책 읽다가 갑자기 집안일을 하다가, 책 읽다가 tv를 켜봤다가, 책 읽다가 갑자기 여행계획을 세우다가 아주 별의 별 짓을 다 하며 겨우 겨우 일주일만에 다 읽었다. 책이 정말 재미있고 흥미로웠는데도, 집중력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집중력을  아낌없이 모두 도둑맞고 있다는 책을 읽으며 나라는 한 인간의 실시간으로 흩어져가는 집중력에 대해서도 대표실험처럼 계속 살펴보게 하는 책이었다.


그래도 이토록 집중력이 없는 것이 다 내 탓은 아니야, 라는 다방면의 이야기들이 묘한 위안이 되게 하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었다. “집중력”이라는 키워드에서 이렇게 모든 분야와 영역을 넘나들며 광범위하고 폭넓게 뻗어나가는 마인드맵 같은 책이라니 ! 그러고보니 내 직종 또한 온갖 자질구레하고 잡다하고 번잡스러운 멀티태스킹의 끝판이기도 하다. 멀티가 안되면 살아남을 수 없다 ! 아마 대부분 생계를 위한 업들 중 안 그런 직업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1분 1초를 쪼개어 살며 번아웃까지 오게 만들면서 이 사회에서 한 가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쩌면 그 또한 무척 여유로운 특권이자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정말 제발 진정 그러고싶단 생각을 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선 이것이야말로 바로 내가 오래도록 늘 간절히 원해왔던 것임을 생각해봤다. 그 어떤 연락도 보내거나 받지 않고, 직장이나 타인에 관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을 해야겠다는 무언의 압박없이, 메모장에 글도 안 남기고, 그저 현재에 온전히 몸과 마음을 오래도록 두어보고싶은 생각. 그 무엇에도 연결되지 않은 섬처럼 고요히 혼자서 나를 두고 오래오래 밤이고 낮이고 멍 때리고 오고싶다.


그런 날들이 충분히 연이어지면 그 이후에야 내가 누구인지 눈이 뜨일지도 모른다. 역사가 만약 진보한거라면, 맑은 날이 아니라 흐린 날이었을테니까.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많이 내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 그저 멍 하니 앉아있거나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을 날. 그렇게 ‘온전히’ ‘나로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만 있다면 삶은 더 이상 그저 살아지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곤 그런 시간과 공간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온전한 나만의 소중한 것을 함부로 빼앗지 말라고, 그건 말도 안되는 도둑질이라고, 인간으로서 응당한 권리라고 타당히 요구하게 될 것이다.


하루하루를 충분히 영위하고 순간순간에 분명하게 실재할 것이다. 겨우 부여잡은 것들이 모래알처럼 흩뿌리며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아주 조그마한 알갱이 하나하나라도 단단하고 알차게 의미있어질 것이다. 생동하며 생생하게 살아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바로 여기에,

“Just want to stay in it.”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난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바로 저기, 지금 여기.“



글     ㅣ성지연

사진 ㅣ 너무 너무 사랑하는 영화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모두 혼자이면서 우리 모두 함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