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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Jul 09. 2022

책으로 가는 길

다양한 책 읽기 방법

경멸의 시선이 달음박질한다. 빛의 속도로 직진해 가림막을 뚫고 나에게 온다. 잠깐 멈칫하더니 120만 개의 시신경 다발을 열어젖히고 나의 뇌 속을 파고든다. 위장에서 유영하던 피들은 그 시선날벼락에 놀라 일제히 뇌에게 달려간다. 피들이 달려와 위로해주자 뇌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렇게 말한다. 


‘사피엔스 시절에 뱀이나, 늑대를 두려워한 것처럼 나는 저 시선이 무섭다. 사르트르가 말했던가. 타인은 지옥이라고… 왕따가 될지도 모르니 뭔가 떠올려야 한다. 빨리 생각해내자.’ 


두려움은 나의 위장을 파고들어 혈액의 흐름을 막고, 침 속에 아밀리아제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해서 소화를 방해한다. 그렇게 책보며 밥을 먹는 나는 타인의 시선 때문에 배도, 머리도 아프다. 


타자없이 책을 보면 소화가 잘되고 밥도 맛있다. 문장들이 피를 위장으로 쓸어 주어 위가 축축해진다. 문자는 밥과 함께 잘근잘근 잘 씹힌다. 국물의 후루루 박자에 맞춰 책의 내용은 뇌로, 음식물은 위장을 향해 행진한다. 


두려움 없이 책을 보고 소화도 잘되는 방법이 있다.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책 읽기, 실용적 책 읽기, 함께 읽기 등 책으로 가는 여러 길을 소개한다. 


 가볍게 읽기

 인싸인 듯 거만한 자세로 카톡 메시지를 확인하는 척한다. 점심시간에 10분 정도, 아주 가볍게 책을 읽을 수 있다. 오로지 이 서비스를 위해 한 달에 9,900원을 지불한다. 평일 점심에 이용하는 기준으로 보면 하루에 500원꼴이니 나쁘지 않다. 그것은 밀리의 서제에 챗북이다. 


요즘 <죄와벌>챗북을 읽고 있다. 종이책으로 읽는 데 1년이 걸렸다. 9페이지에 달하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독백을 <ㅎㅎㅎ> 로 치환한다. 단 한 줄도 아닌 한 단어도 아닌 기호로 표현하는 이 챗북의 가벼움이란… 


토스토엡스키가 200년을 거슬러 호통을 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묘하게 재미지다.




쫑긋 읽기

실용적이면서, 멋스럽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옷은? 레깅스다. 입은 사람이 젊다면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레깅스 같은 책이 오디오북이다. 


내가 돈이 없냐, 귀가 없냐, 그러나 몸매가 안되기에…레깅스는 못 입지만 오디오북은 듣는다. 


하루 24시간 중 단 1분도 허투루 쓰기 싫다. 가끔 멍 때리기도 하지만, 그 멍 때림도 계획하에 하고 싶다. 일상 속에 컨트롤하기 힘든 시간들의 묶음이 있다. 자투리라고 말하는 이런 시간, 오디오북은 시간을 변형시켜 길게 또는 찰나로 만들기도 한다.


운전이나, 집안일을 할 때 주로 듣는다. 소설 같은 장르는 네이버 오디오 클립, 오디언, ebs 등 제작사가 다른 여러 개의 오디오 북을 구입하기도 한다. 여러 권을 구입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성우에 따라 읽는 속도, 텐션이 다르다. 그 다른 느낌 또한 재미있다. 남자사람친구라는 미명으로 동시에 여러 이성을 만나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요약본은 시간이 짧고 완독본은 길어서 좋다. 나는 모든 남자가 좋듯 모든 오디오북이 좋다.


요즘 듣는 오디오북 철학vs 철학은 런닝타임이 50시간이다. 하루에 1시간 정도 들으니 두 달이면 이 벽돌책을 다 듣게 된다. 물성으로 철학vs철학을 만나면 거부감이 일어나지만 오디오북은 만만하기도 하고 편하다.


순서가 가끔 바뀌기도 하지만 보통은 종이책을 읽고 오디오북을 듣는다. 오디오북을 듣고 다시 또 종이책을 펼쳐보기도 한다. 



 생매장시켜 읽기

나는 성안토니오를 괴롭히는 악마처럼 못되게 책을 읽는다. 아름다운 작품을 더럽히겠다는 의지로 마구 낙서한다. 더럽게 읽는다. 신에게 용서받을지 모르겠지만, 저자에게는 용서받지 못할 만큼 폭력적 책 읽기라 하겠다.


