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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May 29. 2022

충분히 만족스럽고 완벽한 세안법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얼굴



나는 그들을 불편하게 만든 죄인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안경 12개를 매일 바꿔 껴도

컬러렌즈를 끼고 강아지, 고양이처럼 애교를 부려도

히알루론산을 쏴서, 없는 물광을 강제로 뿜뿜 거려도

보톡스로 식빵 모양 턱을 계란형으로 만들어도

 관심 없다.


관심받기 위해 몸부림칠 땐 그렇게 관심 보이지 않더니

관심받는 것에 몸사림 치니 이제와서 관심 가지더냐. 그것도 불편한 관심을…

그들은 불편해한다. 나는 죄를 지은 것이다. 그들을 불편하게 만든 죄.


그래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조용히 있거나, 반대로 뭔가 잘 아는척 오히려 떠들어 댄다.

“예전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꿈이었지. 내 그라데이션 기술이 아주 좋았어. 이래뵈도 96년에 영등포 라*뷰티아카데미 졸업생이야”


하지만, 출장이나 여행을 가면 어김없이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나는 또 미안해한다.

그들은 그만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속사포 같은 주문을 퍼붓는다 . 내 죄에 대한 저주를 담아...


“진짜? 정말 선크림도, 스킨도, 로션도 마르지 않는다구요? 그럼 세안할 때 폼크린싱은요? 안 한다고? 왜? 왜 그래야 해요? 얼굴이 당기지 않아요? 그러지마요. 다 포기한 사람처럼… 분명히 쭈글쭈글 늙을 꺼에요. 정말 1년도 안 돼서 엄청나게 후회할 거라구요. 아마 눈물을 흘리며 피부과에 돈 다발 갖다 바칠껄요 어머. 어쩌면 피부암에 걸릴지도 몰라요.”


머릿속을 뱅뱅 어지럽게 만드는 이런 말을 들을바에야

알아먹을 수 없는 헤리포터 마법사의 주문이 듣기 편하다. 

아브라카다브라, 카스트로폴로스, 비비디 바비디 부. 디에세오스타









어쩌다 노메이크업을 넘어 화장품없이 살게 되었다.





2020년 3월, 그날 휴가였는지, 출장이었는지 기억에 사라졌지만, 시간이 남아 우연히 도서관에 들렀다. 뭔가에 이끌려 평소 관심 없던 가정 분야의 코너에서 서성거렸다. 무심코 책을 펼쳐 들었는데 제목이 <화장품이 피부를 망친다> 였다.


당시 나는 미니멀리스트처럼 되고 싶어 아등바등했기에 이 책을 핑계로 화장품을 줄여볼 요량이었다 

시험 삼아 3개월만 화장품 없이 지내보기로 결단했다. 그러던 것이 6개월이 되고, 1년이 지나가더니 만 2년을 넘겼다.


어쩌다가 이렇게 노메이크업을 넘어서 아예 화장품 없이 살게 된 걸까.


뭐 엄청난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다

미적 철학이나 가치관같은 것도 아니다

건강 이따위 것들도 아니다. 


그냥~ 완전 편해서였다. 


나는 그냥 자유하고 가벼운 나비가 된 느낌이었다

비가 오면 나뭇잎을 우산삼아 지내는 나비말이다

화장하지 않아도 아름답게 나는 나비

태양아래 썬크림 없이 나는 나비

나뭇잎과 꽃만으로 충분한 나비


나는 너무 많이 가졌다


나는 물만으로도 충분하다






충분히 만족스럽고 완벽한 세안법




아~ 나의 충분히 만족스럽고 완벽한 세안법을 소개한다.


사실 이게 정말 세수일까 라는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꼭 말하고 싶다. 정말 만족스럽고, 개인적으로는 완벽한 세안법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렇게 우기고 싶은 마음을 담은 손길로 가볍게 물방울을 얼굴에 튀겨주기만 하면 된다. 끝~ 창피하지만, 이것조차 잊고 그냥 잠들 때도 있다.


여자들은 안다


아니 남자들도 안다. 비비크림 정도의 메이크업을 하는 남자도 많기에…그래 관심이 있는 사람 다 안다.

선크림, 비비크림 등 베이스 메이크업 제품뿐 아니라 포인트 메이크업을 위한 웬만한 화장품에는 유분의 기운이 담겨 있다는 걸 말이다.


