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영 Aug 06. 2022

사랑하기에 나눌 수 없다

술잔 따르는 진심

“혈액검사 결과 **수치가 높네요. 술 담배 하세요?”

'아~ 내가 내 돈 내고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나.'

2년마다 받아야 하는 직장인 건강검진 때마다 의사에게 죄인 취급당한다.


내가 건강검진을 받지 않으면 교장선생님이 과태료를 내야 한다. 물론 나도 과태료를 내야  한다. 대한민국의 직장인은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4대 의무는 아니지만,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의무이다.


~해야 한다.라는 이 말이 얼마나 싫은지. 그러나 더 싫은 것은 술을 일주일에 두 번만 마시라는 의사의 소견이다. 


건강검진을 마친 그날, 바로 보란 듯이 내가 좋아하는 연태 고량주를 마셨다. 그러나 두 번만 마시라는 여의사의 명령 때문에 마지막 한 번의 기회를 남겨 둬야 한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계장님, 직원 2명과 헤어지게 되어 슬프기 때문이다. 그 아쉬움과 함께하는 술맛을 상상해 본다. 


역시 회식이 있기 때문에 마시는 것이 아니다. 나는 술은 좋아하기에, 너무 사랑한 나머지 혼자 독차지하고 싶다. 사랑하기에 나누지 않는다. 권하지도 않는다. 석정의 이별을 안주 삼아 마시는 그 술맛은 오롯이 내 소유다.


회식은 5시에서 12시까지 이어졌다. 1차는 양꼬치 집이다. 이국적인 가게에 들어가자 지글지글 소리와 묘한 냄새가 어우러진 박자에 맞춰 꼬챙이가 빙글빙글 돌아가게 보인다. 다들 시원한 칭따오에 소주를 믹스해 폭탄주를 제조하는 **주무관의 모습을 보며 침을 꼴딱 삼킨다. 이미 눈으로 한 모금 들이마시는 거다.


양 갈빗살에 쯔란 옷을 입혀 누린내를 없애, 한입 베어 문다. 입안에 기름과 함께 양고기의 육질이 느껴진다. 남은 느끼함을 한 방에 날릴 시원한 폭탄주를 눈으로만 마시는 것은 고문일 것이다. 그러나 남들이 다 느끼는 술땡김을 나는 느끼지 못한다.  비바람이 야무지게 불어오는 이 풍경에는 차가운 정종이 어울리기에 지금의 폭탄주에 아무 흥미 없다. 마치 불감증 걸린 것처럼…


2차는 야식집이다. 간판도 없고 상호는 보이지도 않는 허름한 가게이다. 들어가자마자 입술이 댓 발 나온 아저씨가 무뚝뚝하게 서있다. 입으로 뭐라고 중얼거리시는데 그게 인사인듯하다. 옆 테이블에 무서워 보이는 젊은 언니, 오빠들이 있다. 그들의 거친 행동에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든다. 매워 보이는 갈비찜과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계란찜이 등장하니 어깨가 펴지면서 무서움이 사라졌다. 술은 소주와 고량주를 시켰다. 


술 잘하는 막내 주무관이 고량주를 시켜놓고선 뚜껑을 열지 못해 낑낑댄다. 나는 수줍게 술 구멍을 가리키며 “이 하얀색 술 구멍이 올라오면 그냥 따라 마시면 돼~” 라며 끝을 흐렸다.

주무관은 신기한 얼굴로 술 뚜껑 한번, 내 얼굴 한번씩 쳐다본다. 나는 애써 외면하지 못하고 “내가 좋아하는 술이야. 과일향이 좋아. 혀끝에 달콤한 맛이 느껴질 거야.. 도수도 삼십몇도 정도밖에 안돼.. 좋은 술이야”라고 말했다.


그렇게 좋은 술 한잔 마시라며 다들 나에게 권했다. 사실 이때 약간 흔들린 건 사실 술 때문이 아니라 술잔이 너무 이뻐서였다. 아마 고량주 전용 술잔인 듯한데 특이하게도 크리스털이었다.


십 센티도 안 되는 높이에 아주 슬림하고 투명했다. 찰랑거리는 고량주의 몸짓과 잔의 날씬한 허리가 만나 아름답게 반짝였다. 순간 나의 동공 지진을 느끼기라도 한 듯. 주무관은 “어서요. 주무관님, 이 술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라고 흥분하며 말했다.


사실 그 고량주는 내 베개 옆 삼십 센티 부근에 항상 놓여있다. 나는 오늘 밤 그와 함께 할 거다. ‘기다려~’하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3차는 **주무관의 집에서 이백만 원짜리 노래방 기계와 함께 했다. 물론 가무에 음주가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 가수 뺨따귀 후려치는 듯한 실력을 갖춘 집주인의 노래를 안주 삼아 다들 맥주를 마셨다. 역시 나는 나의 행복의 최대치를 느끼기 위해 지금 잠깐의 즐거움을 뒤로 연기한다. 마치 제사상에 놓인 약과를 먹고 싶지만 제사가 끝날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그래야 엄마의 사랑도, 약과도 모두 차지할 수 있기에…


4차는 내 방에서 나 혼자 한다. 12시를 넘긴 그 적막이 아니면 안 된다. 깜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혼자가 아니면 안 된다. 나는 술을 너무 사랑하기에 오롯이 단 하나의 사랑만 느끼기 위해 혼술 한다. 모든 일을 멀티태스킹 할 수 있지만 술만은 싱글 태스킹이다. 가장 집중해야 할 때는 바로 술과 함께 하는 그 순간이다.


 술을 마시는 순간 나는 나에게 집중한다. 술은 오늘의 나를 위로해 주고 내일의 나를 응원해 준다. 술을 사랑함은 나를 사랑하고, 그대를 사랑하기 위함이다.

작가의 이전글 책으로 가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