잠자리가 신기하고 귀여워서 잡아당기니 날개가 찢어졌다. 마구 움직이는 게 예뻐서 살짝 눌렀더니 죽어버렸다. 철없는 아이가 잠자리를 대하듯 책을 읽는다. 그러다 문득 죄책감이 밀려온다.


적당한 죄책감에 책 보는 것이 민망해질 무렵 생치기 난 책을 난도질한다. 숨통을 끊어버린다. 한 번에 600페이지까지 부드럽게 잘리는 절단기로 묶였던 책을 낱장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곤 마치 영생에 집착하는 파라오처럼 절단된 책을 조심스럽게 양면고속 스캐너로 구글드라이브에 생매장한다.  


그 더러움이 그리울 때 파헤쳐서 다시 읽기도 한다. 도굴하기 좋은 삽, 곡괭이 같은 것들이 있다. OCR 기술이나 PDF의 음성변환 등을 이용하면 색다른 책 읽기가 가능하다.


블랙프라이데이에 어도비를 구독하면 포토샵이나 프리미어이외에도 어크로뱃 디씨를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다.(학생할인으로 18천 원에 구독한 기억이 있다.) 스캔한 PDF에 OCR옷을 입혀 텍스트로 검색해 보고 오디오북도 만들어보는 재미가 있다.



젊게 읽기

여기서 이북리더 이야기가 빠지면 섭섭하다. 7-8년 전인가 구매한 리더기가 집구석 어딘가에 있을 법한다. 아~ 나의 뻘짓은 언제나 최선을 다해, 최대한 더 뻗어나간다.  그런 뻘짓 덕분에 취미 부자가 되었고, 오닉스 포크도 만났다. 오닉스가 그 전의 리더기에 비해 드라마틱하게 빠르진 않다. 역시 전자 잉크 방식이 다 그런가 보다. 


그러나 괜찮다. 자주 보지는 않지만 같은 책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는 건 기분전환도 되고 재미있다. 역시 누군가를 괴롭힐 때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히면 더 재미있듯 말이다. 또 누군가를 사랑하면 다 해주고 싶듯 이북리더기에게 예쁜 옷도 입혀주고 보호장비도 씌워준다. 


아이패드로 볼 때는 애플펜슬로 꾹 눌러서 밑줄을 긋는다. 낙서도 하고 그림도 그려 넣는다. 노타빌러티 같은 어플을 이용하면 녹음을 하며 밑줄을 그어 같이 관리할 수 있다. 언젠가 필요한 경우에 밑줄을 클릭하면 녹음된 파일을 들을 수 있어 좋다. 


펜슬이 아니더라도 손가락으로 터치해서 긋는 밑줄도 간질간질하다. 오닉스포크의 쑥스러운 듯한 느린 반응도 왠지 귀엽다. 




5. 나눠 읽기

마지막으로 나의 책에 대한 삐뚤어진 욕망을 들이부을 수 있는 곳이 있다. 국민도서관 책꽂이라는 온라인 도서공유 플랫폼이다. 내 책을 어떤 이데아 같은 이상적인 보관장소, 그러니까 항온, 항균, 제습 등의 설비들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곳에 보관해준다. 덤으로 다른 이들의 보관된 책을 빌릴 수 있다.

 

탐욕스럽게 구입한 책이 내 눈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맥없이 누워있을 때, 심지어 책장에 빈 곳 마저 없어 누울 자리도 없을 때, 밀려오는 그 죄책감에 면죄부를 주고 싶다. 그런 책을 국민도서관에 보관한다. 


면죄부를 돈으로 사고 내 책은 죄사함을 받아 깨끗하게 소독된다. 새 이름으로 라벨링 되어 저 세상 어딘가에 앉아있다가, 누군가의 부름을 받고 그의 정기를 책장 사이사이에 담아 둔다. 


얼마 전 인문학 동아리에서 구스타프 클림트를 다뤘는데, 이 국민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일반적인 도서관에서 볼 수 없는 클림트의 책이 많이 있었다. 2달이나 되는 넉넉한 대여기간도 사랑스럽다.



나는 책을 애정 한다. 사랑하고 정을 느낀다. 나는 따뜻한 시선으로 책을 바라본다. 그러나 사랑하기에 절단내고 생채기 내고 싶다.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좋아한다. 


나의 이런 행태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원래 인간은 타인이 자신과 비슷하지 않거나 범주를 벗어나면 일단 좋지 않게 본다. 나 역시 그렇다. 너도 그렇다.


집에서 혼자 책을 읽기만 하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내 맘대로 책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타인들과 섞인 공간이라면, 나는 그들을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안, 솔직히 배려보다는 자유하고 싶다. 내 인생이고, 내 책이니… 책으로 가는 길은 내가 정하고, 자유롭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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