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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May 21. 2022

우연아! 너의 이름은…

우연히 나에게 온 이름들

우연아! 너의 이름은…



우연히 나에게 온 이름들




"우울아! 안녕~

고등학교 친구들은 나를 우울이라고 불렀다.

눈물이 많았던 사춘기 시절, 원래 우울해서 우울이가 된 건지, 우울이라 불려 학창 시절이 우울했던 건지 모르겠다. 우울해도 할 건 다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사장은 나의 자유를 뺏고선 월급과 함께 ‘이양’이란 등넘버를 붙여 주었다.


“이양, 박사장 온다니까 구로 다방에 커피 두 잔 배달시켜”


구로 다방에 커피 두 잔을 주문하면, 다방종업원은 센스 있게 커피 네 잔을 가져온다. 잠시 후 빨간 뾰족구두에 노오란 스카프를 두른 종업원 김양이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럽게 보자기를 들고 빼꼼히 사무실에 얼굴을 내민다. 김양의 눈웃음을 시작으로 사무실은 19금 토크쇼의 스튜디오가 된다. 김양은 켜켜이 쌓인 하얀색 커피잔을 펼쳐놓고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조지루시 보온병을 깨트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기울여  공평하게 커피를 들이붓는다.


 박사장, 이사장, 종업원 김양, 나 이양, 이렇게 넷이서 싸우지 않도록 조지루쉬 안의 커피는 4등분으로 쪼개진다. 그렇게 이양으로 불리며 김양에게 커피를 몇 년간 얻어먹었다.


이양은 그래도 우울했다. 우울해도 할 건 다한다. 결혼하고 엄마가 되었다. 어느 날 내 인생 무대에 등장한 이웃, 시댁 식구들은 나를 새댁, 애기, 은지 엄마로 불렸다.


역시 그래도 우울했다. 우울해도 단절된 경력을 이어 붙여 재취업을 했다. 직장에서 선생님, 이주무관, 이주사 등. 영혼 없는 이름들이 내 옆을 졸졸 쫓아다녔다. 소원한 적 없는 책임감 한 다발을 가져다주는 그 이름들..듣기만 해도 부담스럽고 가슴이 턱턱 막히는 클리셰를 담고 있는 그 이름들..여태 그런 이름이 찰떡같이 찰싹 내 옆구리에 붙어있다.


그런데 아주 우연히 다른 이름이 내게로 왔다. 우연은 인연을 가져다준다. 그 인연에 감사했더니 인생이 바뀌는 기적이 일어났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 이것이 나에게는 기적이다.


글을 쓰게 되면서 우연히 지역 평생학습관의 글쓰기 강의를 들었다. 평일 오후, 주로 퇴직하신 어르신이 그 수업을 듣는다. 그곳에서 나는 ‘우연’이라고 불린다. ‘유연’이란 이름의 발음이 어려워서 그랬으리라.


“우연아~ 젊은 사람이 글을 배우니 기특하네.”

“우연아~ 젊은 피 덕분에 우리 교실 분위기가 살아나네.”

나는 ‘우연’이란 이름이 좋다.

내가 우연히 쓰게 된 글이 나에게 ‘우연’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 이름을 가지고 그들에게 ‘우연’이라고 불리게 되면서 나는 몇 시간이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쓰게 되었다.  

글을 쓰지 않을 때는 등을 벽에 기대고 하루키 소설을 읽는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남편은 나를 하루키상이라고 놀려댄다.


“하루키상, 오늘은 무슨 글 쓰시나요?”  

“하루키상, 글 쓰려면 밥은 먹어야죠.”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화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


남편은 그런 내 모습이 재미있는지 더 놀려댔다.

아마 남편도 나를 20년 넘게 여보라고 부르는 게 식상했나 보다. 어쩌면 복수일지도...


재테크에 능통한 남편을 애써 비아냥 거리듯 ‘조박사’라고도 불렀으며, 운전하기 싫을 때 ‘조기사’라고도 불렀다.


내가 그에게 던진 조소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좋아하는 하루키 이름으로...

우연이라는 이름이 하루키상을 만들고도 기운이 남았던지 우연이 철철 넘쳐 연극을 만나게 해 주었다. 자유를 소원하고 표현하고픈 나의 욕구를 어떻게 알았는지, 연극은 내 맘을 자로 댄 듯, 맞춤옷을 선물로 주었다.


