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상담소2> 1화 애도작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상담소 시즌 2>는 지난 2년간 두 여자, 유영과 캘리의 내밀한 개인상담 이야기를 시간순으로 엮은 공동매거진입니다. <잃시상 시즌2>는 평범한 직장인 유영이 우연히 심리상담전문가 캘리를 만나 편지와 개인상담을 나누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던 유영이 캘리의 상담을 통해 감정의 바다에서 유영(游泳)할 수 있게 되는 성장 스토리입니다.
제1화 ‘잃어비린 시간을 찾아보는 시간은 피해자에서 갑자기 가해자가 된 유영의 개인상담 이야기입니다. 유영과 캘리, 두 여자가 상담을 통해 풀어가는 이야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상담소 시즌 2>는 격주로 발행됩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지난달에 페르세우스 유성우를 보러 천문대에 다녀왔어요. 하늘에 작은 빛이 별이 되고, 그 별들이 모인 자리에 사람들이 의미를 담고, 별은 다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위안을 주네요. 문송안한 저는 켜켜이 쌓인 감정일기가 별자리처럼 느껴져요. 감정일기의 텍스트 하나하나가 연결되어 생각이 집합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선생님과 저의 마음이 닿게 되었어요.
이제는 감정일기 없이도 감정의 바다에서 유영할 수 있다는 졸업장을 주실 거 같은데요. 다시 입학합니다. 감정일기가 아닌 개인상담으로요. 거기다가 가해자로요. 저는 항상 피해자였는데 말이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는 절대 상담을 받지 않고, 상담소를 찾는 사람은 피해자들이라고 하더군요. 마음이 상처로 누더기가 된 사람들, 그들이 상담을 받고, 저처럼 감정일기를 쓰겠죠. 저에게 감정일기는 별자리처럼 아름다운 것인데요. 가해자 페르소나를 입고 쓰는 감정일기는 별 볼일 없는 자리입니다.
저는 왜 몰랐던 걸까요. 아니면 관심이 없었던 걸까요. 딸아이가 고등학교 때부터 상담센터 문턱이 닳도록 들락날락했고, 여태 대학에서도 그런다고 하네요. 아이가 조심스럽게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고 싶다고 했을 때 벌레가 제 머릿속을 파먹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마음공부를 하는 나에게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고, 그게 내 유전자 멜로디 패턴을 이어받은 딸이라니~
밖에서는 esfj 관종이면서 집에서는 뼈 때리게 솔직한 저를 보면서 딸아이가 마음으로 지른 비명이 얼마나 쩌렁쩌렁했을지. 그런데 저는 마음이 아픈 게 아니라 머리가 아프더라고요. 사무실일이며, 관종활동으로 바쁜 와중에 딸아이의 상처는 저에게 걸림돌처럼 느껴졌지만, 어쩌면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기회를 놓치면 그레고르 잠자 처럼 벌레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요.
다른 쪽의 생각도 있었어요. 충분하다고, 이 정도 했으면 되었다고 생각이 들 때, 그 순간이 다른 확장과 가능성의 초대장이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충분함 너머의 새로운 세계가 있을 것 같은 기대요. 그래서 딸아이의 상담을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얼마 후에 저도 상담을 받게 되었죠. 자녀에 대한 문제, 아니 자녀를 통해서 바라보는 저의 문제가 촉발되어서 또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기대해 봅니다.
그냥 아무런 사건이 없다면, 중요한 걸 놓치고, 놓친 지도 모르고, 그저 나의 욕망대로 살아가겠죠. 그래야 또 직성이 풀리는 게 본능인 거 같아요. 딸아이를 위한 상담이라고 하지만, 딸을 통해 제가 치유받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겠죠. 이런 걸 가족상담이라고 하나요? 다른 상담은 처음에 서로 소개도 하고, 상담과정에 대해 설명도 하겠지만, 바로 가계도를 그리셔서 신기했어요. 개인적인 스트레스나 환경 때문에 상담을 받는 건데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그리고 남편 쪽 식구들까지 다 시각적으로 표현해 주셔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보는 시간이 되었어요.
선생님과 대화를 통해 가족 내에서 저의 역할, 갈등의 구체적인 원인, 이런 거 말이죠. 바로바로 찾지는 못했죠. 어렵겠죠. 어떻게 한 번에 다 찾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어떤 패턴이 보였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아버지 어머니로 내려오는 갈등의 패턴들이요. 이 패턴이 지금 저의 문제와 , 일부 관련이 있어 보였어요.
가계도를 그리면서 잊고 있었던 유산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셔서, 영혼까지 찌릿찌릿 놀랐어요. 딸아이 전에, 그러니까 처음 저에게 찾아온 아이요. 그 아이는 두려움, 설렘, 기쁨등 여러 감정을 저에게 주었지만, 자리를 잡지 못하고 서성이다가 저와 헤어졌어요. 이름도 불러주지 못한 그 아이요. 그리고 지금의 딸아이를 낳고, 또 몇 년 후에 여느 집처럼 둘째를 가졌어요. 둘째를 품은 지 두 달이 채 되지 못했을 때, 의사에게 이형임신이란 말을 들었어요. 초음파를 통해 한쪽 난관에 걸쳐 자리 잡고 있는 아이가 또 보인다면서, 논문감이라고 말했어요.
의사에게 논문감이지만, 저에게는 이름도 없이 보낼 또 다른 두 명의 아이들이었죠. 너무 오래전일이라 사실 기억도 잘 나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았던 일들인데. 선생님께서는 이런 생명들에 대한 애도작업을 했냐고 여쭤보셔서 저는 어디 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어요. 그 시절 저는 철이 없었는지, 그냥 털고 일어났던 거 같아요. 몇 달 슬프고 우울했던 거 같지만, 이것도 기억이 확실하지 않아요.
선생님께서 지금이라도 애도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하셨을 때, 무슨 샤머니즘 같은 미신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25년도 넘은 그때 그 일을 다시 떠올리고, 그때에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한다면
딸아이와 관계에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혹시라도 떠나보낸 그 아이 셋에 대한 몫까지 지금의 딸아이에게 강요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세요.
유영님의 마음은 유영님도 모르니까요.”
라는 말씀을 들으니 애도작업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게 느껴졌어요.
지금이라도 이름이라도 지어주고 싶어요. 기념일도 만들어서,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챙겨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 안에서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의미를 찾고 싶어요. 다음 상담에서는 또 무엇을 챙겨 주실지 기대돼요 선생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상담소 2>는 격주에 한 번 일요일에 발행됩니다.
본 감정일기를 읽은 후 (아래 링크) 심리상담전문가 캘리의 피드백을 읽으시면 화나고 우울한 감정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심리상담전문가 캘리의 피드백
https://brunch.co.kr/@ksh3266/79