그 기운은 생선의 비늘에서 온 반짝임이던가, 아니면 연지벌레 암컷에서 온 붉은 색감이던가.

아마도 식물에서 온 기름일 수도 있다.

이 유분의 기운은 같은 기름으로 지워야 하는 법이다


기름기 가득한 클렌징 오일로 얼굴을 문지른다. 문지르는 손길은 달의 인력으로 움직이는 파도처럼 내 얼굴 위에서 리드미컬하게 춤추며 하얀 거품을 만들어 낸다. 클렌징 거품은 나를 집어삼키듯 덮치지만, 조금 더 문지르면 산산이 부서져 버린다. 포말이 흔적도 없이 바다로 돌아가듯… 메이크업으로 단장된 내 모습도 본디 내 얼굴로 돌아온다.


순간 그 민낯을 보고 놀라 차가운 스킨으로 얼굴을 진정시킨다. 진정된 마음으로 다시 거울을 보니 조금은 나아져 보인다. 이때,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며 로션과 각종 에센스 등의 기초화장품을 바른다.


여자로 태어난 이상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은 저주다.

자기 관리가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느낌, 만족스럽다는 느낌은 그 저주에 걸리게 한다.

팍싹 늙고 주름살에 푹 쩔어 꽥하고 죽어 버릴꺼라고.


나는 그 자기 관리를 포기했고, 내 얼굴은 그렇게 저주에 걸려 죽었다


하지만 그 죽은 얼굴이 왠지 마음에 든다.

촉촉한 물광이 사라진, 약간 까슬한 솜털 느낌의 살결.

비바람에 깎인 매끈한 지구가 아닌 달의 크레이터 같은 모공

40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기미, 주근깨, 잡티, 붉은 여드름 자국

말하고 먹고 마시고 웃고 우는 나의 모든 추억만큼 잔잔히 파인 주름

그 모든 것이  나 자신이며, 그것들이 진짜 아름다움이라고 느끼는 순간


죽었던 나의 얼굴이 저주에서 풀려 살아난다.

나의 이 두 번째 얼굴, 이 얼굴은 다시 부활한, 거저 얻어걸린 얼굴이니 그냥 감사할 따름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렇다 사랑의 하나님이 나의 얼굴을 그렇게 만드셨을 리 없다.

오일 클렌저 →  클렌징 폼 → 스킨 → 에센스 → 로션 → 수분 크림 → 자외선 차단제


휴~

레위인이 하나님께 지내는 제사법만큼이나 복잡한 정성을 들여야만 유. 수분 밸런스가 맞아 건강하고 밝은 피부를 가지게 된다니~ 그럴 리가 없다.


고양이는 스스로 몸을 핥는 그루밍 외에 어떤 짓거리를 하지 않아도 털에서 윤기가 흐른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모든 동물을 다스릴 권능을 주셨는데 설마 고양이에게도 있는 윤기가 나에게 없을 리 없다.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하니 즐겁다.





아주 충분하고 만족스럽고 완벽할 하루를…





보너스로 얻은 이 얼굴을 쳐다보며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어떤 건지

생각해 본다.


생각해 보니..

나는 작가가 되고싶다

나는 책 읽고 노래하고 춤추는 내가 좋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거울을 보고 말한다.


"이작가 너 아주 충분해 만족스러워.. 아니 완벽해.."


어 입술이 갈라져 있다. 바셀린 통에 손가락을 푹 찔러 바셀린을 덜어내 갈라진 입술에 펴 바른다.

바르고 남은 바셀린 찌꺼기를 보고 있으니 감사한 마음이 솟고라친다.


마지막 잔여물까지 감사하겠다는 의지로 식빵에 버터 바르듯 손바닥에 척척 문대어 누르고 슥슥 비벼 이작가 머리통으로 가져간다. 이작가 머리통이 애써 지탱하고 있는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바셀린으로 탱글탱글 해진다.


나는 무한 긍정과 애정의 바셀린 손길로 내 머리통을 살살 쓸어내리며 어루만진다.


그렇게 나는 나를 바셀린으로 쓰다듬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주 충분하고 만족스럽고 완벽할 하루를…

시작한다.






글을 읽기 힘든 분을 위한 오디오파일을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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