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연 Mar 12. 2021

자연 곱슬 되찾기

탈매직의 여정


6학년 때 미용실에서 내 머리는 ‘악성’ 곱슬이라는 진단을 내리고는 매직으로 곱슬을 쫙쫙 펴줘야 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가는 미용실마다 고객님 머리는 매직 밖에 할 수가 없고, 펌을 해도 윗부분만은 뿌리 매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살다 살다 이런 곱슬은 처음 본다던가, 진짜 한국인이 맞냐, 는 말을 들으며 매직의 인위적인 느낌이 싫어도 매번 죄인같이 매직을 선택했다. 나는 정작 곱슬머리에 대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주위 사람들은 내 곱슬머리가 불편했는지 가만히 놔두질 않았다. 머리 좀 제발 묶으라고, 머리가 꼭 빗자루 같다면서. 어느 순간부터 펌은 해도 자연 곱슬은 절대 드러내서는 안 될 것 같았고, 자라 올라오는 곱슬머리를 뽑는 습관이 생겼다. 매직을 하거나 고데기로 머리를 일차로 펴주고 그 위에 컬링기로 컬을 만들고. 심지어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서도 한인 미용실에 가서 매직을 했다. 참 수고스러운 매직 인생 20년이었다.


매직과 작별할 날이 올 줄 몰랐는데, 코로나는 여러 변화를 불러왔고 탈매직도 그중 하나였다. 미용실을 2년 가까이 안 가다 보니 새로 자란 곱슬머리 부분이 훨씬 많아져서 매직한 부분이 오히려 보기 싫은 감격스러운 순간이 찾아왔다. 유튜브와 네이버 카페에 곱슬로 살아가는 사람들 커뮤니티를 발견하고는 밤잠을 설쳤고, 가위를 들고 매직 부분을 다 잘라냈다. 생머리보다 컬이 있는 머리를 더 선호했으면서도 정작 내 머리는 구제불능인 줄만 알았다. 탈매직을 하고 보니 내 머리는 물결 모양의 웨이브가 있고, 관리법에 따라서 다양한 연출 (?)을 할 수 있는 머리란 것을 알게 되었다. 평생을 나와 함께 한 내 머리를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에 어이가 없는 건지 허탈한 건지 잘 모르겠다. 곱슬을 감추려고 애쓰며 살아온 시간과 돈과 상한 머릿결이 안타깝기도 하고. 마음이란 게 참 웃겨서, 이제는 내 머리가 더 곱슬곱슬하고 컬이 더 뚜렷했으면 좋겠다. 자연 곱슬머리를 다 풀고 처음 출근한 날은 벌거벗은 것 마냥 긴장되었고, 긴장을 해서인지 퇴근하고 집에 오니 온 몸이 피곤했다. 태어난 데로 살아가는 것에도 용기와 시간이 필요했다. 내 머리에 적합한 곱슬용 헤어 제품을 쓰고 곱슬머리 관리법을 하나씩 실천해보고 있다. 아직은 조금 어색하기도 하지만 내 머리랑 차근차근 친해지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동네 여행의 수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