첫 수업 시간, 선생님은 오염된 이름이 아닌 자신이 듣고 싶은 이름을 만들라고 했다. 핑크공주, 제비추리, 돌쇠 등 다양한 이름이 태어났다. 나는 내 이름표에 '이작가'라고 썼다.


이작가라고 쓰고 보니.. 음주가무를 즐기던 20대, 그 시절 나이트클럽 웨이터 이름이 생각난다. 당시 웨이터 이름은 부르기 쉬운 세 글자가 많았다. 변호사, 휘발유, 박찬호, 백원만 등… 이작가란 이름은 나이트클럽 웨이터처럼 부르기 쉽고, 외우기 좋다.


클럽 입구에서 기도가 묻는다. “담당 웨이터 있으세요?” 우리의 담당은 변호사였다. “변호사 불러주세요” 추억여행 기차를 타고 나의 새로운 이름 ‘이작가’를 불러본다.“이작가 불러주세요”나는 이렇게 나를 호출하련다. “이작가 나와라~ 오늘 신나게 글 춤추자"  그렇게라도 불리고 그렇게라도 억지로 정체성을 만들고 싶었나 보다.


나를 리메이크한 짝퉁이 더 나답다. 그 재현이 더 가치 있게 보인다. 이렇게 나의 본질과 다르게 부풀린 작가라는 이름의 퍼포먼스가 부자연스럽지만은 않다.


 700와트 힘과 18인치 덩치로 나를 흔들어대던 대형 스피커의 울림이 아직도 내 귀에 잔상으로 남아있다. 열아홉의 나는 그 박자를 핑계로 수줍게 춤췄다. 이십팔 년 전 소녀였던 나는 금지된 곳에서 대담하게 춤을 추었듯, 마흔일곱이 된 지금의 나는 자격 없이 이렇게 글을 쓴다. 키보드 박자감에 나의 손가락이 그때의 웨이브처럼 흐느적댄다. 일주일에 한 번, '이작가'웨이터가 되어 작가 연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그런 마음으로 열아홉 살 소녀가 되어 연극수업을 하고 있다.


아직은 아쉬웠던가. 우연이라고 하기엔 좀 모자랐던가. 우연은 내 주머니에 하나를 더 쑤셔 넣어 주었다.

글쓰기만큼이나 나와 어울리지 않는 취미가 있다. 모두가 잠들어 묵직해져 버린 시간을 흔들며 잔잔하게 일어난다. 눈을 감고 차분히 집중하면 마음이 호흡으로 채워진다. 그렇게 매일 아침 나를 마음 부자로 만들어 주는 명상이다. 1년 넘게 새벽에 같이 호흡하던 모임에서 글쓰기를 좋아하는 분들과 인연이 되어 글공부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유영작가라고 불린다. “유쾌하게 자유에 대해 말하고 싶은 유영작가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불러준다.  

없던 유쾌가 생기고 뺏겼던 자유를 찾게 될 것 같은 이름이다. 

 그 이름으로 불리며 내 글을 공유하고 같이 읽는다. 그들은 연금술사가 되어 보석 발견 토크라는 마법으로 내 글에 없는 보석을 만들어준다. 

 순식간에 내 글이 반짝거린다.

오타, 문법에 구애받지 않고 우리는 꾸준히 멀리 날아가고 싶다.


이제껏 많은 이름이 생채기를 내고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양은 결혼해서 은지 엄마가 되었다.

은지 엄마는 직장에서 ‘이주무관’이란 등넘버를 달고 뛴다.

뛰다 지치면  ‘우연이’란 이름을 달고 기적을 꿈꾼다.

우연이는 무라카미 하루키 덕분에 집에서 ‘하루키상’이라 놀림받는다.

놀고 싶을 때면, 이작가 명찰을 가슴에 달고 키보드 위에서 금지된 춤을 춘다.



어느 것도 내가 아닌 것은 없다.

모두 나다. 다 소중하다. 뭐라고 불리든 매 순간 감사하고 즐겁게 살련다.

그래도 가능하면 키보드 위에서 춤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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